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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왕(Oedipus Rex)

작가소개
소포클레스(Sophokles, BC 496~406)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고대그리스 3대 비극시인 중의 한 사람. 아테네 교외의 콜로노스 출생.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고 29세 때 처음으로 비극경연에 나가 우승한 이래, 죽기 직전인 90세까지 창작활동을 하여 123편의 작품을 썼다고 한다. 정치가로서도 재무장관, 장군, 최고정치위원 등의 고위직을 지냈고 말년에는 신관(神官)도 지내, 덕망있고 행복한 생애를 보냈다. BC 480년 적군 페르시아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 살라미스해전의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에서 소년 소포클레스는 소년합창단을 지휘하였다. 이때 아이스킬로스는 한 병사로 이 해전에 참가하였고, 에우리피데스는 막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로 이들 3대 비극시인을 흥륭·전성·쇠퇴기의 시인으로 보아 각각의 작풍을 특징지을 수 있다. 축복받은 신의 총아로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소포클레스는 인간고뇌의 극한까지 묘사하여, 온화하고 명랑한 인물에게서 가장 순수한 비극성이 생긴다는 역설을 성립시켰다. 7편의 작품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데, <아이아스>는 최강의 무장임을 자처하면서도 명예를 잃게 된 주인공이 그 굴욕을 씻으려다 실패하자, 명예롭게 살지 못할 바에야 명예롭게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있고, <안티고네>에서는 반역자인 오빠의 매장을 금지하는 권력층의 법령을 무시하고, 혈연자로서의 의무를 다함으로써 죽은 자를 애도한다는 신(神)들의 영원한 법을 지키고 자신은 희생당한 안티고네의 이야기를 그렸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가 식어버린 남편의 사랑을 되돌리려다가 반대로 남편을 죽이게 되자 자신도 목숨을 끊는 <트라키스의 여인들>, 겉보기에는 행복한 왕이 진실을 모르는 채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의 남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파멸하는 <오이디푸스왕>, 죽임을 당한 아버지를 위해 동생과 함께 복수를 하는 <엘렉트라> 외에도 <필록테테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등이 있다. 소포클레스는 고뇌나 죽음은 인간 존재의 실상이고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죄 없는 사람들의 고뇌를 그대로 묘사하였다. 주인공은 결정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타협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대결하며, 굴욕적인 삶보다는 죽음과 파멸을 선택한다. 이처럼 강고하고 고귀한 인간이 고뇌하는 데에 비극적인 아름다움, 숭고성이 있다. 극의 줄거리는 신화 그대로 여서 관객은 사건의 진전과 결말을 알고 있다. 앞일을 모르고 있는 극중인물의 말이나 행동과 진실을 아는 관객과의 대조가 큰 극적 효과를 올려서 비극적인 긴박감을 자아내는 이 수법은 소포클레스적 또는 비극적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오이디푸스왕>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BC 4세기)에서 소포클레스의 가장 위대한 비극이라고 평가했으며, 20세기에도 그의 비극 중 가장 높은 평가와 인기를 누리는 작품이다. 이 극에서 비극적 주인공인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숙명에서 벗어나려다 오히려 숙명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작품을 비극 형식의 본보기로 꼽았다. 치밀한 구성, 긴장의 상승, 인식과 발견이라는 극적 장치의 완벽한 구사는 이 작품을 그리스 비극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잊혀지지 않는 작품이게 한다.
