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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르(Phèdre)

작가소개
장 라신(Jean Racine, 1639~1699) 프랑스 고전비극 작가. 북프랑스 라페르테밀롱 출생. 어려서 부모를 잃고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조부가 사망한 뒤 조모와 함께 파리 근교에 있는 포르루아얄수도원으로 이주했다. 1653년부터 1654년까지 보베의 기숙학교를 다닌 뒤, 1655년 포르루아얄수도원으로 다시 돌아와 장세니슴(Jansénisme)을 신봉하는 얀센파로서 유명한 니콜과 그리스 학자 랑슬로 등에게 17세기 고전문학과 그리스어를 배웠으며, 얀센파의 엄격한 숙명관 속에서 문학에 대한 꿈을 굳혔다. 1658년 파리에서 법률 공부를 한 뒤 귀족저택에서 집무를 맡아보는 일을 하였고, 문단에 드나들면서 우화작가 라퐁텐 등과 사귀게 되었다. 1660년 루이 14세의 결혼을 축하하는 송시(頌詩) <센강의 요정(La Nymphe de la Seine)>을 써서 국왕으로부터 상을 받았으며 문단의 원로인 샤플랭과 알게 되었다. 그 해 경제적 이유로 성직을 얻기 위해 위제스에서 주교총대리로 있는 백부에게 갔으나, 성직을 둘러싼 소송사건에 환멸을 느끼고, 1663년 다시 파리로 돌아와서 시작(詩作)으로 연금을 받으며 문인들과 사귀었다. 1664년에서 1677년까지는 희곡작가로서 라신이 가장 성공한 시기였다. 1664년 몰리에르의 도움으로 왕권을 둘러싼 형제간의 권력투쟁을 그린 그의 최초의 비극 <라 테바이드(La Thébaïde)>를 상연했으나, 어둡고 폭력적인 분위기와 코르네유를 모방한 냄새가 난다 하여 그다지 평판이 좋지 않았다. 이듬해 연애비극 <알렉상드르(Alexandre)>를 발표, 브르고뉴극장에서도 상연시킴으로써 몰리에르와 불화를 빚었으나 작품은 성공하였다. 1666년 스승 니콜이 극작가를 ‘공중의 해독자’라고 비난한 데 반발하여 악의에 찬 편지로 응수한 뒤 얀센파와도 결별하였다. 1667년 5막으로 이루어진 비극 <앙드로마크(Andromaque)>로 성공을 거두었는데,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정열과 그로 인한 파멸의 진행을 묘사하였다. 1670년 코르네유와 같은 주제로 동시에 경작(競作)하여 <베레니스(Bérénice)>를 써 승리하였다. 1673년 신탁 희생물로 지명된 공주를 둘러싸고 왕과 용사가 대결하는 이야기를 그린 <미트리다트(Mithridate)>를 썼다. 1677년 의붓자식을 사랑하는 왕비를 주인공으로 한 비극 <페드르(Phédre)>를 상연했으나, 반대파의 모략으로 실패하였다. 그 뒤 극작을 그만두고 결혼하여, 경건한 생활인으로 살면서 얀센파와도 화해하고 왕의 수사가(修史家)로서 활동했다. 1688년 맹트농부인의 요청으로 생시르어학원의 학생용으로 <구약성서>에서 취재한 합창 3막 비극 <에스테르(Esther)>(1689)를 썼고, 어전에서 공연하여 호평을 받았다. 1694년 <성가(聖歌)>를 작사하였고 1694년부터 1699년까지 <포르루아얄사>(1742∼67)를 집필했다. 1699년 간장병으로 파리에서 죽었다. 유언에 따라 포르루아얄에 매장되었다가 파리에 있는 생테티엔교회로 이장되었다. 라신은 17세기 프랑스 고전비극의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는 작가였으며, 현대적 관점에서도 비극의 정수를 보여주는 극작가로 평가받는다. <페드르(Phédre)>는 숙명적 사랑 때문에 파멸한 인간의 모습을 아름다운 시로 노래 부른 걸작이며 그 표현은 프랑스어의 가장 세련된 시구(詩句)라고 평가받고 있다.
