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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소설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산문 또한 출간될 때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찾아 읽는 독자군을 형성하고 있는 노(老)작가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제목처럼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닿지 못했던 것들을 향한 박완서식 입심이 이 책에서 황홀하게 펼쳐진다. 그는 여전히 까다롭고 짱짱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는 작가다. ‘또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내 자식들과 손자들에게도 뽐내고 싶다. 그 애들도 나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라고 책 머리말을 쓴 그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이 문장들이 휘몰아쳐 간다. 그가 어떻게 그렇게 오래 ‘정신의 탄력’을 잃지 않고 팔순이 다 되는 지금까지 어느 젊은 작가 못지않게 작품 활동을 해왔는지의 토대가 드러날 때면 경건해지기도 한다. 자서전격으로 읽어도 좋을 대목들이 수두룩하고 죽비로 등을 얻어맞는 듯한 따끔한 비판이 수두룩하고 노년의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의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생명들을 향한 예찬이 또한 음표처럼 수두룩하게 불려 나온다. 친구에게 가족에게 후배에게 망설임 없이 권할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한다면 거기에 박완서라는 이름과 박완서가 쓴 글처럼 적격인 경우도 드물다. 그는 명분이 있다 하여 무작정 받아들이지도, 옳지 않다고 하여 날을 세워 비판하지도, 해결되지 않는 쪽에 서 있다 하여 그저 옹호하거나 감싸지도 않는다. 그에게 무조건이라는 게 있다면 살아 있는 것들을 향한 감탄이다. 그 감탄은 그저 나온 게 아니다. 시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정리될 틈도 없이 진군해 온 불행에 쓰러지지 않고 그 불행을 껴안거나 딛거나 자신도 모르게 극복하면서 오늘날까지 새로운 글을 써내고 있는 노작가가 내지르는 감탄이라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주었다’고 하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일 터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피터 L. 번스타인/ 김승욱
금은 철이나 구리와 다름없는 한낱 금속일 뿐이다. 그런데도 금은 우리의 영혼을 온통 뒤흔들어버릴 만큼 엄청난 마력을 갖고 있다. 그 동안 동서고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금 때문에 미친 사람처럼 웃다가 지옥에 빠진 사람처럼 울부짖었는지 상상해 보라! 그 하찮은 금속을 얻기 위해 귀하디귀한 목숨까지 휴지조각처럼 버린 사람도 부지기수로 많았다. 이 책은 이와 같은 금의 엄청난 마력이 빚어낸 수많은 사건들을 얘기해 주고 있다. 피터 번스타인이 들려주는 금에 얽힌 이야기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흥미진진하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모아놓을 수 있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는 이 책 말고도 비슷한 성격의 수많은 책을 썼다. 전문적인 이야기를 일반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해주는 그의 능력은 그야말로 발군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의 열렬한 팬이 되어 있었다. 이 책 역시 나의 기대를 100% 이상 채워주고 있다. 이 책을 추천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너무나도 재미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소설을 읽을 때의 재미 이상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많은 것을 배운다는 부수적 이득까지 얻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금의 역사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인간들이 사용해 온 화폐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음으로써 간략한 경제사의 강의를 듣는 셈이 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의 원저는 2000년에 나와 이미 10년 정도의 나이를 먹은 책이다. 그러나 주제의 성격상 이 나이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로 어제 나온 책처럼 새롭다는 느낌까지 준다. 사실 정말로 좋은 책은 나이와 관계없이 영원히 사랑을 받는 법이다. 이 책도 그와 같은 행운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독자가 책을 펴서 읽을 때 생생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김은국/ 도정일
