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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李眞淳)

  • 개요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일본대학 연극과에서 함께 공부했던 이진순도 처음에는 단역배우로 무대에 서면서부터 연극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학생예술좌에서는 주로 단역배우로 나섰고, 1938년 귀국 후에는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유치진 주도의 극연좌 신인배우로 한두 번 무대에 섰다. <목격자>(앤더슨 작)와 <깨어서 노래부르자>(클리포드 오뎃츠 작) 두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이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진순은 곧 극단을 떠나 북경으로 이주한다. 1938년부터 1946년까지 8년 동안을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그는 대학동기생인 이해랑, 김동원 등과 어울리다가 1947년 10월 중국통이라 할 김광주와 손잡고 극단 신지극사라는 단체를 조직했다. 그리고 김승호, 강계식, 전두영, 주선태, 하옥주 등 소장배우들과 함께 중국 작가 조우의 <태양이 그리워(日出)>를 직접 연출하여 공연했으나 별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2회 공연으로 <언덕에 꽃은 피고>라는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했으나 창립공연보다도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간간이 연출을 했다. 이때 신협에서 <붉은 장갑>을 연출했지만 호평을 받지 못하면서 신협과 멀어졌고, 이후 국립극장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국립극장과는 1950년 개관 공연 때 오페라 <춘향전>을 연출한 인연이 있었다. 그러다 1960년대 동인제 극단 시대가 열리자 그도 1966년에 극단 광장을 조직하고 나섰다. 그는 창단의 변에서 “어디까지나 민중과 더불어 살며 입김을 나눠야 한다. 민중이 연극에서 멀어져가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연극에 대한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데 있지 않을까”라며 기성극계를 비판한다. 따라서 그는 고설봉, 백성희, 신원균, 이진수, 이석구, 고은정 등 중견과 신인을 중심으로 극단을 조직하고 셰익스피어의 <윈저의 아낙네들>로 창립공연을 올린다. 음악극에 관심이 많았던 이진순은 국립극장에서 추진한 창극정립운동에 앞장섰고, 연극잡지 발간에도 열성을 기울였다. 즉 그는 6·25전쟁 이후 최초로 연극 전문지인 <연극>을 자비 출판한 것이다. 물론 이 연극지는 2호를 발간하는 데서 멈췄지만 우리 연극계에 전문잡지의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연극전문 잡지 발간에 대한 욕구는 그가 동국대 연극과 전임이 되고 연극협회 이사장까지 맡으면서 실현된다. 전문잡지 <한국연극>을 월간지로 발행하고 한국희곡전집도 발간하는 등 출판사업에 힘을 쏟는다. 이진순은 작품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연출하기로 유명했다. 가령 정통극에서부터 악극, 창극, 무용극, 오페라 등 전방위에 걸쳐 손대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그가 연출한 수백 편의 작품 가운데 대표작은 역시 정통극과 창극에 있다. 1961년 국립극단의 <산불>로부터 <갈매기>(체홉 작), <학마을 사람들>(이범선 원작), <로물르스 대제>(뒤렌마트 작)로 이어지는 정통리얼리즘 계열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미첼 작), <전쟁과 평화>(톨스토이 원작), <남한산성>(김의경 작) 등 대형작품들은 이진순이 연출가로서 족적을 남긴 작품들로 평가된다. 또한 1960년대 국립극장이 국극정립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면서부터 창극에 깊숙이 간여한 그는 누구보다도 창극에 애착을 갖고 작업에 임했다. <춘향가>, <흥보가>, <배비장전>, <수궁가>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어쨌든 이진순은 해방 이후 이해랑과 함께 연출 제3세대의 양각(兩脚)을 이룬 인물이다. 이해랑과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며 서구근대극을 이 땅에 이식, 구체화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연출활동을 했다. 그러나 연극전문화, 대중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오로지 신극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일관했던 이해랑과는 다른 의의를 지니는 연극인이라 하겠다.

  • 생애와 약력

    1916년 평북 신의주 출생 1931년 도일 1934년 일본대학 예술과 입학 1935년~1938년 동경학생예술좌 가담 활동 1938년 일본대학 예술과 졸업과 동시 귀국 / 극연좌에 입단 / 오뎃츠의 <깨어서 노래부르자>로 연기자 데뷔 1947년 김광주와 함께 신지극사(新地劇社) 창단 / 신지극사 창단공연작품 <태양은 그리워>(조우 작) 연출 / 무대예술원 이사 1948년 문교부 예술위원 1950년 신극협의회 간사 1952년 국방부 종군작가단 위원 1954년 중앙국립극장 기획위원 1958년 한국무대예술원 사무국장 1960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1961년 시공관 운영위원 1964년 서울시 문화위원 / 한국연극협회 부이사장 1965년 연극전문 계간지 <연극> 발행 겸 편집인 1966년~1983년 극단 광장 대표 / 극단협의회 의장 1969년 국제극예술협회(I.T.I.) 한국본부 상임위원 1971년~1982년 동국대 연극영화과 교수 1972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75년~1979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 국립극장 운영위원 1976년~1979년 월간 <한국연극> 발행인 1983년 국립극단 종신단원 / 극단 광장 문석봉에게 운영권 넘김 1984년 타계

