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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천(壽齊天)

개요
<수제천>(壽齊天)은 <정읍>(井邑)이라고도 하며, <고려사> 악지와 <악학궤범> 권5 시용향악정재도의(時用鄕樂呈才圖儀) 무고정재(舞鼓呈才)의 반주로 쓰였고, 창사로 <정읍사>를 노래하였다. <정읍사>의 가사는 <악학궤범>에 전하는데, 조선 중기 이후로 가사는 부르지 않고 관악 합주곡으로 전승되었다. <정읍>의 가사는 전강(前腔)·후강(後腔)·과편(過篇)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악학궤범>의 <정읍>도 만기(慢機)·중기(中機)·급기(急機)의 세틀 형식을 갖고 있었고, 음악은 점차적으로 빨라졌음을 알 수 있다. 예전 왕세자 거동 등 의식음악으로 쓰였기 때문에 장단 길이는 신축성이 있으며 일정하지 않다. 국립국악원 악보가 한 장단 20박으로 되어 있지만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전통에서 비롯한다.조선말기의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는 무고정재에 <정읍>이 연주되지 않고 오히려 아박정재에 <수제천> 만기가 연주되었음을 볼 수 있고, 오늘날에는 처용무(處容舞)의 반주로 <수제천>이 사용되고 있다.
내용
<수제천>은 매우 느리면서 불규칙한 박자 구조로 이어지는 합주음악이며, <정읍>이라고도 한다. 느리면서 불규칙한 박자구조는 궁중을 중심으로 연주되었던 음악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인데, 이는 번음촉절(繁陰促節)을 피하고자 하는 전통 때문이다. 조선조 사회에는 춤의 반주나 왕세자의 거동 등에 쓰였으며 지금은 처용무의 반주음악으로 <수제천>이 쓰인다. 그러나 현재 무용반주음악보다는 순수 기악 합주음악으로서의 면모가 더욱 부각되어 있으며, 그 예술성도 널리 알려져 있다. 무고정재 때 창사로 불렀던 <정읍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강(前腔):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소엽(小葉): 아으 다롱디리. 후강(後腔): 전(全)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대랄 드대욜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과편(過篇): 어느이다 토코시라. 금선조(金善調): 어긔야 내가논대 점그랄세랴/ 어긔야 어강됴리 제1연에서는 행상을 나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무사안녕을 달에게 기원하는 간절한 발원으로부터 시작된다. 제2연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소식을 몰라 애태우며, 불안과 의심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마음의 안정을 희구하는 가냘픈 여심(女心)이 나타난다. 제3연은 남편의 신변에 대해 겉잡을 수 없는 불안과 의구심으로, 행상을 해서 버는 돈도 재물도 아랑곳없이 한시바삐 남편이 무사하게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드러나고 있으며 걱정과 애원의 말로써 끝을 맺고 있다. <수제천>의 1·2장은 남려·황종·태주·고선·임종의 라음계이고, 3·4장은 임종·남려·황종·태주·고선의 솔음계이다. 1·2장은 남려가 시작되는 음[起音]이 되는 점에서 <빗가락 정읍>이라 하는데, 3·4장에서는 임종이 시작되는 음이 되는 솔음계로 바뀌며, 특히 4장은 임종으로 끝나고 있어서 라음계에서 솔음계로 바뀌려는 경향이 보인다. 장고의 패턴은 ‘기덕·쿵·기덕·쿵·덩더르르르’로 일정하게 유지되나, 박자 구조는 불규칙하다. 악곡의 구성은 모두 4장으로 구성되어 기승전결을 이룬다. 1·2·3장은 여섯 장단, 4장은 두 장단이며 각 장의 장단 끝에는 대금의 연음(連音)이 길게 붙는다. 2장은 첫 장단을 제외하고 1장의 반복이어서 환두(還頭)·환입(還入) 형태를 이루며, 3장은 1장의 가락이 완전히 4도 올라간 곳이 많아서 절정을 이룬다. <수제천>의 악기편성은 향피리·대금·소금·해금·아쟁·장고·좌고의 단잽이로 편성되며, 경우에 따라서 복수, 확대편성할 수도 있다. <수제천>의 악기 편성에는 현악기인 해금·아쟁이 끼지만, 전통음악에서 이런 편성은 관습적으로 관악합주로 불린다. 