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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옥(金正鈺)

  • 개요

    연출가 김정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극단 자유다. 1966년 이병복과 함께 극단 자유를 창단하면서 <따라지의 향연>(스칼페타 작, 명동국립극장)을 스스로 연출한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극단 자유를 벗어나 연출을 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연출가 김정옥과 극단 자유의 역사는 한 쌍의 수레바퀴처럼 50년 가까이를 함께 굴러오고 있다. 극단 자유를 창단할 당시 김정옥은 <한꺼번에 두 주인을>, <아가씨 길들이기>, <마리우스>, <피크닉 작전> 등 주로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의 외국 고전 희극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한국 사람한테 부족한 것이 바로 희극정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희극의 빠른 템포를 우리나라 연극에 도입하기 위해 많은 힘을 쏟았다. 그 뒤 서구의 부조리극을 선보이다가 1978년 대한민국연극제 참가작품이었던 <무엇이 될고하니>를 기점으로 이른바 집단창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김정옥은 이 작품을 통해 집단창조와 총체적 연극의 이상을 내세우고 생과 죽음의 주제를 극적으로 부조하면서 서구 연극과 우리의 연극적 유산의 만남 속에서, 단순한 접목이 아니라 오히려 충돌 속에서 이루어지는 오늘의 새로운 연극, 우리의 연극으로서의 제3의 연극을 표방하고 나설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차피 연극의 중심은 배우인데, 그 배우들에게 서양의 틀을 씌우는 것의 한계를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구의 연극과 우리의 전통연극이 만나고 부딪치고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새로운 형태의 한국연극이 빚어질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판소리, 탈춤을 과감하게 연극에 끌어들인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 <무엇이 될고하니>, <달맞이꽃>,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수탉이 안울면 암탉이라도>, <피의 결혼> 등이다. 초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희극에서 1970년 한국의 전통설화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과 그 후 총체연극이란 이름 아래 제작된 그의 연출기법은 연극에 관한 다양한 관심과 연출가로서 겪어야 했던 혼돈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러한 희곡 선택과 연출경향은 그가 국제극예술협회 제3세계 연극분과위원장을 맡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제3세계 연극운동’ 혹은 ‘뉴시어터 운동’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는 서구연극과 다른 독자성을 추구하기 위해 제3세계의 개성을 찾아내고, 문화의 주체성을 찾자는 자생적인 움직임을 강조한다. 이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충돌함으로써 새로운 연극을 찾아내어야 한다는 그의 연극관으로 발전한다. 극단 자유는 1980년에 정력적으로 해외 순회공연을 추진하기도 한다. 일본,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튀니지 등에 여섯 차례에 걸쳐 순회공연을 가졌으며, 프랑스의 렌느연극제, 낭시 세계연극제, 칼카존연극제, 소피아 앙티포리스연극제, 스페인 시저스연극제, 바르셀로나 연극제, 마라가 연극제, 튀니지 하마메트연극제, 일본의 오키나와 동양연극제 등에 참가했다. 그러나 극단 자유가 치른 외국 공연보다 그의 이름은 더 국제적이다. 국제극예술협회(ITI) 한국본부 회장직을 10년 넘게 맡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본부 회장을 지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1997년에는 국제극예술협회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여 외국의 우수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 생애와 약력

    1932년 전남 광주 출생 1938년 전남 영암 독천초등학교 입학. 그 후 의사인 아버지의 임지에 따라 해남 송지초등학교, 나주 남평학교를 전전 남평국민학교를 졸업 1950년 광주서중 졸업 1955년 서울대 문리대 졸업 1956년 파리에 유학, 영화대학(I.D.H.E.C), 소르본대학 영화학연구소 등에서 현대불문학, 영화, 연극 등에 관심을 가짐 1958년 프랑스 빠리 소르본대학 영화·불문학 1959년 프랑스에서 귀국 / 창설된 중앙대 연극영화과 강의 시작 1960년 중앙대 교수 1963년 극단 민중극장 동인 1964년 극단 민중극장 대표 1966년 극단 자유 창립 1979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1982년 국제극예술협회 한국본부 회장 1985년 중앙대 예술대학 학장 1989년 국제극예술협회 세계본부 부회장 199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92년 한국영화학회 회장 1997년 국제극예술협회 세계본부 회장

  • 상훈

    1979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83년 서울시문화상 1984년 프랑스정부 문화훈장 1989년 예술문화대상 1990년 금호예술상 1993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95년 95 최우수 예술인상 1998년 일민문화상 / 은관문화훈장 / 동랑연극상 / 일본 닛케이아시아상