  • 상훈

    1967년 서울시 문화상 1972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75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76년 대한민국문화훈장 보관수장

  • 작품활동

    1947년 <태양은 그리워>(조우 작, 신지극사) 연출 / <언덕에 꽃은 지고> 발표 1948년 <황포강>(홍개명 작) 1949년 <살아있는 이중생각하>(오영진 작, 극협) / <여성은 위대한가>(김광주 역, 정치대연극부) 1954년 <다정불심>(박종화 원작, 박노흥 각색, 공연극장) 1955년 <양귀비와 안록산>(조남사 작, 민극) 1956년 <이상>(오상원 작, 극예술인협회)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마가레트 미첼 작, 이원경 각색, 극예술협회) 1957년 <태풍지대>(코프만 히아르 작, 오화섭 역, 국립극단) 1958년 <우물>(김홍곤 작, 국립극단) 1959년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피란델로 작, 이진순 역, 국립극단) / 오페라 <콩쥐팥쥐> 연출 1960년 <여인천하>(박종화 작, 차범석 각색, 국립극단) / <분노의 계절>(이종기 작, 국립극단) 1961년 <여당원>(철오 작, 서항석 각색, 국립극단) 1962년 <산불>(차범석 작, 국립극단) / <은아의 환상>(신명순 작, 동인무대) 1963년 <세인트 죤>(버나드 쇼 작, 이진섭 역, 국립극단) / <해풍>(박만규 작, 국립극단) 1964년 <베니스의 상인>(셰익스피어 작, 김재남 역, 국립극단) / <뜨겁고 위험한 애정>(오학영 작, 현대극장) / 오페라 <토스카> 연출 1965년 <바꼬지>(이재현 작, 국립극단) / <수치>(구상 작, 드라마센터) / <손님들>(윤대성 작, 한일은행 연출지도) / 오페라 <라보엠> 연출 1966년 <이순신>(신명순 작, 국립극단) / <들개>(전진호 작, 드라마센터) /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셰익스피어 작, 오화섭 역, 극단 광장) / <인간부결>(고동률 작, 극단 광장) / <갈매기>(안톤 체홉 작, 백인환 역, 여인극장) / <월출>(그레고리 부인 작, 3·1절 기념예술제) 1967년 <세자매>(안톤 체홉 작, 극단 광장) / <사춘기>(베데킨트 작, 정문숙 역, 극단 광장) / 오페라 <자유의 사수> 연출 1968년 <다시 뵙겠습니다>(고동률 작, 극단 광장) / <학마을 사람들>(이범선 작, 이재현 각색, 극단 광장) / <나는 자유를 선택했다>(크라부텐코 작, 이효봉 각색, 자유전선) / <아리랑고개>(박승희 작, 신극 60주년 기념공연) 1969년 <여왕과 기승>(오태석 작, 국립극단) / <죽은 나무 꽃피우기>(조성현 작, 극단 광장) / <동거인>(김자림 작, 극단 광장) / <바벨탑 무너지다>(김숙현 작, 극단 광장) / <아침이슬처럼>(하유상 작, 8·15축전 기념) / 창극 <심청가> 연출 1970년 <요한을 찾습니다>(이현화 작, 드라마센터) / <천사 바빌론에 오다>(뒤렌마트 작, 이재진 역, 극단 광장) / <내 거룩한 땅에>(이재현 작, 극단 광장) / <로물루스 대제>(뒤렌마트 작, 김기선·서근애 역, 극단 광장) / 오페라 <라보엠> 연출 1971년 <신라인>(김경옥 작, 국립극단) / <수전노>(몰리에르 작, 극단 광장) / <카마라조프의 형제들>(도스토예프스키 작, 자끄꼬뽀 각색, 김자림 역, 극단 광장) / 창극 <춘향전> 연출 1972년 <학마을 사람들>(이범선 작, 이재현 각색, 극단 광장) / <꽃상여>(하유상 작, 국립극단) / <수전노>(몰리에르 작, 극단 광장) / <사윗감을 구합니다>(낀데로스 형제 작, 장선영 역, 문고헌 연출, 극단 광장) 기획담당 1973년 <군도>(실러 작, 박찬기 역, 극단 광장) / 창극 <배비장전> 연출 / 무용극 <왕자호동>, <춘향전> 연출 1974년 <남한산성>(김의경 작, 국립극단) / <무녀도>(김동리 작, 하유상 각색, 극단 광장) / <하늘아 무엇을 더 말하랴>(이재현 작, 국립극단) / 창극 <수궁가> 연출 1975년 <고랑포의 신화>(윤조병 작, 국립극단) / <차라리 바라보는 별이 되리>(박진 작, 극단 광장) / 창극 <배비장전> 연출 / 창극 <대업> 연출 1976년 <함성>(김의경 작, 국립극단) / <빵집 마누라>(마르셀 빠뇰 작, 극단 광장) / <페르귄트>(입센 작, 차범석 역, 국립극단) / <왜 그러세요>(이근삼 작, 극단 광장) / <전쟁과 평화>(톨스토이 작, 극단 광장) / 창극 <수궁가> 연출 1977년 <그날밤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카이저 작, 극단 광장) / <뿌리>(알렉스 헤일리 작, 극단 광장) / <학살의 숲>(차범석 작, 국립극단) / <화조>(차범석 작, 극단 광장) / 창극 <흥보가> 연출 1978년 <에밀레종>(하유상 작, 국립극단) 1979년 <동쥐앙>(몰리에르 작, 김정옥 역, 국립극단) 1980년 <무언가>(이병원 작, 국립극단)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마가레트 미첼 작, 극단 현대극장) 1983년 <갈매기>(안톤 체홉 작, 김학수 역, 극단 광장) / <공녀아실>(강추자 작, 국립극단)

