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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하

개요
1960년대 동인제 극단 시대의 주역 중 하나. 극단 산하는 ‘연극의 대중화’를 캐치프레이즈로 삼아 활동한 극단이다. ‘우리는 높은 예술성을 보여주면서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연극을 제작할 것이다.’(극단 산하 창단대표 오화섭)라는 산하의 정신은 공연 <산불>의 대성공을 통해 입증되었다. 차범석, 정하연(극작), 표재순, 이기하(연출) 등 주로 연세대 극회 출신이 공연활동을 주도했으며, 차범석의〈청기와집〉, <산불>, 〈장미의 성>, <왕교수의 직업>,〈약산의 진달래〉등을 지속적으로 상연하며 사실주의 극단으로서의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해설
극단 산하는 제작극회의 주요단원이었던 차범석과 김유성이 또 다른 동지들과 함께 1963년 9월 28일 탄생시킨 단체이다. 창단 때부터 산하가 표방한 것은 ‘연극의 대중화’와 ‘연극의 직업화’였다. 연극이 몇몇 동호인들의 취미를 뛰어넘어 직업으로 자리잡을 때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동인제 극단의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였다. 산하의 노력은 창작극 발굴과 지방 공연의 시도로 나타난다. 창단공연은 손창섭의 소설 <잉여인간>을 희곡으로 각색한 공연(1963년 3월 14일~17일)이었다. <잉여인간>은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물질적 상처를 그린 작품이다. 창립공연 이후 산하는 차범석이 대표직을 맡고 운영위원장에 하유상, 운영위원으로 이기하, 김유성, 조기진, 임희재, 구민, 이순재를 지명하고, 최영일, 강부자, 조희자 등을 입단시켰다. 1964년 3월 차범석 작 <청기와집>을 이원경 연출로 상연하나 흥행에 실패한다. 이후 산하는 1965년 토마스 울프의 <천사여 고향을 보라>를 표재순 연출로 공연해 제2회 한국연극상 대상과 신인연출상, 주연상(이순재)을 휩쓸며 극단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한다. 1966년 산하는 차범석 작 <열대어>, 장 아누이 작·한상철 번역의 <베케트>, 차범석 작 <산불>을 올리며 창립 3년 만에 주요 극단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베케트>도 당시 뛰어난 흥행을 기록했지만, 산하의 대표작은 한국 리얼리즘의 최고봉 <산불>이라 할 수 있다. <산불>은 지방에서 먼저 순회공연을 가진 후 서울로 입성했는데, 당시 전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들끓게 했다. (……) 서울에만 편중됐던 연극 중흥의 불꽃이 번져가고 있다. 극단 산하는 제7회 공연으로 <산불>(차범석 작·연출)을 들고 지난 11월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광주 전주의 지방 공연을 열어 지방연극인들의 열렬한 갈채를 받았다. ‘산하’의 지방공연에는 광주에서 이틀 동안 6회 공연으로 1만 5천여 명의 관객이 몰렸다. 전주에서의 경우, 저녁 6시 30분 개막 예정이던 3회 공연은 5시경에 벌써 관객이 들어차 시간을 앞당겨 6시에 공연했을 정도. 이번 공연을 본 지방 연극인들은 한결같이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 - <한국일보>, 1966년 12월 8일 <산불>의 대성공 이후 극단 산하는 <장미의 성>(차범석 작, 표재순 연출), <고독한 영웅>, 신예작가 오학영의 <진흙 속의 고양이>, 차범석의 <대리인> 등을 연이어 공연한다. <장미의 성>은 제3회 3·1 연극대상을 수상했고 주연을 맡았던 천선녀가 연기상을 받았으며, <고독한 영웅>은 일본인의 작품을 공연하는 이색적인 시도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이외 산하에서 선보인 창작극으로는 윤대성의 <노비문서>, 최인훈의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등이 있다. 산하의 대표 차범석은 창작극과 지방공연을 통해 ‘연극 관객의 저변 확대를 꾀하여 모든 민중이 즐길 수 있는 연극을 지향하자’는 믿음을 초지일관 유지하며 극단을 선두 지휘했다. 