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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 20

출연/스태프
* 출연 허기자/최정우 기장/여운국 부기장/김명천 자애/이혜영 정숙/성화숙 조종사/조용태 노인/임홍식 노파/최윤영 취객/한진섭 선선/권범택 중년부인/김성자 소녀/장혜주 여대생/한보경 의사/안민국 부인/이용녀 근테안경승객/주현상 갈색머리승객/정아미 신부승객/이효상 야구모승객/설도윤 빨간리본승객/김경애 * 스태프 미술/신상철 조명/홍흥철 음향/조갑중 효과/이경우 음악/정성조 의상/김현숙 안무/박명숙
내용
날이 시퍼런 작두를 타던 무당은 껑충 마당아래로 뛰어내려와 신명이 철철 넘쳐 흐르는 눈빛으로 얼룩이는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열댓살의 애띤 목소리로 혼백의 넑두리를 아주 애잔스레 뇌까리기 시작하였다. 1984년 가을 양주골에서의 체험, 굿이 끝난 만신어미의 머리는 반백이었고 정성껏 동백기름을 발라 가름마탄 정수리 외줄 아래로 굵은 연륜의 흠집과 그리고 실명한 두 눈자위의 패인 그림자, 혼백을 뒤집어 썼던 작두 위의 그 신명과는 달리 메마른 하나의 북어와 같았다. 그날 이후 모네론섬 근해 바닷속에 잠긴 269명의 영혼들은 줄기차게 나의 창문을 두들겼고 그래서 폭우가 쏟아지던 날 아파트 베란다로 걸쳐보이는 건너 21동의 난간에 메달려 하늘거리는 비닐봉지를 보고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끼게 되다. 5대 일간지의 사건 기사를 모으고 그것을 스크랩해서 책상머리에 두고 반년을 허송한게 1984년의 일. 시작도 끝도 없는 사건의 정체, 혹시 269명 모두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무인도에서 지금도 오손도손 사이좋게 살고있는건 아닌지…. 체험하지 못한 상상밖의 세계, 그 참혹의 극치, 불확실한 기계들의 고장, 그래서 ‘로미오20’ 항로로부터 영원히 미지의 세계로 떠나버린 영혼들의 모습과 기체의 형체가 점차 원색의 그림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두발의 미사일 중 첫번째가 조종실에 명중되었다. 두번재 미사일은 객실의 비상구에 명중되었다. 승객들은 한쪽으로 몰렸다. 불과 3초의 순간 최초의 비명을 지른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 순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아서밀러가 그의 작품에서 진혼의 장을 설정한 예지를 알듯하다. 아주 구차스럽고 자상한 현실이 현상이 되는 무대의 묘미가 그것이다. 화투장처럼 뒤집어지면 바로 환타지가 된다. 세일즈맨의 이층방은 현실을 지주로한 환영의 세계가 되고 음악이 살아난다. 50억의 세계인구 중 누구 하나(점성가까지 합쳐) 예상하지 못했던 그 죽음의 현상을 향해 169명의 운명들은 길게 젯트운을 내뿜으며 앵커리지에서 캄차카반도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슐츠 미국무장관의 브리핑 내용이 사실이라면 운명의 K007 여객기는 ‘로미오20’ 항로의 두번째 교신지점 ‘니피’에서부터 서서히 환상의 무대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관성항법장치(INS)에 먼지가 끼었던지 아니면 불개미가 들어가 입력자료가 뒤바뀌였는지 이제는…… 그 운명의 환상무대에서는 알 바가 아니다. 승객들은 저녁식사 후 기내 영화를 봤다. 아늑한 휴식의 시간에 양주를 마시고 커피를 주문했을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군사 레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반딧불의 환상축제를 장기판 보듯 소상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경고하지도 않았고 위협하지도 않았다. 물방개놀이 구경하듯 독사가 한순간에 물방개를 삼키는 함지박 안의 묘기를 그저 흥미롭게 관람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만 피트의 고공에서 기체의 파괴로 인한 기압의 급변화 상태를 알아봤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모든 인체의 동공으로부터 피가 쏟아져 나옵니다. 허공에서 뼈까지 해체되어 보슬비처럼 바다 위에 휘날려 내려옵니다.” 이 연극의 연습 중간에 아주 우연히 일주일간 여행을 하다 김포, 앵커리지, 뉴욕,…… K 007의 역순이다. 똑같이 영화구경하고 커피 마시고 스튜어디스들의 웃음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그 악몽을 상기시키지 않았다. 편안한 여행 그리고 환상이 아닌 현실을 예사스럽게 살고 있었다. 그 어두운 모네론의 바다 속에 ‘엘리옽’의 게들처럼 어기적거릴 269개의 영혼을 무대에 불러모으고 내가 작두를 타고 광목필을 찢어야할 그 환상의 굿판을 추구하게 되었다. 사망자의 명단을 성별, 직업별, 나이별로 분류, 카드로 만들어 일주일간 손바닥에 끼고다녔다. 땀으로 얼룩진 활자 속에서 혼백의 소리가 들려왔다. 참혹한 죽음까지 아름다워질 수 있는 그림, 현란한 색상이 머리에서 회오리치기 시작하였고 그래서 무대는 절대적 환상이 되길 염원하였다. 수호기 15기 조종사는 소령 카즈민이다. 금발에 눈이 파랗고 임무에 투철한 모범장교였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두발의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그자도 환상 속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1983년 9월 1일 초승달이 떠있는 사할린의 창공에서 그는 환상과 마주친 것이다. “269명을 살리기 위해 누구 하나 애쓴 흔적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망자들의 사진을 보게 되다. K007 여객기는 유독 가족동반과 아기들이 많았다. 