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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극장

개요
1960년대 동인제 극단 시대의 주역 중 연극 대중화에 가장 앞장 섰던 극단. 민중극장의 특성은 “우리 극단은 다양한 작품을 추구합니다. <아가씨와 건달들>처럼 오락성이 강한 작품이 있고 <오드리>와 <카바레> 등 문학성이 강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락성이든 문학성이든 놓치지 않는 것은 동시대의 감각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라는 1996년도 민중의 대표였던 박봉서의 언급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해설
민중극장은 1963년 1월에 창단됐다. 극작가 이근삼을 대표로 김정옥, 양광남, 구선모, 이정실, 황석유, 장종선, 권영주, 나옥주, 박명희, 오현주, 김석강, 최명수, 최상현이 창단 멤버였다. 이근삼(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김정옥(프랑스 소르본 대학), 양광남(미국 비르검 영대학) 등 해외 유학파가 중심이 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민중극장은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하고 있어 창단 1년 후부터는 김정옥이 대표직을 맡았는데, 내부사정으로 말미암아 김정옥은 나중에 극단 자유로 옮기게 된다. 민중극장의 창립공연은 페리시앙 마르소의 <달걀>로, 1963년 5월 2일부터 4일까지 김정옥 연출로 명동국립극장에서 공연됐다. 주인공 마지스 역을 최명수가 맡아 극찬을 받았으며, 추송웅, 김혜자가 이 무대로 데뷔했다. 현대의 부조리를 희극풍으로 그린 <달걀>은 “이 극의 진미는 그 달걀의 철학과 경쾌한 코미디조에 있다. 그 에스프리를 살리는 데 주력한 연출의 노력은 무엇보다도 무대를 무겁게 하지 않으려는 데 나타나 있다.”(여석기, <한국일보>, 1963년 5월 30일)는 평가와 함께 초만원을 이루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1963년 11월에는 두 번째 공연으로 ‘살롱 드라마’(소극장 연극)를 시도해 사샤 기뜨리 작·허규 연출의 <별장 팝니다>와 이오케스코 작·김정옥 연출의 <대머리 여가수>를 공연한다. 평단에서는 당시 공연을 反연극이라 하여 비교적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 민중극장의 공연은 마틴 부부의 성격부여 등 부조리극의 특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전체적으로 ‘코메디’로 흘러버렸고, 연기자도 대화의 도치된 비논리성을 소화하지 못하고 그만 웃기기도 했는데, 다만 스미스 부인 역의 ‘히스테리’적인 ‘안밸러스’의 연기는 좋았고, 아무튼 반연극을 시도했다는데 의의가 있는 공연이었다. (……) - 신현숙, <조선일보>, 1963년 11월 민중극장은 이후 박조열의 <토끼와 포수>를 김정옥 연출로 올려 제2회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기상(양광남, 나옥주)을 타는 쾌거를 이룩한다. 이어 제6회 공연으로 올린 이근삼 작 양광남 연출의 <국물있사옵니다>는 “서사극 양식이 한국에 토착화되는 무대를 보여 주목”(서연호, ‘50~60년대의 명동시대를 중심으로’, <한국연극>, 1998년)이란 호평을 받는다. 민중극장은 창단 초기 실험성이 강한 서구 변역극과 더불어 역시 양식적 실험이 돋보이는 창작극을 고루 선보이며 극단의 토양을 마련했다(1970년도까지 창작극 5편, 번역극 7편을 올렸다). 민중극장은 1970년대에 이르면 극단의 방향에 궤도 수정을 가한다. 1974년에 민중의 단원이던 MBC-TV의 프로듀서 이효영씨와 미국유학에서 돌아와 실험극장에 합류해 있던 정진수씨가 주축이 되어 기획자 구자홍씨와 배우 박봉서씨 등을 영입하여 이효영씨를 대표로 재창단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해 12월에 <우리는 뉴해이븐을 폭격했다>를 가지고 재창단 공연을 가졌다(민중극장은 1970년부터 1974년까지 4년 간의 휴면기를 가졌다). 