지휘자없이 연주자간의 호흡으로 선율이 이어지는 <수제천>은 박자개념보다는 장고의 패턴이 선율을 이끄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선율의 진행에 내재된 몇몇 연주형태적 특징을 가려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덕·쿵’으로 갈라치는 장고 패턴에서 곡 전체의 속도가 감지되며, 정해진 장고 패턴에 따라 연주자간의 호흡을 맞춘다. 둘째, 피리가 음을 길게 끌다가 끝박을 떨거나, 길게 끈 음 끝에 장식음군을 만들면 장고 이외의 다른 악기가 이를 신호로 다음 가락으로 넘어간다. 셋째, 피리가 한 가락을 연주하고 쉬면 그 뒤를 대금·소금이 장식음군을 이루며 가락을 이어 받는다. 이때 해금·아쟁은 길게 끄는 음으로 이를 따른다. 이처럼 피리와 해금군이 교대로 가락을 이어가며 연주하는 방식을 연음(連音)이라 한다. <악학궤범>의 <정읍사>와 <대악후보>의 <정읍>과 오늘날의 <수제천>을 비교하면 형식이 대체적으로 일치하는데, 전강(前腔)은 오늘날의 1장, 후강(後腔)은 오늘날의 2장에 해당하고, 과편(過篇)은 3장의 1·2장단, 금선조(金善調)는 3장의 제3·4·5·6장단, 즉 1장을 4도 높게 변조한 부분과 비교될 수 있다. 따라서 금선조란 금(金)자의 훈(訓)인 ‘쇠’와 선자의 종성(終聲)인 ‘ㄴ’을 취한 ‘쇤가락’ 즉 ‘쇠어서 부는 가락’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겠다.
악보정보
<대악후보> 수제천의 악보는 <대악후보>(大樂後譜) 권7에 <동동>과 함께 전한다.
관련도서
국악대사전, 장사훈, 세광음악출판사, 1984. 전통음악개론, 김해숙·백대웅·최태현 공저, 도서출판 어울림, 1997. 최신국악총론, 장사훈, 세광음악출판사, 199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1991. 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일조각, 1984.
용어해설
* 빗가락 정읍<빗가락정읍>이란 곡명은 <세가락정읍(三指井邑)>인 〈동동>(動動)과 구별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된다. 빗가락이란 <악학궤범> 향부악기도설(鄕部樂器圖說) 현금조(玄琴條)에 의하면, 일지(一指)·이지(二指)·삼지(三指) 등과 함께 조(調, key) 이름의 하나로 소개되어 있는데, 이칙(夷則, B)과 남려(南呂, C)를 주음(主音, Tonic)으로 삼는 조를 횡지(橫指) 즉 빗가락이라 하였다. 그러나 일설에는 “관악기를 한 구멍씩 치켜잡고 연주하기 때문에 빗가락정읍이라 한다.”라고도 하였다.* 연음<수제천>은 연음(連音)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피리가 주선율을 연주하면 대금 · 소금 · 해금 · 아쟁 등이 그 가락을 이어 받아 연주하는 기법으로 궁중음악의 관악합주곡에서 사용되는 기법이다* 무고향악정재(鄕樂呈才)에 속한다. <고려사> 악지(樂志)에 고려 25대 충렬왕 때 시중(侍中) 이혼(李混)이 영해(寧海)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바다 위에서 부사(浮査)를 얻어 이로써 큰 북을 만들었는데, 그 소리가 매우 컸으므로 이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려 때는 북을 하나 놓고 두 사람이 추었으나, 조선 성종 때에는 춤추는 사람의 수효대로 북의 수효도 맞춰 4고무(四鼓舞) ·8고무(八鼓舞) 등으로 발전하였다. * 정읍사<정읍사(井邑詞)>는 작자 · 연대 미상으로 백제시대부터 구전해 온 민간전승의 가요로서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가사 본문 중 ‘全져재’의 ‘全’자를 전주(全州)의 지명으로 보고, 백제시대의 완산주(完山州)를 756년(신라 경덕왕 15)에 전주로 개명한 사실을 근거로 하여 경덕왕(742∼764) 이후 내지는 고려시대 구백제지방의 민요로 보기도 하며, 또한 무고정재(舞鼓呈才)때 <정읍사>를 가창하였다는 기록을 근거로 하여 고려 충렬왕 때(1274∼1308) 전후의 노래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무고’와 <정읍사>와의 관계는 고려속악정재 때 이곤(李混)이 지은 무고라는 악곡에 얹어 불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연계정보
-무고(舞鼓)
-정읍사(井邑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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