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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랑레퍼토리

단체명
동랑레퍼토리
장르
극단
개요
1970년대에 ‘전통’과 ‘실험’의 화두에 가장 끈질기게 매달렸던 연극단체. <초분>, <하멸태자> 등을 통해 전통의 원용과 실험의 시도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해설
동랑 유치진은 “연극이 관객과 멀어진 것이 관객쇠퇴의 원인이며 연극이 관객 속으로 침투하는 것만이 살 길”(<동아일보>, 1961년 11월 29일)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미국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극장 드라마센터를 개관한다. 유치진이 소장을 맡고, 사무국장에 신태민, 극장장에 이해랑, 아카데미원장에 여석기, 김정옥과 이근삼이 상임위원으로 발탁됐다. 연중무휴 공연을 목표로 삼았던 극장운영은 재정난에 봉착해 결국 드라마센터의 전속극단 극단 드라마센터(동랑레퍼토리의 전신)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창단 이후 극단 동랑레퍼토리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연극 발전을 위해 기반을 다지는 작업들을 해나간다. 그 중 하나가 ‘신진 극작가 캐내기 작업’으로 이 시기에는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주로 무대에 올렸다. 이는 여석기 교수의 지도와 유치진 소장의 지휘에 의해 이루어졌다. 겨울과 여름방학만을 제외하고 거의 매주 모인 이 워크샵은 1965년부터 매년 한 두 명씩의 극작가를 극단에 데뷔시켜서 작가와 작품이 없던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1962년 출발부터 1968년 가을까지 약 6년간 지속된 극작 워크샵 출신 극작가들은 박조열, 오재호, 윤대성, 노경식, 오태석, 이재현, 조성현, 이일룡, 신명순, 윤조병, 김창활, 고동표, 박영희 등이 있다. 그러나 극단 동랑레퍼토리의 초기 활동은 과거 신협이 해왔던 공연들의 재탕으로서 많은 비난을 받는다. 동랑의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한 공연은 1969년 유덕형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한국연극사상 처음으로 선보였던 <연출작품발표회>가 그것이다. <나도 인간이 되련다>의 한 장면인 <자아비판>(유치진 작)과 <낯선 사나이>(로푸터 브로크 작), <갈색 머리카락>(김종달 작) 이렇게 세 단막극을 독특한 연출기법으로 2시간에 걸쳐 발표했다. 당시 작품은 일본을 통해 간접적으로 수용된 사실주의 연극을 그대로 믿어왔던 우리 연극계로서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 그 당시 연극이 행동의 모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나는 산대놀이, 봉산탈춤, 오광대 등 - 율동화된 춤이 그 표현의 주요 매개체가 되는 - 의 행동을 주목했다. 여기서는 대사의 역할이 극도로 제한된다. 나는 서구의 ‘말하기 위주의 연극’의 양산에 큰 반발을 느꼈던 것이다. 행동으로 이야기한다고 해서 남들은 전위파로 일컬어 왔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작업은 고유연극을 현대연극과 조화시키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전통극은 물론 동양연극의 본원을 이루는 극소를 서구적 연극 표현 수단으로 응용했다. 또한 그 당시 나는 관객이 사고의 선택권을 향유하도록 연극을 만드는 것이 연출가의 예의라 생각했었다. (……) - <한국연극>, 유덕형, 1982년 9월 유덕형은 1970년대에 첫 장막극 <생일파티>(해롤드 핀터 작)를 연출해 역시 연출의 기능과 가치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동랑레퍼토리는 1971년 <사랑>을 오태석 연출로 올려 레퍼토리 시스템을 타진하게 된다. 오태석은 이 작품에서 정적인 연극에서 벗어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재치 있는 연출을 하였고, 소도구와 장치의 활용에 있어서 무대를 충분히 잘 이용했다는 평을 받았다. 1972년 4월 몰리에르 탄생 350주년 기념 축전에 드라마센터는 몰리에르의 <스카팽의 간계>를 번안한 <쇠뚝이 놀이>를 선보인다. 