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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화선
- 출연/스태프
- *출연 최민식, 유호정, 안성기, 김여진, 손예진, 한명구 *스태프 제작/이태원, 감독/임권택, 각본/임권택,김용옥,강혜연, 촬영/정일성, 조명/김동호, 편집/박순덕, 음악/김영동
- 내용
- 청계천 거지소굴에서 맞아 죽을 뻔한 승업을 구해준 김병문은 승업의 뛰어난 그림재주를 눈여겨 둔다. 5년 뒤에 다시 승업을 만난 김병문은 그를 역관 이응헌에게 소개한다. 이응헌의 집에서 중국에서 들여온 그림들을 보며 안목을 키우던 승업은 이응헌의 여동생 소운을 사랑하게 되지만 소운의 결혼으로 그의 사랑은 끝이 나고 그는 유랑길에 오른다. 몇 년이 지나고 주색잡기에 빠져있던 승업에게 이응헌이 찾아오고 그는 당대의 대 화원인 유숙에게 승업이 사사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준다. 유숙의 문하에서 점점 더 명성을 얻어가던 승업은 기생 매향을 만나게 된다. 한편 병을 앓아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소운은 승업의 그림을 청하고 그는 소운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또 다시 유랑길에 오른다. 유랑에서 돌아온 승업에게 김병문은 오원이라는 호를 지어주지만 승업은 자신을 천시하는 양반들 사이에서 모멸감을 맛본다. 승업은 또다시 유랑을 떠나며 예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노력은 계속된다. 승업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그는 마침내 궁궐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지만, 갑갑한 궁궐을 참지 못해 도망친다. 이후 오랜 방황과 유랑 끝에 그는 운명처럼 다시 매향을 만나고 그녀의 방에 있는 소박한 그릇에서 예술의 진정한 경지를 깨닫고 홀연히 또 다른 유랑의 길을 떠난다.
- 예술가(감독)
- *임권택(1936~ ) 광주 숭일중학교를 다녔고 중학교를 도중하차하고 17세 때 집을 나와 부산에서 잡역부를 하는 한편, 미군부대에서 구두를 빼다 파는 사람들 밑에서 일한다. 그러다 구두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1956년 서울에서 영화사를 차렸고 임권택도 이들을 따라와 영화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된다. 처음에 그는 영화판에서 노동을 파는 잡일꾼으로 일하다가 정창화 감독 아래서 조감독 생활을 시작한다. 임권택의 첫 데뷔작은 1962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 하지만 이 작품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본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1979년 작 <깃발 없는 기수>부터 논의의 대상이 된다. 임권택은 1962년 첫 작품을 만든 뒤 70년대 초까지 <남자는 안 팔려>, <단골 지각생>, <나는 왕이다>, <돌아온 왼손잡이> 등 멜로, 무협, 사극 등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든다. 그러나 이 당시 만들었던 영화들은 오로지 흥행을 위해 만든 영화들로 그 스스로도 진정한 작품으로 여기지 않는 영화들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수많은 영화제작을 통해 촬영, 편집 등에 대한 감각을 익히게 되었고, 그 경험은 이후 임권택만의 작품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그가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영화표현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작 <깃발 없는 기수>부터. 해방직후의 혼란한 시기에 기자생활을 하던 '윤'이라는 인물을 그린 이 영화는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1981년에 만든 <만다라>는 김성동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대종상영화제의 작품상, 감독상, 남우조연상 등을 휩쓸었다. 특히 1986년작 <씨받이>는 강수연에게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씨받이> 이후 <아다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서편제>까지 한국적인 정서, 특히 여인들의 한을 유려한 화면에 담아낸 작품을 많이 선보인다. 한편, 1990년 <장군의 아들>이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서 3편까지 제작했으며, <서편제> 또한 그 당시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경신하면서 임권택은 국민배우에 준하는 국민감독으로까지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1994년에는 조정래 원작의 스테디셀러 소설 <태백산맥>을 야심차게 영화화했으나 원작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고 2년 뒤 이청준 원작의 <축제>를 영화화하여 비평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흥행에서 실패한다. 2000년에는 누구도 손대기 힘들어 하는 <춘향뎐>을 소리와 영상의 합일이라는 놀라운 방식으로 담아내어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깐느 장편경쟁부문에 초청되는 쾌거를 이룬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흥행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임권택은 60년대 온갖 장르를 넘나드는 수십 편의 영화제작을 경험으로 정규적인 영화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인 모습을 수려한 카메라로 담아내는데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그런 그의 시도는 때론 <서편제>처럼 흥행적인 성공과 한국적 영화의 재발견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때론 <태백산맥>에서 보여 지는 상투적인 모습과 인본주의로 비판 받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60세를 훌쩍 넘긴 임권택은 여전히 <춘향뎐>과 같은 실험적이고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우직함으로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임권택의 영화적 세계를 완성해가고 있다. 1979년 <신궁>을 시작으로 총 15편의 영화에서 함께 일한 정일성 촬영감독, <서편제>에서 인연을 맺어 <축제>, <태백산맥>, <창>에서 함께 일한 가수, 영화음악가 김수철과 함께 자주 일한다.
