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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가교

  • 개요

    1960년대 동인제 극단의 주역 중 하나.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주축으로 각 대학의 연극영화학과 졸업생이 만들었다. ‘가교’라는 말은 “대화의 다리, 동과 서의 다리, 고금(古今)의 다리”라는 뜻이라 한다. 실험과 연구에 뜻을 두고 있던 다른 많은 동인제 극단과 달리 창단 때부터 ‘연극은 직업이 되어야 한다’는 직업의식을 전면에 내세웠다. 성극, 천막극장 등의 관객을 직접 찾아가는 활동적 연극 작업을 보여줬다.

  • 해설

    극단 가교가 출범한 것은 1965년 3월20일이다. 1959년, 우리나라 최초로 중앙대학교에 연극영화과가 개설되었고, 연이어 동국대, 한양대에도 같은 전공이 설치됨으로써 전문 연극인 양성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1965년 이 대학 학생들의 졸업과 함께 탄생한 극단 가교는 그것의 첫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대 졸업생들이 주축을 이루었지만 동국대, 한양대 출신들도 함께 했다. 그 면면을 보면 권성덕, 김광남, 김동욱, 김진태, 김창식, 김승일, 김태완, 오기환, 양윤식, 이문영, 이승규, 이일웅, 안승교 등 13명이었다. 극단 가교는 창단공연으로 그들의 대학 은사였던 이근삼의 <데스스테스의 재판>을 이승일 연출로 신문회관에서 올렸다. 이 공연에 대해서는 “세련미에서 부족했지만 젊은 연극학도들답게 진지했고 신선감을 주었다.”(<한국연극운동사>, 유민영)는 짤막한 논평만 있다. 가교는 이후 빈센트 밀레이의 <끝없는 아리아>란 작품을 동국대학교 소극장에서 올린 후 전국 교도소와 군부대를 돌며 공연하게 된다. 극장 대관의 어려움 때문에 시작된 순회공연이었다. 김정옥은 이 작품이 “음악적인 형식을 도입하고 있으며 희극적인 요소와 비극적인 요소, 현실성과 허구성을 대조시키면서 인간의 우매한 우화를 무대 위에 펼치려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 연출자(이승규)는 우의적이며 시적인 내용을 지극히 단순한 무대에 표현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으며 현실성과 허구성이 주는 이화감(異和感)을 적절히 해소시키고 있다. 다만 극중의 무대감독 격인 코러너스(오기환 분)가 지나치게 과장되어서 표현된 느낌이었다. 연기자 가운데에서는 피에르 역의 권성덕이 꾸준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두 목동 역의 김동욱, 이창구도 무난한 편이었다. (……) - <조선일보>, 1966년 3월 10일 이 작품은 2년 동안 300회 이상 공연된다. 또 1966년 3월에는 <퇴비탑의 기적>(이근삼 작, 이승규 연출)이란 작품으로 최초의 전국규모 순회공연을 벌이기도 하는데, 이 또한 이근삼의 첫 번째 뮤지컬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제 극단 가교는 더욱 적극적으로 순회공연을 기획한다. 주로 교도소나 교회, 군부대와 시골의 읍을 공연장소로 택했다. 이는 소극적이고 비생산적이던 연극계의 상황을 벗어나 “참다운 교화와 따뜻한 위안을 주는 공연”을 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극단의 재정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가 가장 컸다. 이때부터 그들은 기독교 단체와 손잡고 한동안 성극 공연에만 몰두하게 된다. 즉 한국기독교연합회 시청각교육국 성극위원회의 후원으로 성극을 만들어 전국의 교도소와 교회, 부녀보호소, 기독교 계통의 중·고등학교 및 대학 등지에 순회공연을 다니기에 이른 것이다. 1969년에는 천주교 나사업 협의회의 후원을 얻어 <미련한 팔자대감>(이근삼 작, 김상열 연출)을 제작해 무려 96일 동안 전국 순회공연을 떠난다. 주로 초등학교, 중학교 운동장, 아니면 계곡 등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택해 대형 진료차를 타고 다니며 공연한 결과 25만이라는 경이적인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1969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끝으로 6개월의 공백기를 가진 가교는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김진태 연출)로 70년대를 맞이한다. 이 작품은 그간 행해왔던 레퍼토리의 성격에서 조금 벗어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찌됐든 1970년부터 1977년까지 이들은 ‘성극 전문극단’이라는 바깥의 시선을 무색하게 할 만큼 아주 왕성한 활동을 벌여 나간다. 1971년에 가장 큰 주목을 끌었던 작품은 이승규 연출로 국립극장 무대에 올랐던 <실수연발>이었다. 이 공연은 “우리나라 신극 60년사에 전환점을 찍었으며”, “그간 번역극을 좋아하는 연극계를 반성시키는 공연”(<동아일보>, 1974년 5월 13일)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제1회 극단 가교 창작극 발표회로 <탈의 소리>(김상열 작, 이승규 연출)를 명동 코리아나 백화점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이 작품은 가면극 <양주별산대 놀이>에 나오는 ‘노장’과 현대 어느 작가의 대화를 통해 우리 극이 나아갈 방향을 토론하는 것으로 코믹한 형식 속에 연기자가 탈춤을 추며 판소리를 삽입하는 등 민속극의 재미를 활용한 작품이다. 1973년 3월에는 이승규 연출로 국립극장에서 <안티고네>(장 아누이 작)를 공연, 관객 1만 명을 동원함으로써 그 해 상반기 최고의 관객동원 기록을 세운다. 그는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충돌을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영원한 갈등으로 그려 “지엽적인 결점에도 불구하고 레퍼토리 선정에서 성공한 작품”(<조선일보>, 1974년 4월 1일)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성극과의 인연도 꾸준히 이어가 이 해 발표된 작품만도 <이에 더 큰 사랑이

