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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뭍에 오르다

  • 출연/스태프

    * 출연 강성운/박근형 백경훈/최불암 김은정/박정자 노정심/김혜자 백화옥/최지숙 나연호/김수일 김천석/함현진 위덕칠/김무생 박보매/나옥주 백동훈/이재욱 한수덕/김용건 성낙현/문오장 검사/박영걸 변호사/김관수 시골청년/서해동 옥분/김선미 * 스태프 미술/장종선 의상/이병복 조명/고천산 음악/공성원 분장/최효성

  • 내용

    백만장자 백지윤이 죽었다. 그 유산을 둘러싸고 후취댁 김은정과 그의 오빠 김천석, 알코올 중독의 외아들 백경훈과 며느리 노정심 그리고 딸 백화옥과 사위 나연호 사이에 삼색전이 벌어질 기미였다. 그런데 유언장의 내용은 가족 전부를 아연실색케 하는 뜻밖의 것이었다. “본인 백지윤은 본인의 소유재산 전부를 백동훈에게 유증한다” 가족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백동훈이 엄청난 재산의 상속자로 지명되었으니, 혼란과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유서 작성시 입회날인하였던 공증인 강성운이 문제의 인물 백동훈을 찾으러 나선다. 전국의 백동훈이 몰려드나 진짜 백동훈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강성운은 단념하지 않는다. 늙은 하인 위덕칠의 우연한 이야기로 고 백지윤씨가 6.25 당시 제주도 황산포에 피난을 갔으며, 당시의 그의 변성명이 백동훈이었고, 거기에서 한 비바리가 그의 시중을 정성껏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제의 열쇠는 제주도 황산포에 있었던 것이다. 강성운은 제주도로 달려간다. 거기서 그는 백지윤을 모시고 있던 비바리 박보매와 그의 아들 백동훈 소년을 발견하여 서울로 데려온다. 고 백지윤은 그의 변성명 백동훈을 비바리의 아들에 물려주었고, 이러한 것으로 보아 백동훈이 백지윤의 낙윤이라고 믿어지는 것이었다. 궁지에 몰린 후취댁 김은정과 그의 오빠 김천석 등은 박보매를 정신병자로 몰아 법정후견인의 자격을 뺏으려 한다. 그러나 이때 뜻밖의 일이 생긴다. 백동훈 소년이 뚝섬에서 실종된 것이다. 백경훈이 고발로 비바리 박보매와 공증인 강성운은 소년의 살인혐의를 받아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뭍에 오른 해녀! 바다를 떠난 해녀에게 기다리는 것은 희극적 결말은 아니었다. 참고: 1967년 공연 프로그램

  • 예술가

    오영진 (1916~1974) 1916년 평남 평양출생. 호는 우천. 1938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선문학과 졸업하고 동경 발성영화제작소에서 영화연구관련 일을 했으며, 1942년 귀국하여 숭인상업학교에 재직하였다. 1945년 8.15광복 후에 평양에서 조만식, 부친 오윤선 등과 함께 조선민주당을 창단하여 활동을 했으며, 1952년 문총 중앙심의위원회 부위원장, 중앙문화사 사장과 월간 문학예술 주간을 역임하였다. 한국영화문화협회 이사, 예술원 4분과 위원장, ITI 한국본부 부위원장으로도 활동하였다. 1959년 제1차 국제연극대회에 유치진, 박석인과 함께 한국대표로 참석했으며 1964년부터 1967년까지 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1942년 국민문학에 시나리오 <배뱅이굿>과 <맹진사댁 경사>를 발표하여 연극계에 데뷔하였으며, 1959년 문교부 시나리오상과 제3회 부일시나리오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저서로는 수기 <하나의 증언> <오영진희곡집>이 있다. 대표작품 <향연>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해녀 뭍에 오르다> <허생전> <무희> <맹진사댁 경사> 김정옥(1932~ ) 전남 광주 출생,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느대학 영화전문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였다. 1959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서 강의를 시작하여 1997년까지 37년 동안 후진양성에 전력하였다. 민중극장 대표, 극단 자유의 예술감독으로 일하며 연극, 창극, 오페라, 영화 등 100여편을 연출하였다. I.T.I.(International Theatre Institute)에서 집행위원, 부회장, 회장을 역임하며 제3세계 연극제(80), 세계연극제(97), I.T.I. 총회를 서울에 유치하는 등 20여년 동안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연극의 국제교류의 일환으로 극단 자유의 해외순회공연을 일곱 차례에 걸쳐 주도해서 일본, 프랑스, 독일 등 7개국 32개 도시를 순회 공연하였다. 한국연극영화상(1967년)을 비롯하여 프랑스문화훈장(1984년), 대한민국예술원상(1993년), 동랑유치진 연극상(1998), 일민예술상(1999) 등을 수상하였으며, 주요저서로는 <연극적 창조의 길> <시인이 되고 싶은 광대> <영화예술론> 등 10여권이 있다. 대표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피의 결혼> <무엇이 될 고 하니> <햄릿> <대머리 여가수> <해녀 뭍에 오르다> <동리자전>

  • 재공연

    - 1967년 4월 28일~5월 4일 국립극장, 김정옥 연출, 극단 자유극장, 동아연극상 수상 기념 공연

  • 평론

    작품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우리의 가능성을 가로막는 작품이 없지 않다. 소박한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비슷비슷한 작품들…, 이러한 대부분의 우리 창작극들이 처음부터 연기자들과 연출자의 가능성을 빼앗고 관객들에게 식상증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관객과 연기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지 않는 작품들, 이러한 작품들이 리얼리즘의 미명 아래 오늘도 관객과 무대의 대화를 단절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영진씨의 <해녀 뭍에 오르다>는 우리 창작극이 주는 이러한 일반적인 실망을 부정하고, 우리에게 하나의 가능성을 안겨 주었다. 무한한 상상의 세계, 시정과 양만의 물결이 넘쳐 흐르는 물결이 넘쳐 흐르는 세계가 거기 있고, 밤을 세워도 끝날 수 없는 대화가 거기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 어떠한 형태로건 대화가 이룩되기를 원한다. 외로운 구경꾼들은 관객석에서 충족되어야 한다. 연후에, 쌓이고 쌓인 사연을 털어놓은 연후에 느끼는 허전함, 그것을 구태여 외로움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1967년 공연 프로그램 연출가의 말)

  • 관련도서

    <한국 현대희곡 연구> 손화숙, 국학자료원, 1997 <한국현대대표희곡선집 2> 한국극예술학회, 월인, 1999

  • 연계정보

    -맹진사댁 경사 (시집가는 날)
    -인생차압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허생전
    -피의 결혼
    -동리자전
    -무엇이 될고하니
    -시집가는 날
    -십대의 반항
    -한네의 승천
    -오영진(吳泳鎭)
    -극단 자유
    -김정옥(金正鈺)
    -따라지의 향연
    -옷굿-살
    -이병복(李秉福)
  • 관련사이트

    극단 자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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