내용
그리스의 테바이에 무서운 전염병이 돌고 백성들의 탄원이 계속된다. 오이디푸스왕은 아폴론의 신탁을 가지고 돌아온 사촌 크레온에 의해 선왕인 라이오스가 도둑의 손에 살해되었고, 그 하수인을 처벌하지 않는 한 전염병은 계속된다는 얘기는 듣는다. 범인을 처벌할 것을 맹세한다. 그러나 범인이 누구인지를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고, 장님인 예언자 테레시아스가 불길한 말을 한다. 오이디푸스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을 운명이라는 내용의 예언을 생각해내고 라이오스 왕의 살해 당시의 목격자를 찾으려 한다. 그때 국왕의 고향인 코린토스에서 부왕이 승하했으니 왕위를 계승하라는 전갈이 온다. 오이디푸스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꺼리지만 사자는 죽은 코린토스의 선왕은 오이디푸스의 친아버지가 아니라, 키타이론 산에서 라이오스 왕의 목자로부터 받은 갓난아기를 왕자로 키웠다는 사실을 말하며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오이디푸스는 목자를 찾아가 코린토스로 보내진 라이오스의 아기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테바이 태생이며 라이오스의 자식으로서 그를 죽인 범인이며 왕비인 이오카테스는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게 된다. 결국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왕은 스스로 자기 눈을 찔러 장님이 되어 떠난다.
국내공연연보
1949년 연희대연극부 1967년 4월 8일~14일 극단 신협 / 이해랑 연출 1975년 극단 밀 / 조우현 역 1975년 극단 작업 / 길명일 연출 1977년 3월 30일~4월 5일 극단 작업 / 연극회관쎄실극장 / 길명일 연출 1980년 극단 작업 / 길명일 연출 1980년 극단 제3무대 / 길명일 연출 1980년 극단 고향 / 길명일 연출 1983년 5월 12일~16일 극단 춘추 / 세종문화회관별관 / 김동중 연출 1989년 서울레퍼토리앙상블 1990년 12월 3일~8일 국립극단 / 국립극장대극장 / 김철리 연출 1997년 8월 극단 무천 / 죽산 야외무대 / 김아라 연출 1999년 11월 30일~12월 5일 화동연우회 /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 심상필 역 2000년 9월 9일~17일 극단 청우 / 문예회관대극장 / 김광보 연출 2002년 11월 19일~24일 극단 연희단거리패 / 폴리미디어씨어터 / 이윤택 연출
예술가
이해랑(李海浪, 1916~1989) 본명 해량(海良)으로 1916년 7월 서울 와룡동에서 의사 이근용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경성의전과 경도제국대학 의학부에서 공부했던 그의 부친은 세브란스의전 외과부장과 4·19혁명 직후 부산시장을 지냈다. 이런 명문가에서 태어난 이해랑은 초등학교 졸업 후 휘문, 배제고보 등 여러 학교를 다녔으며, 일본으로 건너가서 두 곳의 중학교를 거쳐 니혼[日本]대학에 입학하여 연극을 공부할 수 있었다. 대학 재학 중 유학생들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를 조직하여 <춘향전>의 단역으로 무대에 서 보기도 했다. 1938년 대학졸업과 동시에 귀국하여 극예술연구회 신입회원으로 가입했다. 극예술연구회 후신 극연좌에서 몇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이듬해 대중극단 고협에 가입하여 몇 작품에 출연했으며, 1941년 유치진이 현대극장을 창단함으로써 유치진과 필생의 인연을 맺게 된다. 한편 친구였던 함세덕과 고협에서 잠시 인연을 맺었던 황철 등과 낙랑극회를 출범시켰으나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이어 김동원 등과 극단 전선도 만들었으나 역시 좌익연극의 기세로 인해 오래가지 못했다. 이러한 좌익연극에 대응하기 위해 김동원, 박상익, 김선영 등과 함께 극예술협회(약칭 극협)를 창립했으며, 1950년 4월 국립극장이 문을 열면서 극협회원들을 이끌고 들어가 신협을 탄생시켰다. 국립극장 신협시절까지만 해도 배우로서만 활동했던 그가 부산 피난시절부터는 연기와 연출을 겸한 것은 물론, 제작까지도 책임지는 거의 전천후 연극인으로 변신해갔다. 1962년 드라마센터가 개관하면서 극장장으로 참여했지만 1여 년 만에 문을 닫음으로써 연극인으로서 최대의 좌절을 겪기도 했다. 이때부터 얼마 동안 예총 등과 같은 문화단체 활동에 힘을 쏟았고 출연과 연출은 뜸했다. 