내용
1막 1장 아테네의 왕 테제의 아들 이폴리트는 계모인 페드르의 모함으로 트로젠에 유배 중이다. 이폴리트는 지난 1년 동안 한번도 자신을 찾지 않던 테제왕이 원정을 떠나기에 앞서 트로젠에 들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상념에 잡혀있다. 드디어 테제왕의 배가 보이고 그 옆에 페드르 왕비의 깃발도 보인다. 1막 2장 왕비 페드르는 트로젠의 싱그러운 공기와 따사로운 햇빛에 모처럼 생기를 되찾는다. 그리고 유모 에노느에게 여기에 머무를 것이라고 말한다. 1막 3장 테제왕은 떠나기 전 이폴리트 왕자에게 페드르와 반역자의 마지막 후계자인 아리시 공주를 보호할 것을 당부한다. 한편 페드르의 유모 에노느는 왕비가 이폴리트에게 넋을 잃고 있음을 근심어린 표정으로 쳐다본다. 1막 4장 원정을 떠난 테제왕이 돌아오지 않자 이폴리트는 스승인 테라메느에게 테제왕을 찾아 떠나겠다고 말한다. 테라메느가 극구 만류하자 이폴리트는 사실은 아리시 공주가 있는 이 도성을 떠나고 싶다며 아리시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반역자의 마지막 혈통인 아리시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한다. 이폴리트는 떠나기에 앞서 왕비 페드르를 방문한다. 1막 5장 에노느가 페드르를 방문한 이폴리트를 돌려보낸다. 1막 6장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듯, 페드르가 기운 없이 햇빛을 대하고 있다. 그 옆에 유모가 근심어린 표정을 하고 있다. 페드르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수치스러운 번뇌와 가슴을 저미는 고통으로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고 한다. 그러나 유모의 눈물어린 간청으로 인해 오래 전부터 이폴리트를 사랑해왔다고 고백하고 그 불륜의 정염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어 명예를 지키고자 한다고 말한다. 1막 7장 왕비의 시녀 파노프가 페드르에게 테제왕의 죽음을 전한다. 덧붙여 아테네는 지금 군주의 후계자를 선정하기 위해서 왕비의 왕자님을 추대하는 자와 이폴리트를 내세우는 무법자, 두 파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고 있고, 또 어떤 이들이 아리시 공주를 왕위에 앉힐 음모를 꾸민다는 소문도 있다고 알린다. 1막 8장 에노느는 페드르에게 불행은 새로운 의무를 강요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왕비가 죽으면 노예가 될 왕자를 위해 생명을 지탱할 것을 간청한다. 이에 페드르는 유모의 권유를 따르기로 한다. 2막 1장 이폴리트가 만나자고 한 약속장소에서 아리시 공주와 그녀의 시녀인 이스메느는 이폴리트를 기다리고 있다. 아리시는 테제왕의 죽음으로 빚어질 앞으로의 변화에 대해 이스메느와 의논한다. 그리고 사모하는 이폴리트 왕자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이스메느의 말에 그의 사랑의 확신을 얻기를 희망한다. 그때 마침 이폴리트가 등장한다. 2막 2장 이폴리트는 트로젠을 떠나기에 앞서 정통 아테네 혈족인 아리시 공주에게 자신의 권한과 지위를 양보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아리시는 이폴리트의 뜻밖의 말에 매우 놀라는 한편 그의 과분한 처사에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이에 이폴리트는 아리시에 대한 사랑으로 그동안 교만했던 마음들이 굴복의 이치에 순종하는 서글픔을 느꼈으며, 어쩔 수 없는 사랑의 화살에 쫓기는 부끄러움과 절망감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음을 털어놓는다. 2막 3장 테라메느가 왕비가 이폴리트 왕자를 만나러 오고 있다고 전하고 있는 가운데 이폴리트는 아리시에게 마지막 당부와 사랑의 기약을 한다. 2막 4장 이폴리트, 사람을 시켜서 떠날 채비를 한다. 2막 5장 페드르는 이폴리트를 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이폴리트에게 자신의 아들을 보호해줄 것을 부탁하러 온 페드르는 이폴리트가 계모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알게 된다. 명예와 불륜 사이에서 갈등하던 페드르가 토해내듯 이폴리트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호소하였으나 이폴리트는 매정하게 무시한다. 이에 페드르는 분노의 감정을 내뱉으며 이폴리트의 칼을 뽑아 든다. 그때 누군가가 등장한다. 2막 6장 테라메느가 오는 것을 본 페드르는 황급히 피해 달아난다. 