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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와 베스

출연 / 스태프
출연 포기/김동훈 베스/최지희,오현주 크라운/김동원,조항 경부/오사량 알란·아취델/최상현 사이먼·폴레더/오현경 마리아/김성옥 재크/김성원 클라라/이로미 스포팅·라이프/김성옥 세레나/여운계 피터/나영세 밍고/김년수 로빈/이성웅 검사관/김진흥 리리/심정현 애니/김영자 짐/김홍주 순경A/홍성우 순경B/한수철 시피오/송준식 어린이/김미선 넬슨/유은용 장의사/김재건 거주인들/장미자,박은경,최경자,홍순창,이경자 스태프 작/듀보스&헤이워드 연출/유치진 미술/정우택 조명/윤강모 의상/김인식 효과/심재훈 음악지도/강춘희 무용지도/박일동 합창/최화영,이정혜,주정식,임정자,최영자,박창학,김의승,이원길
내용
<포기와 베스>는 남캐롤라이나 주 찰스톤 어항의 어느 흑인 빈민굴에서 일어난 이야기이다. 저녁 더위를 피하여 광장에 모여 도박을 하다가 술에 취한 크라운은 로빈을 죽이고 정부 베스를 남기고 도망한다. 이 기회를 타서 이 빈민굴에 양주와 마약을 밀매하는 스포팅 라이프는 베스 더러 뉴욕으로 같이 달아나자고 유혹하나 베스는 이를 뿌리치고 앉은뱅이 거지인 포기 방에 숨는다. 그로부터 1개월 후인 어느날 베스는 빈민굴의 같은 흑인들과 같이 카치와섬으로 피크닉을 간다. 우연히 이 섬에 숨어 있던 크라운을 만나 거기서 이틀을 지내고 돌아오자 심한 열병을 앓게 된다. 포기는 베스의 헛소리에 베스가 카치와 섬에서 크라운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포기는 머지않아 크라운이 베스를 데리러 올 것을 예측하고 경계하고 있던 차, 야밤에 돌아온 크라운을 목을 조여 죽이고, 그 시체를 바다에 버린다. 이튿날 시체의 검사를 한 형사와 검사관은 증인으로 포기를 데려간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스포팅 라이프는 베스에게 포기가 쉽사리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유혹하여 뉴욕으로 꼬여간다. 감옥에서 돌아온 포기는 뉴욕이 어딘 줄도 모르고, 두 무릎을 끌고 베스를 찾아 먼길을 떠나게 된다.
유치진 (1905 ~1974)
경남 통영 출생의 극작가이며 연출가, 연극평론가이다. 호는 동랑(東朗). 향리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도일, 도쿄 릿쿄(立敎)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31년 서항석 등과 극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본격적인 신국 운동을 주도한다. 1931년 희곡 <토막>을 ‘문예월간’지에 발표하고, 계속해서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1933), 장막희곡 <소>(1935) 등을 발표하였다. 그 후 사회성을 배제한 낭만적인 작품들인 <자매>(1936), <마의태자>(1937), <부부>(1940) 등을 발표하고,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국민연극운동을 벌여 자신이 친일작품으로 인정하는 <흑룡강>(1941), 친일의 선봉 이용구를 찬양한 <북진대>(1942) 등의 희곡을 쓰고 공연하기도 하였다. 8·15광복 후에는 <자명고>(1947), <원술랑>(1950) 등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역사극과, 반공을 주제로 한 <나도 인간이 되련다>(1953) 등의 역작을 발표하였다. 이후 극작과 연출, 평론 활동을 계속한다. 초대 국립극장장, 반공통일연맹 이사, 동국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고, 1965년에는 드라마센터를 창립하여 사실주의극 성립과 후진양성에 힘썼다. 서울시문화상, 예술원상(1955), 문화훈장 대통령장 서훈(1962), 문화공보부 3·1연극상(1967), 문공부장관 공로장(1970) 등을 수상하였다. 대표작품 <토막>, <버드나무 선 동리 풍경>, <소>, <원술랑>, <마의태자>, <나도 인간이 되련다>, <춘향전>, <왜 싸워>, <한강은 흐른다>
리뷰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포기와 베스>(1962.8.8~9.19)는 드라마센터 제3회 정기공연으로 유치진이 연출했다. 원래 유치진은 이 작품을 일제시대 극예술연구회에서 음악이 없는 정극 형식으로 공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 연극을 시찰하고 온 바 있는 유치진은 “이 땅에도 뮤지컬이 도입되어야 연극의 돌파구가 열린다고 생각”하고, 뮤지컬로 공연한 것이다. <포기와 베스>는 이후 유치진의 딸 유인형에 의해 1966년 재공연돼 본격 뮤지컬로 호평을 받았다.