그들이 1977년에 새롭게 선언한 선언문 내용을 보면, 첫째가 의식있는 생활인이면 누구나 공감하고 같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공연한다는 것, 둘째 소수의 전문인들만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실험공연을 하지 않는다는 것, 셋째 연극이념과 방법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내적 공동작업을 해나가겠다는 것 등이었다. 70년대에 민중극장은 대중적 목적을 분명히 했으며, 번역극 공연을 왕성하게 벌이며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한다. 1974년 민중극장이 공연한 조셉 헬러의 <우리는 뉴헤이븐을 폭격했다>는 미국의 반전 연극의 하나였다. <꿀맛>은 영국 극작가인 샐리 댈리니의 처녀희곡으로, 1976년에 정진수의 번역·연출로 국내 초연되었으며 연극배우 윤석화의 데뷔작이자 정진수에게 그해 한국일보 연극영화상에서 신인연출상을 안긴 작품이다. 1977년 민중극장이 최치림 연출로 올린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는 당시 관객을 10만 명이나 동원함으로써 그 해 최고의 흥행작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1980년대에 민중극장의 대중극 노선은 뮤지컬의 선구자 역할로 이어진다. 민중극장은 본격 브로드웨이풍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을 1983년도에 공연한다. 당시 창단 20주년 기념으로 초연된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은 극단 광장과 대중의 공연과 동시에 올라갔으나, 관객은 윤석화, 이경실, 박봉서, 이인철 등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민중극장 쪽의 <아가씨와 건달들>에 손을 들어줬다. 80여 일간 160회 공연을 하며 극장의 객석 점유율이 무려 160%에 다다르는 폭발적 흥행기록을 세운다. 이후 민중극장은 다시 정극으로 돌아가 브레히트의 본격적 수용의 물꼬를 튼 <서푼짜리 오페라>, 샘 새퍼드의 <진짜서부극>의 초연, 이강백의 <칠산리> 등의 작품활동을 보여준다. 민중극장은 1989년 공연된 이강백의 <칠산리>로 1990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연출상(정진수)과 신인연기상(강애심)을 수상한다. 이 시기에 민중극장은 연극의 대중화 실현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민중극장은 <누가누구>, <이상적 남편>, <써니-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 등의 작품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꿀맛
(……) 옛날 연극의 주인공들은 흔히 폐병이나 암이나 심장병이나 뇌종양이나 백혈병이나 또는 기타의 절망적인 유전적 질환에 걸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꿀맛>에 등장하는 모녀는 그저 흔한 감기에 걸려 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 감기를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헬렌의 감기를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헬렌의 감기를 딸인 죠가 물려받는다는 데에서 그 상징성은 뚜렷이 드러난다. <꿀맛>의 주인공 죠는 결코 그가 처해있는 현실의 바깥을 넘겨다 보려 하지 않는다. “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 나는 여자가 되는 게 싫단 말야!” 하고 외치기도 하지만 그 것은 한 순간일 뿐 현실에서 탈출해 보겠다는 기대도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죠는 다만 현실을 긍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에 충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그 점은 헬렌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죠가 헬렌과 다르다면 요는 ‘아직은’ 삶이란 것이 주어진 이것보다는 나은 것일 수 있다는 일루젼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꿀맛>은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에서의 지미포터로 대변되는 앵그리 영맨 이후의 세대의 삶에 대한 자세를 가장 솔직하게 그려준 작품들 중의 하나로 기억되어야 할 것 같다. - ‘연출가의 말’, 민중극장 제24회 정기공연 <꿀맛> 팸플릿
카덴자