테라메느는 이폴리트에게 아테네의 부족들이 왕비의 아들을 왕좌에 앉힐 것을 결정하였다는 것과 테제왕이 살아있다는 풍문이 들려오고 있음을 전한다. 3막 1장 페드르는 이폴리트에 대한 사랑고백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유모 에노느가 배덕자를 엄격하게 다스리고 왕국의 앞날을 걱정할 것을 충고하였으나 페드르는 이미 스스로의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기력조차 잃어버린 상태이다. 페드르는 이폴리트가 야만인의 몸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오만한 것이라고 그를 이해해 버리고 자신의 왕관을 이폴리트에게 주어 그의 보호를 받으며 그녀의 숙명적인 사랑을 성공시키고자 한다. 그리하여 서둘러 유모 에노느를 이폴리트에게 보낸다. 3막 2장 페드르, 비너스 신에게 이폴리트가 사랑에 빠지도록 기도한다. 3막 3장 이폴리트에게 다녀온 에노느는 죽은 줄 알았던 테제왕이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한다. 이 말을 전해들은 페드르는 부정한 사랑을 고백하였던 수치스러움에 몸을 떨며 죽음만이 최선의 길임을 깨닫는다. 에노느는 또다시 그녀의 죽음을 만류하면서 칼을 증거물로 하여 당돌한 배덕자인 이폴리트를 곤경에 빠뜨리고, 대신 위기에서 구제받아 명예를 지킬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 이미 기력을 상실한 페드르는 에노느에게 모든 걸 맡겨버린다. 이때 테제왕이 이폴리트와 함께 찾아온다. 3막 4장 테제 앞에 선 페드르는 스스로를 향한 치욕스런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감히 테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3막 5장 이폴리트는 테제왕에게 이제 아버지의 손에서 벗어나 사해에 용맹을 떨치고 이름을 빛내며 용기를 시험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어렵사리 생지옥에서 돌아온 테제는 맞이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귀환을 기뻐하기보다는 부들부들 떨며 달아나려고만 하자 의혹을 품게 된다. 그리하여 페드르를 찾아가 누가 그녀를 모욕했으며 자신을 배반하였는지를 알고자 한다. 3막 6장 테제왕이 페드르를 찾아간 후 이폴리트는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나 곧 자신의 무죄함에 안심하고, 부왕이 돌아오면 아리시와의 사랑을 고백할 것을 결심한다. 4막 1장 에노느, 테제왕에게 칼을 증거물로 하여 이폴리트를 모함한다. 테제왕은 믿었던 아들의 배덕에 대한 분노로 몸을 떤다. 4막 2장 에노느의 모함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인 테제왕은 아들 이폴리트를 보자마자 치욕에 몸을 떤다. 그리고 자신에게 은혜를 입은 바 있는 네푸튠 신을 향해 이폴리트를 멸망시킬 것을 기원한다. 이폴리트는 두려움을 느끼는 한편 자신을 모함한 페드르에 대한 분통을 삭이지 못한다. 그러나 부왕의 존안이 상할까 두려워 차마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단지 아리시 공주에 대한 사랑만을 고백한다. 이미 아들에 대한 배신감에 사로잡힌 테제왕은 이폴리트의 말을 무시하고 추방을 명령한다. 4막 3장 테제왕은 사랑했던 아들에게서 받은 오욕과 배신감으로 번뇌한다. 4막 4장 페드르는 테제왕에게 왕자의 피로 부왕의 손을 더럽히는 이 처절한 비극을 거두어 들일 것을 호소한다. 테제는 아들에 대한 분노를 삭일 줄 모르고 네푸튠 신의 신속한 재판만을 기다리고 있다. 4막 5장 이폴리트의 목숨을 구할 것을 테제왕에게 호소하던 자리에서 이폴리트가 아리시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페드르는 자신에게만 냉담했던 이폴리트에 대한 배반감에 곤욕스러워 한다. 4막 6장 페드르는 아리시에 대한 질투감으로 지각의 갈피를 잃고서 테제의 원능에 의존하여 그녀를 벌하려 한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한 말의 무서움에 소스라쳐 놀라 자괴감에 빠진다. 에노느가 또다시 페드르를 위로하며 용서받을 수 있는 과오를 그렇게 자책하지 말라고 충언한다. 이때 페드르는 에노느를 향해 원망과 분노의 말을 쏟아 붓는다. 그리고 그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그녀를 저주하며 그녀에게 위탁한 자신의 운명을 되찾는다. 5막 1장 이폴리트는 아리시에게 그동안의 일과 자신의 결백함을 고백한다. 그리고 원수를 피하여 지아비가 될 자신을 뒤따라 줄 것을 요청한다. 그래서 선왕의 분묘 가운데, 거짓맹세를 하면 벌을 받는 성스러운 전당에서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하자고 청한다. 그때 테제왕이 아리시를 찾아온다. 