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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랑(李海浪)

  • 개요

    이해랑은 본명 해량(海良)으로 1916년 7월 서울 와룡동에서 의사 이근용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경성의전과 경도제국대학 의학부에서 공부했던 그의 부친은 세브란스의전 외과부장과 4·19혁명 직후 부산시장을 지냈다. 이런 명문가에서 태어난 이해랑은 초등학교 졸업 후 휘문, 배제고보 등 여러 학교를 다녔으며, 일본으로 건너가서 두 곳의 중학교를 거쳐 니혼(日本)대학에 입학하여 연극을 공부할 수 있었다. 대학 재학 중 유학생들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를 조직하여 <춘향전>의 단역으로 무대에 서 보기도 했다. 1938년 대학졸업과 동시에 귀국하여 극예술연구회 신입회원으로 가입했다. 극예술연구회 후신 극연좌에서 몇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이듬해 대중극단 고협에 가입하여 몇 작품 출연했으며, 1941년 유치진이 현대극장을 창단함으로써 유치진과 필생의 인연을 맺게 된다. 한편 친구였던 함세덕과 고협에서 잠시 인연을 맺었던 황철 등과 낙랑극회를 출범시켰으나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이어 김동원 등과 극단 전선도 만들었으나 역시 좌익연극의 기세로 인해 오래가지 못했다. 이러한 좌익연극에 대응하기 위해 김동원, 박상익, 김선영 등과 함께 극예술협회(약칭 극협)를 창립했으며, 1950년 4월 국립극장이 문을 열면서 극협회원들을 이끌고 들어가 신협을 탄생시켰다. 국립극장 신협시절까지만 해도 배우로서만 활동했던 그가 부산 피난시절부터는 연기와 연출을 겸한 것은 물론, 제작까지도 책임지는 거의 전천후 연극인으로 변신해갔다. 1962년 드라마센터가 개관하면서 극장장으로 참여했지만 1여 년 만에 문을 닫음으로써 연극인으로서 최대의 좌절을 겪기도 했다. 이때부터 얼마동안 예총 등과 같은 문화단체 활동에 힘을 쏟았고 출연과 연출은 뜸했다. 이 시기 민주공화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이동극장을 만들면서부터 다시 연극에 대한 집념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약 7년 동안 전국을 다니면서 연극활동을 벌인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는 연출에만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배우보다는 연출가로서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러한 성공요인을 유민영은 크게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 연극이론에 대단히 밝았다는 점. 즉 서양연극이론을 섭렵하는 과정에서 스타니슬랍스키에 심취했고, 그것을 자기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둘째, 그가 배우로서 무대에 십수 년간 섰기 때문에 작품해석과 성격창조에 뛰어났고 무대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세 번째, 인간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추리소설 중심으로 꾸준한 독서를 했기 때문에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풍부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그가 한국연극사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해방직후와 6·25전쟁 중에도 연극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그리고 1970년대 이후 연극계가 새로운 모색을 위해 혼란을 겪을 때 오로지 리얼리즘 연극의 맥을 굳건하게 지켰다는 것, 여러 극단과 대학(가령, 드라마센터와 동국대학 연극과)에서 후진을 많이 길러낸 연극계의 큰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 그의 공로로 인정 받는다. 마지막으로 이동극장운동을 통해 대중으로부터 멀리 있던 연극을 다시 대중에 밀착시키고 동시에 지방문화를 활성화시킨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 생애와 약력

