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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의 처

  • 내용

    1장 이지와 덕중이 부자를 결박해서 앞세우고 돌아온다. 부자는 한양까지 갈 필요 없이 여기에서 재판을 열어 둘 중 한명을 풀어달라고 한다. 부자는 나라에서 금과 은을 내다가 왜놈에게 판 밀수꾼으로 백냥돈에 수배된 자였다. 덕중과 이지는 부자가 서로 자기 잘못이라고 하자 둘 다 죄가 없다고 풀어주려 한다. 이때 처가 등장하여 덕중과 이지의 몽매함을 지적하고 아범이 수모라고 한다. 덕중은 불식간에 달려들어 부의 면상을 박치기 하자 부는 봉사가 되어 버린다. 덕중과 이지는 부자를 한양에 데려다 주고 백냥을 받아 이지의 팔순 노모를 위한 더덕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헛으로 돌아가자 죽으려 한다. 이때 처가 나서서 남편인 춘풍에게 소박 맞은 일을 이야기 한다. 육손인 처는 평양 명기 추월과 바람난 춘풍을 불러 들이기 위해 화병이 났다고 거짓 기별을 올렸다. 처는 거짓 기별에 춘풍이 화를 낼 것을 걱정하자 덕중이 처를 박치기 한다. 이지는 염하여 곡을 시작하자 춘풍이 등장한다. 덕중은 처가 밤낮으로 일하여 수천금을 모았다고 하자 춘풍은 수천금을 달라고 한다. 이때 처가 이 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키며 춘풍의 몰골을 살피자 춘풍은 죽지 않은 처를 보고 화를 낸다. 처가 세 아들이 죽었다고 하자 춘풍이 처를 졸도 시킨다. 춘풍은 수천금 때문에 의원인 부를 불러 처를 회생시키고자 하나 많은 금액이 들자 죽게 내버려 둔다. 이때 평양감사가 보낸 옥리가 등장하여 춘풍을 데려간다. 이지는 처를 회생시켜 춘풍을 살리기 위해 벼슬을 해야 한다고 말하자 처는 벼슬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난다. 2장 벼슬을 한 처와 휘양을 쓴 덕중, 이지가 결박한 젊은 남녀와 등장한다. 젊은 남녀는 부부관계로 첩을 둔 남편이 미워 화조가 시어머니 생신날 방에 누워있자, 그것을 본 남편이 이혼을 하길 원했다. 처는 판결에서 세상이 달라졌기에 첩을 둔 자가 수모라며 놈의 면상을 부수길 명하자 덕중이 박치기를 한다. 추월이 등장하여 화조와 자를 보고 춘풍과 처로 오인하고 화조의 머리채를 잡자 덕중이 화조를 박치기 한다. 추월은 벼슬을 하는 처에게 인사를 하며 자기 자랑을 하자 처가 추월을 박치기한다. 처는 넘어지고 추월은 멀쩡하다. 처는 비몽사몽간 일어나 추월이 입고 있던 저고리나 한번 입어보고 북망산으로 가겠다고 한다. 덕중은 추월의 치마저고리를 가져다 처의 몸에 덮어주고 춘풍이 처를 추월로 오해하고 곡을 한다. 처는 그런 춘풍을 보고 좋아해야 할지 성을 내야 할지 공경을 해야 할지 허우를 해야 할지 모른 채 곱사춤을 춘다. 춘풍과 춤을 추다 갑자기 죽는다. 추월이 부채와 방울을 들고나와 굿을 한다. 이지와 덕중은 병든 노모 때문에 지상으로 내려온 사실을 잊고 있었음을 깨닫고 덕중은 자신의 이마를 치고 뒤로 넘어간다.

  • 예술가

    오태석 (1940~ ) 1940년 충남 서천 출생.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웨딩드레스>당선. 동랑레퍼터리의 <루브>의 연출로 연극계에 데뷔하여, 1984년에 극단 목화를 창단하여 <아프리카>를 첫 작품으로 올렸다. 1990년에는 <심청이는 왜 두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와 1991년 <백구야 껑충 나지마라>를 연출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1987년 <부자유친>으로 서울연극제 대상, 1993년 <백마강 달밤에>으로 서울연극제 예술상, 비평가 그룹상, 중앙문화대상, 백상예술대상(희곡상), 대상문학상(희곡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작품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뚜기> <초분> <태> <춘풍의 처> <자전거> <부자유친> <백마강 달밤에> <천년의 수인>

  • 리뷰

    고전 <이춘풍전>을 오태석이 새롭게 재조명한 것으로 이화여대 국문과 학생들이 초연을 했으며 이후 서울예술대학 학생들과 공연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미8군 장교 클럽, 약수동의 개인 살롱 ‘문헌화랑’에서 공연을 했었다.