아리시는 진실한 안내자를 보내줄 것을 청하고 이폴리트를 떠나보낸다. 5막 2장 테제, 아리시 공주가 거하는 곳에 이르러 신들에게 진실을 보여줄 것을 기원한다. 5막 3장 아리시는 자신을 찾아온 테제왕에게 이폴리트의 결백함을 말하고 싶으나 이폴리트의 분부를 따라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어전을 물러난다. 5막 4장 아리시를 찾아온 테제는 사람들이 번번이 서두만 떼어놓고 말꼬리를 흐리는 것을 발견한다. 의혹에 싸인 테제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자책의 부르짖음에 다시 한번 에노느를 심문하여 이 가공할 죄상을 밝히고자 한다. 5막 6장 페드르의 시녀 파노프가 테제왕에게 에노느가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왕비 역시 총명하던 눈빛이 갈피를 잃고 방황하고 있음을 전한다. 이제서야 자신이 성급한 기원을 했음을 알게 된 테제는 네푸튠 신에게 기원했던 말을 번복하고 이폴리트를 불러 직접 그의 결백을 듣고자 한다. 5막 7장 이폴리트의 스승인 테라메느가 이폴리트 왕자가 트로젠의 성문을 나서기도 전에 뇌성벽력과 함께 파도가 해안으로 밀어닥치면서 괴물이 나타나서 이폴리트 왕자가 용사답게 맞서 싸우다가 말에서 떨어져 바위에 부딪혀 피투성이가 되어 죽었음을 전한다. 그리고 덧붙여 이폴리트 왕자를 뒤따른 아리시 공주도 그곳에 당도하여 왕자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정신을 잃은 채 사랑하는 이의 발 아래 쓰러졌음을 전한다. 5막 8장 페드르가 독약을 마시고 테제왕을 찾아 온다. 페드르는 자신을 원망하는 테제에게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그 앞에 쓰러져 숨을 거둔다. 테제왕은 사랑하는 아들의 가증스런 기원의 공포를 씻고 그에게 주어야 할 모든 명예를 돌려주고, 그의 배필인 아리시에게 딸의 지위를 주기로 한다.
국내공연연보
1971년 6월 극단 성좌 / 국립극장 / 민상근 연출 1977년 3월 4일~8일 극단 성좌 / 시민회관별관 / 민상근 연출 1990년 10월 18일~31일 서울레퍼토리앙상블 / 대학로극장 / 신영섭 연출 1999년 6월 1일~27일 극단 자유 / 문예회관소극장 / 김정옥 연출
예술가
김정옥(金正鈺, 1932~ ) 서울대학교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프랑스 현대문학과 영화·연극을 공부했다. 귀국 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강사로 있으면서 1963년 이근삼, 양광남, 최명수와 함께 극단 민중극장을 세워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 등을 번역, 공연했다. 1966년 이병복과 함께 극단 자유를 창단하면서 <따라지의 향연>(스칼페타 작, 명동국립극장)을 스스로 연출한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극단 자유를 벗어나 연출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극단 자유를 창단할 당시 김정옥은 <한꺼번에 두 주인을>, <아가씨 길들이기>, <마리우스>, <피크닉 작전> 등 주로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의 외국 고전 희극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한국 사람한테 부족한 것이 바로 희극정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희극의 빠른 템포를 우리나라 연극에 도입하기 위해 많은 힘을 쏟았다. 그 뒤 서구의 부조리극을 선보이다가 1978년 대한민국연극제 참가작품이었던 <무엇이 될고하니>를 기점으로 이른바 집단창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김정옥은 이 작품을 통해 집단창조와 총체적 연극의 이상을 내세우고 생과 죽음의 주제를 극적으로 부조하면서 서구 연극과 우리의 연극적 유산의 만남 속에서, 단순한 접목이 아니라 오히려 충돌 속에서 이루어지는 오늘의 새로운 연극, 우리의 연극으로서의 제3의 연극을 표방하고 나설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차피 연극의 중심은 배우인데, 그 배우들에게 서양의 틀을 씌우는 것의 한계를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구의 연극과 우리의 전통연극이 만나고 부딪치고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새로운 형태의 한국연극이 빚어질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판소리, 탈춤을 과감하게 연극에 끌어들인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 <무엇이 될고하니>, <달맞이꽃>,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수탉이 안울면 암탉이라도>, <피의 결혼> 등이다. 