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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마을 사람들

내용
예로부터 학마을 사람들은 학을 신처럼 믿어왔다. 그 까닭은 학이 길흉의 전달자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말 학마을 이장의 손자와 박훈장의 손자가 징용되어 끌려가던 해는 학이 날아오지 않았지만, 광복이 되고 손자들이 돌아온 해에는 어김없이 학이 날아왔다. 그러던 어느 해 나무에서 학의 새끼 한 마리가 떨어져 죽더니, 이 마을에 전쟁(6·25전쟁)이 밀어닥쳤다. 마을 사람들은 전쟁의 사회적,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 알지 못한 채, 학이 흉조를 보였다는 사실만으로 마을에 들어온 인민군을 경계한다. 학마을에서 자라난 사람 중 변모를 겪은 것은 박훈장의 손자인 바우뿐이다. 바우는 마음에 두고 있던 봉네가 덕이를 택한 후 마을을 떠났다가 인민군이 되어 돌아온다. 바우는 마을 사람들이 인민군을 꺼려하는 것이 학이 보인 흉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학을 쏘아 죽인다. 바우의 총질로 학이 죽자 마을 사람들은 전에 없는 수난을 겪게 되었다. 모진 피난살이에서 돌아왔을 때 마을은 폐허로 변하였지만, 땅을 버릴 수 없었던 순박하기만 한 농민들은 묵묵히 새로 집을 지으며 마을을 재건하기 시작하였다.
예술가
이범선 (1920~1981) 1920년 평안남도 신안주 출생. 평양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광복 후 월남하여 1952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했으며, 1960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전임강사, 1977년 교수가 되었다. 그 동안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소설가협회 부대표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한국문인협희 부이사장에 선출되었다. 1958년 <학마을 사람들>을 현대문학에 발표하여 현대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대표작품 <오발탄> <피해자> <분수령> 이진순 (1916~1984) 1916년 평북 신의주 출생. 1931년 일본 대학 예술과를 졸업하고 이해랑, 김동원 등과 함께 동경학생예술좌에서 활동을 했으며, 1947년 김광주와 신지극사를 창단하고 조우 작 <태양이 그리워>를 연출하여 연출자로 데뷔하였다. 무대예술원 이사, 문교부 예술위원, 중앙국립극장 기획위원,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서울시 문화위원, 연극전문 계간지 <연극>대표, 극단 광장 대표, 극단협의회 의장,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1953년 육군창설기념 전국예술제 연출상을 필두로 제2회 문교부 전국연극경연대회 연출상, 서울시 문화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 수장 등을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한국연극사>가 있다. 대표작품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 <학마을 사람들> <수치> <동거인> <수전노> <뿌리>
리뷰
중진 연극인 이진순이 주축이 되어 고설봉, 이춘사, 백성희, 김금지, 이진수, 추송웅 등이 만든 극단 광장의 공연 레퍼토리를 보면 대개 국내외의 사실주의극 작품들이 많다. 1960년대 주요 레퍼토리로는 <벚꽃동산> <학마을 사람들> <다시 뵙겠습니다>와 같은 극사실주의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수상현황
- 1958년 현대문학 신인상(이범선) 수상 - 1969년 제5회 동아연극상 대상, 특별상(송승환) 수상
재공연
- 1972년 3월 23일~29일 국립극장, 이진순 연출, 극단 광장
관련도서
<이범선 작품선> 이범선, 범우사, 1999년
연계정보
-이범선(李範宣)
-학마을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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