이 시기 민주공화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이동극장을 만들면서부터 다시 연극에 대한 집념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약 7년 동안 전국을 다니면서 연극활동을 벌인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는 연출에만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배우보다는 연출가로서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러한 성공요인을 유민영은 크게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 연극이론에 대단히 밝았다는 점. 즉 서양연극이론을 섭렵하는 과정에서 스타니슬라브스키에 심취했고, 그것을 자기화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둘째, 그가 배우로서 무대에 십 수 년간 섰기 때문에 작품해석과 성격창조에 뛰어났고 무대를 잘 알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세 번째, 인간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추리소설 중심으로 꾸준한 독서를 했기 때문에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풍부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그가 한국연극사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해방직후와 6·25전쟁 중에도 연극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 그리고 1970년대 이후 연극계가 새로운 모색을 위해 혼란을 겪을 때 오로지 리얼리즘 연극의 맥을 굳건하게 지켰다는 것, 여러 극단과 대학(가령, 드라마센터와 동국대학 연극과)에서 후진을 많이 길러낸 연극계의 큰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 그의 공로로 인정받는다. 마지막으로 이동극장운동을 통해 대중으로부터 멀리 있던 연극을 다시 대중에 밀착시키고 동시에 지방문화를 활성화시킨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서양 사람의 신관(神觀)처럼 신을 절대화하고 그의 명령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신앙이나 계율의 전통도 없다. 희랍 사람의 머리에는 항상 신과 인간의 관계로 가득 차 있었지만 우리는 그런 뚜렷하고 명확한 관계도 관념도 희박하다. 그런데 <오이디프스 왕>이 왜 우리에게 중요하고 이 시대 이곳에서 공연되어야만 하는가? (……) (얀)콧트는 <오이디프스 왕>의 세계는 신이 없는 세계로 본다. 오로지 신을 믿고자 하는 사람과 믿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오이디프스의 이야기는 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 콧트는 신을 믿고 동시에 믿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이렇게 답하고 있다. 신들은 예언자를 통해서 말하고 그들의 의지와 앞으로의 일들을 예언자를 통해서 알려주는데 예언자들은 그것을 간접적으로, 다시 말해 새의 비상이나 울음소리 또는 유성의 유무나 향방으로 알아낸다. 예언자들은 반드시 자신해서 말하지 않으며 말을 하게 될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때이다. 여기서 의심이 생긴다. 새의 비상이나 웃음소리는 아주 분명한 것도 아니며 예언자와 새는 틀릴 수도 있다. 신탁에 물어보는 것은 신중한 행동이다. 그러나 사람은 맹목적으로 그것을 믿지는 못한다. 오이디프스가 신탁을 본 것도 바로 이런 것이다. 이것은 신의 절대성, 악마까지도 신의 섭리로 보고 있는 신정설(神定說)이 존재하지 않는 현대세계의 전형적인 우주관이며 세계관이다. 콧트는 여기에서 현대의 통렬한 도덕적 의미와 모호성을 발견하고 있다. 신을 믿고 동시에 믿지 않음은 도덕적 질서의 확인 또는 부인을 뜻하는 것이며 그 점이 바로 <오이디프스 왕>을 가장 현대적인 작품으로 간주하게 되는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오이디프스 왕>은 인간의 고통에 관해서 쓴 작품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의 하나라고 믿고 있다. 이 작품의 오이디프스라는 인물은 인간의 비극의 표상을 넘어서 그것의 정시(証示)라고 설명한다. 오이디프스는 세상과 자기 자신을 다시 보지 않기 위해서 두 눈을 뽑아버리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인간의 비극을 직접 구현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가 자기 앞에서 붕괴되는 것을 본 것이다. 