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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작품소개
작자가 만년에 안동(安東)에 도산서원을 세우고 학문에 열중하면서 사물을 대할 때 일어나는 감흥과 수양의 경지를 읊은 것이다. 63세 때의 작품으로 모두 12곡이다. 저자는 이 작품을 전육곡(前六曲)·후육곡(後六曲)으로 나누고, 전육곡을 ‘언지(言志)’, 후육곡을 ‘언학(言學)’이라 명명하였다. ‘언지’는 천석고황(泉石膏英: 산수를 사랑하는 것이 마치 불치병처럼 지나침)의 강호은거(江湖隱居)를 읊었고, ‘언학’은 학문과 수양을 통한 성정(性情)의 순정(醇正)을 읊은 것이다.
이황(李滉, 1501~1570)
본관 진성(眞城). 초명 서홍(瑞鴻). 자 경호(景浩). 초자 계호(季浩). 호 퇴계(退溪)·도옹(陶翁)·퇴도(退陶)·청량산인(淸凉山人). 시호 문순(文純). 경상북도 예안(禮安) 출생. 12세 때 숙부 이우(李堣)에게서 학문을 배우다가 1523년(중종 18) 성균관(成均館)에 입학, 1528년 진사가 되고 1534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부정자(副正子)·박사(博士)·호조좌랑(戶曹佐郞)·수찬(修撰)·정언(正言) 등을 거쳐 형조좌랑으로서 승문원교리(承文院校理)를 겸직하였다. 1542년 충청도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사인(舍人)으로 문학(文學)·교감(校勘) 등을 겸직, 장령(掌令)을 거쳐 이듬해 대사성(大司成)이 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이기에 의해 삭직되었다가 이어 사복시정(司僕寺正)이 되고 응교(應敎) 등의 벼슬을 거쳐 1552년 대사성에 재임, 1554년 형조·병조의 참의에 이어 1556년 부제학, 2년 후 공조참판이 되었다. 1566년 공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예조판서, 1568년(선조 1) 우찬성을 거쳐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내고 이듬해 고향에 은퇴, 학문과 교육에 전심하였다. 이언적(李彦迪)의 주리설(主理說)을 계승, 주자(朱子)의 주장을 따라 우주의 현상을 ‘이(理)’와 ‘기(氣)’의 이원(二元)으로 설명하였다. ‘이’와 ‘기’는 서로 다르면서 동시에 상호 의존관계에 있어서, ‘이’는 ‘기’를 움직이게 하는 근본 법칙을 의미하고 기는 형질을 갖춘 형이하적(形而下的) 존재로서 이의 법칙을 따라 구상화(具象化)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주장하면서도 ‘이’를 보다 근원적으로 보아 주자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발전시켰다. 그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사상의 핵심으로 하는데, 즉 이가 발하여 기가 이에 따르는 것은 4단(端)이며 기가 발하여 이가 기를 타[乘]는 것은 7정(情)이라고 주장하였다.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한 기대승(奇大升)과의 8년에 걸친 논쟁은 사칠분이기여부론(四七分理氣與否論)의 발단이 되었고 인간의 존재와 본질도 행동적인 면에서보다는 이념적인 면에서 추구하였다. 인간의 순수이성(純粹理性)은 절대선(絶對善)이며 여기에 따른 것을 최고의 덕(德)으로 보았다. 이황의 학풍은 뒤에 문하생이었던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정구(鄭逑) 등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嶺南學派)를 이루었고, 이이(李珥)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기호학파(畿湖學派)와 대립하였다. 동서 당쟁은 이 두 학파의 대립과도 관련되었으며 그의 학설은 임진왜란 후 일본에 소개되어 그곳 유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스스로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창설,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힘썼고 현실생활과 학문의 세계를 구분하여 끝까지 학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중종·명종·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시문은 물론 글씨에도 뛰어났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 및 선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단양(丹陽)의 단암서원(丹巖書院), 괴산의 화암서원(華巖書院), 예안의 도산서원 등 전국의 수십 개 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퇴계전서(退溪全書): 수정천명도설(修正天命圖說)·성학십도(聖學十圖)·자성록(自省錄)·주서기의(朱書記疑)·심경석의(心經釋疑)·송계지명리학통록(宋季之明理學通錄)·고경중마방(古鏡重磨方)·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이학통록(理學通錄)·계몽전의(啓蒙傳疑)·경서석의(經書釋義)·상례문답(喪禮問答)·무진봉사(戊辰封事)·퇴계서절요(退溪書節要)·사칠속편(四七續編)>이 있다.