이현화가 쓰고, 정진수가 연출한 작품. 극단 민중극장 제37회 공연이자 제2회 대한민국연극제 참가작품이다. (……) 이현화의 작품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게임놀이라 하겠고 그것은 매우 재기에 넘친 게임놀이라 할 수 있다. <누구세요?>나 <쉬-쉬-쉬잇>은 다같이 게임을 그 기본 구조로 삼고 있고 그 게임 자체에서 현대인의 삶과 풍속이 날카롭게 풍자되고 있다. 이러한 게임은 <카덴자>에서도 기본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다만 그 내용이 현대 도시인의 삶이라는 한정된 테두리를 벗어나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상당히 확대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얼른 보면 사극 같지만 오히려 사극의 고정된 패턴을 해체하고 그것을 희화화시키고 있는데, 역시 이 작가 특유의 날카로움과 차가움은 이보다 앞서 쓴 몇 개의 작품에서와 같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성격이다. 독주자나 독창자가 1악장 마지막에서 즉흥적으로 자신의 테크닉을 현란하게 펼쳐보이는 카덴자처럼 이 극도 긴 역사의 한 순간에서 연기자들이 즉흥적으로 역사를 놀아보고 야유해 보는, 내용이야 어떻든 연극적으로 매우 매력있는 형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 - 한상철, <이현화의 희곡세계>, 민중극장 제37회 공연 <카덴자> 팸플릿
게사니
이근삼의 작품으로 1983년 정진수가 연출했다. 극단 민중극장의 창단 20주년 기념작품이다. (……) 흔히 연극을 종합예술이라고 할 때 한 편의 연극은 ‘한 편의’ 작품임을 뜻한다. 그러나 여기에 관련되어 있는 여러 예술가들은 그들 마음속에 각기 다른 ‘한 편씩의’ 작품들을 준비하고 있다. 이 여러 개의 작품들을 한 편의 작품으로 종합하는 심부름꾼이 곧 연출가인 셈이다. 금년의 혹서 속에서 나는 이 어려운 심부름의 작업을 해내기 위해 남보다 갑절 더웠다. <게사니>라는 한 편의 연극을 만드는 데 참여한 여러 예술가들, 극작가, 배우, 디자이너, 기타의 스탭들의 무성한 자기주장과 해석과 각자의 다른 동기들과 습관들과 스케쥴과 감정세계와 심지어 식성에 이르기까지 -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한 편의 작품을 만드는 일은 올 여름의 더위가 아니라도 간단치는 않은 일이었다. 공연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려진 최종적인 형태를 놓고 과연 이것이 나의 작품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개인은 누구일까? 한 편의 연극 속에서 각자의 모습만을 찾으려 들 때 연극의 비판론은 싹튼다. 그러나 한 편의 연극은 궁극적으로 관객의 것이다. 물론 관객의 존재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으나 그것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이 안에 연극의 절망과 희망이 공존한다. 서사적 민중사극(이런 말이 있던가)으로 꾸며본 <게사니>는 2회 연극제에 참가했던 <카덴자>를 연상시키면서도 형식의 재미를 더 느낄 수 있었다. 그 재미가 힘든 심부름의 과정 속에서 연출자로서 내가 차지했던 몫이었다. 이제 막이 오르면서 그것이 단지 작업의 재미를 떠나 관객의 공감의 영역 속 - '연출의 말', <게사니> 공연 팸플릿
칠산리
이강백의 작품으로 정진수가 연출했다. <칠산리>는 제13회 서울연극제 출품 작품으로, 1990년 백상예술대상 연출상과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든지 흔히 일어났던 사건으로부터 출발해서, 빨치산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들의 자식들에게 관심의 초점을 옮겼다가, 결국은 그 자식들을 품안에 거둬들인 어머니에게 귀착된 것이 <칠산리>이다. 이러한 과정을 살펴 볼 때, 다시 한 번 확인되는 것은 모성애의 절실한 필요성이다. 우리의 분열된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어머니의 눈이어야 한다. 새로운 인자로서 심장한 의미를 갖고 있는 ‘빨갱이의 자식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뒤집어서 그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머니와 같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은 날카롭게 꾸짖는 소리만이 드높은 시대이다. 고통에 사로잡혀 울부짖는 소리들, 학대의 쾌감으로 목청 높은 소리들, 원한에 사무쳐 복수의 칼을 들고 심판을 요구하는 소리들만이 판을 치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는 ‘이것(나)은 옳고 저것(너)은 그르다’ 는 흑백논리가 지배한다. 