    1916년 서울 출생 1922년 한문서당 다님 1923년 교동국민학교 입학 1929년 교동국민학교 졸업 / 배재고보 편입 1930년 배재고보 자퇴. 중동고보 편입 1933년 중동고보 졸업 / 도일하여 양양(兩洋)중학 5학년 편입 / 금천(金川)중학으로 전학 1934년 금천중학 5년 졸업. 연강대학 입학 1935년 니혼대학예술과 입학. 동경학생예술좌 가입 1938년 최초의 연극론 ‘신희극’을 <막> 2호에 발표 / 극연좌 가입 1939년 니혼대학 예술과 졸업 1940년 극단 고협 가입 1941년 고협 탈퇴, 유치진 주도의 현대극장 창립단원 1944년 룡산의 스토부 회사에 취직 1945년 황철, 함세덕 등과 낙랑극회 조직 / 김동원 등과 극단 전선 조직 1946년 유치진 등과 좌익연극에 대항하는 연극브나로드운동실천위원회 결성 1947년 조선예술문화사 조직 / 김동원 등과 극예술협회 조직 / 전국연극예술협회 창립 이사 / 국립극장 창설 추진 1948년 한국무대예술원을 통해 세율개정법 건의 투쟁 1949년 한국무대예술원 개편, 이사 취임 / 서울시 문화위원 피임 / YMCA의 연극입문강좌에서 연기론 강의 1950년 국립극장 전속 신극협의회 구성 / 부산지구군정훈감 김종문과 문총구국대를 조직 / 육군정훈감의 배려로 문예중대 조직 1954년 예술원 회원에 피선 1955년 미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연극계 시찰 1957년 신협 국립극장 전속으로 복귀 1958년 반공예술인단 부단장에 피선 1959년 신협, 국립극장에 복귀, 대표가 됨 1960년 동국대 연극과 전임강사 1961년 반공예술인단 부단장으로서 중정에 불려가서 심문받음 1962년 국립극단 부단장에 피임 / 드라마센터 개관과 함께 극장장에 피임 1963년 드라마센터를 떠나 신협 재건 1964년 신협, 한국일보 창간 10주년 기념 장막극 공모 /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 피선 / 신협과 결별 1965년 민주공화당 창당발기인에 피선 1966년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 피선 / 이해랑이동극장 발족 1967년 제6대 예총회장 피선 1968년 제7대 예총회장 피선 1969년 제8대 예총회장 피선 1970년 제9대 예총회장 피선 / 동국대 연극과 교수 사임 1971년 제10대 예총회장 피선 /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당선 / 이해랑이동극장 전국순회 후 완전 폐막 1974년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당선 1977년 유정회 국회의원 종료. 정계 은퇴 / 대한민국연극제 운영위원 1978년 동국대 연극과 교수 복직 1981년 동국대 연극과 정년퇴임 / 예술원 부회장 피선 / 이원경, 김동원 등과 배우예술원 개원 1984년 전국지방연극제 심사위원장 / 예술원 제20대 회장 피선 1986년 예술원 제21대 회장 피선 1989년 타계

  • 상훈

    1955년 서울시 문화상 1963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64년 5월문예상 연예부분 본상 1969년 3·1연극상 1972년 국민훈장 모란장 1985년 동랑 유치진연극상 1986년 5·16민족상

