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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단편영화와 독립영화의 역사는 매우 짧다. 독립영화란 기존의 영화산업계에서 활동하는 영화사와 계약을 맺지 않고 독자적으로 예산을 마련하여 제작하는 영화를 총칭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영화업계의 메이저 시스템이 없는 풍토에서는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거의 대부분의 영화를 독립영화라고 볼 수 있다. 할리우드와 같이 종합적인 제작 시스템과 체계적인 배급기구를 갖춘 영화제작사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독립영화, 단편영화, 소형영화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부터라고 하겠다. 영화촬영 기자재의 소형화로 우선 16mm, 8mm 영화들이 아마추어 동호인들간에 유행하기 시작했고, 비디오 카메라의 출현도 큰 몫을 했다. 대학의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학생들의 개인적으로 만든 영화가 출현했고, 이러한 단편, 다큐멘터리, 소형영화들이 학생운동과 연계되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화들은 주로 40분을 넘지 않는 단편영화였지만, 학생들의 영화에 대한 열기는 대단하였고, 젊은 세대들에게 영상이 갖는 호소력과 매력을 체험하게 하고 주입시키는 데 큰 구실을 했다.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민주화, 통일운동 등을 고취시켰던 학생운동과 더불어 독립영화의 기초가 다져지게 된다. 이러한 독립영화 계열은 그 내용이 담고 있는 바와 같이 저항적이며 반상업적이고 더러는 급진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민주화, 노동, 환경, 교육문제, 인간성 회복 등의 메시지도 담겨 있었다. 당시 이들의 영화제작과 일반 대중공개는 영화법상 용인되지 않았기에 이들 영화는 법적 마찰을 일으켰고, 장산곶매 같은 제작사는 1993년 3월 대법원에 의해 무등록 영화제작이라는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그러나 모든 영화들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독립영화 형태의 제작 수련을 통해 영상의 문법을 터득했으며,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대학 영화에서 활동했던 유능한 인재들이 제도권 영화계에 진출하여 주목할 만한 가능성을 보이기도 했다. 장선우, 이정국, 변영주 등이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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