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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진(柳致眞)

  • 개요

    우리 근대연극사에서 동랑 유치진만큼 희곡창작, 연출, 연극교육, 극장운영 등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한 연극인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그는 극작가가 부족했던 우리 연극계 현실에서 일찍부터 창작극을 써서 무대에 올림으로써 근대적 희곡과 연극을 이 땅에 정착시킨 선구자이다. 1931년 발표한 <토막(土幕)>에서 1958년의 <한강은 흐른다>에 이르기까지 30여 년에 걸쳐 그가 발표한 희곡은 무려 40편에 가깝다. 특히 1933년 2월, 그의 처녀작 <토막>이 극예술연구회에 의해 무대에 올려지면서 삽시간에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 창작된 작품들은 일제의 토지 수탈과 착취에 따른 이농 문제 등 당시 조선의 침통함을 정공법으로 묘사한 초창기 리얼리즘극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다. 일제가 소위 국민문예라는 국책문화운동을 전개한 1940년대에 접어들었을 때, 유치진은 총독부의 지시로 극단 현대극장을 만들어 극단 활동을 전개한다. 이 시기에 그는 <흑룡강>, <북진대> 등 친일어용희곡을 발표함으로써 평생의 오점을 남긴다. 그래서인지 그는 <대추나무>를 발표한 이후 해방될 때까지 희곡 창작에서 손을 뗀다. 해방 이후 우익 민족진영의 막후 리더로서 활동하던 유치진은 <조국>, <며느리> 등을 발표했으며, 이후 <자명고>를 위시한 <별>, <원술랑> 등의 계몽사극을 창작한다. 이데올로기 대립과 외세, 반탁 자주독립으로 점철되었던 해방 직후의 국가 상황을 고대사와 근세사를 빌어 우회적으로 풍자 비판한 일종의 목적성을 띤 작품들이었다. 1931년 극예술연구회를 창립한 이후 극연좌(1938), 현대극장(1941), 극예술협회(1947), 신협(1950) 등으로 이어지는 극단 활동을 전개했으며, 1950년대 초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국립극장이 문을 열었을 때 초대 극장장으로 취임했고, 1960년대에는 연극 전용극장인 드라마센터를 세우고 연극아카데미와 극단 동랑레퍼토리를 설립하는 등 일생을 연극운동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연극인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1960년대 초 동국대학에 연극과를 만들었으며, 서울대학에 연극과를 설치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한 적도 있었고 숙명여자대학에 최초로 희곡론을 개설하여 강의도 했다. 이 모든 것은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와 연극학교, 그리고 서울예술대학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연극인재 양성과 함께 한국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기반이 된 것이다.