  • 해설

    없느니라>(피터슨 작, 이승규 연출), <율보>(이근삼 작, 김진태 연출), <평화의 왕자>(이승규, 모진주 작, 모진주 연출),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함이라>(김상열 작, 연출), <복순이>(크르트피츠 작, 김동욱 연출), <천사의 기쁜 소식>, <새아침의 길>(헨지 레이번 작, 모진주 연출) 등 7편이다. 이 가운데 이근삼의 창작 성극 <율보>는 부활절과 고난주간을 기념해 공연된 작품으로 대학, 교회, 중고교, 고아원, 교도소, 공장 등을 찾아 50여 회의 공연을 하는가 하면 극단 사상 최초로 만리포 해변에서 피서객들을 상대로 공연함으로써 1973년의 천막극장의 출현을 예고했다. 최초의 천막극장 공연은 1973년 7월, 톰 존스의 <철부지들>(이승규 연출)로 대천 해수욕장에서 첫 막을 올린 후 15회 공연을 갖는다. 높이 6미터, 넓이 45평의 원추형 천막으로 15평의 무대와 2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30평 공간의 객석을 갖춘 ‘이동형’ 극장이었다. 이를 시초로 1974년에는 서울근교 도봉산장에서 <열쇠>(윤대성 작, 김상열 연출)를, 1975년에는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다시 <철부지들>로 이색적인 공연을 벌였다. 그러나 그 후 가교는 극단의 단원부족 및 재정난이 겹쳐 천막극장이라는 좋은 기재를 몇 년간 묵힐 수밖에 없었다. 천막극장이 다시 개장한 것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79년 7월 20일이다. 이때의 천막극장은 당초 가교와 극단 76이 자매결연을 맺어 기획했던 것을 명지재단이 일영 명지풀장의 선전을 겸해서 장소를 제공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이 행사는 ‘`79 여름 천막극장 연극잔치’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극단 가교를 비롯, 극단 76, 고향, 민예극장, 현대극장, 자유극장 등 서울의 6개 극단이 참여하여 한 달 동안 ‘연극잔치’를 벌였다. 극단들은 여건만 닿는다면 천막극장 연극잔치를 연례행사로 펴나갈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 후원업체나 설치장소 문제, 그리고 흥행을 보장해줄 수 있는 완벽한 작품준비와 기획의 부재 등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1979년에는 극단 대표를 맡아오던 이승규가 문예진흥원 예술인 해외연수 계획으로 미국에 가면서 대표직을 박인환이 맡게 되었다. 그는 대표를 맡자마자 신촌의 이대 앞에 새로 생긴 소극장 민예극장의 개관기념 두 번째 무대로 <별난 로망스>를 의욕 있게 추진하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79년 10월 이강백의 <개뿔>(이승규 연출)이 동아연극대상을 수상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 한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많은 중심인물들이 유학을 떠나거나 다른 극단으로 전출해 인적 자원이 약해진 상태였다. 