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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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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흥(金千興)

예술가명
김천흥(金千興)
활동분야
한국무용
생애(약력)
심소(心韶) 김천흥은 현존하는 국내 최고령 무용예술인으로서 살아있는 춤의 역사로 일컬어진다. 그는 13살이 되던 1922년부터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에서 기예를 익히기 시작하였고, 김영제·함화진·이수경 등으로부터 일반악·궁중악·궁중춤 기본 등을 배웠다. 처음 그가 익히기 시작한 것은 해금이었고, 이후 양금연주와 아쟁을 더하였다. 1923년에는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의 50세 생신 축하공연에 무동으로 참가하여 <봉 래의>, <처용무>, <춘앵전> 등 10여 종의 궁중춤에 출연하여 무용가로의 첫발을 내딛었다.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를 졸업한 후 여러 궁중행사의 악사로 활약했으며 이후 한성준이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열자 그곳에서 민속춤을 배우며 본격적으로 무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김천흥은 아악수장직을 사임하고 잠시 권번(券番)과 무악계 악인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민속무와 궁중무에 기반한 기녀들의 춤 연습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것은 그가 이후 무용의 길을 걷는데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1943년 조선음악가협회의 조선악부회원으로 해금 공연을 활발히 펼쳤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궁중예술과 민속예술 사이의 구분을 넘어 이 두 영역 모두를 아우르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이왕직아악부와 조선음악가협회에 속해 있던 대가들과 교분을 나누며 그들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1·4후퇴 후 서울에 돌아온(1958년) 김천흥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개최를 기점으로 창립한 한국가면극보존회 상임위원을 맡으며 탈춤연구를 시작했다. 이 활동으로 인해 전국 각지의 민속예술과 이북5도의 놀이와 가면극들이 발전, 전승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김천흥고전무용연구소’를 열고 1975년까지 7회의 개인무용발표공연을 갖게 되는데, 특히 1959년 처용의 설화를 극화한 <처용랑>과 1969년 대금에 얽힌 아름다운 전설을 극화한 <만파식적>으로 서울시문화상과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했다. 1956년 이화여자대학교 체육과에서 강의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 고유의 전통음악과 춤을 지도하며 후배 양성에 힘써왔고, 수차례 해외공연을 통해 한국 전통예술의 진수를 세계에 알리는데 큰 몫을 해왔으며,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예술단을 창단하여 중요무형문화재의 올바른 전수, 보존, 보급을 위해 주력했다. 우리나라 궁중정재에서는 ‘창사’라고 하는 노래가 있다. 그날의 행사 의의를 송축하는 춤의 내용을 설명하는 이 창사는 아직까지 정식으로 풀이하여 정리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김천흥이 2002년에 자신의 무악인생 80주년을 기념하여 총 38종의 궁중무용의 ‘창사’들을 모아 한자로 전해 오던 것을 한글로 풀이하고 정간보(옛 음악 기록법)와 오선보(현대식 악보)로 정리하여 <정재무도홀기 창사보>의 발간으로 궁중정재의 전승과 학문적 발전을 위해 또 한번 큰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다. 우리 전통예술이 문헌적인 보존이나 자료취합 및 정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김천흥은 몸으로 계승해 온 소중한 자료와 역사를 후세를 위해 온전하게 전승하기 위해 백수를 바라보는 고령에도 국립국악원의 원로사범으로 매일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다. 1923년 순종황제 탄신 오순(五旬) 경축공연에 무동으로 출연 1926년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李王職 雅樂部員 養宬所) 졸업(해금 전공, 양금·아쟁 겸공) 1926년 이왕직아악부아악수(李王職 雅樂部 雅樂手), 아악수장(雅樂手長) 역임 1940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음악과 강사 1943년 조선음악가협회 조선악부 회원(무용담당) 1945년 대한국악원 이사 겸 무용부장(조선음악협회가 대한국악원으로 개칭) 1951년 현 국립국악원 원로사범 1955년 김천흥고전무용연구소 소장 1961년 한국국악협회 이사 및 명예회장 역임 1961년 서울시 문화재 위원 196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지정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지정 1973년 사단법인 대악회(大樂會) 회장 1978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종신)
상훈