  • 생애와 약력

    1905년 경남 거제군 둔덕면 출생 1914년 통영보통학교 입학 1918년 통영보통학교 졸업 / 부산 체신양성소 수료, 통영 우편국 근무 1920년 도일(渡日) 1921년 동경 풍산중학교 2학년 편입 1925년 동경 풍산중학교 졸업 1926년 릿쿄대학교 예과 입학 1927년 릿쿄대학교 영문과 입학 1931년 릿쿄대학교 영문과 졸업. 졸업논문으로 ‘숀 오케이시 연구’를 제출, 일본 <영미문학(英米文學)>지에 게재됨 / 귀국 후 근대극 운동에 뜻을 두고 극예술연구회 창립 동인이 됨 / 희곡 <토막> 발표 1933년 희곡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 <빈민가> 등을 발표 1935년 희곡 <소>, <당나귀> 등을 발표 / 심재순과 결혼 1936년 희곡 <춘향전>, <자매> 등 발표 1937년 희곡 <개골산(마의태자)> 등 발표 1938년 시나리오 <도생록> 발표 1939년 극연좌가 일제 당국에 의해 해산됨에 따라 당분간 연극 활동 중단 1940년 희곡 <부부> 발표 1941년 극단 현대극장 창단 / 희곡 <흑룡강> 발표 1942년 희곡 <북진대>, <대추나무> 등 발표 / <대추나무>(서항석 연출)가 제1회 국민연극경연대회에서 작품상 수상 / 1945년 극단 현대극장에서 <산비둘기>를 연출하던 중 해방을 맞음 1946년 희곡 <조국> 발표 1947년 희곡 <자명고>, <흔들리는 지축> 등 발표 / 희곡집 <소>(행문사), <유치진역사극집>(현대공론사) 등 출간 /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극단 극예술협회를 창립하면서 연극활동 재개 1948년 희곡 <별> 발표 / 한국무대예술원 이사장 취임 1949년 희곡집 <흔들리는 지축>(정음사) 출간 / 무대예술인대회 대회장을 맡음 1950년 희곡 <원술랑> 등 발표 / 국립극장 초대 극장장 취임 1952년 희곡집 <원술랑>(자유문화사) 출간 1953년 희곡집 <나도 인간이 되련다>(진문사) 출간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에 선임 / 한국문학가협회 부위원장 피선 1955년 희곡 <자매(2)>, <청춘은 조국과 더불어> 등 발표 / 희곡집 <자매>(진문당) 출간 / 제1회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1956년 세계 연극 시찰을 위해 구미 각국 순방 1957년 희곡 <왜 싸워> 발표 1958년 희곡 <한강은 흐른다> 발표 / 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 위원장에 피선 1959년 <유치진희곡선집>(성문각) 출간 1960년 동국대 연극학과 초대 학과장 맡음 / 전국극장문화협회 회장 피선 1961년 제7회 아시아영화제 국제심사위원에 선임됨 1962년 드라마센터 건립 / 한국연극연구소 초대 소장 취임 /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초대 회장 취임 /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1963년 유네스코 한국위원에 피임 1964년 3·1문화상 심사위원 1966년 5·15민족상 이사에 피임 1971년 <유치진희곡전집(상·하)>(성문각) 출간 / 동랑레퍼토리극단 설립 / 한국극작가협회장에 피선 1973년 서울연극학교를 서울예술전문대학으로 승격시킴 1974년 타계

  • 상훈

    1962년 문화훈장 대통령장 1963년 동아연극상 1967년 제1회 3·1연극상

  • 작품활동

    1932년 희곡 <칼 품은 월중선>, <토막>(<문예월간>) 발표 1933년 <토막>(홍혜성 연출, 경성 공회당) 극예술연구회 제3회 공연 /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유치진 연출, 조선극장) 극예술연구회 제5회 공연 1934년 <빈민가>(김파우 연출, 일본 축지소극장) 극단 삼일극장 1935년 <소>(동아일보) 발표 / <토막>(<삼천리>59호) / <소>(한수 연출, 일본 축지소극장) 동경학생예술좌 1936년 <수(빈민가)>(<삼천리> 70호) / <자매(1)>(<조광> 9호-11호) / <춘향전>(유치진 연출, 부민관) 극예술연구회 제12회 공연 / <춘향전>(조선일보) 1937년 희곡 <마의태자> 발표 1938년 희곡 <자매 1>, 시나리오 <도생록>, 각색 <인생극장> 등 발표 / <풍년기>(윤묵 연출, 부민관) 극예술연구회 제21회 공연 1940년 희곡 <부부>(<문장> 발표) 1941년 희곡 <흑룡강> 발표. 극단 현대극장 창단 / <마의태자와 낙랑공주>(나웅 연출, 부민관) 극단 고협 / <흑룡강>(주영섭 연출, 부민관) 극단 현대극장 1942년 희곡 <북진대>, <대추나무> 발표 / <대추나무>(서항석 연출, 부민관) 극단 현대극장 1945년 <산비둘기>(박재성 작) 연출 공연 중 해방 맞음 1946년 희곡 <조국> 발표 1947년 희곡 <남사당>, <며느리>, <자명고>, <흔들리는 지축> 발표 / <조국>(유치진 연출, 국제극장) 극예술단 극장 / <마의태자>(이화삼 연출, 국제극장) 극예술협회 1948년 희곡 <별>(평화신문) 발표 / <별>(허석 연출, 시공관) 극예술협회 1950년 희곡 <까치의 죽음>, <원술랑>, <어디로?>, <장벽> 발표 / <원술랑>(허석·이화삼 연출, 시공관) 극단 신협 1951년 희곡 <조국은 부른다(통곡)>, <순동이(푸른 성인)> 발표 1952년 <처용의 노래>(유치진 연출, 대구 문화극장) 극단 신협 1953년 <나도 인간이 되련다>(유치진 연출, 시공관) 극단 신협 1954년 <푸른 성인>(<현대공론>) 발표 1955년 <자매 2>(예술원보 1호) / <사육신>, <청춘은 조국과 더불어> 발표 / <푸른 성인> 한국연극학회·한국일보 공동주최 제3회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 1957년 <왜 싸워>(<자유문학>) 발표 1958년 <한강은 흐른다>(이해랑 연출) 극단 신협 1959년 <별승무>, 시나리오 <개화전야>, <유관순> 등 발표 1960년 <왜 싸워>(조용철 연출, 대구 국립극장) 녹색무대 1964년 <청개구리는 왜 날이 궂으면 우는가> 1965년 <춘향전>, <별>, <소> 유치진 회갑기념 공연 / 이해랑·이원경·전학주 연출, 드라마센터