하지만 산하는 열악한 연극계 풍토에 밀려 창단 20년 만에 1983년 3월 30일 제52회 공연<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를 마지막으로 자진 해산한다. (……) 우리의 연극 현실은 연극 운동을 하는 단계이지 진정으로 참 예술을 하기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난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연극이 레퍼토리 위주의 프로듀서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 적극적인 차원에서 정책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회생할 가능성이 있지 현재로는 병세가 너무나 악화됐다. 이대로는 저질 공연의 재생산이 반복될 뿐……. (……) - <예술가의 삶>, 차범석, 혜화당, 1993
잉여인간
<잉여인간>은 극단 산하의 창단 공연으로, 차범석은 이 작품의 선택에 대해 “과거의 정신적 빚을 청산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고 술회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만기치과의원에는 원장인 서만기와 간호원 홍인숙 외에 거의 날마다 출근하여 한담으로 소일을 하는 서만기의 중학교 동창인 채익준과 천봉우가 있다. 그런데 만기치과의원은 모두 봉우 처가의 소유물로 월세를 받으러 오는 것은 봉우의 처였다. 봉우의 처는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으로 집세를 핑계로 서만기를 유혹한다. 하지만 서만기는 점잖게 거절을 하고 병원을 떠나면 어떻게 살지를 고민한다. 한편 봉우는 인숙에게 눈길을 주느라 정신없고, 만기는 봉우 처뿐만 아니라 처제인 은주가 애정을 노골적으로 표시해 괴로워한다. 어느 날, 익준의 아들이 병원을 찾아와 어머니가 죽었음을 알린다. 만기는 채익준의 행방을 찾을 수 없자, 봉우의 처에게 돈을 빌려 익준 처의 장례를 치룬다. 익준 처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골목 어귀에서 익준이 나타난다. 일곱 살 먹은 그의 아들은 익준에게 새 옷 입고 자동차 타고 산에 갔다 왔다며 자랑한다. (……) 연극이 끝나기 직전에 너무 조급하고 많은 양을 아주 짧은 사이에 해결 짓는 무리를 자아내고 또 원작의 내용의 현실과 이 극을 보는 오늘의 현실과의 거리를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압축시켜주지 못한 등의 아쉬움을 남겨주었으나 세세한 기교로써 연극이 시작돼서 끝날 때까지 원작의 내용을 풍부하게 무대 위에 펼쳐놓고도 관객에게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은 것은 각색자와 연출자의 공이라 하겠다. 그리고 원작의 의도를 문학성보다는 음악성을 더 계산에 넣었다고 느껴지는 것은 무대 위에 나타난 것과 산하가 표방하고 나온 대중을 위한 극단이라는 것으로 충분히 짐작이 간다. (……) - <동아일보>, 1963년 11월 5일
산불
‘해방이후 사실주의 희곡의 최고봉’(유민영)이라 평가받는 차범석의 <산불>은 공연으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초연은 1962년 명동 국립극장의 개수와 더불어 재조직한 국립극단에서 공연됐으나, 차범석은 공연의 성공 이후 다음 해 산하를 조직해 사실주의 연극을 확립하려는 작업을 추진하며 <산불>을 대표 레퍼토리로 삼는다. 산하에서의 초연은 표재순 연출로 국립극장에서 1966년 11월 26일부터 12월 4일까지 이뤄졌다. <산불>은 산하가 내건 지방 공연의 활성화 취지 역시 실현시킨 공연이기도 하다. <산불>은 지방에서의 성공 뒤 서울로 입성하는 이례적인 사건을 만들었다. 이근삼은 <산불>이 로르카의 <베르나르 알바의 집>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며 그 해 최고의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진흙 속의 고양이
<진흙 속의 고양이>는 3·1문화상수상기념으로 오학영의 신작을 차범석이 연출을 맡아 올린 작품이다. 극단 산하의 드라마센터 진출작이기도 하다. (……) 이야기는 어느 신흥재벌이 그의 둘째 아들의 연인이던 비서를 후처로 맞아 아들을 낳는데서부터 얽혀 들어간다. 동생과 계모간의 애정관계를 눈치챈 큰 아들은 정신분열증이 발작, 계모의 아들을 죽이고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폭로한다. 한 가정은 쉽게 파탄에 빠져든다. 신흥재벌인 아버지가 대표하는 것은 황금의 우상이다. 젊은 계모는 섹스의 화신. 그리고 환각에 빠진 큰아들은 위선의 우상 때문에 파멸한 인간상. 연쇄적인 비극 속에서 몸부림치는 둘째 아들이 이 흥미있게 전개되는 드라마의 희망을 대표한다. 연출가 차범석씨는 극중에 마임을 도입, 상징적이고 환상적인 제3의 인물을 무대에 세우는 등 새로운 의욕을……. (……)
