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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성좌

  • 개요

    정통 사실주의 연극을 지향하며 연출가 권오일이 이끌어온 극단. 주로 번역극 위주의 작품 활동을 통해 잘 짜여진 희곡의 완성도 높은 공연을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권오일은 성좌의 작업을 ‘명품 만들기’라고 설명한다.

  • 해설

    극단 성좌는 1969년 3월에 창단됐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동인제 극단들과는 달리 창단 선언문 같은 연극 목표를 뚜렷이 하는 형식을 갖추지 않았던 것이 성좌만의 특이한 점이다. 사실 성좌는 극단 시스템부터 뜻이 맞는 동지들이 모이는 동인제 극단 시스템과는 달랐다. 창단 대표 권오일이 밝힌 창립 멤버는 변현규·민상근(프로듀서), 전영우(아나운서), 전운(탤런트), 고은정·황일청·정승현·김현직·남성우·오승룡(성우) 등으로, 권오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프로듀서, 성우, 아나운서로 이뤄졌다. 연극 이념에 대한 추구로 모이는 동인제 극단과는 달리 성좌는 연출가 권오일 개인의 주도력이 만들어낸 프로듀서 시스템의 단체였던 것이다. 성좌는 1969년 <마라옥토불>로 창단 공연을 가졌다. <마라옥토불>은 프랑스 영화 시나리오를 각색한 작품으로, 희곡의 선정에서도 연극사적 의의보다는 잘 만들어진 작품을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성좌는 1976년까지 활동이 저조했다. 1973년 제9회 <돈주앙> 이후 1976년 <나생문>으로 10회 공연까지 2년 간의 공백기마저 있었다. 초기 레퍼토리로는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페드라>, <노틀담의 꼽추>, <인형의 집> 등이 있으며, 이때부터 명작에 대한 선호가 보인다. 하지만 1976년 제10회 <나생문> 이후부터 성좌의 공연 활동은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이는 1970년대 시작된 한국연극의 양적인 팽창과 관련이 있는데, 성좌는 당시의 지배적이었던 번역극 열풍에 편승,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여준다. <어린왕자>, <원하시면 드릴께요>, <사랑은 기적을 싣고> 등의 작품들이 있다. 성좌의 활동은 1983년 <세일즈맨의 죽음> 이후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 이전까지의 활동의 경우 평단의 이렇다 할 평가가 보이지 않으나, 비로소 일련의 레퍼토리들을 보여주며, 리얼리즘 연극의 선두주자로 나서게 된다. 이 시기 성좌의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 <밤으로의 긴 여로>,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 <쟁기와 별> 등이 발표된다. 잘 짜여진 희곡을 좋은 배우들과 명품으로 만들어낸다는 성좌의 연극적 지향이 이 시기부터 유감없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성좌는 이후 번역극 위주의 공연 활동에서 탈피, 몇 번의 창작극을 올린다. 이 중 <적과 백>은 제7회 대한민국연극제 대상, 희곡상을 수상했으며, <봄날>은 제8회 대한민국연극제 대상, 연출상, 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성좌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통 뛰어넘기>, <불지른 남자>, <외설 춘향전>, <개개비 둥지위로 네온 사인을 달다>, <어느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 <달의 뒤쪽> 등의 자체 기획 창작극을 올렸다.

  • 세일즈맨의 죽음

    <세일즈맨의 죽음>은 성좌의 대표 레퍼토리이다. 성좌는 1988년 이 공연 이후 리얼리즘 연극에 대한 선호를 보여주며 극단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6년, 1999년, 2003년에 계속 공연됐다. <세일즈맨의 죽음>을 번안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다음의 평을 보면 성좌의 리얼리즘 연극의 깊이 있는 완성도를 느낄 수 있다. (……) 내가 처음 <세일즈맨…>을 관극한 70년대 초만 하더라도 그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자본주의적 산업사회의 구조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시민(가정)의 비극 이상의 의미로는 관객에게 감흥되지 못했다(적어도 생활감정상으로는). 그후 5년 간격의 관극을 할 적마다 우리 소시민의 가정 상황이 놀랍도록 현저하게 윌리 로만 일가를 닮아 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더니 ‘성좌’의 이번 무대 앞에선 서울의 어느 소시민 가정의 상황이 로만 일가에 역투사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에 이르렀다. 그래서 미국식의 생활감정이 뒷받침하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마치 우리 우리네 생활언어인 것처럼 위화감 없이 들리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노세일즈맨의 윌리로 역한 전무송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가 미국인에 근접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한국인으로서의 풍김에 충실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이 번역극의 리얼리티를 깍는 작용을 하기보다는 더욱 살려내는 효과로 작용했다는 것은 매우 미묘한 관심거리이다. (……) 사실주의적 극작술(연극)이 아니고서는 성취할 수 없는 특권이라는 점에서 비사실주의적 연극이 기승하고 있는 연극계에(특히 극작가들에게) 사실주의적 연극 방법의 위력을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 - <공간>, 박조열, 1988년 3월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테네스 윌리암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도 성좌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이다. 잘 짜인 희곡을 좋은 배우로 보여주겠다는 성좌의 지향이 효과적으로 수행된 작품이다. <욕망…>은 1993년, 1995년, 2002년에 재공연됐다. (……) 배우들의 앙상블도 참 좋았지만 극의 생체리듬을 물 흐르듯 지휘한 권오일의 연출이 내겐 가장 큰 감동의 출처였다. 배우들의 모든 동작과 움직임과 정서생활에 충만하게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행동이 급하게 이루어질 때나 완만하게 진행될 때나 극은 항상 관객을 한 발짝 앞서서 행진했기 때문에 두 시간 동안 관객들은 관심과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고 무대에 몰입할 수 있었다. 축구경기로 치면 권오일은 로스트 타임이 전혀 없이 경기를 운영한 효율적인 주심이었다. 고희를 맞은 권오일은 사실주의 연극이 좋은 연출을 만나면 어느 양식의 공연보다도 진한 감동을 제공해준다는 사실을 우리한테 증명해준 셈이다 (……) - <한국연극>, 김윤철, 2002년 8월 (……) ‘정통 리얼리즘 연극’을 고수해온 권오일 선생님은 이번에도 작품의 맛과 깊이가 스스로 드러날 수 있도록 ‘원작에 충실한’ 연출을 견지하고 있다. 애써 연출력을 과시하지도 않고, 관객을 감동시키려고 애쓰지도 않는 노장의 여유로움과 관조가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연출 덕분에 결과적으로 더욱 중요해진 것은 바로 배우의 연기력이다. 블랑쉬 역의 양금석과 스탠리 역의 강신구는 각자의 독특한 연기 스타일로 결코 섞일 수 없는 두 세계를 무난하게 구현하고 있고, 스텔라 역의 전현아 역시 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배어나오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 - <한국연극>, 김성희, 2002년 8월