서울시문화상 (연극부문-무용극<처용랑>) (1960) / 문화재보존공로상(1968) / 제2회 한국문화대상(1969) / 대한민국 예술원상(1970) / 국민훈장 모란장(1973) / 한국국악대상(1983) / KBS 국악대상 특별공로상(1992) / 방일영국악상(1997) / 금관문화훈장(2001)
대표작
1952~1964년 문하생 한국무용발표회 6회, 무용극 <춘향전>, <콩쥐팥쥐>, <꼭두각시> 등 소품 다수 1956~1975년 개인무용 발표회 7회, <처용랑>, <만파식적>, <흥부놀부전>, <봉산탈춤>등 소품 다수 1977~1986년 궁중무용발표회 10여 회 재연 안무 1962~1999년 미주지역, 동남아, 유럽 등 22차례 해외공연 1989년 정악 양금 발표회 1991년 심소 김천흥 선생의 음악과 무(舞) 공연, 심소 김천흥 선생 무악생활 70주년 기념공연 2000년 한국의 명무명인전 2002년 심소 김천흥 선생 무악인생 80주년 기념공연 2003년 대를 잇는 예술혼-명인의 후예들 <김천흥, 성경린의 영산회상> 공연
주요저서
<중요 무형문화재 조사 보고서, 종묘 1무>(1966) / <한국무용의 기본 무보(舞譜)>(1969) / <정악양금보(正樂洋琴譜)>(1982) / <정악해금보(正樂奚琴譜)>(1988) / <심소 김천흥 무악칠십년(無樂七十年)>(1995) /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 창사보(唱詞譜)>(2002)
창작노트
(……)작품들은 크게 궁중계통, 민속계통, 사찰계통, 창작계통 등으로 선별해 작품화했는데…….전통의 궤도에서 벗어나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하면서도 내가 1920년대 초 학생 시절에 배운 춤의 원형에 기반을 두고 형태의 다양화, 변화있는 구성, 동작의 개발, 음악의 다변화, 무대적인 감각 등을 살려 궁중무용을 재구성해 보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전통성 있는 무용들에 오점을 남기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는 마음에서 미리 무고(鼓舞)를 대고무(大鼓舞)로, 포구락(抛毬樂)을 채구희(彩球戱)로, 가인전목단(佳人剪牧丹)을 모란만정(牧丹滿庭)으로 이름을 새로 붙여 춤추게 했었다. 창작춤에서는 난리 중에 피난다니며 눈여겨 보았던 농어촌의 자연환경과 풍습 속에서 소재를 찾아내 무용화해 보는 한편 어린 무용수들에게 걸맞는 춤으로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표현, 창출되고 있는 일면을 테마로 삼아보았다(……)아무튼 20가지의 무용들이 그 명제에 따라 표현방법과 창출형성되는 예술성이 모두 개성있는 독립된 하나 이상의 작품들로 완성되도록 총력을 기울여 작업했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 <심소 김천흥 무악70년>, 김천흥, 민속원, ‘제1회 무용발표회’
리뷰
넓은 무대 중앙에 펼쳐놓은 화문석, 그 위에 두 손을 모으고 혼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움직이지 않아도 벌써 춤이고 봄이며 꾀꼬리 같다. 털썩털썩도 아니고 풀쩍풀쩍도 아닌, 정중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발디딤, 상하좌우가 뚜렷하고 동서남북이 보이는 듯 정확하게 뿌리는 한삼 끝, 그 모든 것의 모양새나 분위기가 얌전하고 아담하다. 서두르지 않고 급하지 않으면서 절대로 주저앉는 게으름도 없이 일정하게 긴장과 균형을 유지해 나간다. 자리 밖으로는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그 작은 공간을 무한한 넓이로 사용하면서 수평저울의 미묘한 균형처럼 흔들릴 듯 바로 선다. 마치 김천흥 예도 평생의 공적이 이 한 자락 춘앵전을 추기 위해 쌓아 올려진 듯, 그가 추는 오늘의 <춘앵전>은 ‘고맙고 아름답다……’라고 말한 이도 있었다. - <심소 김천흥의 전통무용 예술세계>, 홍웅기, 한국무용예술진흥회, 2003 그의 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미 사람의 심금을 움직인다. 그것은 한낱 노익장을 과시했다는 표현으로는 미치지 못하달 수가 있다. 특히 한국무용의 기교를 전통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처용무>는 깊은 온축과 비범한 예술성, 씩씩하고 장엄한 남무의 풍도와 낙화유수의 가녀린 애조가 두드러져 우리의 고대무용을 보다 본격적으로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즉 그의 춤은 천격이나 기교가 없이 ‘심소가 아니면 되살릴 수 없는 무격이 제격’이다. 크고 광활하게 장삼을 흩뿌리는 <승무> 역시 무기교의 절제미와 정제미, 무념무상의 선비적인 청정이 깃들어 몸이 아닌 마음으로 추는 명무로 손꼽힌다. 그런가 하면 그의 <살풀이>는 멈출 듯 주춤한 정지 속의 움직임과 여백의 미가 일품이다. 명주수건을 던졌다가 다가서고 다가섰다 물러서는 흐르는 춤태는 손끝 하나에서도 예술의 연륜이 묻어나 이를 보고 “속으로 흐느끼지 않은 이가 없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다. 이 춤은 지난 연초 하와이대 객원교수로 갔다가 배한라 여사의 1주기를 맞는 추모무대에서 춘 것이 “그곳의 객석을 흐느끼게 했다”고 전해져 왔다. (……) - <서울신문>, 이세기, 1996년 1월 6일, ‘국악인 김천흥’
관련도서
<심소 김천흥의 전통무용 예술세계>, 홍웅기, 한국무용예술진흥회, 2003 <심소 김천흥 무악70년>, 김천흥, 민속원
연계정보
-종묘제례악
-일무(佾舞)
-당악정재
-향악정재
-김천흥 인물
-발 1 (김천흥)
-춘앵전
-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
-김천흥 (19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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