  • 작품활동

    1961년 이화여대 문리대 연극반에서 아리스토파네스의 <리시스트라다> 연출 1963년 극단 민중극장 창립공연 <달걀>, <대머리 여가수> 연출 1964년 <도적들의 무도회>(한국일보 연극영화상 작품상·연출상) 연출 1965년 <토끼와 포수>(동아연극상 대상), <피의 결혼>(이대 연극반) 연출 1966년 극단 자유 창립공연 <따라지의 향연>(동아연극상 대상), <신의 대리인> 연출 1967년 <해녀 뭍에 오르다>, <한꺼번에 두 주인을> 연출 1968년 <우정>, <피크닉 작전> 연출 / <나의 연극교실> 발간 1969년 <마리우스>,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한국일보 연극영화상 작품상·연출상), <햇빛 밝은 아침>, <타이피스트> 연출 1970년 <사자의 훈장>, <호랑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동아연극상 대상) 연출 1971년 <아가씨 길들이기>, <부부연습>, <슬픈 카페의 노래>(한국일보 연극영화상 대상·연출상) 연출 1974년 <동리자전(東里子傳)>연출 1975년 <색시공(色是空)> 연출 1977년 <상자 속의 사랑얘기>(소극장 공간 개관 기념공연) 연출 / <영화예술론> 발간 1978년 <무엇이 될고하니>(대한민국연극제 작품상, 연출상. 한국일보 연극영화 대상, 연출상) 1979년 <무엇이 될고하니> 일본 동경, 오오사카 등 순회공연 1980년 <백양섬의 욕망>(소극장 산울림 개관 기념공연) 연출 1981년 <엘리펀트 맨> 연출 / <무엇이 될고하니> 서울 제3세계연극제 참가 및 스페인, 네덜란드 등 순회공연 1982년 <달맞이 꽃>, <피의 결혼> 연출 1983년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작·연출 1984년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피의 결혼> 낭시 세계연극제 참가 및 파리, 튀니지 하마메트연극제 참가 1985년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일본 동경, 오사카, 히로시마, 교토, 사포로, 아사이가와 등 순회공연 /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피의 결혼> 스페인 바르셀로나연극제, 마라가연극제, 프랑스 칼카존연극제, 소피아 앙티포리스연극제 참가 1986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서울국제연극제 대상) /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작·연출 1987년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일본 오키나와 동양연극제 참가 / 영화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시나리오 및 감독 1988년 <수탉이 안울면 암탉이라도> 연출 / <피의 결혼> 88올림픽국제연극제 참가 1989년 <그리고 그들은 죽어갔다>, <옛날 옛적에 훠어이 허이> 연출 / 헬싱키 국제연극워크숍 주재 1990년 국립극장 창설 40주년 기념공연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연출 / <무엇이 될고하니> 브라티스라바 세계연극학교페스티벌 참가 1992년 <노을을 날아가는 새들> 작·연출 1993년 <햄릿> 각색·연출, 파리 및 본 순회공연 1994년 <햄릿> 동아연극상 작품상 수상 1995년 <피의 결혼> 연출

  • 대표작품

    <따라지의 향연> <피의 결혼> <무엇이 될꼬하니> <동리자전>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수탉이 안울면 암탉이라도>

  • 저서

    <영화예술론>, 김정옥, 동화출판공사, 1982 <영화학입문>, 꼬레 장, 김정옥 역, 영화진흥공사, 1982 <시인이 되고 싶은 광대>, 김정옥, 혜화당, 1993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김정옥, 혜화당, 1994 <나의 연극교실>, 김정옥, 서문당, 1996 <연극적 창조의 길>, 김정옥, 시각과 언어, 1997 <영화론의 전개와 제3의 영화>, 김정옥, 시각과 언어, 1997