- 연출의 변
- 나는 영화광으로 살아 온 기억이 없는 사람이오. 영화를 한다는 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고, 그 안에서 영화를 새롭게 만들어낸다면 그건 내가 삶을 새롭게 만들어냈다는 뜻인 게요. 무언가를 이루고자 평생을 늘 치열하게 살면서 거듭나고자 살아 낸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거요. 확실하게 이룬자 보다는 미완이면서 완성에로 향하여 이뤄내고자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이 매력이 있고 우리 사람과도 가깝게 가 닿았다는 생각이오. 장승업은 확실히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요. 그러나 난 그게 좋은 것이 한 작가가 프로로서 끊임없이 거듭나고자 정말 거듭나고자 평생을 노력하는 그런 것이 소중하다고 보는거요.
- 작품정보
- <1960년~1970년 작품> 전쟁과 노인 (1962) 두만강아 잘있거라 (1962) 신문고 (1963) 망부석 (1963) 남자는 안 팔려 (1963) 영화마마 (1964) 단골 지각생 (1964) 십년세도 (1964) 십자매 선생 (1964) 욕망의 결산 (1964) 빗속에 지다 (1965) 왕과 상노 (1965) 닐니리 (1966) 전쟁과 여교사 (1966) 법창을 울린 옥이 (1966) 나는 왕이다 (1966) 망향천리 (1967) 풍운의 검객 (1967) 청사초롱 (1967) 몽녀 (1968) 돌아온 왼손잡이 (1968) 바람같은 사나이 (1968) 요화 장희빈 (1968) 뢰검(번개칼) (1969) 신세좀 지자구요 (1969) 황야의 독수리 (1969) 십오야 (1969) 비 나리는 고모령 (1969) 상해탈출 (1969) 애꾸눈 박 (1970) 속눈섭이 긴 여자 (1970) 월하의 검 (1970) 그 여자를 쫓아라 (1970) 이슬맞은 백일홍 (1970) 비검 (1970) 비 나리는 선창가 (1970) <1971년 이후작품>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내린다 (1971) 원한의 두 꼽추 (1971) 명동 삼국지 (1971)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1971) 30년만의 대결 (1971) 요검 (1971) 둘째 어머니 (1971) 명동 잔혹사 (1972)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 (1972) 삼국대협 (1972) 대추격 (1973) 증언 (1973) 울지 않으리 (1974) 연화 (1974) 연화(속) (1974) 아내들의 행진 (1974)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1975) 맨발의 눈길 (1976) 아내 (1976) 낙동강은 흐르는가 (1976) 임진왜란과 계월향 (1977) 옥례기 (1977) 족보 (1978)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 (1978) 가깝고도 먼 길 (1978) 깃발 없는 기수 (1979) 상록수 (1978) 신궁 (1979) 내일 또 내일 (1979) 짝코 (1980) 복부인 (1980) 우상의 눈물 (1981) 만다라 (1981) 안개마을 (1982) 나비품에서 울었다 (1982) 오염된 자식들 (1982) 아벤고 공수군단 (1982) 불의 딸 (1983) 길소뜸 (1985) 티켓 (1986) 씨받이 (Tne Surrogate Mother ,1986) 아다다 (1987) 연산일기 (1987) 아제아제 바라아제 (1989) 장군의 아들 (1990) 개벽 (1991) 장군의 아들2 (1991) 장군의 아들3 (1992) 서편제 (1993) 태백산맥 (1994) 축제 (祝祭 ,1996) 창 / 노는 계집 창 (娼 ,1997) 춘향뎐 (ChunHyang ,1999) 취화선 (醉畵仙 / Chihwaseon ,2001)