그러자 박인환은 작품제작, 극단활동 등의 자문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자문위원으로 극작가 이근삼, 언론인 고명식, 변호사 한승헌, 평론가 서연호를 위촉했고, 극단 세대의 주축이었던 임준빈, 윤주상, 서동구, 이창환 등을 영입했다. 이들은 동아연극대상 수상 및 창단 15주년 기념공연 <만리장성>(막스 프리쉬 작, 임준빈 연출)을 올린다. 그러나 새로운 단원들과 호흡을 맞출 새도 없이 서둘러 준비했던 탓인지 기대만큼의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 가교의 새 식구가 된 젊은 연출가는 작품의 크기와 깊이에 감동한 자세로 정직하게 작가의 지시를 따르려한 노력이 보였고, 신구 단원이 규합된 연기진은 저마다 역에 충실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현대인에 박인환, 진시황에 윤주상, 중국공주와 클레오파트라 역을 함께 한 이혜방, 빌라도 역을 한 최연식 등은 성격구축에 애쓴 흔적이 보이는 연기였다. 그러나 이번 가교무대는 가교의 15년 성숙이 새 힘을 얻어 전진했다는 인상보다 새 힘의 영향이 아직은 정리되지 못해 갈팡질팡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 - <조선일보>, 1980년 2월 10일 극단 가교의 대표이면서 이 공연에서 제작자, 주연을 맡은 박인환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위극이나 신작공연도 좋지만 가급적 고전과 현대의 문제작을 관객에게 보여 주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고, 이후 가교는 1981년부터 1993년까지 창작극(신작) 6편, 외국 번역극은 14편, 재공연 7편으로 번역극을 많이 올린다. 이 가운데에는 로버트 볼트, 베케트, 조지 오웰, 브레히트 등 현대 문제 작가들의 작품과 셰익스피어나 유리피데스와 같은 고전 작가들의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1994년 이후 가교는 악극 공연에 주력하고 있다. 가교는 순회공연 및 신파극 재현 작업, 천막극장 활동을 통한 ‘연극의 대중화’에 대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미련한 팔자대감

    가교는 1969년에는 천주교 나사업 협의회의 후원을 얻어 <미련한 팔자대감>(이근삼 작, 김상열 연출)을 제작해 무려 96일 동안 전국 순회공연을 떠난다. 주로 초등학교, 중학교 운동장, 아니면 계곡 등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택해 대형 진료차를 타고 다니며 공연한 결과 25만이라는 경이적인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당시 이들은 각 언론사에 보낸 보도의뢰서를 통해 공연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이 공연의 의의는 1. 나병이 불치의 병이 아니라는 현대의학의 올바른 해석을 인식시키고 2. 문화적으로 소외된 시골 방방곡곡에 본격적인 연극을 보여주고 3. 한국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한국적 뮤지컬의 가능성을 실험하며 4. 또한 연극을 제한된 조건을 갖춘 극장으로부터 해방시켜 과거 산대놀이나 가면무처럼 야외에서 공연함으로써 연극의 대중화를 기할 것입니다.