초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희극에서 1970년 한국의 전통설화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과 그 후 총체연극이란 이름 아래 제작된 그의 연출기법은 연극에 관한 다양한 관심과 연출가로서 겪어야 했던 혼돈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러한 희곡 선택과 연출경향은 그가 국제극예술협회 제3세계 연극분과위원장을 맡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제3세계 연극운동’ 혹은 ‘뉴시어터 운동’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는 서구연극과 다른 독자성을 추구하기 위해 제3세계의 개성을 찾아내고, 문화의 주체성을 찾자는 자생적인 움직임을 강조한다. 이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충돌함으로써 새로운 연극을 찾아내어야 한다는 그의 연극관으로 발전한다. 극단 자유는 1980년에 정력적으로 해외 순회공연을 추진하기도 한다. 일본,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튀니지 등에 여섯 차례에 걸쳐 순회공연을 가졌으며, 프랑스의 렌느연극제, 낭시 세계연극제, 칼카존연극제, 소피아 앙티포리스연극제, 스페인 시저스연극제, 바르셀로나 연극제, 마라가 연극제, 튀니지 하마메트연극제, 일본의 오키나와 동양연극제 등에 참가했다. 그러나 극단 자유가 치른 외국 공연보다 그의 이름은 더 국제적이다. 국제극예술협회(ITI) 한국본부 회장직을 10년 넘게 맡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본부 회장을 지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1997년에는 국제극예술협회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여 외국의 우수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리뷰
금년을 마지막으로 1900으로 표기되는 20세기가 끝난다. 동시에 우리가 처음으로 희곡문학을 알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극장에서 하는 서양식 연극을 배우고 실천해온 지 한 세기가 마감한다. 서양연극 2500년의 역사와 비교하면 정말 일천하기 짝이 없지만, 장구한 세월 동안 해온 전통적인 연극이나 연희를 완전히 잊고 서구의 연극을 모방학습만 해온 지가 일백 년이 되었다면 지금쯤엔 무언가 세월과 노력이 쌓아놓은 흔적을 발견해야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극장이 김정옥 연출로 무대에 올린 라신느의 고전 <페드라>를 보면서 그 같은 흔적, 당장은 빛나지 않지만 언젠가 미래에는 틀림없이 찬란한 금자탑으로 빛나게 되리라는 빈틈없는 약속을 해주는 오늘의 증표를 보여주지 못하여 실망과 허탈감이 더 없이 컸다. (……) 이번 공연은 간단한 줄거리만 알게 남기고 그 외 모든 대사는 삭제해버렸으며 연기자들은 이렇다 할 극적 행동도 동작도 없이 지극히 무미하게 무대 위에 나와 섰을 뿐이다. 심각한 박정자(페드라), 그녀의 비극미는 스테레오타입으로 화했고 유모 채진희는 유모가 아니라 젊은 몸종의 냉랭한 유형에 불과했다. 박웅(테제)과 최원석(이폴리트) 역시 살아있는 인물이라기보다 말하는 인형에 더 가까웠다. 출렁이는 바닷물을 영상에 비춰주는 뒤 배경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장치, 개막 초 무당(조선족)이 나와 제를 지내는, 자칭 연출 김정옥의 아이디어를 찾을 수 없는 무대였다. 일생을 연극에 바친 극예술가의 60을 넘긴 작품이라기에는 차라리 못 본 것만 같지 못하였다. ‘번역극 한 세기, 우리의 반성’, 한상철, <한국연극>, 1999년 7월
관련도서
<라신느와 고전비극>, 알랭 니데르 저, 오현우 역, 탐구당, 1984 <라신에 관하여>, 롤랑 바르트 저, 남수인 역, 동문선, 1998 <라신 희곡선집>, 정병희 외 역,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서양대표 극작가선>, 강태경 외, 새문사, 2000 <페드라>, 야엘 로탄 저, 안정효 역, 문예출판사, 1996 < PHEDRE: 페드르>, 장 라신 저, 장정웅 역, 신아사, 1999
연계정보
-극단 자유
-극단 성좌
관련사이트
한국불어불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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