  • 재공연

    - 1976년 10월 6일~10월 17일 삼일로창고극장, 오태석 연출, 극단 창고극장 - 1976년 12월 1일~12월 3일 쎄실극장, 오태석 연출, 극단 창고극장 - 1977년 5월 11일 ~5월 15일 드라마센터, 오태석 연출, 극단 창고극장 - 1977년 10월 22일~10월 24일 시민회관 소극장 - 1979년 6월 8일~10일 뉴욕원더호스극장, 극단 뉴욕, 오태석 연출 - 1979년 7월 6일~7월 8일 뉴욕언더호스극장, 극단 뉴욕 - 1986년 5월 1일~5월 31일 바탕골소극장, 바탕골소극장 개관기념공연 - 1986년 9월 20일~10월 12일 바탕골소극장 - 1987년 TOGA세계예술제 참가 - 1990년 6월 29일~7월 7일 충돌극장 - 1990년 7월 10일~7월 16일 동경 알리스페스티발 - 1990년 8월 1일~8월 31일 충돌극장 - 1999년 5월 7일~9월 21일 극장 아룽구지, 오태석 연극제 2 - 2000년 12월 8일~12월9일 HEP HALL극장, 일본오사카-고베순회공연

  • 평론

    오태석 특유의 요설, 객설, 사설이 푸짐하고 북치고 창하고 뛰고 뒹굴고 춤추고 그야말로 한 마당 신들린 굿거리 같은 연극인데 이춘풍의 얘기를 삭제했다고는 하나 줄거리는 있지도 않고 앞뒤 논리도 없으며 인물은 무시로 드나들지만 일관성있는 성격이 부여된 것도 아니고 죽은자가 살아나고 산자가 둔갑하는 해프닝을 연출한 작품이다. 울다가 웃다가 치고 받는가 하면 껴안고 어울리고 한껏 신명이 나는가 싶으면 느닷없이 청승을 떨기도 한다. 언어는 파괴되고 플룻은 이미 존재하지 않고 인물은 분재되어 있는 이 연극은 오태석의 무의식이 빚어낸 가장 현대적이고 따라서 가장 실재적인 연극이 아닌가 생각된다. …… 극의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서와 감각으로부터 탈출해 내었다는 데에 보다 큰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춘풍의 처>는 오태석의 다른 작품에 비하여 가장 즉흥성이 강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오태석은 무의식과 충동의 작가로 보고 싶다. 그가 의식과 기교를 가질 때 그의 작품은 위태로와진다. <춘풍의 처>가 지금까지 오태석의 모든 작품들 가운데 가장 의미심장한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바로 그런 점이다. (고대신문 1979년 12월 4일, 정진수) <춘풍의 처>는 명절날 흔히 공연되는 <민속마당 이춘풍전>식의 마당극과는 거리가 멀다. 대학이나 현장에서 공연되는 마당굿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마당극, 또는 마당굿이 전통민속극을 기반으로 아예 새로운 양식으로 발전된 것이라면, <춘풍의 처>는 어디까지나 전통 민속극들의 여러 요소들을 도입한 '연극'인 것이다. 이 작품이 처음 공연된 1976년은 대학가에서 탈춤 등의 민속극 공연 운동이 마당극 또는 마당굿으로 발전해나가던 중이었지만, 현대 연극에 전통민속극을 수용하려는 노력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춘풍의 처>는 일종의 ‘실험극’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연극으로서 <춘풍의 처>는 ‘노인분들’께 권했다가는 꾸중듣기 딱 알맞을 만큼 난해하기 짝이 없는 작품이다. 작품의 대체적인 뼈대는 고전 소설 <이춘풍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관객들은 도대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가는 것인지 어리둥절하기 마련이다. 전통 민속극에 대한 약간의 사전 지식을 가지고 보면 이 연극이 전통극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이미지를 중심으로 모자이크한 작품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춘풍의 아내가 춘풍을 만나는 대목은 <수영 들놀음>의 ‘영감할미 마당’에서 따온 것이며, 등장인물 가운데 덕중과 이지가 뭍으로 올라온 사연은 <별주부전>의 ‘별주부’의 이미지를, 덕중이 박치기하는 대목은 <꼭두각시> 처의 ‘홍동지’의 이미지를 따오는 식이다. 이 작품뿐만 아니라 대체로 오태석씨의 작품들은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모자이크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작품들이 많아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구경하다 보면 그 나름대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내용이 약하다보니 연극이 끝난 뒤에는 허망한 생각이 남는다. '그래서 도대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데?'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 도대체 듣고자 하는 바가 뭔데?' 하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한겨레신문 1999년 6월 30일, 위기철)

  • 관련도서

    <오태석 연극:실험과 도전의 40년> 오태석 외, 연극과 인간, 2002. <심청이는 왜 두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오태석, 평민사, 1994.

  • 관련사이트

    극단 목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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