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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나라의 어린이

개요
<새나라의 어린이>는 해방의 기쁨을 담은 노래다. 나라를 다시 찾은 기쁨과 나라를 발전시켜야겠다는 희망이 나타나 있다.
해설
해방이 되고 나서 해방의 기쁨을 노래할 어린이의 노래가 따로 없어, 남녀노소가 함께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하는 <조선의 노래>(이은상 작사/현재명 작곡)를 불렀다. 얼마후 어린이를 위한 애국 동요가 발표되었는데 그것이 <새나라의 어린이>다. 이 노래는 해방 후 처음 발간된 ‘어린이 신문’ 첫 면에 특집으로 실려 발표되었다. 일본말만 하다가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뒤바뀐지라 어리둥절하고 감격에 들뜬 어린이들은 어른들에 못지 않게 이 노래를 소리 높게 불렀으며,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아 가르치고 배우는데 꽤 힘이 들었다. 참고: <동요 70년사>, 한용희, 세광음악출판사, 1988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 나라의 어린이는 서로서로 돕습니다. 욕심쟁이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 나라의 어린이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서로 믿고 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 나라의 어린이는 쌈을 하지 않습니다. 정답게들 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 나라의 어린이는 몸이 튼튼합니다. 무럭무럭 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초승달>(1946)
작사가
윤석중(1911~2003)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24년 동요 <봄>이 <신소년>에, 동요<오뚜기>가 <어린이>지에 입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1930년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 <어린이> 주간, 1934년 <소년중앙> 주간, 1936년 <소년> 주간을 역임했다. 1944년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學] 신문학과를 마치고 <조선일보> 편집고문, <소년조선일보> 고문, 서울시 문화위원, 한국문인협회 아동분과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중앙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1953년 '새싹회'를 창립해 회장에 취임하는 한편, 1960년 3·1문화상 예술부문 본상과 문화훈장을 포상한 바 있다. 윤석중은 전통적 정형률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형식 및 반복과 대구를 사용해 율동적 표현을 구사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동시와 동요를 써서 한국아동문학 발전에 이바지했다. 한국 최초의 창작 동요집인 <윤석중 동요집>(1932)에서부터 <아기꿈>(1987), <윤석중 전집>(1988)에 이르기까지 천 편도 넘는 동요와 동시, 동화를 발표했다. 대표작으로는 <낮에 나온 반달>, <퐁당퐁당>, <기찻길 옆 오막살이>, <어린이날 노래> 등이 있다.
작곡가
작곡가 박태준(朴泰俊, 1900∼1986) 아호는 금호(琴胡). 작곡가이자 합창지휘자. 경북 대구에서 출생하였으며, 기독교 교단에서 운영하는 대구 계성중학, 평양 숭실전문학교(1921년)를 졸업하고, 경남 마산 창신학교, 대구 계성학교에서 영어와 음악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 동요 <오빠 생각>, <맴맴>, 가곡 <동무 생각>(일명 思友) 등을 지었고, 1929년에 동요곡집 <중중 때때중>, 1931년에 동요곡집 <양양 범벅궁>을 발간하였다. 1932년 미국에 건너가 터스칼럼대학, 웨스트민스터음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하여 1938년까지 숭실전문학교 교수를 지냈고 1939년 가곡집 <물새 발자욱>을 발간하였다. 해방 직후인 1945년 오라토리오합창단을 창설하여 1973년까지 이끌었다. 1947년 <박태준 동요곡집>(음악사) 등을 발간하였고, 1946년 경성여의전 교수를 거쳐 1948년 연세대로 옮겨와 1974년까지 26년간 교수로 있었다. 1955년에는 연세대 종교음악과를 창설하고, 1964년에는 음악대학으로 승격되면서 초대학장이 되었고, 1966년 정년퇴직 후 1973년까지 명예교수로 강의를 계속했다. 1952년에 미국 우스터대학에서 명예음악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60년부터 1968년까지 한국음악협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예술원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57년 서울시 음악문화상과 1960년 예술원 음악공로상, 1962년 문화훈장(대통령장), 1970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역서로 <화성학>, <초등 화성학>이 있다. <한국작곡가사전1>, 한국예술연구소,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예술연구소, 1995
리뷰
“소년 잡지 하나 만들어 보지 않겠나?” 1936년 말 尹石重(윤석중)은 조선일보 출판부 주간 李殷相(이은상)으로부터 귀가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두 차례 실직하는 시련을 겪고 집에서 쉬고 있던 때였으므로 윤석중은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는 매주 소년조선일보를 만들고, 매달 잡지 <소년>을 편집하는 일로 휴일에도 쉬지 않고 출근했다. 愛社心도 대단했다. 그는 1938년 9월 사내에서 2주간 실시한 ‘구독자확장대회’에서 114부로 1위를 차지했다. 휴일에 회사에 나온 방응모 사장이 사무실을 지나다 윤석중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윤석중이 일어나 인사를 하자 방응모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한마디 던졌다. “자네, 공부 어디까지 했나? 일본에 가서 공부 좀 더 하고 오지?” 양정고보 중퇴 학력이 전부였던 윤석중은 방응모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1939년 4월부터 3년간 일본 上智大(상지대) 신문과에서 공부했다. 1940년 8월 조선일보가 폐간된 뒤에도 장학금은 꼬박꼬박 들어왔다. 윤석중이 광복을 맞은 곳은 방응모의 집이었다. 전쟁 막바지에 징용장이 나오자 東京을 탈출해 방응모의 의정부 별장에 숨어든 것이다. 그는 日王의 항복소식을 듣고 별장에서 기쁨에 겨워 순식간에 <새 나라의 어린이>를 썼다. 윤석중은 <낮에 나온 반달>, <퐁당퐁당> 등 평생 1200편이 넘는 동요를 지었다. <주간조선>, 2004년 10월호
관련음반
<꿈꾸는 동요>, 가람미디어, 2005 <열려라 동요천국>, 가람미디어, 2004 <신나는 동요나라 135곡>, 블루마인드, 2005 <엄마 아빠와 즐겁게>, 지구레코드, 1981
관련도서
<윤석중 동요집>, 윤석중, 신구서림, 1932 <어깨동무: 동요집>, 윤석중, 박문서관, 1940 <윤석중 아동문학독본>, 윤석중, 을유문화사, 1962 <윤석중 동요집>, 윤석중, 민중서관, 1963 <한국아동문학전집 제4권 윤석중 작품집>, 윤석중, 민중서관, 1963 <박태준의 생애와 음악>, 문은주, 연세대 석사논문, 1985 <박태준 동요곡집>, 박태준, 음악사, 1947 <한국작곡가사전1>, 한국예술연구소, 한국예술종합학교한국예술연구소, 1995 <중중 때때중>, 박태준, 1929 <양양 범벅궁>, 박태준, 1931 <물새 발자국>, 박태준, 1939 <동요 70년사>, 한용희, 세광음악출판사, 1988
연계정보
-퐁당퐁당
-산바람 강바람
-자전거
-고향 땅
-메아리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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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요음악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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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교육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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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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