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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The Crucible)

작가소개
아서 밀러(Arthur Miller, 1915~2005) 1915년 10월 17일 뉴욕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의류 제조업자이며 어머니는 전직 교사인 유대인계 중류 가정의 3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시절에 대불황으로 집이 몰락하여, 고등학교를 나온 후 접시닦이, 사환, 운전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고학으로 겨우 미시간대학교 연극과를 졸업했다. 재학 중에 쓴 몇 편의 희곡으로 상을 받은 것이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졸업 후 뉴욕시에 가서 생활을 위하여 라디오 드라마를 쓰고, 그 여가에 희곡 창작을 계속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의 군수산업의 경영자와 아들의 대립을 다룬, 전쟁 비판적인 심리극 <모두가 나의 아들(All My Sons)>(1947)로 비평가 및 일반 관객의 절찬을 받았다. 이어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1949)으로 퓰리처상 및 비평가 단체상을 받고, 브로드웨이에서 2년간의 장기공연에 성공했다. 이 작품은 평범한 샐러리맨의 꿈과 현실과의 괴리에 부자(父子) 간의 사랑을 곁들여, 회상형식의 교묘한 무대처리로 현대의 불안을 강렬하게 그려낸 걸작이다. 밀러는 이 작품으로 전후 미국 연극계의 제1인자의 지위를 획득했다. <시련(The Crucible)>(1953)은 리얼리즘의 수법을 버리고, 17세기 뉴잉글랜드에서의 마녀재판(魔女裁判)을 주제로, 그 당시 전 미국을 휩쓸었던 메카시 선풍을 풍유(諷喩)한 희곡이다. 그 후 여배우 M. 먼로와 두 번째 결혼을 했으나 이혼했다(1960). 그밖에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A View from the Bridge)>(1955, 퓰리처상 수상), 먼로를 모델로 한 <전락(轉落) 후에(After the Fall)>(1964) 등의 희곡과 소설, 라디오 드라마, 평론이 있다. 그는 테네시 윌리엄스와 함께 미국 연극의 발전과 실험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그의 희곡은 대부분 미국인의 공통된 비극적 생활면을 주제로 한 점에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내용
1692년 청교도들의 중심지였던 메사추세츠 주의 세일럼 마을. 에비게일과 함께 동네 소녀들이 하녀 티두바와 몰래 숲 속에서 악령을 불러내는 장난을 하다 들켜 그 충격으로 몇몇 소녀들이 병을 앓고 있다. 의사도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사람들 사이엔 마술에 대한 유무 논쟁이 한창이다. 자문을 구하기 위해 청한 해일 목사가 마술의 존재 여부에 대한 엄격한 조사를 한다. 그러나 벌이 무서운 나머지 티튜바와 소녀들은 허위자백과 함께 몇 사람을 마녀로 지목하자 마녀검거의 회오리 바람이 인다. 법정은 마술을 고백하지 않으면 교수형에 처한다는 강경책 때문에 허위 지목된 마녀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 프록터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프록터에게 법정에 출두하고 이비게일의 거짓증언을 폭로할 것을 종용하지만 프록터는 에비게일과의 간음사실로 주저한다. 곧이어 엘리자베스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에비게일의 고발로 엘리자베스가 체포된다. 프록터의 설득으로 에비게일의 친구 메이워렌은 재판관에게 소녀들과 에비게일의 거짓증언을 폭로하지만 오히려 그들로부터 비난만 당한다. 급기야 프록터는 에비게일과의 간통 사실을 고백하며 메리, 워렌은 소녀들의 비난에 자기신변이 위태로움을 느끼고 무서운 아이들 편에 서서 “프록터가 그녀에게 마술을 건 악마의 사도”라고 주장한다. 법정이 이를 수락하자 존 프록터는 “신은 죽었다”라고 외친다. 계절이 바뀌어 불안과 혼돈 속에서 수십 명이 처형되거나 투옥된 가운데 해 뜰 무렵 처형당하는 프록터에게 댄 훠스는 엘리자베스를 통하여 죄를 용서해준다는 조건 아래 고백을 받아내도록 주선한다. 그러나 존 프록터는 그의 목숨으로 불명예나 치욕을 교환한다는 것을 깨닫고 고백서를 찢어버린다. 그것은 ‘자존심이요 허영’이라는 해일 목사의 외침과 엘리자베스의 흐느낌을 뒤로하고 그는 교수대로 끌려가 처형된다. 심장을 찢듯 드높은 북소리와 함께 막이 내린다.
