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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영언(靑丘永言)

개요
조선 영조 때의 가인(歌人) 남파 김천택(南坡 金天澤)이 고려 말엽부터 편찬 당시까지의 여러 사람의 시조를 모아 1728년(영조 4)에 엮은 고시조집. 필사본 1권 1책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가집(歌集) 중에서 편찬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으며 방대한 것으로, <해동가요(海東歌謠)>·<가곡원류(歌曲源流)>와 아울러 3대 가집으로 꼽히는 책이다.
저자
김천택(金天澤, 생몰년미상) 조선 후기의 시조작가·가객(歌客). 자는 백함(伯涵) 또는 이숙(履叔). 호는 남파(南坡). 본관과 생몰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680년대 말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의 명렬순(名列順)으로 보아 김수장(金壽長)보다 몇 살 연장자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김수장의 출생년이 1690년(숙종 16)이므로, 김천택의 출생년은 1680년대 말이라고 보아도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그의 가계와 신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는데, <해동가요>의 작가제씨(作歌諸氏)에는 숙종 때의 포교(捕校)라 소개되어 있다. 당시 가객들의 신분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그도 역시 중인계층으로서 관직생활은 젊었을 때 잠시 지냈고, 거의 평생을 여항에서 가인·가객으로 지낸 듯하다. <청구영언>에서 자신의 시조를 ‘여항육인(閭巷六人)’이라는 항목에 넣은 것을 보더라도 이를 짐작할 수가 있다. 노가재 김수장(老歌齋 金壽長)과 함께 김유기(金裕器)·김성기(金聖器)·김중려(金重呂) 등과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에 동인(同人)을 결집, 시조에 신풍을 불어넣었다. 시조작품은 진본(珍本) <청구영언>에 30수, 주씨본(周氏本) <해동가요>에 57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중복되는 것을 제외하면 73수가 된다. 박씨본(朴氏本) <해동가요>에서 새로운 작품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를 모두 합하면 약 80수가 되므로, 당시의 가객으로서는 김수장 다음으로 많은 작품을 남긴 셈이다. 장시조는 하나도 없으며 모두가 단시조 작품이다. 내용은 강호산수를 읊은 것이 가장 많고, 교훈적인 것, 체념과 탄세적(歎世的)인 것이 많아서 사대부 시조의 경향을 답습한 느낌을 준다. 1728년(영조 4)에 편찬한 <청구영언>은 당시뿐만 아니라 후대에까지 가악의 발달과 가집의 편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내용과 특징
<청구영언(靑丘永言)>의 ‘청구’는 본래 우리나라를 뜻하는 말이고, ‘영언’은 노래를 뜻한다(歌永言)는 말이다. 책명은 한글로 모두가 ‘청구영언’이지만, 한자로 쓰면, ‘靑丘詠言’·‘靑邱永言’·‘靑丘咏言’ 등으로 표기된다. 우리의 노래가 구전으로만 읊어지다가 없어짐을 한탄하여, 기록으로써 후세에 전하고자 이 책을 편찬하였다고 한다. 이 책의 제1차 초고가 완성된 때는 1727년(영조3), 제1차 수보(修補) 완료는 1728년, 제2차 수보를 마친 때가 1732년으로서, 이때에는 상당한 시조가 증보된 듯하므로 실제 완성된 시기는 1728년으로 본다. <청구영언>은 책이름이 동일하지만, 제각기 특색을 지니며 내용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즉 <청구영언>에는 ① 진본(珍本, 吳章煥본), ② 홍재휴본(洪在烋本, 洪氏本) ③ 가람본(李秉岐본), ④ 연민본(淵民本, 李家源본), ⑤ 육당본(六堂本, 崔南善본), ⑥ 이희승본(李熙昇본, 一石本), ⑦ 일본인(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후지타(藤田亮策))본 등의 이본(異本)이 있다. 이본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전으로 추정되는 진본에 수록된 작품 수는 580수로, 본내용을 중심으로 앞에는 정윤경(鄭潤卿)의 서문, 뒤에는 김천택 자신의 자서와 마악노초(磨嶽老樵)의 발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본편은 13항으로 나누어져 있다. 13항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항, 초중대엽(初中大葉)·이중대엽(二中大葉)·삼중대엽(三中大葉)·북전(北殿)·이북전(二北殿)·초삭대엽(初數大葉)·이삭대엽(二數大葉, 원문에는 없으나 빠진 것으로 생각하여 보충함) 등의 곡목 다음에 각각 한 작품씩을 수록. 