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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Black Comedy)

작가소개
피터 쉐퍼(Peter Shaffer, 1926~ ) 헤롤드 핀터와 함께 영국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피터 쉐퍼는 192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잠시 미국에 가 있다가 귀국하여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 1955년에 쓴 <소금의 나라>와 1957년에 발표한 <공포의 나라>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58년에 중산계급의 생활을 그린 <오중태(五重泰)>가 런던에서 상연되어 성공을 거두자 일약 극작가의 지위를 확보했다. 이 작품은 그 이듬해 브로드웨이에서 상연되어 뉴욕극평가협회상을 받았다. 뒤이어 1962년에는 단막극 <사견(私見)>과 <타인들의 귀>를 발표했고, 1964년에는 스페인 잉카제국의 침략을 소재로 한 <태양제국(太陽帝國)의 정복>이 영국국립극단에 의해 공연되어 극작가의 자리를 더욱 굳혔다. 그러나 그의 명성이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65년 7월 영국국립극단이 <블랙코미디>를 상연한 뒤부터이다. 이 작품은 영국국립극단의 레퍼토리로서 4년간 상연되었으며, 초연 후 1967년 2월에는 뉴욕의 에델 바리모어 극장에서 단막극 <악의 없는 거짓말(White Lies)>과 함께 상연되어 절찬을 받았다. 그 뒤 1973년에는 <에쿠우스>로 극작가로서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블랙코미디>가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을 때 “기상천외의 착상! 기지와 상상력이 흘러 넘치는 수준 높은 코미디”라는 평과 함께 “피터 쉐퍼는 뛰어나게 훌륭한 극작가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는 극찬을 들었다.
내용
젊고 가난한 조각가인 브린즈리와 캐롤은 6주 전에 만나 서로 약혼한 사이다. 하지만 캐롤의 아버지는 브린즈리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딸의 약혼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늘 밤 백만장자인 뱀버거 씨와 캐롤의 아버지인 멜켈트 대령이 브린즈리의 조각을 보러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가난한 브린즈리는 멜켈트 대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웃에서 고(古)미술 상점을 경영하는 헤롤드 씨의 집에서 그가 잠시 여행간 사이 그의 가구를 자신의 집에 옮겨 놓는다. 캐롤과 브린즈리가 멜켈트 대령이 좋아하는 음악을 준비하려고 전축을 틀 때 갑자기 정전이 된다. 그의 아파트에 휴즈가 나간 것이다. 그의 이층에 사는 퍼니벌 양이 무서워서 그의 집으로 온다. 캐롤이 전기회사에 전화하고 나자 멜켈트 대령이 도착한다. 준비성이 없는 브린즈리를 나무라면서 손전등을 구해 대령이 도착한다. 브린즈리가 막 나가려는데 헤롤드 씨가 여행에서 돌아온다. 그리고 정전이 된 것을 알자 브린즈리의 집으로 온다. 헤롤드 씨의 가구를 가져온 브린즈리는 다급해진다. 그래서 캐롤과 함께 모의해서 사람들에게 술을 먹이고 그 사이에 가구를 헤롤드 씨의 집에 갖다 놓기로 한다.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브린즈리는 의자를 갖다 놓기 위해 좌충우돌한다. 가까스로 의자는 갖다 놓았지만 도자기와 불상 등은 탁자 밑에다 숨긴다. 헤롤드 씨가 캐롤과의 약혼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분개한다. 이때 브린즈리의 전 애인 클레아가 방안으로 들어온다. 깜짝 놀란 브린즈리는 클레아를 데리고 이층 침실로 가서 방안에서 나오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층에서 클레아가 브린즈리와 캐롤이 약혼한 사이라는 얘기를 듣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자신과 브린즈리 사이의 관계를 폭로한다. 집으로 돌아갔던 헤롤드 씨가 자기 방이 엉망이 된 것을 알고 뛰어온다. 이에 헤롤드 씨와 멜켈트 대령이 무기를 들고 브린즈리에게 다가온다. 그때 밖에서 뱀버거 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뱀버거 씨가 왔다고 기뻐하는 브린즈리, 그러나 뱀버거 씨는 전기회사 직공이 열어놓은 마루뚜껑문으로 빠지고 만다. 전기회사 직공이 전기 스위치를 올리자 무대가 어두워진다.