국내공연연보
1978년 극단 실험극장 / 윤호진 연출 1980년 9월 극단 실험극장 / 실험운현극장 / 윤호진 연출(개관기념공연) 1982년 11월 4일~14일 극단 성좌 / 세종문화회관별관 / 권오일 연출 1987년 10월 30일~11월 22일 극단 오늘(전주소재) / 전주황토예술극장 / 박창욱 연출 2002년 3월 30일~4월 13일 서울시극단 / 세종문화회관소극장 / 윤영선 연출 / 공연제목: 크루서블
예술가
권오일(權五鎰, 1932~ ) 1932년 경상북도 영양 출생의 연출가. 1953년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7년 서울대 사범대학을 거쳐 1975년 고려대 대학원 상담심리학과를 졸업하였다. 1960년대 현대극회에서 무대감독과 연출경력을 쌓고 1969년 극단 성좌를 창단하여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1965년부터 1996년까지 서울시립대 교수, 1989년부터 1991년까지 한국청소년연극협회 이사를 역임하였다. 주로 사실주의에 입각한 연출을 하고 있는 그는 약 60여 편의 작품을 연출하였다. 대한민국연극제 연출상(1984년), 대한민국 예술대상(1992년), 서울시문화상(1995년), 대한민국문화훈장 보관장(2001년) 등을 수상하였다. 대표작품으로는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블랙코미디>, <봄날>, <시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이 있다.작품 <시련>이 연극으로 상연되고 책으로 간행된 것은 1953년, 즉 이제는 젊은 고전으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굳히고 있는 <세일즈맨의 죽음>이 발표된 지 4년 후의 일이다. 1692년의 세이럼 마녀사냥을 수정적으로 극화한 이 작품은 때마침 매카시즘의 회오리가 사납게 휘몰아치고 있던 미국사회에서 정치적 알레고리로 받아들여지고 이에 따라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정치적 알레고리로 받아들인 쪽의 비판에서는 이 작품의 역사적 정확성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는 온건한 의견도 있었지만 세일럼의 마녀재판과 50년대의 매카시즘 선풍 사이의 평행적 유사성을 부정하는 의견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요약해보면 매카시 등이 주장하는 공산주의와 첩보활동이 미국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되어 있음에 반해서 세일럼의 마녀들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양자 사이의 유사성 설정은 억지이며 중요한 역사적 왜곡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의 보수적 비판자들이 매카시즘에 대한 공격과 비판으로 이 작품을 받아들이고 일 대 일의 대응관계를 찾아내어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은 지금에 와서는 시세에 편승한 한낱 비평적 폭거에 지나지 않으며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집단적 광기의 또 하나의 예증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작자와 작가에 대해서 동조적인 견해들은 보수파쪽의 공격을 무디게 하기 위해서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 의미를 강조하였지만 한 세대가 지나가고 50년대 초의 미국 사회에 대해서 객관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우리에게는 <시련>은 그 보편적 의미와 함께 매카시즘에 대한 비판으로 해서 작품의 무게를 더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어느 정도의 문화적 성취를 이룬 모든 작품에 공통되는 것으로 당대의 특수한 구체의 취급이 보편적인 문제의 드러냄으로 승화된 경우이다. 우리가 지금 이 작품에 대해서 갖게 되는 주요 관심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충실성, 50년대 미국의 정치상황에 대한 아날로지로서의 타당성, 역사해석에 따르는 문제성에 관해서라기보다는 이러한 직접적 맥락을 넘어서서 드러나 있는 호소력의 의미에 관해서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시련>은 유럽 역사에서 낯익은 바 있고 미국 역사에서는 특히 세일럼의 사건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마녀재판을 다루고 있다. 패리스 목사의 어린 딸의 병상장면으로 시작되고 있는 이 작품은 심상치 않은 위기감을 예고한다. 목사의 딸을 포함해서 한 떼의 소녀들이 숲 속에서 주문을 외우며 악령을 부른다. 그 중 두 아이는 최면상태에 있다. 이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사람을 조사차 불러들인다. 그러자 아이들이 어떤 열광상태에 빠진 채 악마와 함께 본 사람들의 이름을 댄다. 재판이 시작되고 처음엔 하찮은 사람들이 들먹거려졌다. 