약산에 진달래
<약산의 진달래>는 차범석 작, 표재순 연출로 극단 산하의 20회 공연이자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이다. (……) <약산의 진달래>는 <왕교수의 직업> 이후 오랜만에 작가의 풍자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희극이란 점에서 기대를 모았었다. 과연 관객은 첫날부터 만원을 이루었고, 굉장한 웃음을 보냈다. 남자는 못믿겠다는 돈많은 과부 마여사가 경영하는 송학여관의 아래층과 내실 뒷골목으로 짜여진 무대 위에서 말괄량이 맏딸 옥단과 얌전한 둘째딸 금단을 중심으로 여관지배인 사환 살롱마담 여관에 드나드는 아베크손님 등 갖가지 인물이 풍경화되어 등장한다. 두 사람의 사기꾼이 마여사의 지나간 로맨스를 귀동냥해 듣고 재일 동포이며 옛애인의 아들이라고 속이는 사건이 줄거리를 이룬다. ‘약산의 진달래가 제 아무리 고와도’를 흥얼거리는 사환 용식의 건들거리는 연기와 대사들이 관객을 쉽게 웃기면서 그런대로 성공했다. 그러나 너무 단순한 폴로트와 전형화된 인물들의 지나친 연기가 이 작품에 대해 사랑스러운 눈길만을 보낼 수 없게 만들었다. (……) - <한국일보>, 1974년 4월 4일
청기와집
산하의 두 번째 작품. 차범석 작, 이기하 연출로 국립극장에서 1964년 3월 27일부터 31일까지 공연된 작품이다. (……) 서울서 기차로 다섯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황토골이란 마을에는 하참봉의 청기와집이 있다. 청기와로 상징되던 왕년의 영화는 이제 가버리고 몰락한 이 지주에겐 사기한이 찾아든다. 소작인 딸 사이에서 난 일룡이는 이 집을 이용하려다 형사에게 덜미를 잡히고 만다. 청기와집의 꿈을 다시 일으키려던 하참봉의 노력은 무너지고 남은 것은 좌절뿐이다. 대지주의 몰락을 그림으로써 현 농촌사회의 한 비극을 묘파하려 한 원작자 차범석씨는 희곡이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내세우며 그 재미는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희곡, 그리고 우리 한국 사람의 생활 감정이나 질서와 그리고 몸부림을 여실히 나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 - <동아일보>, 1964년 3월 27일
노비문서
<노비문서>는 작가 윤대성의 진가를 높인 대표적인 작품으로, 표재순 연출로 극단 산하의 19회 공연으로 발표됐다. 외적과 지배계층에 맞서 저항한 노비들의 애국심과 계급 해방 의지를 역동적으로 형상화했다. 특히 전통극의 노장과 취발이를 등장시켜 전통 연희 요소를 도입한 점이 주목을 끈다. (……) <노비문서>는 <미친동물의 역사>, <무너지는 소리>의 젊은 극작가 윤대성씨의 새 작품으로 현실의 갈등 속에서 패배하고마는 이상주의자를 그린 것. 고려시대 몽고군의 침략을 받은 충추성이 그 무대. 이 작품의 특색은 역사와 작중인물을 관조하는 코러스의 도입과 상징적인 동작, 노예들의 군중몸짓과 노래를 삽입함으로써 다양한 무대를 구성한 점이다. (……) - <한국일보>, 1973년 4월 19일
차범석 (1924~ )
1924년 전남 목포 출생으로 본관은 연안이다. 1966년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대불대학교에서 희곡창작 및 연극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밀주>가 가작입선되고, 1956년 같은 신문에 <귀향>이 당선됨으로써 등단한 후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하였다. 1956년 김경옥, 최창봉, 오사량 등과 ‘제작극회’를 창단해 소극장운동을 주도했으며, MBC 창립에 참여해 방송극 창작에도 관여했다. 1963년부터 1983년까지 김유성, 임희재 등과 극단 ‘산하’를 창단하고 대표로 활동했다. 1983년부터 1987까지 청주대학교에서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서울예술대학 등에서 강의했으며 2003년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70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1980년 