김은국의 『순교자』는 46년 전에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던 책이다. 영어로 먼저 쓰여졌다는 얘기다. 출판당시 순교자는 언론과 서평자들로부터 ‘도스토옙프스키’, ‘카뮈’의 위대한 전통위에 있다는 평가와 더불어 ‘20세기 작품군에 포함될 만한 눈부시고 강력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사이 작가는 타계했고 1964년에 첫 한국어판이 나온 후 지금 다시 세계문학선집에 섞여 재출간됨으로써 『순교자』의 명성을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독자들에게 확인 혹은 재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순교자』는 6.25라는 특수한 우리의 민족사적 배경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적 보편적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한 작품이다. 남북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문제를 넘어 신이 사라진 시대에, 신이 침묵하고 있는 시대에 인간의 구원가능성을 묻고 있는 『순교자』는 그 묵직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간의 대화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어 읽는 속도감이 매우 빠르다. 마치 무대 위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할 뿐 아니라 서사의 속도가 거칠 것 없이 빨라서 한 권의 책을 읽는 시간이 단숨으로 느껴질 정도다. ‘인간이 당하는 고통에 과연 의미가 있는지’의 질문을 끝까지 천착해가지만 ‘순교자’의 진실들은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밝혀질 듯이 그러나 밝혀지지 않는 ‘난처한 진실’들 속으로 읽는 이조차 공범자가 되어 빠져드는 순간들을 통과해 나고 난 뒤에 찾아 드는 허무. 그러나 그 허무를 뚫어내는 인간을 향한 이해와 존중, 우리가 진리라 믿는 것들의 낯선 미스터리들과의 조우를 통한 생의 이면들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박찬승
이 책은 마을에서 벌어진 갈등과 상호 학살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분석한 한국전쟁의 미시사이다. 이 책은 저자가 전라남도와 충청남도에 소재한 다섯 마을을 분석대상으로 삼아 10여 년간 해당 지역을 현장 답사하며 관련자 구술을 채록하고 희생자 씨족 가문의 족보까지 꼼꼼히 조사하여 얻은 연구 성과물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반도 전체에서 마을공동체라는 구체적 공간으로 좁힘으로써, 그동안 거시사 연구가 놓쳐왔던 마을 주민들 간의 신분·이념·종교·토지소유 등의 갈등까지 세밀하게 짚어낸다. 이를 통해 저자는 한국전쟁기 마을에서의 갈등 원인을 주로 이념과 계급 갈등으로 한정지어왔던 기성 학계의 통념에 도전한다. 저자는 민간 차원의 갈등과 학살의 주된 원인을 지주-소작인 간의 계급 갈등에 더하여 친족 내부의 갈등, 마을 간의 갈등, 기독교도와 사회주의자 간의 종교·이념 갈등과 같은 복합적 갈등구조에서 찾는다. 이 연구를 통해 저자는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남부지방에서 일어난 지방봉기의 원인을 지주-소작인 간의 계급 갈등으로 기술하고 있는 논점이 정확한 현실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마을에 잠복해 있던 민간차원의 갈등이 남북한 국가권력의 침투와 맞물려 비극적인 충돌과 학살로 귀결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면서, 오늘날 남북관계나 한국사회에서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능력이 과연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되묻는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한 해에 출간된 이 책은 한국전쟁에 관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군터 파울리/ 이은주 외
이 책의 저자 군터 파울리(Gunter Pauli)는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전 세계 지식인들의 모임인 로마클럽의 초창기 회원으로 활약했다. 로마클럽은 더 이상의 성장이 환경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올 것임을 경고한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라는 책을 출판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의 성장을 자제해야 한다는 결론은 사람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태도를 180도 바꿔 성장과 환경 보호가 양립가능한 명제라고 말한다. 4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는 녹색경제(green economy)를 대체할 ‘청색경제(blue economy)’를 주창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녹색경제는 환경 보호라는 목표의 달성을 위해 기업과 소비자에게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문제점을 갖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청색경제에서는 환경을 보호하면서 더 큰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청색경제의 핵심이 생태계의 지혜를 활용하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생태계는 우리의 파괴적인 생산과 소비 모형을 좀 더 생산적인 것으로 바꿔나가는 데 필요한 영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흰개미로부터 냉난방 없이 건물 안의 공기를 끊임없이 신선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얼룩말의 줄무늬에서 기계적 통풍장치 없이 표면온도를 낮추는 원리를 알아낼 수 있다. 생태계에서 지속가능성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사례로 저자가 들고 있는 예는 이것 말고도 수없이 많다. 10년 안에 100가지의 혁신기술로 1억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과장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와 같은 비전이 제시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뿌듯함을 느낀다. 지구온난화니 생물다양성의 파괴니 하는 우울한 뉴스만 접해 오던 우리로서 이런 희망적인 비전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서 성장과 환경 보호의 양립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이기영 글, 서공임 그림