  • 대표작품

    <토막> <소>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 <춘향전> <조국> <원술랑> <나도 인간이 되련다> <푸른 성인> <한강은 흐른다>

  • 저서

    <소>, 유치진, 1947 <자명고>, 유치진, 행문사, 1948 <유치진 역사극집>, 유치진, 1949 <흔들리는 지축>, 유치진, 정음사, 1949 <원술랑>, 유치진, 자유문화사, 1952 <나도 인간이 되련다>, 유치진, 진문사, 1953 <자매>, 유치진, 진문사, 1955 <희곡집 상·하>, 유치진 외, 민중서관, 1958 <유치진 희곡선집>, 유치진, 박문사, 1959

  • 리뷰

    나는 유 선생님이 이 세상에 살아계실 때 그분의 생각을 가장 정확하게, 그분의 최후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들은 사람 가운데의 한 사람이다. 나는 2월 14일 선생님의 영결식을 연극인장으로 치르고 나서 69세로 세상을 뜨신 선생님의 생애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며, 운명하신 그날을 회상해보았다. “서러움을 받지 말고 영원히 남을 것”을 가르쳐주신 유 선생님의 말씀은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연극인과 예술가들에게 들려준 교훈이 아닌가 한다. 누가 누구에게서 서러움을 받았으며 영원한 것과 순간적인 것이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가는 듣는 사람에 따라 그 뜻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대학시절 유 선생님으로부터 1년간의 <희곡론> 강의를 받았고, 1955년과 1956년 극작가가 될 수 있는 등용문을 두 번씩이나 거쳐 가게 해주신 그 은혜를 되새기며, 나름대로 그 어른의 인간성을 살펴보고 싶은 것뿐이다. (……) 나는 그 어른이 세상을 살아 나오신 발자취에서 어쩌면 나 자신을 발견해보기도 하고, 그분의 발자취를 지금의 연극계에다 투영시켜 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내가 인간 유치진의 면모를 더듬어보려는 뜻은 바로 나 자신을 포함한 오늘의 우리를 재확인하자는 데 그 뜻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순한 회고담이나 우상을 그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가시밭길을 헤쳐 나온 한 인간의 상처가 어쩌면 모든 사람의 상처였는지도 모른다면, 우리는 이제라도 그 상처를 아물게 하고 어루만져 줄 방법까지도 찾아내야 할 것이다. (……) <div align='right'>- <동시대의 연극인식>, 차범석, 범우사, 1987 (……) 유치진에게 있어 계몽성은 그가 연극인으로서 평생을 바칠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자 사실주의 희곡의 정초(定礎)에 공헌한 뛰어난 극작가라는 평가를 안겨다 준 영예의 근본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근대 사실주의극의 한계로 지적되는 요소들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는 불행이라 할 수 있다. (……) 그런데 이와 같은 계몽성에의 긴박은, 비단 유치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를 경유한 신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공적인 현상으로 이해된다. 근대가 개인의 발견을 가져왔던 서구와는 달리, 민족적 과제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신극인들은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치진이 민족적·국가적 주제를 제외한 영역 속에서는 무기력함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이 같은 경향은 동시대의 다른 작가들에게도 쉽게 발견될 수 있다.