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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舞鼓)

개요
무고(舞鼓)는 북춤을 추는 정재이다.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무고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를 소개하고 있다. “무고(舞鼓)는 시중(侍中) 이혼(李混)이 영해(寧海)에 유배(流配)되어 갔을 때 바닷가에서 물에 뜬 땟목을 얻어 그것으로 무고를 만들었는데, 그 소리가 굉장하였다. 그 춤은 즐겁게 돌아가는 것으로 하늘거리는 한 쌍의 나비가 꽃을 감도는 것 같고, 용감스럽게 두 용(龍)이 구슬을 다투는 것 같다. 악부(樂部)에서는 가장 기묘(奇妙)한 것이다.” 무고는 동동(動動)과 함께 고려 이래로 향악 정재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다소의 변화는 있어도 조선조 말기까지 궁중의 각종 연향에 두루 상연되었다. 1901년 <고종신축진연의궤(高宗辛丑進宴儀軌)> 정재악장에 따르면, “한나라 때 비무가 있었는데, 비는 소고(小鼓)이다. 대개 북 장단으로 춤을 춘다. 고려 때에 시중(侍中) 이혼(李混)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뗏몫을 주워 무고(舞鼓)를 만들었다. 인하여 시용향악(時用鄕樂)으로 삼았다. 여기(女妓) 4인이 각각 북채를 잡고서 악절에 맞추어 북을 치면서 춤춘다. 4인은 그 바깥에 둘러 서서, 나뉘어 협무대(挾舞隊)를 이룬다.”라고 하였다. 여러 기녀가 부르는 정읍사(井邑詞)의 가사이다. 전강(前腔): 달하 노피곰 도다샤 / 어귀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 어귀야 어강됴리 소엽(小葉): 아으 다롱디리 후강(後腔): 전(全) 져재 녀려신고요 / 여귀야 즌대를 드대욜세라 / 어귀야 어강됴리 과편(過篇): 어노이다 노코시라 금선조(金善調): 어귀야 내 가논대  졈그랄셰라 / 어귀야 어강됴리 소엽(小葉): 아으 다롱디리
내용
<악학궤범(樂學軌範) 권3> '고려사악지 속악정재'에 기록된 무고 정재의 진행순서는 아래와 같다. 무대(舞隊)가 악관(樂官) 및 기(妓)를 거느리고 남쪽에 선다. 악관은 두 줄로 앉는다. 악관 두 사람이 북과 대(臺)를 만들어 전중(殿中)에 놓는다. 여러 기(妓)들이 정읍사(井邑詞)를 부르고 향악(鄕樂)은 그 곡(정읍)을 연주한다. 기(妓) 두 사람이 먼저 나가 좌우로 갈라 북의 남쪽에 서서 북쪽을 향하여 절을 하고 끝나면 꿇어 앉아 손을 여몄다가 춤추기 시작한다. 으악 한 곡이 끝남을 기다려 두 기(妓)가 북채를 잡고 춤추기 시작하여 좌우로 갈라 서서 북을 끼고 한 번 앞으로 나갔다 한 번 뒤로 물러났다 한다. 그것이 끝나면 북의 둘레를 돌며 혹은 마주보고 혹은 뒤를 보이면서 빙글빙글 돌며 춤춘다. 채로 북을 치는데, 음악의 절차에 따라 장고와 더불어 서로 맞추어 나가며, 음악이 끝나면 춤도 멎는다. 음악이 다 끝나면 두 기녀가 앞서와 같이 엎드려 절하고 일어나서 물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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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도서
<한국음악학자료총서3 무자진작의궤>, 은하출판사, 1989 <정재무도홀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여령정재홀기>, 인남순·김종수 공역, 민속원, 2001 <한국무용개론>, 장사훈, 대광문화사, 1992 <한국전통무용연구>, 장사훈, 일지사, 1977 <고종신축진연의궤 권1, 한국예술학과 음악사료강독회>, 한국예술종합학교, 2001 <신역 악학궤범>, 이혜구 역주, 국립국악원, 2000
연계정보
-수제천(壽齊天)
-향악정재
-정읍사(井邑詞)
-고려사악지(高麗史樂志)
-악학궤범(樂學軌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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