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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랑

  • 출연/스태프

    * 출연 김유신/박경주 원술/김동원 지소부인/황정순 담릉/주선태 진달래/김선영 문무왕/이해랑 공주/백성희 대아창효천/장훈 아창의 문/고설봉 강각대사/전두영 문지기/박제행 처사/박상익 낭동총관/송재로 사신/박상호 전령(갑)/오사량 전령(을)/현지섭 동리노파/송미남 궁녀/유해초 하비/유성태 * 스태프 무대미술/김정환 효과/심재훈,

  • 내용

    문무왕 16년에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통일을 이룩했는데, 당나라 군사들이 계속 신라에 주둔하여 곳곳에서 백제, 고구려 유민들을 앞세워 반란을 일삼는다. 노장 김유신의 둘째 아들 원술은 낭도들을 규합하여 전열을 다듬어 당나라 군사를 몰아내려고 전쟁터에 나선다. 백수성 싸움의 승전 소식 후에 석문벌 싸움의 패배와 원술의 전사 소식으로 장군과 지소부인이 슬퍼하며 마음을 다지고, 원술을 사모하는 진달래는 비탄에 잠긴다. 그런데 원술이 살아 돌아오자 장군은 분노한다. 세속오계를 어기게 된 원술은 왕으로부터 사일등이 감해져 지경 밖으로 쫓겨난다. 아버지인 김유신의 마지막 운명조차도 볼 수 없는 죄인 원술은 지리산 속에 묻혀 죽기를 결심한다. 그러나 그를 사모하는 진달래의 권유로 용기를 얻어 다시 화랑들의 잔심부름을 해주면서 무명의 용사로 전장에 참여한다. 이 싸움에서 원술은 당나라 장수 고간의 목을 베고 신라에게 승리를 안겨준다. 문무왕은 원술에게 포상을 내리려 했으나 원술은 계율을 어긴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후세에 전해 달라는 말만을 남기고 떠난다. 참고: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예술가

    허석 (1906~1956) 경남 통영 출생의 연출가, 본명은 허남실. 동경학생예술좌의 회원 중 제일 연장자로 1935년에서 1936년까지 동경학생예술좌에서 연기 감독을 지냈다. 1938년 귀국 후 극연좌 단원, 극협 단원, 국립극장 단원, 신협 단원으로 활동했다. 동경학생예술좌의 <벌판>(1937년)은 첫번째 연출 작품이다. 대표작품으로는 <산비둘기>(1949년) <원술랑>(1950년) <대춘향전>(1954년) 등이 있다. 이화삼 (1933~ ?) 전남 목포 출생의 배우이자 연출가. 일찍이 도일하여 와세다 실업중학을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2부대 문과를 중퇴하였다. 1929년 조선어극단에 입단하면서 극계에 데뷔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조선연극협회(1936년), 낭만좌(1938년), 극단 전선(1945년), 극예술원(1946년), 극협(1947년), 극단 신예술무대(1949년) 등의 창립 맴버로 활약하였다. 주요 연극출연작품은 <자명고> <마의태자> <조국> <대춘향전> (1947년),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1948년> 등이며, 영화출연작품으론 이규환 감독의 <창공>(1940년) <똘똘이의 모험>(1946년), 안종화 감독의 <수우> 등이 있다. 주요 연출작으로는 <마의태자> <왕소군> <자명고> <원술랑> 등이 있다. 그는 6·25 직후 납북되었다가 탈출하여 은거 중 다시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간 후 생사불명이다.

  • 리뷰

    신라 문무왕 때 소년 낭도 원술랑의 용맹으로 당의 침입을 격퇴했다는 내용을 소재로 한 연극. 유치진의 희곡으로 소년 원술랑의 파란만장한 운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민족주체성과 통일을 염두에 두고 쓰여진 작품이다. 한국독립을 결의한 카이로선언과 포츠담 4국회의를 어기고 한국땅에 38선을 긋고 군정을 편 미국과 소련의 신의를 삼국통일에 협조한 당나라가 나중에는 신의를 저버린 사실에 비겨 광복 직후의 정치상황을 신라의 삼국통일 교훈을 빌어 해결하고자 하는 정치이념을 갖고 있다. 1950년 국립극장 개관작으로 선보인 <원술랑>은 그 때까지의 한국연극사상 최대의 호화 무대였으며 일주일동안 5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 역사적인 공연이 되었다. (<한국예술사전 4권(연극/무용/영화 편)> 대한민국예술원, 1985.)

  • 재공연

    - 국립극장 개관 공연/ 국립극단 제1회 공연

  • 재공연

    - 1970년 5월 5일~11일 국립극장, 이해랑 연출, 국립극단 - 1986년 5월 25일~28일 국립극장, 방태수·박원경 연출, 극단 에저또

  • 평론

    … 오랜 산고 끝에 탄생하는 국립극장의 개관 기념 공연의 레퍼터리 선정은 쉽게 결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당시 문화계의 4대 슬로건인 ‘(1)일제가 왜곡하고 날조한 우리 역사를 무대를 통하여서나마 올바르게 인식하자, (2)애국자들의 참 모습을 형상화하여 그들의 위대한 희생을 추모, 민족정기를 앙양하자, (3)하마터면 말살당할 뻔하였던 우리의 아름답고 바른말을 되찾아 배우자, (4)파괴된 생활, 인정, 풍속을 되찾아 한국적인 모랄을 세우자’는 등의 원칙들이 반영될 수 있는 작품이 요청되었다. 민족사의 재인식, 애국자상의 형상화, 민족 언어의 회복, 한국적 모럴의 수립 등의 과제를 한 작품 속에 끌어넣으려다 보니 자연 쇼비니즘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쇼비니즘의 극화로써 한 전형을 보여준 것이 <원술랑>이었다. (자서전, 동랑유치진전집9, 유치진, 서울예대출판부, 1993, p.206) … 정말 <원술랑>은 모두가 열연한 작품이었다. 효과 담당이었던 심재훈은 전투신에서 마그네슘 폭파가 잘못돼 중화상을 입기도 했다. 결국 전 단원의 이런 열성이 작품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공연기간 일주일 동안 5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들었는데 이는 신극사상 처음으로 있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연극구경에 비교적 인색했던 상류층 관객을 대거 유인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국립극장 50년사, 김동원, p.149)

  • 관련도서

    <유치진 연구> 이상우, 태학사, 1997. <동랑유치진전집> 유치진, 서울예대출판부, 1993.

  • 연계정보

    -국립극단
    -유치진(柳致眞)
    -김정환(金貞桓)
    -이해랑(李海浪)
  • 관련사이트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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