외교학과를 나와 발전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어느 날 도자기에 빠져 도예가가 된 필자가 그동안 사랑했던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거기에 현대적 미감으로 민화를 다시 창조해내고 있는 작가 서공임의 작품 80여 점이 함께 우리를 매료시키는 책, 『민화에 홀리다』는 단연 이 달에 추천할만한 맛깔스러운 책이다. 필자 이기영의 글을 읽는 동안 그의 글이 매우 민화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생동감과 풍부한 휴머니즘이 배어나온다. 이 책 53페이지, ‘새로운 종의 출현’이라는 장에 있는 서공임의 그림 도판을 보면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도판에는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는 소나무가 있고, 겸재 정선이 그린 소나무, 궁중양식의 소나무가 있다. 그리고 민화에 등장하는 소나무들이 그려져 있다.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미적 유형의 다양함이 참으로 흥미롭게 한 작품에 나열되었다. 이 책은 당대의 기층문화로 홀대를 받아온 민화의 역사가 예술이라는 그릇 안에서 결코 차별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배우지 못해 자유로울 수 있었던 화풍, 데생이나 스케치의 격식과 화법은 못 배웠지만 재능이 그려내는 풍부한 일상의 색감이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민화의 탄생과 19세기 우리네 삶에 깊이 들어와 있던 민화의 현장을 드러내기 위해 필자는 당대의 판소리 사설, 조선의 직업 화가들의 기록들이 담겨있는 문헌들, 그리고 소설 등의 텍스트를 다양하게 인용, 도입했다. 소설과 판소리 사설들이 민화의 현장이라는 측면에서 조망된 것이 흥미롭다. 17세기 이래 대대로 내려오던 화원 가문들과 19세기 말 그림공장을 차렸던 인물들, 18세기 강희언의 집 안에 차린 그림공방에서 밀려드는 주문을 맞추기 위해 김홍도와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 등이 그림을 그린 이야기 등도 이 책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 중에 하나다. 이 책은 누구나 한 권 가지고 있으면 아주 좋을 책이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김동진
이승만에 관한 평전을 쓴 바 있는 필자도 헐버트(1863~1949)는 이름은 알아도 더 이상은 잘 모르는 미지의 미국인일 뿐이었다. 물론 독립운동 과정에서 우리 민족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특히 이승만대통령에게 직간접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정도는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헐버트가 사랑한 조선, 한국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기 쉬우면서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국 이름은 흘법(訖法) 혹은 할보(轄甫)였던 헐버트가 1886년 5월21일 벙커, 길모어 부부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조선에 도착한 것은 7월4일. 벙커나 길모어 부부 모두 청년 이승만의 개화정신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이 시절 이승만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곧 대한민국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이 때부터 20년간 한국에 살면서 헐버트가 보여준 활동의 범위는 말 그대로 눈부셨다. 교육자이자 한글학자, 역사학자이자 언론인, 선교사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 그는 고종을 위해, 서재필을 위해 그리고 이승만을 위해 헌신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어찌 보면 어지간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헐버트. 우리는 그를 너무도 몰랐다. 다행히 국제 금융계에서 활동한 저자가 이 헐버트의 삶을 오롯이 복원했다. 이 작업을 통해 그나마 예전에 양화진 외국인 묘지를 찾았을 때 헐버트의 묘를 발견하고 죄송스러웠던 기억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헐버트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친구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매니 하워드/ 남명성