  • 실수연발

    우리 연극사상 처음으로 번안연극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연극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 이근삼이 번역한 것을 김상열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상황으로 번안했다. 이승규가 연출해 국립극장 무대에서 선보였다. 당시 언론은 이 작품의 성공비결을 다섯 가지 점에서 찾고 있다. (……) 셰익스피어의 초기 러맨코미디가 이 땅에서 박수갈채 속에 히트한 몇 가지 이유는 번역극의 한국화로 ① 장소와 때를 3국시대로 잡은 것, ② 언어, 의상의 토착성, ③ 탈춤의 개입과 민요조의 노래와 창(唱)의 시도, ④ 동화나 만화적인 장치와 동작, ⑤ 대사의 리듬을 판소리에 비긴 것 등 (……) - <한국연극>, 이승규, 1976년 1월호 (……) 외국극의 번안문제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최근에는 거의 시도되지 아니한 것인데 김상열의 번안도 좋았고 이승규의 연출이 이들의 첫 실험으로서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장치(김해랑)는 대담한 색과 선을 사용해서 주목을 끌었다. 이 공연은 조목조목 따지면 결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즐거이 이를 보았다. 예컨대 여기엔 (……) 해설자라든가 사이사이 북을 친다든가, 옛가락하고는 동떨어지나마, 노래를 삽입했다든가(작곡 장일남) 또는 음악효과를 우리 것으로 했다든가, 이 모든 것은 전혀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그러나 연출자는 이 새롭지 않은 것들을 썩 잘 조화시켰고, 연기자들은 두드러지게 잘하지도, 또 못하지도 않았으나 우리의 호감을 샀다. 그것은 이들의 진실한 ‘앙상블’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의상(유인선)은 연출자의 책임일지는 모르나 여기서 문제가 된다. 즉 안전달(安前達), 안후달(安後達), 또는 전달(前達)의 처 아라녀(阿羅女) 등의 옷은 그들이 상인배라는 이상보다는 어느 귀인들을 연상시켰고, 그들의 몸가짐은 귀인들답지 않게 상인적이고 해서 논리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앞으로 가교에 바라고 싶은 것은 세련미이다. (……) - <중앙일보>, 1976년 5월 14일

  • 이수일과 심순애

    극단 가교가 ‘`79 여름 천막극장 연극잔치’에 참석해 좋은 호응을 얻은 작품. 신파극의 재현이라는 연극사적 의의를 갖고 있는 이 작품은 가교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수일과 심순애>는 당시 천막극장 연극잔치에서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다른 극단의 작품들이 천막 극장에 적합치 않아 많은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것에 반해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그 이유로는 우선, 전 2막 5장으로 구성된 이 공연에서 장면이 바뀔 때마다 이른바 ‘막간배우’가 나와 <감격시대>, <꽃마차>, <두 동무> 등의 노래를 관객들과 함께 불렀고, 등장인물들도 극이 고조되면 한 마디씩 노래를 불렀는데, 이것이 천막극장의 특수성과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또 하나는 “진짜 신파의 원형을 진지하게 재현”했던 것이 관객들의 취향에 부합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1978년 첫 공연에서는 “옛날과 현대 감각의 차이를 고려, 약간의 코믹성을 가미”했던 것과는 달리 이 공연에서는 원로 연극인 고설봉(당시 67세) 선생의 고증을 토대로 대본을 다시 엮고, 신파극 특유의 과장된 대사 읊기와 행동을 그대로 살렸다. 그런 탓에 공연시간도 1시간 40분에서 20분가량 길어진 2시간이었다고 한다.