  • 작품활동

    1937년 동경학생예술좌 2회 공연 <춘향전>에 사령, 농부, 지방관리 등으로 출연 / 경성방송국 라디오드라마 <태양>(골스워디 작), <날이 밝으면 비가 오십니다>(주영섭 작), <생활도>(박동근 작) 등에 김동원과 출연 1938년 동경학생예술좌 창립 5주년 기념 <지평선 너머>(유진 오닐 작, 주영섭 연출)에 주역 로버트 메이오 역으로 축지소극장 무대에 섬 / 하계방학 중 극예술연구회 20회 공연 <깨어서 노래부르자>(클리포드 오뎃츠 작, 이서향 연출)에 찬조 출연 1940년 고협 창립 1주년 기념공연 <춘향전>(유치진 작·연출)에 농부 역으로 부민관 무대에 섬 / 고협의 <무영탑>(함세덕 각색, 유치진 연출)에 주역 아사달 연기 1941년 고협의 <동라>(박영호 작, 이서향 연출)에 악역으로 출연 / 고협의 <마의태자>(유치진 작, 이서향 연출) 출연 / 현대극장 제2회 공연 <흑경정(黑鯨亭)>(함세덕 각색, 유치진 연출)에 주연 / <흑경정>과 <흑룡강>으로 북선지방과 만주 순회공연 1943년 현대극장의 <봉선화>(함세덕 작, 유치진 연출)에 단역 출연 1945년 낙랑극회 창립공연 <산적>(함세덕 작·연출)에 동생 역으로 출연 / 전선 창립공연 <검찰관>(고골리 작, 허집 연출) 출연 / 낙랑극회 2회 공연 <봄밤에 온 사나이>(이서향 작·연출)에 출연 1946년 낙랑극회 제4회 공연 <기미년 3월 1일>(함세덕 작·연출) 출연 / 낙랑극회 <산적> 재공연에 출연 / 낙랑극회와 극단 전선 합동공연 <호접(胡蝶)>(김사량 작)과 <붓도리 군복>에 출연 / 낙랑극회 <춘향전>(유치진 작, 홍영진 연출)에 출연 / 낙랑극회 <바람부는 시절>에 출연 / 낙랑극회 <정열의 대지>(박진 연출) 출연 1947년 낙랑극회 <여명>(임선규 작, 안영일 연출)에 출연 / 조선연예문화사의 <조국>(유치진 작)에 출연 / 극협 창립공연 <자명고>(유치진 작·연출)에 출연 / 극협 제2회 공연 <마의태자>(유치진 작)에 출연 / 극협의 <왕자호동과 낙랑공주>(유치진 작·연출)에 출연 / 극협 8·15 기념 공연 <은하수>(유치진 작)에 출연 / 극협의 <목격자>(앤더슨 작, 유치진 연출)에 출연 / 극협의 <왕조군>(진우촌 작, 이화삼 연출)에 출연 1948년 극협 <조국>(유치진 작)과 <청춘>(정비석 원작, 유치진 연출)에 출연 / 총선을 앞두고 극협을 인솔하여 총선선전문화계몽대라는 명목으로 경남일대 순회공연 / 극협 제1회 연극경연대회 <껌둥이는 서러워>(헤이워드 부처 작, 허석 연출)에 출연 / 극협 <자명고>(유치진 작·연출) 출연 / 극협 <별>(유치진 작, 허석 연출) 출연 / 극협의 <죄>(진우촌 작, 유치진 연출) 출연 1949년 극협 <도난기>(고지옹 작, 김희창 각색)를 최초로 연출 / 극협 <살아있는 이중생각하>(오영진 작) 연출 / 극협 <자유를 찾는 사람들>(윤방일 작, 이광래 연출) 출연 / 중앙대 연극부 공연 <비오는 산골>(J. 싱그 작) 연출 / K.P.K 악극단 공연 <간디>에 출연 / 중앙대 연극부 <햄릿> 연출 / 극협의 <도라지 공주>(오영진 작, 이광래 연출) 출연 1950년 극협 공연 <인생차압>(오영진 작) 연출 / 극협의 <높은 암산>(앤더슨 작, 허집 연출) 출연 / 국립극장 개관 기념 <원술랑>(유치진 작, 허석 연출)에 출연 / 국립극장 <뇌우>(조우 작, 유치진 연출) 출연 / 한로단 작 <전유화> 연출 / 극단 신협을 재건하여 <혈맥>(김영수 작, 박진 연출) 출연 / 신협의 <원술랑> 출연 1951년 신협, 국방부정훈국후원 공연 <자명고> 연출 / 신협의 <뇌우> 연출 / 신협의 <햄릿> 연출 / 신협의 <붉은 장갑>(싸르트르 작, 이진순 연출) 출연 1952년 신협의 <오셀로>(유치진 연출) 출연 / 신협의 <수전노>(몰리에르 작, 이광래 연출) 출연 / 신상옥 감독의 영화 <춘향전>에 최초로 출연 / 신협의 <맥베스> 연출 / 신협의 <불꽃>(유치진 작, 허석 연출) 출연 / 신협의 <맹진사댁 경사>(이진순 연출) 출연 / 신협의 <빌헬름 텔> 연출 / 신협의 <목격자>(앤더슨 작) 연출 1953년 신협 환도기념공연 <원술랑> 연출 / 신협의 <자유부인>(정비석 작, 한노단 각색) 연출 / 신협의 <향수>(파뇰 작, 윤방일 번안) 연출 / 신협의 <나도 인간이 되련다>(유치진 작·연출) 출연 1954년 신협의 <대춘향전>(유치진 작, 허석 연출) 출연 / 신협의 <은장도>(윤방일 작) 연출 / 신협의 <줄리어스 시이저> 연출 / 신협의 <가야금의 유래>(유치진 작·연출) 출연 / 신협의 <이슬>(윤방일 작) 연출 1955년 신협의 <별>(유치진 작, 김동원 연출) 출연 / 신협의 <인수지간>(김동원 연출) 출연 / 신협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유치진 연출) 출연 / 신협의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 연출 1956년 신협의 <계월향>(이태환 작, 박동근 연출) 출연 / 신협의 <민중의 적>(입센 작, 이진섭 역, 전근영 연출) 출연 / 신협의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임희재 작, 김구대 연출) 출연 / 신협의 <다이알 M을 돌려라>(F. 노트 작) 연출 1957년 신협의 <

