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문화포털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문학)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해동가요(海東歌謠)

문헌명
해동가요(海東歌謠)
저자
김수장(金壽長)
개요
조선 영조(英祖) 때의 가객(歌客) 김수장(金壽長)이 편찬한 필사본 2권 1책의 가집. <청구영언>·<가곡원류>와 더불어 3대 시조집으로 일컬어진다. 1746년(영조22)에 편찬에 착수, 1763년 초찬(初纂)을 수정, 보완하여 개찬(改纂)을 완성하였으며 그 뒤에도 1769년까지 계속 개수(改修)하였다.
저자
김수장(金壽長, 1690∼?)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 완산(完山: 지금의 全州) 출신. 자는 자평(子平), 호는 십주(十洲, 十州) 또는 노가재(老歌齋). 숙종조에 기성(騎省)의 서리(書吏)를 지냈다. 김천택(金天澤)과 더불어 숙종·영조 시대를 대표하는 쌍벽의 가인이다. 몰년은 자세하지 않으나 그가 1769년(영조 45)까지도 자신이 편찬한 가집의 보수작업을 한 것으로 보아 80세가 넘도록 생존하였음이 분명하다. 그가 시가문학사에 남긴 업적을 정리하면 첫째, 조선시대 3대 시조집의 하나인 <해동가요(海東歌謠)>를 편찬했다는 점이다. 즉, 김천택의 <청구영언(靑丘永言)>과 제2차 청구영언이라 할 <해동가요록(海東歌謠錄)>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1755년에 을해본(일명 박씨본)을 처음 만들었으며 1763년에 이를 고쳐 계미본(일명 주씨본)을 편찬하였다. 둘째, 1760년에 서울 화개동(花開洞)에 노가재(老歌齋)를 짓고 가악활동을 주도해 나감으로써 노가재가단(老歌齋歌壇)을 이끌었다는 사실이다. 셋째, 시조작가로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으며 특히 사설시조를 익명으로 하지 않고 이름을 당당히 밝혀 창작한 최초의 작가라는 점이다. 현재 전하는 작품으로는 <해동가요> 을해본에 16수, 계미본에 117수, <청구가요>에 3수, 기타 가집에 5수가 있는데 이 중 중복된 것을 빼면 총 129수가 된다. 작품의 특징은 세 계열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평시조 형태에 담은 것으로 작가의 인격적 목소리로 근엄한 주제를 엄숙하게 노래한 부류다. 여기에는 계심(戒心)·수분(守分)·자적(自適)을 내용으로 한 것이 많으며 충(忠)이나 신(信) 등 유교 윤리와 직접 관련된 것도 포함된다. 사대부층 지향의 의식세계를 보여준다 할 수 있으나 이데올로기적·관념적 취향이 다소 탈색되어 있다는 점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둘째는 남녀의 애정관계나 서민의 생활감정을 사설시조 형태에 담아 적나라하게 나타낸 작품이 상당히 많다. 사설시조는 일종의 허튼 소리로 언어유희나 언어폭력을 휘두르거나 수다스런 사설의 확장을 통해 ‘사설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익명으로 짓고 향유하는 경우가 관례인데 김수장은 중서 가객층 가운데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밝히고 창작한 최초의 사설시조 작가로서 특히 주목된다. 김천택은 사설시조를 단 1수도 짓지 않은 데 비해서 김수장은 39수나 남긴 점에서도 대조적이다. 셋째는 호걸풍의 풍류 가객으로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가악생활과 관련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는 것이다. 특히 “노慊枷치 됴코 됴흔 거슬 벗님鑑야 아돗던가……”라는 작품을 통해서는 당시 가곡창이 어떤 곡목의 레파토리로 어떻게 향유되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즉 중대엽으로부터 시작해서 삭대엽을 거쳐 낙시조와 소용, 편악의 순서로 ‘엇결어’ 불렀음에서 조선 말기의 가곡창 한바탕을 연상케 하는 원형적 모습을 볼 수 있다.