평론
그 당시 우리 연극인들은 뮤지컬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또 구경한 바도 없었다. 다만 미국 여행을 갔다온 이해랑만이 브로드웨이에서 몇 편 구경한 것이 고작이었다. …(중략)… 뮤지컬은 하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이나 재미있어했다. 물론 모두 뮤지컬은 처음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자신들이 없어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들은 춤과 노래 지도(이인범 안무)를 따로 받았다. 나는 무조건 뮤지컬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동랑 유치진전집 9 자서전>, 유치진, 서울예대출판부, 1993) 그간 드라마센터에서 공연 중인 <포기와 베스>를 두 차례 보았다. 보기 전에 “흑인 아닌 한국 사람들이 이 걸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미국에서 흑인 캐스트로 공연되는 <포기와 베스>를 다섯 번이나 보았지만 볼 때마다 나는 흑인 캐스트가 아니고서는 절대 이 극의 연출을 맡지 않겠노라고 마음을 먹어 왔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이 공연을 보고 나는 한국 배우들이 훌륭히 흑인 역을 해나갈 뿐만 아니라 제법 능력 있는 연기력을 갖고 있음을 알았다. 흑인 역이 성공한 비결은 아마 연기는 물론 노래와 춤을 될 수 있는 대로 간결히 처리한 점이라고 하겠다. (<한국일보>, 패터슨, 1962년 9월 13일, '곡해된 작품의 본의') 드라마센터의 제3회 공연 <포기와 베스>는 메마른 극계에서 파낸 또 하나의 맑은 우물을 연상케 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일지도 모른다. 과문한 탓일지는 몰라도 극계에서 음악극이 상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러나 이번 유치진씨가 연출한 <포기와 베스>는 원작이 지니는 흑인의 비애와 인간의 고뇌를 춤과 노래로 뒷받침하여 훌륭하게 형상화했다. 이것은 확실히 우리 극계에 있어 또 하나의 가능성의 발견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연기자들의 요람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2개월 동안의 맹연습이라 하지만 이들의 노래와 춤이 완숙하거나 황홀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으려는 황무지대에서 몸부림치는 개척자의 알몸들은 눈물겹도록 진지하고 열성어린 것이었다. (<한국일보>, 차범석, 1962년 8월 19일, '또 하나의 가능성')
관련도서
<한국극예술연구 14집>, 김성희, 2001년 10월, '한국 초창기 뮤지컬 운동 연구' <동아일보>, 박용구, 1962년 8월 28일, '뮤지컬과 신극' <한국일보>, 차범석, 1962년 8월 19일, '또 하나의 가능성' <한국일보>, 패터슨, 1962년 9월 13일, '곡해된 작품의 본의' <동아일보>, 박용구, 1962년 8월 28일, '뮤지컬과 신극' <한국근대극장변천사>, 유민영, 태학사, 1998 <동랑 유치진전집 9 자서전>, 유치진, 서울예대출판부, 1993
연계정보
-김동원(金東園)
-유치진(柳致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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