성옥문화예술상, 1981년 대한민국연극제 희곡상, 1982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4년 동랑연극상, 1991년 대한민국문학상, 1993년 이해랑연극상, 1996년 금호예술상, 1998년 서울시문화상과 한림문학상, 2000년 삼성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1961년 창작희곡집 <껍질이 째지는 아픔 없이는>, 1969년 <대리인>, 1975년 <환상여행>, 1982년 <학이여 사랑일레라>, 1991년 <식민지의 아침>, 2000년 <통곡의 땅> 등과 1987년에 집필한 연극이론서 <동시대의 연극인식>이 있다. · 대표작품 <귀향> <불모지> <껍질이 째지는 아픔 없이는> <산불>
표재순 (1937~ )
서울 출생으로 1960년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ㄷ다. 1959년부터 연세대학교 극예술연구회에서 연출을 맡아오다가 1960년 아카데믹한 실험정신을 표방하며 실험극장을 창단했고 1963년 극단 산하의 창립단원으로 활동하였다. 사실주의에서부터 비사실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연출하였으며, 1966년 <천사여 고향을 보라>로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신인연출상, 1977년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로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연출상을 수상하였다. 1969년부터 1989년까지 MBC-TV 제작국에 있으면서 <대원군> <집념> 등 45편의 드라마를 기획 및 연출하였다. <오즈의 마법사>, <해상왕 장보고> 등 8편의 뮤지컬 작품과 <성춘향> 등 6편의 오페라를 연출하였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서울예술대학,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2000년부터 현재까지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연극 뿐만 아니라 제24회 서울올림픽 개폐막식 연출과 ‘광화문 2000’ 등 다양한 문화행사의 연출을 맡았다. · 대표작품 <제17포로수용소> <열대어>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빠담빠담빠담> <멕베드> <세일즈맨의 죽음>
리뷰
(……) 어느 골짜기 P부락을 무대로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하나의 비극을 어떤 프리미티브한 원형에까지 집약시켜 극화한 수작이다.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한 점례네와 사월이네의 초가집이 리얼하게 마련되어 있어 극의 분위기를 활성하는 데 효과적. 때로 남도 사투리가 연기자에 따라 서투른 데도 있었지만, 사투리가 지니고 있는 원형적 이미지가 이번 무대에서는 커다란 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월이에게서 좀더 짐승스러운 본능적인 체취가 아쉬웠고, 점례는 그런대로 자기의 페이스를 차분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 - <동아일보>, 1966년 11월 26일 (……) 꾸준히 지키고 키운 극의 대중화. 차범석이 쓰고 표재순이 연출한 <산불>은 인간의 욕망과 갈등을 묘파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비극과 휴매니즘을 고창하는 차원 높은 반공극이다. 세칭 과부마을은 육이오 사변을 겪은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산을 낀 고장이면 어디서나 이러한 비극은 있었다. 그것은 필경 무의식과 빈곤에서 오는 것이요, 그러기에 이 <산불>에서 볼 수 있는 비극은 곧 우리 자신의 슬픔이자 하나의 과제가 아닐 수 없으리라. (……) - <일간스포츠>, 1966년 12월 1일
관련도서
<우리연극 100년>, 서연호·이상우, 현암사, 2000 <예술가의 삶>, 차범석, 혜화당, 1993 <극단 산하 10년사> 브로셔, 1973
연계정보
-잉여인간
-노비문서
-차범석(車凡錫)
-유령(Gengang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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