연출 오태석은 여기서 기본 줄거리와 인물설정만을 원작에서 차용해 완전히 우리 고유의 민속 연희에 나오는 대사로 번안했고, 인물의 이름에서부터 연기 및 연출 역시 덧뵈기, 꼭두각시 놀음 등의 민속연희를 도입했다. 1974년 유치진이 타계함에 따라 극단은 이름을 드라마센터에서 동랑레퍼토리로 바꾸고, 본격적인 레퍼토리 시스템을 추진하여 명실상부한 레퍼토리 극장으로 재출발하였다. 이 시기 동랑은 강렬하고 충격적인 무대로 주목을 받았던 <초분>, <태> 등을 발전적으로 레퍼토리화한다. 김기주가 연출한 <출세기>는 모든 소도구에 바퀴를 달아 속도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연출력과 배우들의 개성있는 연기로 새로움을 주었으며, <보이체크>를 초연했다. 이런 극단 전체의 눈부신 활약으로 동랑은 1975년 제1회 중앙문화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1976년 10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번안한 <하멸태자>는 또 다시 연극계에 엄청난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1977년 동랑레퍼토리는 한국연극사상 처음으로 우리말로 된 현대극을 가지고 해외 공연을 떠나게 된다. <태>, <하멸태자> 두 작품으로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 3개 국가, 15개 도시에서 3개월 동안 총 45회의 공연을 하게 된다. 이후 동랑은 1980년 최인훈의 <봄이 오면 산에 들에>를 갖고 나오고, “유덕형 연출은 기존의 연극적 표현법에 대한 반성과 그로 인해 얻어진 생의 의미와 내용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며 반리얼리즘 양식을 극대화한 또 다른 차원의 실험을 보여줬다”(한상철, <한국연극의 쟁점과 반성>)는 평을 받는다. 또한 미국에서 전위적 연극을 폭넓게 경험한 김우옥은 동랑레퍼토리에서 <내 · 물 · 빛>, <춤>, <겹괴기담> 등을 올린다. 마이클 커비 작품의 구조주의 연극을 우리나라 최초로 선보였으나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이해되기 어려웠다. 이후 동랑레퍼토리는 청소년 연극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마의태자
유치진이 쓰고 연출한 작품. 서막, 1막 : 고려의 왕건이 신라를 복속시키고자 찾아왔다. 그는 성 밖에 오천대군을 잠입시키고 겉으로는 선물공세로 신라조정을 회유한다. 왕 김부는 낙랑공주의 미색에 빠져 있고, 태자는 이를 통분해 한다. 겸용, 선필, 상보 등은 왕건과 야합하여 신라를 배반하고, 이유, 김비, 김곤 등은 이를 비웃는다. 태자 등과 이들은 술시에 왕건을 살해하고자 일을 꾸민다. 2막 : 김부는 낙랑공주에게 빠져 자신의 팔찌까지 주고 만다. 태자는 어리석은 왕을 질타한다. 그러나 낙랑공주는 의기가 넘치는 태자를 사랑하게 되고 자객으로 들어온 그를 구하기까지 한다. 3막 : 태자는 낙랑공주에게 마음이 가게 되나 역으로 미움을 표하며 피하고자 한다. 한편 왕건으로 위장한 신하를 태자가 살해하게 되는데, 태자를 공격하던 선필을 공주가 죽이게 된다. 4막, 결막 : 왕건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려 군사로 하여금 신라를 공격하게 한다. 그리고 김부로 하여금 항서에 수결하라고 강요한다. 마의태자는 백화와의 언약 때문에 괴로와하면서도 공주를 사랑하게 된다. 둘이 포옹하고 있는데, 김부는 이 장면을 목격하고 질투심에 불탄다. 결국 그는 홧김에 수결을 하고 만다. 태자는 일개 초민이 되어 개골산을 헤매고, 굶주린 백성과 공주가 그를 뒤따른다. - 1983년 동국대학교 공연 프로그램
봄이 오면 산에 들에
문둥이가 되어 혼자 떨어져 사는 어미를 버릴 수 없는 – 지어미에 대한 깊고 깊은 사랑을 겉으로는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 아비와 순박한 딸 달래, 그리고 달래를 사랑하는 바우까지 문둥이가 되어 결국 문둥이라는 추악함마저 극복하는 성스러운 합일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구원의 문제는 고통의 극한 상황을 수반하며, 침묵과 정지의 움직임으로 공간을 채우기 시작한다. - 1981년 제5차 제3세계 연극제 및 회의 프로그램
생일파티