  • 봄날

    이강백의 작품을 권오일이 연출해 문예회관에서 선보인 작품. 성좌는 <봄날>로 제8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대상, 연출상, 미술상을 수상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나른한 봄날, 후미진 산마을에 늙은 홀아비와 일곱 명의 아들들이 밭을 갈며 살고 있다. 인색한 절대 권력자 아버지, 어머니처럼 자상한 장남, 천식을 앓는 병약한 막내,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혹사당함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다섯 명의 자식들이 불편한 관계 속에서 어렵사리 생을 영위하고 있다. 어느 봄날 산불이 나자 절간의 스님들이 주워길렀던 동녀를 이 집에 맡기고 사라져 버린다. 늙은 홀아비는 젊어지기 위하여 이 동녀를 품고 잔다. 동녀를 사모하는 막내는 피를 토하며 애통해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리다 못한 다섯 명의 자식들이 마침내 반기를 들고 농토의 분배를 요구하지만 욕심많은 아버지가 들어줄 리 만무하다. 참다 못한 자식들은 꾀를 내어 회춘에 좋다는 구렁이 삶은 물과 주름살을 펴는 데 쓰는 송진을 아버지에게 바친다. 아버지가 송진을 바르고 눈을 못 뜨는 사이에 아들들은 구들장을 뜯고 항아리 속의 돈을 나누어 가지고 도망쳐 버린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동녀는 막내의 지어미가 되어 아기를 갖게 되고 장남은 변함없이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아버지는 떠나간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허망한 탐욕에 사로잡혔던 지난날을 탄식한다.

  • 권오일 (1932~ )

    1932년 경상북도 영양 출생의 연출가. 1953년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7년 서울대 사범대학을 거쳐 1975년 고려대 대학원 상담심리학과를 졸업하였다. 1960년대 현대극회에서 무대감독과 연출경력을 쌓고 1969년 극단 성좌를 창단하여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1965년부터 1996년까지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1989년부터 1991년까지 한국청소년연극협회 이사를 역임하였다. 주로 사실주의에 입각한 연출을 하고 있는 그는 약 60여 편의 작품을 연출하였다. 대한민국연극제 연출상(1984), 대한민국예술대상(1992), 서울시 문화상(1995), 대한민국문화훈장 보관장(2001) 등을 수상하였다. · 대표작품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블랙코미디> <봄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리뷰

    (……) 1950년 6·25 사변이 터지자 서울에서 활동하던 극단 신협이 피난을 와서 대구와 부산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연극활동을 했다. 신협의 무대를 통해서 나는 연극의 묘미에 흠뻑 빠져들었고, 희곡 작품을 통해서 우연히 만난 연극세계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 1954년 극단 신협의 활동에 자극을 받은 부산 연극인들도 마침내 극단 청문극회를 창단하고 창립공연을 올렸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재학생이었던 나도 이 극단의 창단 멤버로 참여했었다. 이것이 내가 연극의 길로 접어든 첫 출발인 셈이다. 그해 서울의 대학들이 피난살이를 청산하고 서울로 복귀를 했다. 서울대학은 몇몇 단과대학에 연극반이 있기는 했으나 종합대학으로서의 통합된 연극써클은 없었다. 그래서 흩어져 있던 연극써클을 모아 서울대학교 연극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을 맡으면서 대학극 활동을 시작했다. (……) 대학 4학년 때 제작극회가 창립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서울에서 가장 활발하게 연극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대거 참여했다. 나도 2년 가량 이 극단에 몸담고 있었다. 서울대학교 연극회에서 주로 연출을 맡아 주신 분은 오사량님이시고, 이해랑님은 한 두 번 지도해주신 걸로 기억하고 있다. 이 두 분 선생님을 모시고, 조연출을 하면서 현장경험을 통해 연출공부를 익힌 셈이다. 1969년 극단 성좌를 창단하고 대표직을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 - ‘나와 연극, 그 우연한 만남, 그리고 오늘까지’, 권오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2002 팸플릿

  • 관련도서

    <우리연극 100년>, 서연호·이상우, 현암사, 2000 ‘79년대 연극의 사적 전개’, 유민영, <한국연극>, 1984년 9월

  • 연계정보

    -봄날
    -세일즈맨의 죽음
    -블랙코미디(Black Comedy)
    -인형의 집(Et dukkehjem)
    -페드르(Phèdre)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
    -베니스의 상인(The Merchant of Venice)
    -시련(The Crucible)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
    -나생문(羅生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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