  • 번지없는 주막

    악극 <번지없는 주막>은 극중극의 형태로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하는 악극단의 희노애락을 그린 작품이다. 제1장 승천 그 옛날 악극단의 연주음악 ‘번지없는 주막’이 연주되면서 막이 오른다. 도심의 변두리. 석회물로 얼룩진 대형교각 밑에서 변사체가 발견된다. 악극단의 막간배우였던 70초로의 노인(자발이)은 적막한 가로등 밑에 낡은 담요에 덮여 뉘여져 있는 사람이 유랑극단에서 ‘홍금산’이란 예명으로 동거동락하던 지춘심임을 알고 그녀의 한 많은 일생을 부평초에 비유하며 슬퍼한다. 제2장 가출 자신이 광대의 팔자를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금산은 노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출하여 악극단을 찾는다. 막간배우 자발이와 단장은 금산의 배우를 향한 열정을 인정하고 입단을 결정한다. 제3장 개막 드디어 악극 <번지없는 주막>의 막이 오르고 경기도 두렁마을에서 일찍이 사랑을 꽃피워온 정삼봉과 박순애는 양가 부모의 철저한 반대에 부딪혀 이른 새벽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어린 남매를 이끌고 삭막한 도시에 어느 한 곳 발붙일 데 없던 젊은 부부는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부인은 화류계의 여성으로 전락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어린 딸과 함께 부인과 헤어지게 된다. 제4장 사나이의 길 고향산천을 떠난 지 십년이 지났음에도 매일 저녁에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노모 앞에 남루한 차림의 삼봉이 강보에 싸인 어린 딸을 안고 나타난다. 먼훗날 어린 딸이 숙성한 처녀로 자라거든 오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딸이 품속에 두 남매의 정표를 남기고 불효자식 삼봉은 또 다시 노모와 생이별하게 된다. 제5장 유랑극단 계속되는 공연과 이동으로 피곤하지만 서로를 위하여 애환을 함께 겪는 유랑극단의 단원들. 악극 <번지없는 주막>에서 정삼봉의 딸 금녀 역을 맡던 경실이 아버님의 병환 소식을 듣고 극단의 돈을 훔쳐 도망치게 되고, 유랑극단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금산은 경실의 뒤를 이어 금녀 역을 맡게 된다. 제6장 세월 두렁마을의 주막에서 노모의 품에 맡겨진 삼봉의 딸 금녀는 어엿한 처녀로 자라게 되고 같은 마을의 달수라는 청년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사랑을 고백하며 추근거리지만 금녀는 달수에게 전혀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 즈음 동경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등문관 시험을 준비하는 한 청년이 마을에 나타난다. 제7장 밤의 꽃 삼봉과 헤어진 순애는 어린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공장, 노동판을 전전하다가 밤의 여인으로 전락하게 되고 어린 딸을 고향의 부모에게 맡기고 갖은 역경을 겪은 삼봉과 홍등가에서 마주친다. 둘은 그런 곳에서 그런 모습으로 만난 서로의 운명을 슬퍼하며 순애는 자신을 강물에 떠내려가는 부평초처럼 밤거리의 한 여인으로 생각하고 잊어달라고 한다. 제8장 해후 금녀와 현철의 운명적인 만남. 부모없는 주막집 손녀딸로 자라난 금녀는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현철과 첫 대면을 하게 되고…. 둘은 첫 만남에서 왠지 오래 사귄 사람처럼 낯이 익음을 느끼고 가까워지게 된다. 제9장 시련 순회공연을 위해 원산극장을 찾은 유랑극단은 신극단원들에게 밀리면서 잠시 시련을 맞게 되지만 서로를 격려하면서 흥겨운 가락에 맞춰 노래하는 악극을 계속할 것을 다짐한다. 제10장 사랑 동경유학에서 돌아온 현철은 찔레꽃 피는 두렁마을에서 아름다운 시골처녀 금녀와 사랑을 속삭이게 되었으니 이것은 운명의 장난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사랑의 시작인가? 금녀의 가슴속에 현철을 향한 애틋한 사랑만은 변함이 없으니 이 두 청춘남녀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제11장 죽음의 그림자 악극 <번지없는 주막>에서 주인공 순애 역을 맡은 춘홍이는 점점 더 병세가 심해진다. 주인공 삼봉과 순애가 병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순애는 숨을 거두게 되고, 그 장면에서 배우 춘홍의 목숨도 무대위에서 끝을 맞는다. 만신창이 불구자가 되어 아내마저 잃고 고향땅을 찾은 삼봉은 나무뒤에 숨어서 부모님과 딸이 있는 주막을 바라보고 있다. 현철을 따라 고향을 떠나겠다는 금녀를 사이에 두고 현철과 동네청년 달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급기야 현철은 달수를 죽이게 된다. 그 장면을 숨어서 지켜보던 삼봉은 그들이 친남매임을 밝혀주고 아들을 대신하여 자신이 일본순사에게 잡혀간다. 제12장 부평초 자신들의 인생을 부평초에 비유하며 살아가는 악극단원들은 단원의 병사 등 여러 시련을 겪으며 늙게 되지만 서로를 위로하며 또 길을 떠난다. 그들이 떠난 무대 위에는 주제곡 ‘부평초’가 들려오며 천천히 막을 내린다. - <번지없는 주막> 팸플릿