내용과 특징
<해동가요(海東歌謠)>의 이본으로는 박씨본(朴氏本)·일석본(一石本)·주씨본(周氏本)·U.C본(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y에 소장) 등 4종이 있다. 이 중 일석본은 표지에 ‘해동풍아(海東風雅)’라 하고 본문의 서두에는 ‘해동가요’라 하였다. 주씨본은 주시경(周時經)이 교열·교정한 것으로 최남선(崔南善)이 소장하여 육당본(六堂本)이라 일컫기도 한다. 일석본과 주씨본은 6·25 때 소실되었다. 일석본의 전사본(轉寫本)으로 조윤제(趙潤濟)와 이재수(李在秀)의 두 전사완본(傳寫完本)이 있다. 정병욱(鄭炳昱), 김근수(金根洙)가 각각 무명씨를 전사한 것이 전한다. 박씨본에 의하면, <해동가요>는 1754년(영조 30)에 편찬자가 가집 편찬을 거의 완료하고 자신의 서문을 썼고, 그 다음해 장복소(張福紹)와 자신의 발문을 첨가하여 편찬을 완결하였다. 이 초찬본을 을해본(乙亥本)이라 하나 전하지 않는다(박씨본은 이것의 전사본으로 추정). 이 본을 수정, 보완하여 1763년에 제2차본이라 할 개찬본을 내니 이를 계미본(癸未本)이라고 한다(일석본은 이것의 전사본으로 추정). 편자는 계미본을 완성한 이후에도 수정과 보완을 계속하여 1767년 시조 <봉하친경친잠(奉賀親耕親蠶)> 2수를 지어 본편에 보충하고, ‘각조체격(各條體格)’과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의 명단을 작성하여 책 끝에 붙이고, ‘청구가요(靑邱歌謠)’라는 부편(附篇)을 엮어 권말에 수록했다. 이것이 제3차본이라 할 정해본(丁亥本)이다(주씨본과 U.C.본은 이것의 전사본으로 추정). 이러한 수정과 보완의 노력은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음이 1769년에 김중열(金重說)과 박문욱(朴文郁)이 쓴 <청구가요> 후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체재는 작자 위주로 유명씨와 무명씨로 나누어 작품을 싣되, <청구영언>처럼 악곡도 함께 고려하였다. 여러 이본 중에서 주씨본의 체재를 보면, 권두에 김수장 자신이 쓴 <해동가요서>에 이어 <각조체격>·<가지풍도형용14조목(歌之風度形容十四條目)>·<각가체용이별부동지격(各歌體容異別不同之格)>·<작가제씨(作歌諸氏)> 등을 밝히고 그 다음에 작품을 곡목과 관련하여 수록하였다. 권말에는 장복소의 발문에 이어서 고금창가제씨의 명단 56인을 나이순으로 기록하였다. 작품의 배열을 보면 작가와 곡목을 아울러 고려했으며, 주씨본과 U.C.본은 대체로 일치한다. 유명씨를 보면, 박씨본은 악곡에 따라 초중대엽(初中大葉)·이중대엽(二中大葉)·삼중대엽(三中大葉)·북전(北殿)·이북전(二北殿)·초삭대엽(初數大葉) 등 6개의 곡목을 제시하여 각 1수씩의 작품을 들고, 이어서 이삭대엽이 와야 할 자리에는 진본(珍本) <청구영언>처럼 곡목을 밝히지 않았지만 열성어제(列聖御製)·여말(麗末)·본조(本朝)의 세 부문으로 나누어 작가별로 작품을 배열하였다. 일석본과 주씨본은 본문 앞머리에 6개의 곡목을 제시한 것과 초삭대엽까지는 박씨본과 같으나, 이삭대엽을 명기한 것이 다르다. 주씨본에서는 박씨본과 같이 본문에 열성어제·여말·본조라는 표시가 있는데, 일석본에서는 이러한 표시 없이 작품을 나열하였다. 작가 배열은 대체로 시대순으로 되어 있다. 무명씨부는 곡목별 배열을 했으나, 주씨본은 건(乾)편만 전하고 곤(坤)편이 전하지 않아 무명씨 작품은 1수도 없다. 즉, 박씨본은 접소용(接騷聳)·낙시조(樂時調)·만수(蔓數)의 3항목으로 배열되고, 일석본에서는 삼삭대엽(三數大葉)·낙시조·편락시조(編樂時調)·소용(騷聳)·편소용(編騷聳)·만삭대엽(蔓數大葉)의 6항목으로 늘어났다. 수록된 작품 수는 유명씨의 경우 박씨본이 311수이고, 일석본은 321수(이재수본에 의함), 주씨본은 568수이고, U.C.본은 475수이다. U.C.본 역시 무명씨 작품은 단 1수도 없다. 작가 수는 박씨본이 93명이고, 일석본이 84명, 주씨본이 97명, U.C.본이 99명이다. 박씨본에 실려 있는 93명 가운데 주씨본에 빠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여기에 이정보(李鼎輔)·조명리(趙明履) 등 후대인 약간 명이 추가되고 수록 작품 수는 대폭 늘어났다. 특히 김천택(金天澤)과 김수장의 작품이 대폭 증가되었다. 무명씨부의 작품 수는 박씨본이 202수인데 비해 일석본은 315수로 대폭 증가되었다. <해동가요>는 <청구영언>·<가곡원류>와 더불어 시조가 수록된 3대가집에 속한다. 풍부한 작품의 수록은 물론, <청구영언>과 <가곡원류>의 교량적 위치에서 후대 가집의 편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당시대까지 활동하던 가객의 명단을 작성한 것과 시조를 얹어 부르는 악곡의 풍격과 특징을 제시한 것은 시조 음악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다만 세 차례에 걸쳐 편찬된 <해동가요>의 원전이 그대로 전하는 것은 없고 그 전사본만 남아 있는 실정이어서 원전 출현이 기대된다. 박씨본은 1979년 규장문화사(奎章文化社)에서 영인되었고, 이재수의 전사본은 동광문화사(東光文化社)에서 <고전문학선>에 수록하여 영인되었다. 주씨본은 1930년 경성대학에서 인쇄되었고, 이를 1974년 아세아문화사(亞細亞文化社)가 영인하기도 하였다. 교주본으로는 1950년에 김삼불(金三不)이 일석본의 유명씨부와 주씨본을 교합하여 정음사(正音社)에서 <해동가요>로 출판한 것이 있다.
연계정보
-가곡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가곡원류(歌曲源流)
-청구영언(靑丘永言)
관련멀티미디어(전체0건)
이미지 0건
문화홍보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