  • 작품활동

    세일즈맨의 죽음>(김규대 연출) 출연 / 신협의 <풍운>(오영진 작, 김규대 연출) 출연 / 신협의 <박쥐>(라인하르트·호프우드 합작, 전근영 연출) 출연 / <신앙과 고향>(K. 쉔헬 작, 서항석 역, 홍해성 연출) 출연 / 국립극단 공연 <인생차압> 연출 1958년 신협 재건공연 <한강은 흐른다>(유치진 작) 연출 / 신협의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연출 1959년 영화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에 출연 / 신협의 <소>(유치진 작, 이광래 연출) 출연 / 영화 <육체는 슬프다>를 처음으로 감독 / 한국반공예술인단 주최 6·25 반공예술제 <서울의 표정>(김석민 작)을 이진순과 공동연출 / 민극·신협 합동공연 <대수양>(김동인 작, 이광래 연출) 출연 / 신협의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연출 1960년 동국대 연극과 전임강사 / 신협공연 <안네 프랑크의 일기>(전혜린 역) 연출 / 신협, 민극과 합동으로 <빌헬름 텔>(서항석 역·연출)에 출연 / 신협의 <죄와 벌>(박동근 연출) 출연 1961년 신협의 <미풍>(하유상 작) 연출 1962년 드라마센터의 <밤으로의 긴 여로>(오닐 작) 연출과 주연 맡음 / 드라마센터의 <포기와 베스>(헤이워드 부처 작) 연출 / 드라마센터의 <한강은 흐른다> 연출 / 드라마센터의 <로미오와 줄리엣> 연출 1963년 신협 재건공연 <갈매기떼>(차범석 작) 연출 / <갈매기떼> 지방 순회공연 1964년 신협의 <학 외다리로 서다>(하유상 작) 연출 / 신협의 <오셀로> 연출 / 신협의 <어머니의 모습>(하유상 작) 연출 1965년 국립극단 <여성만세>(하유상 작) 연출 / 신협의 <그 많은 낮과 밤을>(이만택 작) 연출 / 유치진 회갑기념공연 <춘향전> 연출 / 한국연극협회와 문인협회 주최 문인극 <춘향전>(박진 작) 연출 1966년 신협의 <불신시대>(황유철 작) 연출 / 드라마센터 신춘문예공연 <동의서>(고동율 작) 연출 / 신협의 <교류>(한노단 작) 연출 / 이해랑이동극장 발족 / <오해마세요>(이진섭 작)를 연출하여 지방순회 1967년 국립극단 <세자매> 연출 / 신협의 <오이디푸스왕> 연출 / 신협의 <누가 버지니아울프를 두려워하랴>(E. 올비 작) 연출 1968년 배우극장 창단공연 <오셀로> 연출 / 국립극단 공연 <북간도>(안수길 작) 연출 / 신협의 <분례기>(방영웅 작) 연출 1969년 국립극단 <한산섬 달밝은 밤에>(신명순 작) 연출 / 신협의 <마술사의 제자>(김창호 작) 연출 1970년 국립극단 <원술랑> 연출 / 국립극단 <인조인간>(K. 차페크 작) 연출 1974년 국립극단 <활화산>(차범석 작) 연출 1975년 국립극단 <징비록>(노경식 작) 연출 / 국립극단 <광야>(김기팔 작) 연출 1976년 신협의 <이어도 이어도 이어도>(이청준 작) 연출 / 신협의 <죄와 벌>(하유상 번안) 연출 1977년 국립극단의 <파우스트> 연출 1978년 국립극단 <천사여 고향을 보라>(토마스 울프 작, 한상철 역) 연출 1979년 국립극단의 <객사>(안종관 각색) 연출 1980년 국립극단 <산수유>(오태석 작) 연출 1981년 극단 사조 공연 <라인강의 감시>(릴리언 헬만 작) 연출 1982년 국립극단의 <삭풍의 계절>(김의경 작) 연출 1983년 극단 사조 공연 <리어왕> 연출 1984년 국립극단의 <불타는 여울>(노경식 작) 연출 1985년 호암아트홀 개관기념공연 <햄릿> 연출 / 저서 <또 하나의 커튼 뒤의 인생>(보림사) 출간 1986년 국립극단 <인종자의 손>(전진호 작) 연출 / 신협의 <밤으로의 긴 여로> 연출 1987년 신협의 <황금연못>(톰프슨 작) 연출 / 국립극단의 <들오리>(입센 작) 연출 1988년 국립극단의 <뇌우>(조우 작) 연출 1989년 호암아트홀 공연 <햄릿> 연출