해롤드 핀터의 작품을 유덕형이 연출했다. 1막 : 스탠리가 머물고 있는 집의 주인인 피터와 아내 메그는 아침식사를 하며 오후에 늦게 찾아 오기로 한 손님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탠리는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늦게 내려와 음식투정을 한다. 피터는 출근하고, 메그는 시장 보러 간 사이에 룰루가 들르나 스탠리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룰루가 돌아가고 난 후, 두 명의 낯선 사람들이 들어온다. 이들은 맥켄과 골드버그로 오기로 예약되어 있던 사람들이다. 스탠리는 칸막이 문을 통해 그들을 유심히 살핀다. 맥켄은 골드버그에 비해 약간 초조해 보이고 그들은 어떤 특정한 목적으로 그 집에 찾아온 듯한 대화를 나눈다. 이때 시장에 갔던 메그가 돌아와 그들을 맞이하고 이들에게 1년 전부터 머물러 있었던 스탠리에 대해 말한다. 그날이 스탠리의 생일이라고 메그가 말하자 골드버그와 메그가 함께 생일파티를 준비하기로 한다. 2막 : 그날 저녁이 되어 맥켄과 스탠리, 골드버그와 스탠리가 차례로 인사를 하게 된다. 함께 있던 피터가 이웃 집에 체스를 하러 나가자 맥켄과 골드버그, 스탠리만 남는다. 스탠리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어떤 종교조직에 있었으나 무슨 이유인가로 빠져 나와 지금은 약간의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고 있다. 골드버그와 맥켄은 이런 스탠리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유숙객처럼 가장하여, 스탠리의 행적에 대해 압박하며 추궁한다. 계속하여 스탠리를 인간 쓰레기, 배신자 취급을 하며 닥달하다가 생일파티를 위해 드레스로 갈아입은 메그가 내려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생일파티를 준비한다. 룰루가 도착하자 드디어 생일파티가 시작된다. 룰루의 제안으로 장님놀이를 하게 되는데, 스탠리가 술래가 되어 눈을 가리고는 갑자기 그들을 향해 킬킬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맥켄과 골드버그는 스탠리에게 달려든다. 3막 : 다음 날 아침 메그는 전날의 파티로 몸이 지쳐 있으나 아침부터 스탠리를 찾는다. 늦게까지 스탠리는 내려오지 않고 메그가 시장에 나간 사이, 피터가 어젯밤 파티에서 심한 충격을 입은 것 같은 스탠리의 안부를 골드버그에게 묻는다. 골드버그는 간단한 신경쇠약일 뿐이라고 말한다. 잠시 후, 골드버그와 맥켄은 스탠리를 전인간적인 사람으로 만들고자 한다며 데리고 떠난다. 피터는 떠나는 스탠리에게 매우 불안한 마음을 갖는다.
초분
상식을 초월한 어떤 질서가 지배하는 섬에서 살인죄로 추방당한 기결수가 뭍에서 복역중에 모친 별세를 당해 사흘간의 상가를 얻어 감시자 당자와 함께 섬으로 돌아오는 데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가 돌아온 섬은 섬사람들의 생명줄인 미역이 폐수로 썩어가기 시작해 조상의 혼백을 초분에 모셔오던 그들의 질서를 파괴당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사라져버린 모친의 주검을 찾으면서 섬의 질서와 새로운 법의 갈등 속에서 그들은 음모를 꾸미고 사랑을 하고 몸부림을 쳐본다. 그러나 모두들 초분을 뒤져 혼백을 떠메고 뭍으로 가는 배에 오르고 섬은 불길 속에 싸이고 만다. 그 속에 임자가 혼자 남아 그 혼란을 감당하는 무서움을 겪는다. 두 개의 사상, 두 개의 권위, 소리치고 대답하는 어떤 부딪침이 보여주는 갈등이 추상화의 필치로 펼쳐진다. - <일간스포츠>, 구히서, 1973년 4월 12일
하멸태자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안민수가 한국식으로 번안 연출한 작품. 대담하고 실험적인 무대 형상화 방식에 대해서 호평받았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휼왕과 가희왕비는 태자인 하멸에게 결혼한 둘의 관계를 인정해 주길 원한다. 하지만 하멸은 삼촌이 아비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것에 대해 괴로워한다. 하멸은 원수를 갚아달라는 지달왕의 환상을 보게 된다. 대상인 파로는 하멸의 상심이 오필녀가 사랑을 받아주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오해하고 미휼왕에게 사실을 고한다. 그리고 하멸에게 사당패가 왔으니 즐길 것을 권유한다. 