다시 그는 <오이디프스 왕>은 세계가 인간에게 놓은 덫에 관한 극으로 보고 있다. 이 덫은 일상적 체험의 범주를 워낙 뛰어넘고 있기 때문에 불합리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오이디프스 왕>은 세상의 어느 누구도 방어할 수 없는 우연의 잔혹성, 운명의 덫에 관한 극임을 강조한다. 오이디프스는 그것의 희생자이며 동시에 그것의 살아있는 증언이 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그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심지어 이오카스테와 크레온까지 모두 타협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진실을 알고 있다. 혹은 적어도 그것의 일부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두려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실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것의 전부를 밝히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협은 가능하다’, ‘사람은 반쪽 진실의 세계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콧트는 결론을 내린다. ‘우리시대의 <오이디프스 왕>’, 한상철, <오이디프스 왕>(국립극단, 1990년) 팸플릿“남편에게서 남편을 낳게 하고 아들에게서 아들을 낳게” 하는 신의 저주가 불가피한 운명으로서 작용하는 한 인간의 비극을 그린 고전 그리이스 시대의 가장 대표적 작품이다. 자칫하면 윤리적 불쾌감이 따르기 쉬운 소재가 거장 소포클레스의 손에 불후의 명작으로 살게 된 이유는 단적으로 말하여 신화의 테두리를 잘 살린 경험의 근원적 보편성에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연극으로서 성공하는 요체는 구성상의 뛰어난 짜임새도 짜임새이려니와 그 신화의 근원성을 양식적으로 살림으로 해서 극에다 위엄과 비극의 불가피성을 부각시키는 데 있다고 하겠다. 연기에 폭이 요청되고 동작과 발성에 사말적(些末的)인 리얼리즘은 금물이다. 일상적 차원에 떨어져 버린다면 이 작품은 견디기 어려운 멜로드라마로 전락할 위험성 마저 없지 않다. 그런 견지에서 볼 때 이번 신협 공연이 야심적 기획이었던 만큼은 용의주도하게 무대화되었다고 볼 수 없다. 연출[이해랑]은 좀더 양식화가 필요하지 않았던가. 그리이스 비극 특유의 그 운명감의 강조, 고양된 정서의 순화를 무대 위에 살리기 위해서는 리얼리스틱한 무대화만 갖고서는 미흡하며, 특히 마이크를 통한 노래를 포함하여 코오러스의 처리가 안이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전체의 제식적 분위기를 북돋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할 터인데도 불구하고 주인공[김동원]의 열연은 열연에 그치고 말았고 결말의 부분에서는 거의 신파조에 흐르는 감이 없지 않았다. 왕비[황정순]와 크레온[박암]이 거의 미스 캐스트 같은 느낌을 준 것은 이 공연을 위해 마이너스가 되었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앞으로는 그리이스 비극을 다룰 때 먼저 작품의 해석에서 연출의 방향(이를테면 가면의 사용 같은 것마저 포함하여)에 이르기까지 치밀한 준비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싶다. ‘연극공연평’, 여석기, <한국연극의 현실>, 동화출판공사, 1974
관련도서
<(다시 읽는 원전)희랍 비극1>, 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 공편, 조우현 외역, 현암사 1994 <그리스 비극: 희곡의 정수1>, 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 공편. 조우현 외역, 현암사, 1999 <그리스 비극의 이해>, 천병희, 문예출판사, 2002 <법과 문학: 소포클레스에서 카뮈까지>, 장경학, 교육과학사, 1995 <서양대표 극작가선>, 강태경 외, 새문사, 2000 <소포클레스>, 소포클레스 저, 천병희 역,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8 <연극개론>, G. J. 왓슨 저, 김종환·김민경 역, 동인, 2003 <오이디푸스왕>, 소포클레스 저, 강명순 역, 동인, 2003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소포클레스 저, 김성환 역, 동인, 2002
연계정보
-이해랑 인물
-이해랑(李海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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