  • 대표작품

    <춘향전> <무영탑> <뇌우> <원술랑> <마의태자> <조국> <인생차압> <햄릿> <목격자>

  • 저서

    <또 하나의 커튼 뒤의 인생>, 이해랑, 보림사, 1985

  • 리뷰

    (……) <뇌우>는 이미 1950년대에 국립극단의 창단 두 번째 기념공연으로 우리 무대에 올려졌던 과거를 지니고 있다. 그 진정한 이유는 알 길이 없으나 북방외교의 돌풍을 맞이하면서 국립극장도 무엇인가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한 의논이 이러한 과거가 있는 작품을 다시 한번 무대 위에 올려놓는 것이 여러 모로 무난할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의 재현이 가능해졌으리라고 생각된다. 허규 극장장의 인사가 그렇게 얽혀진다. ‘정치적 이념의 벽을 초월하여 세계 각국과의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지난 38년간 묶여 있던 중국작품을 올림으로써 한·중문화교류에 일조할 수 있게 된 점이 뜻 깊은 사실이 아닐 수 없다. (……) 네 번째가 되는 이 작품의 국내공연에 빠짐없이 참여했던 김동원 선생은 ‘어떤 해설이나 사족이 필요없는 연극으로서, 관객이 보고 그대로 빠져들 수 있는 매력과 힘을 갖고 있다’고 극찬한다. ‘대담 치밀한 착상과 우수한 연극구성으로 어떤 역을 하든지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조병화 시인도 역자 김광주 선생과 함께 관람했던 1950년 공연을 회상하면 <뇌우>의 시대적 배경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그들이 엮어내는 얽히고 설킨 갈등과 욕망은 지금 이 시점의 우리 모든 인간에게도 상통된다는 이유 때문에 감격적이라고 증언한다. 원래 2주일 예정이던 것이 연장공연으로 돌입하여 한 달 가까이 롱런하면서 7만 5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하니 1950년의 공연이 거둔 성과는 일단 대단했던 것으로 인정받을 만하다. (……) <div align='right'>- < KBS 저널 >, 김문환, 1988년 11월 (……) 흔히 평생을 살면서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그의 삶은 성공한 삶이라고 하는데, 나는 평생 단 한 명의 친구 이해랑이 있었다. 그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극 동지였고, 일생을 함께 한 삶의 동반자였다. 눈빛만 봐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기에 그와 함께 했던 수많은 날들 하루하루가 나에겐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성격적으로 활달하거나 술을 잘 마시는 사람들은 친구들과 친할 기회가 많겠지만 원래 천성적으로 사람 사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혼자 지내길 좋아했던 나는 그가 유일한 친구였다. 그러나 나는 외롭지 않았다. 언제나 그가 내 곁에 있어 격려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평생토록 연극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은 이해랑이었다는 생각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내가 연극으로 좌절하고 고민할 때, 그는 나를 일으켜 주었고 믿어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나와 이해랑 사이의 오랜 우정을 보고 부부도 평생 해로하기 힘든데, 어떻게 두 분은 그토록 오랫동안 우정을 지킬 수 있었느냐며 의아해한다. 나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그것은 서로에 대한 존경과 믿음 그리고 변치 않는 의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손바닥 하나로 손뼉을 칠 수 없듯이 좋은 우정도 한 사람만이 노력해서 될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잘 알았고, 그런 부족한 부분을 상대의 장점으로 채우려 했던 것 같다. 소극적인 성격의 나는 정열적이고 추진력 있는 그의 성격이 좋았고, 섬세함이 부족했던 그는 나의 차분함과 조용함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장점을 존중하고 보완했기에 둘은 호흡이 척척 맞았다. 또한 서로 어떠한 어려움에 처해 있어도 우정을 저버리지 않는 믿음과 의리가 동시에 있었다. 내가 이북에 납치되었다가 살아 돌아왔을 때에도 해랑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의 입장을 대변해주었는데, 당시 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을 보여준 그의 우정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나는 나의 친구 해랑을 떠올리면 너무나 보고 싶어 눈시울이 적셔진다. (……) <div align='right'>- <미수의 커튼콜>, 김동원, 태학사, 2003