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전쟁으로 인한 새로운 환경의 조성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새로이 부상하는 신진 극작가들이 대거 등장하는 1950년대에도 여전히, 유치진이 경험한 근대와 그로부터 생산된 희곡과 연극의 성격이 유효한 세력으로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 <div align='right'>- <1950년대 희곡연구>, 이승희, 새미, 1998 (……) <소>는 풍년거지라는 역설적 상황을 기초로 하여 패러독스가 지배하는 삶에 대처하는 농민들의 행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그것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이항대립적 태도로 나타났다. 젊은 세대는 법과 이치를 따지며 농촌의 제도적 모순을 불평하지만, 기성세대는 가진 자의 논리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는 것이다. 둘째, 농민들은 역설적 상황에서도 삶을 해학적으로 대하려 하지만 결국은 암담한 현실에 억눌려 고통스러워하고 만다. 셋째, 농민들은 패러독스가 총체적으로 지배하는 삶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정신적 혼란에 빠져든 행동을 하였다. 이와 같은 행동으로 구성된 <소>는 어느 정도 현실대립적 액션이 강화된 형태를 보인다. 역설적 상황에 대한 반응이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서도 소작인과 지주 그리고 가족 사이의 대립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여기에 투영된 리얼리티란 이중적이다. 즉,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식이 일부 존재하면서도, 전반적으로 소작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정신적 혼란인 것이다. 농촌 삶의 이중성은 고난 속의 해학에도 있었다. 삶은 아무리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웃고 즐길 만한 틈새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에 나타난 농촌의 삶은 전반적으로 패러독스가 지배한다고 하겠다. 풍년거지의 상황으로 대표되는 패러독스는 작가인 유치진이 일제하 농촌의 리얼리티를 파악하려는 개념틀인 것이다. 그 결과는 고난에 질식한 웃음이며, 정신적 혼란에 함몰된 의식이다. 이것이 유치진이 조망한 1930년대 농촌의 리얼리티인 것이다. (……) <div align='right'>- ‘유치진의 사실주의극에 대한 재검토’, 김용수, <한국연극학>, 1997

  • 창작노트

    (……) 우리 한국에도 신극이라고 일컫는, 오늘 저녁에 본 <안네 프랑크의 일기>와 같은 리얼한 화술극이 있고, 내 자신도 그런 연극을 쓰는 작가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요즘에 와서는 그 관객이 차츰 줄어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리얼한 화술극에 염증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 한국의 연극인은 이를 구출하기 위해서는 화술극에 어떤 종류의 개혁이나 혁명이 초래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번에 세계 연극 시찰여행을 나온 목적의 하나 역시 그 개혁이나 혁명을 찾아보려 함입니다. (……) <div align='right'>- ‘세계 연극일주’, 유치진, <유치진 전집 7>

  • 관련도서

    <한국신극사연구>, 이두현, 서울대출판부, 1986 <한국근대희곡사연구>, 서연호, 고려대출판부, 1982 <한국근대연극비평사 연구>, 양승국, 태학사, 1996 <한국현대희곡사>, 유민영, 홍성사, 1982 <유치진연구>, 이상우, 태학사, 1997 <유치진 연극론의 사적 전개>, 박영정, 태학사, 1997 <유치진>, 한국극예술학회 편, 태학사, 1995 <한국의 연출가들>, 김남석, 살림, 2004

  • 연계정보

    -수업료
    -토막
    -원술랑
    -도념(동승)
    -마의태자
    -나도 인간이 되련다
    -소
    -포기와 베스
    -한강은 흐른다
    -극예술연구회
    -신극협의회
    -국립극단
    -동랑레퍼토리
    -맥베스(Macbeth)
    -목격자(원제: 겨울이야기 Winterset)
    -오셀로(Othello)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 관련사이트

    대한민국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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