제2항, ‘여말(麗末)’이라는 제목 아래 고려말 작품 6수 수록. 제3항, ‘본조(本朝)’로 조선조에 41명이 쓴 작품 203수 수록. 제4항, ‘열성어제(列聖御製)’로 세 왕의 작품 5수 수록. 제5항, ‘여항육인(閭巷六人)’으로 6명의 작품 65수 수록. 제6항, ‘규수삼인(閨秀三人)’으로 3명의 작품 5수 수록. 제7항, ‘연대결고(年代缺考)’로 3명의 작품 3수 수록. 제8항, ‘무명씨(無名氏)’라는 제목으로 104수의 작품 수록. 제9항, ‘삼삭대엽(三數大葉)’으로 55수 수록. 제10항, ‘낙시조(樂時調)’로 작품 10수 수록. 제11항, <장진주(將進酒)> 1수 수록. 제12항, <맹상군가(孟嘗君歌)> 1수 수록. 제13항, ‘만횡청류(蔓橫淸類)’라는 제목 아래 작품 116수 수록. 이들 각 항목에서 작품을 배열한 기준은 작가의 연대와 신분, 작품의 내용, 곡목 등이다. 작가는 먼저 호(號)를 표기하고 그 다음에 성명을 쓰고, 끝으로 경력을 작은 글씨의 주(註)로 달고 있다. 진본에 비하여 홍씨본은 몇 가지 특성을 보인다. 앞에 떨어져 나간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74면인데, 없어진 부분 일부에 가지곡목형용(歌之曲目形容)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 작품분류는 유명씨와 무명씨로 나누고, 그 다음에 ‘한산인(閑散人)’이라는 난을 두었다. ‘잡휘란(雜彙欄)’에는 무명씨의 작품을 열거하면서, 기류(妓流)의 작품은 모두 무명씨로 처리하고 있다. 삼국시대의 작품까지 등장시키는데, 이는 <가곡원류>와 비슷하다. 가람본 Ⅰ은 진본에 비하여 서문과 발문이 없다. 가집 끝에는 파양(爬癢)이라는 제목 아래 9수의 작품을 추가로 수록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가람본 Ⅱ는 진본에 비하여 가지풍도형용십사조목(歌之風度形容十四條目)과 오음통유(五音統諭)·태사공예악서(太史公禮樂序)·소자(邵子)·역(易)·사조별형용의태상괘(四條別形容意態象卦)·장단점수(長短點數)·장단격법(長短擊法) 등이 첨가되어 있다. 또한, 시조작품 끝에는 <어부사(漁父詞)> 등의 11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연민본은 진본에 비하여, 호 위주로 작품 257수를 싣고, 끝에 <속어부사(續漁父詞)>를 수록하고 있다. 육당본은 진본에 비하여 서문 외에도 <해동가요록(海東歌謠錄)> 등을 옮겼다. 더불어 곡목과 작품을 더하여 진본을 증보하고 발전시켰다. 수록작품은 시조가 999수이며 <상사곡(想思曲)> 등의 가사 16편을 수록하고 있다. 진본의 곡목이 9곡목인 데 비하여 25곡목으로 상세하게 나누었고, 곡목 위주로 편찬하였다. 삼국시대의 작가는 한데 묶고, 왕실과 기류(妓流)를 묶어 놓았으나 유명씨와 무명씨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일석본은 제목만 <청구영언>으로 되어 있을 뿐이고, 수록 내용으로 보아 <가곡원류>의 이본이다. 오쿠라본(小倉本)은 현재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에 소장되어 있고, 후지타본(藤田本)은 소재 불명이다. <청구영언>은 지금까지 밝혀진 가집 중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시조집으로, 후대 가집의 편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 만큼 문학사적인 가치가 크다. 영인본으로는 연민본이 1961년에 한국어문학회(韓國語文學會) 자료총간 제2집으로 나왔다. 육당본은 경성대학(京城大學, 1930)에서 인쇄되고, 다시 조선문고본(朝鮮文庫本, 1939)·통문관신문고본(通文館新文庫本, 1946)으로 출판되었다. 진본은 오한근(吳漢根)이 조선진서간행회(朝鮮珍書刊行會)에서 1948년에 간행하였는데, 이 책에는 많은 오식(誤植)이 포함되었음을 필자가 밝혔다. 이상의 이본에 대한 정리는 어느 정도 되었으나, <송곡편가집>이 전하지 않는 관계로 문제가 남아 있다. 연민본과 <청구영언(靑丘咏言, 藤井秋夫 소장)>, <화원악보(花源樂譜)>에 실린 김득신의 서문에는 송곡에 관한 기록이 있다. 여기에 의거하여 이 서문과 <송곡편가집>은 깊은 관계에 있으며, 여러 가집을 보완·윤색한 것이 진본이며 육당본이라는 학설이 나오기도 하였다. <청구영언>에 대한 연구는 원류(源流)에 대한 문제에서부터 재고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사료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연계정보
-가곡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개야미 불개야미…
-가곡원류(歌曲源流)
-해동가요(海東歌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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