  • 창작노트

    (……) 실재하지 않은 세계의 생명을 희구하고 진보적인 사상의 중량에 허덕이며 협소한 사상 속에 칩거하여 예술에 대한 명민한 비판정신을 상실하고 자신도 모르게 정당의 끄나풀 노릇을 하기에 급급한 청년이 조선연극계에도 그 수 결코 적지 않다. (……) 연극에 있어 연극과는 따로 존재하고 오히려 연극의 진실을 침해하는 각도에서 연극예술을 조종하는 정당적인 정치적 진실을 수립하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영웅적인 정치적 공리심은 순수한 예술적 정신과 연극생명에 대항하여 그렇지 않아도 예술적으로 위기에 직면한 연극예술을 자꾸자꾸 잡다한 세계로 건조한 세계에로 박차를 강요한다. (……) 이들의 실증적 의식에는 예술가로서의 회의정신이 결핍되었고 일반적 의식에의 적극적인 망아적 공명은 필연적으로 자아를 성찰할 여유를 남기지 않고 단 하나 치열히 연소되는 공리적 사상에 의하여 자기의 예술이 곧 사회에 직접-위대한 공헌을 하고 나아가서는 사회 혁명을 꾀할 수 있는 기능을 하리라고 자부하는 심한 착각 속에서 이들은 헛되이 예술가로서의 자기의 천분을 희생시키고 있는 딱한 형편을 인식하지 못한다. (……) <div align='right'>- ‘연극의 순수성’, 이해랑, <예술조선 2>, 1948년 2월

  • 관련도서

    <이해랑 평전>, 유민영, 태학사, 1999 <한국의 연출가들>, 김남석, 살림, 2004

  • 연계정보

    -원술랑
    -인생차압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밤으로의 긴 여로
    -학 외다리로 서다
    -구름은 흘러가도
    -신극협의회
    -국립극단
    -박현숙(朴賢淑)
    -동랑레퍼토리
    -갈매기(Chaika)
    -바냐 아저씨(Dyadya Vanya)
    -블랙코미디(Black Comedy)
    -빌헬름 텔(Wilhelm Tell)
    -세자매(Tri sestry)
    -수전노(L`avare)
    -시라노 드 벨주락(Cyrano De Bergerac)
    -오이디푸스왕(Oedipus Rex)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리어왕(King Lear)
    -맥베스(Macbeth)
    -목격자(원제: 겨울이야기 Winterset)
    -오셀로(Othello)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 관련사이트

    대한민국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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