  • 내마

    권력계승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건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고뇌와 외로움을 표현한 이강백의 작품이다. 내마는 기록관으로 추측되는 옛 벼슬의 명칭. 권력을 둘러싸고 인간들의 갈등 옆에서 단순한 기록관으로도 머물 수 없이 소외되는 개인의 대명사. 왕의 권위로부터 쿠데타에 이르는 일련의 정치적 상황은 명목상의 배경이 된 신라시대나, 이 작품이 처음 공연된 70년대, 그리고 지금까지도 개연성 높은 하나의 리얼리티이다. - 이강백연극제 <내마> 팸플릿

  • 김상열 (1941~1998)

    1941년 경기도 개풍 출생의 극작가이며 연출가. 1966년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여, 1967년 극단가교의 초기 멤버로 시작, 추후 상임연출과 대표를 역임하였다. 풍부한 무대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까치교의 우화>(1975, 문공부 공모 희곡 당선), <길>(1978, 삼성도의문학상)을 시작으로 현장성 있는 극작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또한 TV극 <수사반장>을 3년간 집필하였으며, 1977년부터는 현대극장 상임연출로 일하였다. 1981년 미국 뉴욕 ‘라마다극단’에서 1년간 연수를 받고 돌아온 후 1984년에는 ‘마당’ 세실극장 대표를 역임하였고 1988년 극단 ‘신시’를 창단하여 10여 년 동안 정통 창작극, 창작 뮤지컬, 마당놀이, 악극 등 다양한 무대를 만들어 냈다. 연극 무대 이외에 TV 극본을 비롯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 대전 엑스포, 세계 잼버리대회 등 국제적인 문화행사의 구성과 연출을 맡기도 하였다. 백상예술대상 희곡상(1981), 백상예술대상 TV극본상(1987), 서울연극제 작품상 및 희곡상 등을 다수 수상하였다.

  • 극단 가교 창립 취지문

    극단 가교는 창조적 활동을 통한 연극예술의 탐구와 기술의 연마로 대중에게 순수한 즐거움과 참다운 교화와 따뜻한 위안을 주는 공연을 하며 특히 대화가 막힌 사회에 공동의 광장을 마련하여 각인(各人)의 가슴속에 유폐(幽閉)된 절실한 대화가 교환되는 통로가 되려 한다. 우리는 철두철미 학구적 태도를 견지한다. 주된 활동은 연극공연이며 연극의 계몽을 위한 세미나와 강연회도 구상 중이며 공연은 내외의 고전을 통해 과거의 사조와 기법을 충실히 익히겠으며 또한 연극한국의 첨병임을 자각코 새로운 가능성에의 실험을 게을리 않겠고 새것을 찾기에 옛것을 잊지는 않겠다. 상연물은 동서와 고금을 고루 다루겠으나 차차 성장하면서 새로운 것을 더 많이 시도하겠고 진정한 우리 예술의 확립을 위해 훌륭한 창작물의 발굴에 전력을 기울이겠다. - 1965년 3월 20일 극단 가교 발기인 일동

  • 관련도서

    <한국연극운동사>, 유민영, 태학사, 2001 <우리연극 100년>, 서연호·이상우, 현암사, 2000 <한국의 소극장과 연극운동>, 정호순, 연극과인간, 2000 ‘극단 가교 순회공연 10년’, 이승규, <한국연극>, 1976년 1월호

  • 연계정보

    -언챙이 곡마단
    -로미오 20
    -멀고 긴 터널
    -님의 침묵
    -번지없는 주막
    -홍도야 우지마라
    -노름의 끝장(승부의 종말, Endgame, Finde partie)
    -노부인의 방문(Der Besuch der alten Dame )
    -대머리여가수(La Cantatrice Chauve)
    -방화범들(원제: 비더만과 방화범들, Bidermann und der Brandstifter)
    -주인 푼틸라와 하인 맛티(Herr Puntila und sein Knecht Matti )
    -동물원이야기(The Zoo Story)
    -루브(Luv)
  • 관련사이트

    김상열 연극사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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