신의 프로그램이든 인간의 프로그램이든 좋다. 수십명의 아기들까지 허공에서 피의 보슬비가 되게 한 이유를 말하라. 크레믈린도 미국의 레이다도, 여객기의 운영회사도 모두 답변해야 한다. 탈고되고 허탈해지다. 이 참혹한 비극의 종말에 가서 블랙박스를 찾으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리라는, 마치 구원받을듯한 언론의 결론이다. 사람들은 관성항법장치(INS)를 믿었듯이 또 블랙박스를 믿고있다. 끝부분을 수정하다. 진혼의 노래를 부르자. 영원한 환상의 세계에서 오늘도 이승에서의 일을 예사스럽게 연장하고 있는 269명의 영혼들을 위해 진혼의 노래를 부르게 하자. 그들은 절대 죽지 않는다. 모네론의 바다 속에서 현실의 우리보다 훨씬 아늑하고 축복스럽게 살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들이 피격당하는 순간과 또 그들의 시체를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보라! 이제 우리들의 무대 위에 고스란히 살아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참고: 1987년 공연 프로그램 연출가의 글
예술가
김상열(1941 ~ 1998) 1941년 경기도 개풍 출생의 극작가이며 연출가. 1966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1967년 극단 가교에 합류하여 무대현장 경험을 쌓기 시작하였다. 천막극장, 교도소 순회공연, 동남아 순회공연, 실험극 등의 풍부한 무대현장 경험은 생동감 있는 창작열로 이어져 <까치교의 우화>(1975년,문공부 공모 희곡 당선), <길>(1978년,삼성도의문학상)을 시작으로 현장성 있는 극작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또한 TV극 <수사반장>을 3년간 집필하기도 하였으며, 1977년부터는 현대극장 상임 연출로 자리를 옮겨 전문성있는 대형 무대를 만들어 냈다. 1981년 미국 뉴욕 ‘라마다극단’에서 1년간 연수를 받고 돌아온 후 1984년에는 ‘마당’ 세실극장 대표를 역임하였다. 1988년 극단 ‘신시’를 창단하여 10여년 동안 정통 창작극, 창작 뮤지컬, 마당놀이, 악극 등 왕성한 창작과 힘찬 무대를 만들어 냈다. 연극 무대 이외에 TV극본을 비롯 88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의 대본구성과 연출, 대전 엑스포, 세계 잼버리대회 등 국제적인 문화행사의 구성과 연출을 맡기도 하였다. 백상예술대상 희곡상(1981년), 백상예술대상 TV극본상(1987년), 서울연극제 작품상 및 희곡상 등 다수 수상하였다. 대표작품 <멀고 긴 터널> <언챙이 곡마단> <로미오 20> <그대의 말일뿐(등신과 머저리)> <오로라를 위하여>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수상현황
- 1987년 제11회 서울연극제 참가
평론
… 김상열 작·연출의 <로미오 20>은 83년 KAL기 피격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공연 전개의 메커닉한 면과 젊은 연기자 중심의 순발력을 보인 앙상블이 장점이었으나 주제의 선택에서 해석까지를 책임진 작가의 시각이 든든한 발판을 얻지 못한 것 같다. (주간한국 1987년 10월 18일, 구히서) … 김상열이 쓰고 연출한 <로미오 20>은 ‘김상열’식 무대였다. 김상열식이라는 것은 그의 무대가 대부분 텔레비전 세트 스타일인데다 무대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굿판 같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텔레비전 세트의 깔끔함에다 굿판의 정돈되지 않은 떠들썩함이 김상열 무대의 특징이다. 작품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로미오’ 운운하면 우리는 무슨 사랑 이야기를 연상한다. 그러나 이 <로미오 20>은 83년 가을 소련군기에 격추된 민간항공기 KAL 007기의 앵커리지와 서울 간 최북단 항로를 뜻하고 있다. 사랑의 연상과 몰살의 현실이라는 이원적 발상은 관객으로서의 필자 개인의 센티멘털리즘이고, 무대 위에서는 가상의 현실이 만들어진다. 기체 내에서의 평범한 인간들의 움직임과 그들의 과거, 그리고 그런 사소한 인간사를 넘어선 거대한 국제적·군사적 역학관계와 그 사이에 끼어든 약소국가의 비행기 한 대가 의미하는 무력함… <로미오 20>이 의미하는 현대성은 굿판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극장 무대에서 벌어지는 굿판은 이번 연극제 개막 이래 처음으로 관객동원을 성공하게 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굿판의 축제적 분위기와 극중의 사할린 서남쪽 모네론 바다 가운데서 벌이는 망자의 축제가 사뭇 상징적이었다. 연극적으로는 수중 축제가 망자들을 욕되게 하는 산 자의 축제처럼 보일 수도 있다. 죽은 자를 빙자한 산 자의 축제, 그것이 축제의 모순이고 오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갈등이기도 하다. 그렇게 본다면 김상열의 축제적 무대는 우리 시대 사회의 모순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간조선 1987년 10월, 이상일)
관련도서
<광대와 시인-김상열 연극수상록> 김상열, 형제문화, 1998. <광대와 시인-김상열 수필집> 김상열, 영상세계, 1990. <언챙이 곡마단> 김상열, 학고방, 1991.
관련사이트
김상열연극사랑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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