이에 하멸은 사당패를 불러 서처왕의 시역을 해보일 것을 명한다. 하지만 미휼왕은 그런 하멸의 태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오필녀와의 관계를 궁금해 한다. 그러나 하멸이 오필녀에게 절간으로 가라며 좋아하지 않자, 왕은 하멸을 타사도로 보내기로 한다. 하멸은 파탄의 원인인 미휼왕에게 저주를 퍼붓고 그를 본 왕비는 하멸을 꾸짖는다. 하멸은 왕비와 옥신각신하다 파로를 죽이게 된다. 파로의 아들인 대야손이 등장하여 파로의 원수를 갚겠다며 난리를 친다. 이에 미휼왕은 칼솜씨가 뛰어난 대야손에게 하멸과 대결을 하여 원수를 갚을 것을 말한다. 이때 호려소가 들어와 오필녀가 물에 빠져 죽었음을 알린다. 상두꾼이 나와 오필녀의 장례를 치러주고 이것을 본 하멸은 공수레공수거라며 오필녀의 죽음을 슬퍼한다. 미휼왕은 대야손과 하멸에게 결투를 시키고, 대야손이 이기면 아사라의 준마 여섯필을 주고, 하멸이 이기면 진주알을 넣은 술을 내리겠다고 하였다. 둘의 싸움이 팽팽할 무렵, 왕비는 하멸을 위해 미휼왕이 내린 술을 먹는다. 이때 대야손이 하멸의 팔을 베자 하멸은 대야손을 찌른다. 갑자기 왕비가 술잔에 독이 들어있다는 말과 함께 쓰러지고 대야손은 제 덫에 제가 걸렸다며, 칼 끝과 축배에 독을 넣게 한 사람이 모두 미휼왕이었음을 밝히고 죽는다. 이에 하멸은 미휼왕을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
내 · 물 · 빛
<내·물·빛>은 미국의 전위연극인 마이클 커비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번역극과 다르다. 첫째, 이 작품은 한국의 드라마센터 무대를 위해 쓰여진 작품이다. 커비는 이 작품을 집필할 때 정확한 규격의 드라마센터 무대의 모형을 작성하고 그 무대에 가장 알맞은 연극을 쓰기에 고심했다. 둘째, 이 연극은 커비의 독자적인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사람과의 끊임없는 대화에서 출발, 진행된 것이다. 그러한 접촉은 이 작품을 생소한 외국의 작품으로 몰고 가지 않고 매우 한국적인 상황으로 물고 가게 하였다. 셋째, 이 연극은 세계 초연의 기록을 세운다는 것이다. 외국작품의 경우 여러 해 해외에서 공연된 작품의 번역 공연을 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이 작품의 공연으로 한국연극이 세계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 이 연극은 내, 물, 빛 세 개의 구조 이외에 반복되는 언어와 동작, 장면과 장면을 연결해주는 여러 유사 음향들이 이 작품의 골격을 이루는 구조로써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인 나열은 장면 자체의 배열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16개의 장면은 기수, 우수로 분리되어 있으며, 기수의 8개 장면은 수색을 주제로 하고 있고 우수의 8개 장면은 도피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이 대조되는 주제는 엇갈려 나오는 장면을 통해 명료한 대층을 이루면서 전개된다. 기수의 수색자와 우수의 도망자는 논리로서는 해결될 수 없는 여러 과정을 많은 여운을 남기며 지나간다. 그러나 그 둘은 결코 만남이 없이 평행선을 이루며 서로의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두 사람의 신분이나 관계나 배경 등은 이 작품에서 전연 관심 밖의 일이며 그들에 대한 어떤 감정은 설 곳이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상황 상황이 만들어 놓는 우리 생활의 구조의 배열이다. - '연출의 말', 김우옥, 공연 프로그램
초혼
어떤 구체적인 상황이나 이야기의 전개가 없이, 단 한 마디 “아이고”하는 소리가 끝없는 반복과 연주를 만들어 낼 뿐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날 때 외치는 소리를 의식이 담긴 인간 최초의 소리로 보고, 그것을 변주함으로써 삶과 죽음이라는 상관된 개념을 동질적 본질로 구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유치진 (1905~1974)