현대어풀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초야우생(草野愚生)이 이렇다 해서 어떠하랴 하물며 자연을 버리고는 천석고황(泉石膏肓)을 고쳐 무엇하랴 안개와 놀을 집으로 삼고 풍월(風月)을 벗으로 삼아 태평성대에 병으로 늙어가지만 이 중에 바라는 것은 허물이나 없었으면 순풍(淳風)이 적다하니 진실로 거짓말 인간의 성품은 어질다 하니 진실로 옳은 말 천하에 허다한 영재(英才)를 속여 말할 수 있을까 그윽한 난초가 골짜기에 있으니 듣기 좋아 흰 눈이 산에 있으니 자연이 보기 좋아 이 중에 저 아름다운 한 사람을 더욱 잊지 못하네 산 앞에 대가 있고, 대 아래에 물이 있도다 떼를 지은 갈매기는 오락가락하거든 어쩌다 희고 깨끗한 갈매기는 멀리 마음을 두는고 봄바람에 꽃이 산에 가득하고 가을 밤에 달빛이 대에 가득하다 사시의 아름다운 흥취가 사람과 한가지로다 하물며 물고기가 뛰고 솔개가 날며 구름이 그늘을 짓고 태양이 빛남이 어찌 끝이 있을꼬? 천운대를 돌아 들어는 완락재(玩樂齋)는 깨끗한 곳이니 책에 묻혀 사는 삶으로 즐거움이 무궁하여라 이중에 이따금 풍류를 말해 무엇하겠는가 우레소리가 산을 깨뜨려도 귀머거리는 못 듣네 밝은 해가 하늘 높이 올라도 눈 먼 사람은 보지 못하네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 남자로 귀머거리 장님같이 말자꾸나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못 뵈어 고인을 못 봐도 가던 길은 앞에 있네 가던 길 앞에 있는데 아니 따르고 어쩌겠는가 당시에 가던 길을 몇 해씩을 버려두고 어디가 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왔는가 이제나 돌아왔으니 다시는 딴 데 마음 말아라 푸른 산은 어찌하여 만고(萬古)에 푸르르며 흐르는 물은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가 우리도 그치지 말고 만고상청(萬古常靑)하리라 어리석은 자도 알아서 하니 그 아니 쉬운가 성인도 못다 하시니 그 아니 어려운가 쉽거나 어렵거나 그동안 늙는 줄을 몰라라
어휘풀이
- 초야우생(草野愚生) : 시골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 - 천석고황(泉石膏肓) : 자연 속에 살고 싶은 마음의 절실함. ‘천석(泉石)’은 자연을 이르고 ‘고황(膏肓)’은 불치의 병을 이른다. 강호지병, 연하고질(煙霞痼疾)과 동의어로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몹시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性癖)으로 지은이의 자연애를 말한다. - 순풍(淳風) : 예로부터 내려오는 순박한 풍속 - 떼 만흔 : 무리지어 나는 - 희고 깨끗한 갈매기 : 어진 사람을 뜻함 - 완락재(玩樂齋) : 서재의 이름 - 만고상청(萬古常靑) : 영원히 변함없이 푸름
해설
저자는 이 작품을 짓게 된 동기를 ‘도산십이곡발(陶山十二曲跋)’에서 “한림별곡류(翰林別曲類)는 긍호방탕(矜豪放蕩)하고 설만희압(褻慢戱狎)하여 군자의 숭상할 바가 아니다.”, “이별육가(李鼈六歌)는 완세불공(玩世不恭)의 뜻이 있고 온유돈후(溫柔敦厚)의 실(實)이 적다.”, “국문시가는 한시(漢詩)와는 달라서 노래할 수 있어서 흥이 난다.”라고 말하였다. 첫째와 둘째는 기존의 시가에 대한 불만이고, 셋째는 국문시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한림별곡>·<관동별곡>·<죽계별곡>의 한림별곡류는 고려 사대부의 풍류를 읊었는데, 관능적이고 향락적이다. 저자는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배척하고, 그 대신 새로운 풍류를 제시하는데, 즉 ‘산수유상(山水遊賞)’을 통해 올바른 성정을 수양해가는 일이다. <이별육가>는 ‘은(隱)’을 강력히 주장했는데, 그것은 ‘결신멸세(潔身蔑世)’의 오만스러운 내용이다. 저자는 이것을 배척하고, 조선 사대부에 맞는 ‘은’을 제시했으니, ‘천석고황’이다. ‘은’에는 으레 ‘결신’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겸선(謙善)’에 그쳐야지 ‘멸세’에 흘러서는 안 된다. 저자는 특히 ‘멸세’의 오만을 경계한 것이다. 저자는 한시와 시조의 차이를 ‘영(詠)’과 ‘가(歌)’로서 파악하고, 가창이 낳는 흥에다가 시조의 존재 이유를 설정하였다. 이것은 한시에서는 충족할 수 없는 흥을 시조에서 찾고, 그 흥을 매개로 자기를 창조하는 문학관으로서의 하나의 자각이며, 그러한 자각이 이 작품을 낳게 한 것이다. 이 작품은 후세 사림파 시가의 중심적 지표가 되었고, 목판본이 도산서원(陶山書院)에 소장되어 있다.
연계정보
-시조
-청구영언(靑丘永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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