  • 리뷰

    (……) 체코 대표 밀란 루케스 씨(프라하국립극장 예술총감독)는 스페인 작가 로르카의 <피의 결혼>에 대해 같은 작품을 프라하에서 두 번이나 공연했는데 실패로 끝났다며 그 원인은 너무 스페인 스타일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의 <피의 결혼>은 한국식으로 개념을 설정한 연출 해석이 원작을 오히려 충실히 살려내는 포인트가 되었다며 “한국화 된 <피의 결혼>에서 또 다른 주제의 변용과 즐거움을 맛보았다”고 말했다. 역시 <피의 결혼>을 본 터키 앙카라대 연극학과장 세브다 세너 여사는 “서양과 동양, 전통과 현대의 충돌 속에서 주체성 있는 무대를 창조해냈다”며 “전통을 죽은 과거로서가 아니라 현재화하는 작업이 예술의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원작에 있는 마지막의 죽음을 서울 공연에서는 서두로 끌어내 동양의 미학적 관점을 읽을 수 있었다며 “비극적 요소에 희극을 가미시켜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무대를 보여주었다”고 극찬했다. (……) <div align='right'>- <조선일보>, 정중헌, 1998 (……) <그 여자, 억척어멈>은 일단 형식이 모노드라마여서 총체연극을 지향하는 연출가 김정옥의 특성을 살리기에는 썩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연극은 대부분 노래와 춤과 드라마가 종합되어 있어 연극 요소면에서도 총체적이고, 치열한 갈등을 중심으로 한 서구적 비극적 내러티브와 갈등해소의 구실이 되고 틀이 되는 굿과 난장의 한국적 희극적 구성이 형식적인 총체성을 이루기 일쑤이다. 또한 삶으로서의 연극과 연극으로서의 삶, 죽음을 친구하는 삶과 삶을 동반하는 죽음, 동시대를 겨냥한 사회적 담론과 동시대를 담는 철학적 담론 등이 연극미학과 존재론, 정치학을 묶어서 주제적으로도 총체성을 이룬다. 실제로 <그 여자, 억척어멈>의 탄생과정을 밝히는 프로그램 노트에서 김정옥은 “1인극의 한계를 넘어서서”, “시간과 공간을 몽타주하고 모노드라마이면서 총체연극적인 성격을 살리고 싶었다”고 회술하고 있다. (……) 총체극이라는 같은 목적을 지향하면서도 <그 여자, 억척어멈>은 종전의 김정옥 연극과는 사뭇 달랐다. 예를 들어 서양의 고전을 한국적으로 지역화하고 현대화한 <햄릿>이나 <피의 결혼>은 <그 여자, 억척어멈>과 마찬가지였지만, 앞의 두 작품은 김정옥이 자유극단 단원들과 집단창작한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이름 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등 다른 창작극들과 같이 총체극적 서사극적 기법을 기본도구로 구사하면서도 연극의 효과가 대단히 서정적이었다. <그 여자, 억척어멈>도 브레히트의 <억척어멈>으로 시작해서 아리랑의 민요가 표상하는 한국적 어머니상으로 끝나는 구성으로 미루어 작가 겸 연출자인 김정옥이 여전히 총체극적, 서사극적 구성에 서정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div align='right'>- <문화예술>, 김윤철, 1997년 5월호

  • 창작노트

    (……) 나의 연극 인생은 허풍을 떨고 허세를 부리는 데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연극은 멋대로 허장성세를 부릴 수 있다는 데에 매력이 있는지 모른다. 종래의 연극적 틀, 기성의 형식을 깨는 새로운 연극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연극을 만드는 우리들 자신과 관객들을 위해서 허구한 구호를 내세워야 했다. 연극이란 연출자 혼자 멋대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연출자의 뜻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연기자와 뒷스태프, 무대미술, 조명 등이 대본을 기본으로 해서 공동으로 집단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비슷한 창조적 방향을 잡을 필요가 있고 이탈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 자신을 위해 구호가 필요한 것이다. 만드는 사람만이 아니라 관객을 위해서도 구호는 필요했다. 관객은 새로움을 기대하면서도 새로운 연극을 대할 때 일단 경계한다. 새로우면서도 뭔가 의미 있는 창조라는 것을 내세워야 한다. 어떻든 우리는 1978년 <무엇이 될꼬하니>를 연습하면서 마치 데모를 하는 사람들처럼 구호를 외치고 내세울 필요가 생긴 것이다. 사실 우리는 <무엇이 될꼬하니>를 연습하면서 그 제목처럼 우리의 연극이 무엇이 될 것인지 불안했던 것이다. 종래의 틀과 형식을 깨고 자유로워지자, 극장의 형식이 주는 구속을 거부하고 희곡이 주는 구속마저도 거부하자, 그러나 자유를 원하고 새로움을 추구할 때 우리는 더욱 불안해지고 더욱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불안을 달래고 관객을 속이거나 세뇌하기 위해서 구호가 필요해진 것이다. 처음에 우리가 내세운 구호는 다음 다섯 가지 어설픈 구호였다. 1. 이번 작품은 워크숍 형식으로 연습한다. 2. 연습 과정에서 제기되는 발언들을 기록해둔다. 3. 가장 연극적인 연극을 만들도록 연구한다. 4. 이 작품은 작가, 연기자와 연출, 스태프들이 합동으로 만드는 집단창조이다. 5. 반사극(反史劇)(실험적이며 미래적인)이다. 6. 연기자들은 관객과의 새로운 공간, 시간 접근을 통해 연극적 체험을 한다. (……) <div align='right'>-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김정옥, 혜화당, 1994

  • 관련도서

    <백양섬의 욕망>, 유고 베티 저, 김정옥 역, 극단 자유, 1979 <한국예술총집>, 김일영, 대한민국예술원, 2000

  • 연계정보

    -해녀 뭍에 오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피의 결혼
    -동리자전
    -무엇이 될고하니
    -극단 자유
    -따라지의 향연
    -이병복(李秉福)
  • 관련사이트

    대한민국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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