국내공연연보
1975년 10월 23일~27일 극단 산울림 / 예술극장 / 임영웅 연출 1979년 극단 한새벌 / 이충섭 연출 1982년 극단 예후 / 강남진 연출 1982년 1월 15일~2월 8일 극단 성좌 / 엘칸토소극장 / 권오일 연출 1982년 4월 27일~5월 10일 극단 성좌 / 문예회관소극장 / 권오일 연출 1982년 7월 15일~17일 극단 성좌 / 대전시민회관 1983년 5월 7일~8일 극단 성좌 / 순천시민회관 / 권오일 연출 1983년 5월 21일~22일 극단 성좌 / 여수극장 / 권오일 연출 1984년 8월 1일~24일 극단 성좌 / 엘칸토소극장 / 권오일 연출 1984년 극단 예인방(나주) / 신정옥 역 1985년 극단 물뫼 / 윤봉구 연출 1985년 극단 대중 / 윤봉구 연출 1986년 극단 동인무대 / 신정옥 역 1987년 4월 21일~5월 21일 극단 성좌 / 엘칸토소극장 / 권오일 연출 1987년 8월 24일~9월 7일 극단 성좌 / 문예회관소극장 / 권오일 연출 1987년 11월 11일~30일 극단 성좌 / 미리내소극장 / 권오일 연출 1987년 극단 처용(대구) / 신정옥 역 1987년 극단 광장 / 신정옥 역 1987년 극단 세미 / 신정옥 역 1987년 극단 동인무대 / 권태호 연출 1989년 극단 우리 / 태호 연출 1989년 극단 세미 / 김은희 연출 1989년 극단 춘추 / 김동중 연출 1991년 극단 세미 / 박원경 연출 1992년 교사극단 한새벌 / 한상환 연출 1992년 극단 우리 / 김한균 연출 1994년 3월 1일~5월 1일 극단 성좌 / 성좌소극장 / 권오일 연출 1994년 6월 4일~15일 극단 성좌 / 문예회관소극장 / 권오일 연출 1994년 극단 세미 / 최성웅 연출 1995년 극단 세미 / 조승암 연출
예술가
임영웅(林英雄, 1936~ ) 임영웅이 연극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로 진학하여 김규대 밑에서 연극연출 수업을 받고서부터다. 김규대는 한국연극의 리얼리즘 연출의 맥을 잇는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이해랑을 중심으로 형성된 신협에서 배출된 새로운 세대의 연출가 그룹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김규대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임영웅은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1956), <세일즈맨의 죽음>(1957)에 김규대의 조연출로 발탁되어 실제 무대경험을 쌓는다. 그 후 동인극장에서 막스 프리쉬 작 <전쟁이 끝났을 때>를 연출하며 정식 연출가로 데뷔했다. 이후 세계일보, 조선일보, 대한일보 기자를 거쳐 동아방송 드라마 PD로 입사, 예그린 악단 창설에까지 관여하게 된다. 이때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공연으로 평가받고 있는 <살짜기 옵서예>를 연출하는 기회를 잡는다. 그 뒤 <꽃님이 꽃님이>, <대춘향전> 등을 연출하면서 뮤지컬의 연출가능성을 확인한다. 국립극단의 <환절기>(오태석 작) 공연을 연출하면서 연출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이후 <환상살인>, <인종자의 손> 등과 같은 창작극 연출에 잠시 전념한다. 그러다 헤롤드 핀터의 <덤 웨이트>를 만나고 이어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기에 이른다. ‘고도’처럼 임영웅에게 늘 따라다니는 별명이 있다. 바로 ‘산울림 소극장지기’가 그것이다. 1970년 극단 산울림을 창단한 이래 줄곧 대표를 맡아오다, 극단 창단 15주년이 되던 1985년 드디어 소극장 산울림을 개관한다. 이 소극장에는 <고도를 기다리며>와 함께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식되곤 하는 별칭이 있다. ‘여성연극의 산실’이 그것이다. <위기의 여자>, <숲속의 방>,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 안녕>, <담배 피우는 여자>, <그 여자> 등 수많은 여성연극이 공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막상 이러한 세간의 평가에 동조하지 않는다. 만일 여성연극이라는 것이 있다면 남성연극 또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기까지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임영웅이 지닌 연출관에서 기인한다. 그는 인간의 삶과 밀착된 예술을 강조한다. 따라서 여자의 이야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이야기 안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즉 그는 연극이 인간을 그리는 작업이며, 좋은 연극이란 인생을 제대로 그릴 줄 아는 연출자에 의해 탄생한다고 믿는 ‘정직한 연출가’인 것이다.
리뷰
(……) 철야 연습을 하고 새벽 공기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왔다.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출근을 해야겠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자리에 누워서 잠시 이 생각 저 생각을 한다. 언젠가 사업을 하는 친구를 만났더니 웃으면서 하는 말이 연극은 왜 하느냐고 묻는다. 돈이 벌리는 것도 아니고(오히려 돈을 쓰면서), 별로 명예가 생기는 것도 아니잖느냐는 것이 그 친구의 소박한 논리였다. 정말 연극은 왜 하는 것일까? 문득 방금 막 헤어진 동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모자라는 절대 연습시간을 메우기 위해 창고 같은 연습장에서 밤샘 연습을 하고도 새벽에 헤어질 때는, 피곤함보다는 밤을 샌 결과 연습의 진도가 있었음을 기뻐하고 만족해하던 동인들의 얼굴, 얼굴들-거창하게 표현해서 보람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모두가 연극을 직업으로 삼지 못하는 아쉬움을 지니면서도 각기 생업에 시달리면서 부족한 연습시간은 밤을 세워 충당하는 순수한 정열- 그 순수한 정열을 뒷받침해주는 개인의, 사회의, 국가의 힘이 모자람을 새삼 뼈저리게 느낀다. <블랙코미디>는 소란스러운 희극이다. 희극이라기보다는 소극에 가까웁다. 그래서 보는 동안에는 죄 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한참 웃고 나면 그 웃음이 덧없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허식을 벗겨 버렸을 때의 인간들의 벌거벗은 모습-그것은 우스운 것이기보다는 차라리 처참한 것이었다. 우리들은 연습을 하면서 별로 웃지를 못했다. 바람둥이 젊은 조각가 브린슬리의 몸부림이, 그와 얽힌 사람들의 가식에 찬 모습이 우리들의 이웃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새벽 연습을 끝내고’, 임영웅, 공연팸플릿, 1975년
관련도서
<에쿠우스>, 피터 쉐퍼 저, 김종철 역, 청목, 1995
연계정보
-극단 성좌
-임영웅(林英雄)
관련사이트
한국영어영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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