경남 통영 출생의 극작가이며 연출가, 연극평론가이다. 호는 동랑(東朗). 향리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도일, 도쿄 릿쿄(立敎)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31년 서항석 등과 극예술연구회를 창립하여 본격적인 신극 운동을 주도한다. 1931년 희곡 <토막>을 ‘문예월간’지에 발표하고, 계속해서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1933), 장막희곡 <소>(1935) 등을 발표하였다. 그 후 사회성을 배제한 낭만적인 작품들인 <자매>(1936), <마의태자>(1937), <부부>(1940) 등을 발표하고, 중일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국민연극운동을 벌여 자신이 친일작품으로 인정하는 <흑룡강>(1941), 친일의 선봉 이용구를 찬양한 <북진대>(1942) 등의 희곡을 쓰고 공연하기도 하였다. 8·15광복 후에는 <자명고>(1947), <원술랑>(1950) 등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역사극과, 반공을 주제로 한 <나도 인간이 되련다>(1953) 등의 역작을 발표하였다. 이후 극작과 연출, 평론 활동을 계속한다. 초대 국립극장장, 반공통일연맹 이사, 동국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고, 1965년에는 드라마센터를 창립하여 사실극 성립과 후진양성에 힘썼다. 서울시문화상·예술원상(1955), 문화훈장 대통령장 서훈(1962), 문화공보부 3·1연극상(1967), 문공부장관 공로장(1970) 등을 수상하였다. · 대표작품 <토막> <버드나무 선 동리 풍경> <소> <원술랑> <마의태자> <나도 인간이 되련다> <춘향전> <왜 싸워> <한강은 흐른다> <촌선생> <도념>
유덕형 (1938~ )
1938년 서울 출생. 1967년 미국 트리니티대학 대학원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65년 캐나다, 멕시코 등 중남미 각국의 연극계를 시찰하였고 1972년 7월 필리핀 교육연극협회(PETA)로부터 연출 의뢰를 받아 김창활의 방송극 <명상>을 직접 각색하여 연출하였다. 필리핀 극단과 함께 이 작품을 소련, 체코, 폴란드, 동독 등 공산권 국가를 비롯해 12개국에서 순회공연을 했으며, 이로써 공산권 국가에 진출한 한국최초의 연극인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 1968년부터 1973년까지 극단 드라마센터 소속 연출가로 활동을 했으며,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서울예술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였다. 1972년 극단 드라마센터를 ‘극단 드라마센터 서울연극학교 레퍼토리극장’으로, 1974년 다시 동랑레퍼토리로 개칭하고 대표직을 맡았다.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한국문화대상 등 다수의 연출상을 받았다. · 대표작품 <나도 인간이 되련다> <생일파티> <봄이 오면 산에 들에> <갈색머리카락> <마의태자> <초분>
오태석 (1940~)
1940년 충남 서천 출생.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웨딩드레스>당선. 동랑레퍼토리의 <루브>의 연출로 연극계에 데뷔하여, 1984년에 극단 목화를 창단, <아프리카>를 첫 작품으로 올렸다. 1990년에는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와 1991년 <백구야 껑충 나지마라>를 연출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1987년 <부자유친>으로 서울연극제 대상, 1993년 <백마강 달밤에>로 서울연극제 예술상, 비평가그룹상, 중앙문화대상, 백상예술대상(희곡상), 대상문학상(희곡상)을 수상하였다. · 대표작품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 <환절기> <초분> <태> <춘풍의 처> <자전거> <부자유친> <백마강 달밤에> <천년의 수인>
안민수 (1940~ )
서울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서울연극학교를 다녔으며, 미국 하와이대학교 대학원 연극연출 석사를 받았다. 서울예술대학 교수와 극단 동랑레퍼토리 상임연출, 동국대학교 예술대 학장, 한국연극학회 회장, 한국연극교수협의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동랑예술원 이사와 연극교육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1977년 <하멸태자>와 1998년 집문당에서 출판된 <연극연출-원리와 기술>, <연극적 상상과 창조>가 있다. 1975년 한국연극예술영화상과 1976년 한국연극협회 한국연극상, 1981년 한국극평가협회상을 수상하였다. · 대표 작품 <리어왕> <태> <보이체크> <소> <하멸태자> <초혼> <길>