그러나 토지를 에워싼 이해관계에 개인적 감정이 뒤얽혀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고발당하고 그 파문은 커져 간다. (……) 잘 꾸며진 연극의 흐름과도 생소하달 수 없는 이 작품이 독자나 관객을 사로잡는 첫번째 충격성은 공동체 전체에 의해서 박해받고 있는 등장인물이 겪고 있는 속절없는 악몽의 체험이다. 그것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라는 차원을 넘어서 존속과 죽음의 주고 빼앗음을 쥐고 있는 음침한 힘의 실로 소름 끼치는 전횡 앞에서 겪게 되는 전율의 체험이다. 철없는 아이들의 광란증세에 재산상의 이해관계나 개인적인 원한관계가 뒤얽히고 다시 권력이 그 광란에 가담함으로써 이성과 양식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사실 여부의 확인을 통한 진실 설정에 그 제일의적인 소임을 두어야 할 재판은 오직 죽음이냐 거짓 고백이냐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일련의 정신적 고문의 체계에 지나지 않음이 드러난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생사람 잡는 폭력의 광란이다. (…) 고독한 행악은 크고 끔찍해보이지만 다수가 참여한 행악은 예사로워지고 마침내 악이라는 의식마저 꺼추어버린다. 더구나 신의 가호를 받는 다수자의 폭력이 얼마나 독선적일 수 있는가를 뚜렷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또 일단 움직이기 시작한 악의 힘은 제어하기 힘든 가속성을 얻어 이성의 통제아래 매어놓기가 어렵다는 것도 보여준다. (…) ‘정의없는 힘의 전율성’, 유종호, 극단 성좌 40회 공연 팸플릿아서 밀러의 <크루서블>(1953)이 윤영선 연출로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무대에 올랐다(2002. 3. 30~4. 13). 1997년 창단 이후, 꾸준히 정통극을 올려온 서울시극단의 11번째 정기공연이다. 공연은 분량의 조절이 있었지만 원작을 각색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했다. 1950년대 미국의 ‘메카시즘 선풍’이라 불렀던 ‘공산주의자 색출운동’을 고발하기 위해 17세기 ‘마녀재판’을 다룬 이 작품은 오늘의 현실을 대입해볼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광기어린 집단 폭력과 권력, 그 권력의 횡포와 집단광기에 희생되는 무고한 사람들의 시련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현재 우리 주변에서 펼쳐지는 여러 현상과 비교하며 볼 수 있는 재미를 제공한다. (……) 전체 4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각 막마다 고유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극을 진행시키며 한 막이 진행되면 될수록 그 긴장감과 공포감을 더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공연은 1, 2막의 내용은 그대로 유지했지만 3, 4막의 내용을 줄였는데 그 줄인 부분은 작품의 힘과 깊이를 약화시켰다. 특히 3막의 법정장면은 ‘마녀재판’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데 원작에 비해 연극적 힘이 많이 떨어진 구성이었다. 말소리로 시작하는 장면의 제거와 법정으로 들어오는 인물들(특히 소녀들)의 입장순서를 반영하지 않고, 직접 법정장면으로 시작되는 점이 특히 아쉬웠다. 또한 결말에서, 이 작품의 영웅인 존 프락터가 죽음을 결심하는 과정에 패리스 목사와 헤일 목사의 서로 다른 입장과 레베카의 존재, 엘리자베스의 고백을 배치함으로써 프락터의 영웅적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는데 공연은 이 부분들을 약화시켰다. 그럼에도 평범한 농부에서 시련을 거쳐 자기인식에 도달하는 작품의 주인공, 존 프락터가 중심에 자리했기 때문에 무대에서 인물들이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 움직였다면 공연은 활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신구(존 프락터 역)가 열연했고, 엘리자베스(최슬 분)와 에비게일(강지은 분)이 자기역할을 유지하긴 했지만, 극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패리스 목사(김신기 분)와 헤일 목사(박봉서 분)의 성격과 대립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했고, 전체적인 연기 앙상블이 결여되어 아쉬움이 큰 무대였다. ‘원작의 힘을 추스르지 못한 무대’, 임선옥, <한국연극>, 2002년 5월
관련도서
<아서 밀러의 사회극>, 허종, 한국학술정보, 2001 <아서 밀러 희곡집>, 아서 밀러 저, 김윤철 역, 평민사, 2000
연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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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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