  • 대표작품

    <살아있는 이중생각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산불> <바꼬지> <이순신> <인간부결> <아리랑고개>

  • 저서

    <한국연극사>, 이진순, 월간 <한국연극> 연재, 1978년 1월~8월

  • 창작노트

    나는 무엇 때문에 연극을 하는가? 내가 하고 있는 연출은 무엇인가? 연출은 ‘재창조’이다. 무대라는 공간에서 장치, 조명, 음향, 배우 등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재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무엇을 위해서 연극을 하겠다는 강한 목적 이전에 출발하는 어떻게 연극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다. 연극은 참으로 다양해졌다. 그러나 우리의 연극은 아직도 세계연극의 뒤를 따라 다니고 있을 뿐이다. 젊은 연극인들이여, 우리의 개성을 찾자. 아울러 연극을 괴롭히는 근접예술이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다. 영화, 텔레비전 등. 하지만 그들 속에서 우리 연극만의 독특한 세계를 찾아야 한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볼 수 없었던 예술성과 그 미학을 앞서 말한 우리의 개성, 한국적인 성격과 덧붙여 재창조해야 한다. 연극하기가 어려운 그래서 연극인들이 고생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연극의 전문화가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상업화가 되어야 한다. 전문적인 상업화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보다 알차고 많은 투자를 통해 연극을 어른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극단이 많이 생기는 것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뭐든지 씨를 많이 뿌리면 걷는 수확도 많아지게 된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극단을 만들어서는 안된다. 연극에 대한 뚜렷한 목적과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개척과 모험을 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나 역시 평탄한 길을 걸어오지 못했다. 연극인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창조’의 예술을 하기 때문에. 젊은 연극인들이여, 결코 좌절하지 말라.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뼈를 깎는 고통의 작업이 실패한다 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말라. 풍족하게 살 수 없는 것이 연극이라면 오히려 그것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왜 연극을 하는가, 왜 연극을 안 하면 안 되는가 하는 생각을 항상 품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호기심, 흥미, 근접분야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라면 애당초 연극을 안 하는 것이 낫다. 확실한 목적을 갖고 뛰어라. 그러나 우리 모두 일등으로 들어설 수는 없다. 그리고 일등이 있을 수도 없다. 젊은이들이여, 그러니 결코 좌절하지 말라. 그것의 지름길은 ‘자아발견’ 뿐이다. <div align='right'>- ‘지촌 이진순의 나의 회고록’, 김혁수, KBS-TV

  • 관련도서

    <한국예술총집>, 대한민국 예술원, 2000 ‘미니 인터뷰 이진순’, <한국연극>, 한국연극협회, 1981년 10월 ‘추모특집-고 이진순 선생님’, <한국연극>, 한국연극협회, 1984년 2월~3월

  • 연계정보

    -산불
    -학마을 사람들
    -신극협의회
    -국립극단
    -춘향전
    -원효대사
    -갈매기(Chaika)
    -수전노(L`avare)
    -시라노 드 벨주락(Cyrano De Bergerac)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Sei personaggi in cerca d'autore)
  • 관련사이트

    대한민국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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