그리고 이러한 흑백논리 때문에 이 세상의 난리는 끝나지 않는다. 연극 <칠산리>를 본 관객들에게, 나의 의도가 그대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조바심은 없다. 연출을 맡은 정진수는 <칠산리>를 한 번 읽어본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이 희곡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는 정조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둬야겠다.” 나는 그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높은 목소리를 내는 연극보다는, 그저 어떤 느낌이 있는 연극을 연출가 정진수는 만들어 줄 것이다. (……) - 이강백, ‘<칠산리> 공연에 덧붙이는 생각들’, <칠산리> 공연 팸플릿
이근삼 (1929~2003 )
1929년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52년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 1966년 미국 뉴욕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58년 영문희곡 <끝없는 실마리>를 미국 캐롤라이나극단에서 첫 공연한 후, 1959년 사상계에 단막 희극 <원고지>를 발표함으로써 국내문단에 데뷔하였다. 극작 활동 이외에도 동국대학교, 서강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영문학과 신문방송학을 강의했으며, 극단 민중극장의 대표, 과천세계공연예술제 부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94년 국민훈장모란장과 옥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는 창작희곡집 <제18공화국>, <유랑극단>,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 <국물 있사옵니다>, <이성계의 부동산>, <어떤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 등이 있으며, 극이론서 <근대영미희곡개론>, <구미연극산고>, <연극의 정론>, <서양연극사>, <연극개론> 등이 있다. · 대표작품 <원고지>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 <국물 있사옵니다> <아벨만의 재판> <막차탄 동기동창> <이성계의 부동산>
정진수 (1944~ )
1967년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1970년 중앙대학교 대학원 연극학과 졸업, 1972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교(Urbana) 대학원 연극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예술학부 교수이자 대학원 공연예술 협동과정 주임교수이다. 1974년부터 현재까지 민중극단 상임연출을 맡아 활발한 공연활동을 펼쳤다. 저서로는 <영미문학 입문(공저)>(성균관대 출판부, 1985), <영미희곡 1, 2>(1988), <현대희곡의 이해>(1999)가 있으며, <꿀맛>, <노부인의 방문>, <M나비>, <착한 사람>, <위험한 관계>, <진짜 서부극>, <아메리카 들소> 외 80여 편의 연극을 연출했다.
리뷰
민중극장 창립취지 1. 민중 속에 뛰어들어가 민중과 더불어 호흡할 수 있는 연극을 모색한다. 2. 위대한 연극의 유산을 계승하고, 새로운 미래의 연극을 추구한다. 3. 기성극계의 고식적인 자세를 거부하고 진정한 무대예술인의 주장을 옹호한다.
관련도서
<우리연극 100년>, 서연호 · 이상우, 현암사, 2000 ‘김정옥 선생과 함께 - 민중극장 시절’, 김미도, <한국연극>, 2001년 9월 ‘민중극장 20년’, <한국연극>, 유민영, 1984년 1월
연계정보
-국물 있사옵니다
-태백산맥
-이근삼(李根三)
-귀족수업(원제: 서민귀족 Le Bourgeois Gentilhomme)
-대머리여가수(La Cantatrice Chauve)
-도적들의 무도회(La Bal Des Voleurs)
-서푼짜리 오페라(Die Dreigroschenoper)
-세추안의 선인(Der gute Mensch von Setzuan)
-스트립티스(strip-tease)
-꿀맛(A Taste of Honey)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
-루브(Luv)
-백양섬의 욕망(Crime on Goat Island)
관련사이트
극단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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