- 리뷰
- *작품해설 <춘향뎐>에 이은 임권택 감독의 또 다른 한국적 색채가 담긴 작품이다. 임권택 감독의 ‘98번째’ 작품으로 조선시대 말, 격변기를 살다간 천재 예술가 오원 장승업의 호방하고 광기어린 생애를 담고있다. 세트 제작 기간만 4개월이 넘으며 한국의 4계가 아름다운 풍정으로 녹아있다. 칸 영화제의 감독상을 비롯하여 각종 국내외 영화제의 작품상, 감독상 등을 거머쥐었으며, 청소년들의 관람을 위해 ‘12세 이상의 등급’으로 조정되어 재개봉되기도 한 작품이다. *평론 빠른 속도의 전개, 롱테이크를 배제한 드라마틱한 인물 부각 등은 임권택 감독의 최근 작품들 가운데 <취화선>을 가장 대중적으로 보이게 한다. 마지막 부분 활활 타는 가마 앞에 앉은 장승업의 눈은, 최민식의 연기 가운데 최고라 할 만하다. (<씨네21>, 김영희, 2002년 5월 3일자) 영화는 한 인물의 일대기를 시간 순으로 훑고 있지만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요소들에 의해 재탄생되었다. 오원 장승업의 순간순간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어느새 멋진 동양화 한편을 만들어낸다. 오원의 붓끝으로 형용된 수묵의 세계와 임 감독과 정 촬영감독의 감각으로 만들어낸 빛과 그림자의 세계는 어느 것이 아름다운가를 논하기 조차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흩어져 있는 화면과 연기자들의 연기를 한 곳으로 끌어 담으려면 2시간이란 시간은 그리 넉넉해 보이지 만은 않는다. (<엔키노>, 홍동희, 2002년 5월 10일자) '영상미가 뛰어나다', '주연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제55회 칸 영화제에 초청된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폐막 이틀을 남겨둔 24일(현지시간) 오후 ‘클로드 드뷔시’ 극장에서 기자 시사회를 통해 첫 선을 보였다. 올해 경쟁 부문에 진출한 22편 가운데 마지막 상영작이기 때문인지 이날 시사회에는 전세계에서 몰려든 기자와 영화 관계자 등 300여 명이 극장을 가득 메워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일부 외국 기자들은 제작사인 태흥영화사가 제공한 <취화선>의 홍보용 티셔츠를 입고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 조재영, 2002년 5월 26일자)
- 수상내역
- 제3회 부산 영평상 촬영상, 여우조연상 제10회 춘사나운규 영화예술제 공로상 제22회 영평상 촬영상 제23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촬영상 제39회 백상예술대상 특별상 제55회 칸영화제 감독상
- 이미지
- *작품포스터
- 관련도서
- <한국영화와 임권택>, 사토 다다오, 한국학술정보, 2000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1>, 임권택ㆍ정성일, 현실문화연구, 2003
- 연계정보
- -증언
-왕십리
-족보
-짝코
-만다라
-길소뜸
-티켓
-아제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서편제
-깃발없는 기수
-안개마을
-불의 딸
-연산일기 - 관련사이트
- 한국영상자료원_종합영상정보
- 관련사이트
- 취화선_홈페이지
- 관련사이트
- TTL Cinema Club영화교실_임권택1
- 관련사이트
- TTL Cinema Club영화교실_임권택2
- 관련멀티미디어(전체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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