김우옥
연세대학교 및 동대학원 영어영문학 학사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 연극과 석사 졸업 및 미국 뉴욕대학(N.Y.U) 연극과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과 교수와 동랑레퍼토리 극단에서 활동을 했으며, 현재 한국대학연극학과 교수협의회 회장과 한국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전거>로 제7회 대한민국연극제 연출상, 제20회 한국연극·영화·텔레비전예술상 연극연출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 대표작품 <내·물·빛> <춤> <겹괴기담> <방황하는 별들> <아리랑> <불타는 별들>
극단 드라마센터 선언문
연극은 인류역사와 더불어 생성해왔고, 앞으로도 인류와 더불어 공생한다. 20세기 후반기의 오늘에 와서 연극에서는 메카니즘과 스피드의 시대적 요구에 순응하는 방식이 수많이 파생되어 신생과 발전을 꾀하고 있다. 극영화가 그러하고 방송극, 텔레비전 등이 그것이다. 자칫 잘못 생각할 때는 무대의 연극은 멸망한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이는 한국적인 현상이지 연극은 역시 인류와 더불어 공생할 것이며, 신생 발전하는 극영화, 텔레비전극, 라디오 드라마 등은 결국 연극의 복사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에 우리들은 한국적인 현상이라는 극한 속에서 연극의 본래의 매력과 사명을 되찾고자 드라마센터에 집결하였다. 아울러 우리들은 한국의 연극적 현실을 타개하는 데 있는 힘과 정열을 다할 것이다. 편향성, 유아독존, 모든 타성, 태만, 이런 것들을 우리들 몸에서 스스로 먼저 깨끗이 씻어버림으로써 이 일의 첫 걸음을 디디는 것으로 하겠다. 하나의 극단을 만들어 그것을 유지하는 데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힘드는 일들이 태산과 같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연극의 선배와 이제 새 출발한 드라마센터 부설연극학교인 아카데미 출신의 학도들과 함께 어울리어 이 험한 태산을 힘차게 넘어 갈 것을 여러 어른들에게 선언하는 바이다. 동랑은 실험정신에 입각하여 실험 자체의 예술적 성패에 관계없이 그것으로 전통에 영향을 주어 활력을 불어 넣는다는 점에 주력하고 있다. 주요 공연작품에 <초분>, <리어왕>, <태>, <마의태자>, <보이체크>, <하멸태자> 등이 있고, 필리핀 제3세계 연극제에서 <알라망>을, 뉴욕 라 마마에서 <초분>을 공연했으며, 1977년 봄에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태>, <하멸태자>를 가지고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15개 도시를 순회공연했다. 1980년도에 들어서서 오랜 침묵을 깨고,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초혼>, <내·물·빛> 등 실험극을 공연하였다. - 1981년 제5차 제3세계 연극제 및 회의 프로그램 중
관련도서
<우리연극 100년>, 서연호·이상우, 현암사, 2000 ‘유덕형과의 인터뷰’, <한국연극>, 1982년 9월 ‘동랑레퍼토리극단’, 유민영, <한국연극>, 1976년 4월 <극장 드라마센타에 관한 연구>, 조운용, 단국대학교 석사학위
연계정보
-토막
-초분
-태
-자전거
-춘풍의 처
-밤으로의 긴 여로
-마의태자
-나도 인간이 되련다
-생일파티
-하멸태자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소
-포기와 베스
-내·물·빛
-겹괴기담
-한강은 흐른다
-극예술연구회
-신극협의회
-방황하는 별들
-혁명의 춤
-유치진(柳致眞)
-김정환(金貞桓)
-이해랑(李海浪)
-동랑레퍼토리
-문밖에서(Drauβen vor der Tür)
-보이체크(Woyzeck)
-꿀맛(A Taste of 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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