이 진귀한 책을 읽기 위해서는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먼저 푸드마일(foodmile). 1991년 런던 시티대학의 팀 랭 교수가 만든 이 용어는 먹을거리가 생산자에서 소비자까지 이르는 이동거리를 뜻한다. 먹을거리는 사는 곳에서 키우고 만든 음식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생산한 것보다 낫다는 전제에서 이 개념이 나왔다. 유기농이라고 해도 160킬로미터 바깥이면 별로 좋지 않다. 다음은 로커보어(Locavore). 지역을 뜻하는 ‘Local’과 라틴어 ‘먹다’의 ‘vore’의 합성어다. 앞서 말한 푸드마일의 실천자 그룹으로, 자신이 사는 주변 지역에서 난 먹을거리를 섭취하려 애쓰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마지막으로 웬델 베리(Wendell Berry). 미국의 시인이자 농부, 문명비평가이다. ‘삶은 기적이다’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 없다’ 등의 저술가로 잘 알려져 있다. “땅이 제대로 쓰이려면 땅을 쓰는 사람이 땅을 잘 알아야 하고, 땅을 잘 쓰겠다는 마음이 커야 하고, 땅을 잘 쓸 시간이 충분해야 하고, 땅을 잘 쓸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명문을 남겼다. 이 정도면 책의 성격을 짐작하는 데 어렵지 않겠다. 뉴욕에서 요리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던 저자가 로커보어를 자처하면서 푸드마일 실험에 도전했다. 직업으로 미뤄 음식에 일가견이 있고, 도심에 살면서 가장 가까운 곳의 식재료를 추구하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집 뒷마당에 눈길이 꽂혔다. 마당을 갈아엎어 농사를 짓고, 축사(畜舍)를 손수 지어 가금(家禽)을 기르면서 진행한 농장 6개월 프로젝트의 결과는? 참담한 실패다. 교본을 따라 해도 이상하게 작물은 자라지 않았고 가축은 쉽게 배반했다. 토네이도가 농장을 때려 쑥대밭을 만들었다. 그런 곡절 끝에 첫 만찬에 올라온 찬거리는 구운 닭 반 마리와 콜라도 그린(Collard green, 배추 비슷하게 생겼다), 토마토 세 조각. 땅의 정직함, 계란 하나와 가지 한 조각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책 중간 중간에 배치된 사진이 실험의 치열함을 말해준다. 배수로를 확보하기 위해 가슴팍까지 구덩이를 파는 모습, 닭을 잡아 털을 뽑아 요리하는 장면 등이 서바이벌 게임의 치열함을 말해준다. 가장 극적인 후일담은 아내에 대한 감사의 글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히스와 제이크를 품에 안고 떠나지 않은 아내가 고맙다”. 마당에서 뛰노는 닭을 보기는커녕 고구마 하나 제 손으로 캐보지 않았으면서 식탐에 젖은 사람이 읽으면 쿵∼ 감동이 내려앉을 책이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이억배 글, 그림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3년간의 한국 전쟁! 1953년에 휴전을 표시하는 군사분계선이 그어졌고, 그 선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 각각 2km 뒤로 물러난 자리에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이 세워졌다. 두 철책선 사이 4km 구간인 ‘비무장지대’가 생긴지 57년 만에 이를 담은 그림책이 나왔다. 이 그림책은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작가와 출판사가 함께 기획한 ‘평화그림책’ 중 한 권인데, 작가 이억배는 따뜻하고 정겨운 그림에 통일에 대한 희망을 담았다. 그림책은 계절별 동식물의 모습, 군인들의 모습,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반복해서 병치시킨다. 이런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뚜렷하게 구분된 세 가지 정서를 다면적으로 느끼게 하여 작가의 통일 염원에 공감하게 한다. 봄의 경우를 예로 들면, 파릇파릇한 새싹이나 백령도 앞바다에서 헤엄치는 점박이물범은 평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반면, 비무장지대의 철조망 바로 너머에서 허물어진 진지를 다시 쌓고 녹슨 철조망을 수리하는 군인들은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와 동시에,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한 채 층계 저 멀리 보이는 전망대를 막 오르려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슬픔의 정서를 끌어올린다. 비무장지대 동식물들의 자유로움,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한 군인들의 경계심, 할아버지의 고향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 이 세 가지의 모티브가 계절 변화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므로 안타까움은 점점 더 커져간다. 그러다 이런 장면 구성이 크게 바뀌면서 대반전이 일어난다. 자물통으로 굳게 닫혀있던 철문은 책장이 양쪽으로 펼쳐지면서 활짝 열린다. 매 계절마다 층계를 힘겹게 올라 고향 땅을 눈으로만 보던 할아버지는 드디어 손자의 손을 잡고 그 땅을 밟는다. 그곳에서 손녀의 손을 잡은 또 다른 실향민 할아버지와 하나 되어 얼싸안는다. 이 그림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인 한국전쟁이나 비무장지대, 그리고 통일 문제에 대해 어린이들과 무릎을 맞대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는 그림책이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이현
정이현은 『낭만적 사랑과 사회』 라는 단편소설로 2002년도에 등단했다. 아직 작가생활 10년이 되지 않은 젊은 작가지만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녀의 전작들로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 『달콤한 나의 도시』, 『오늘의 거짓말』 등이 있는데 이 작품들을 통해 정이현은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젊은 여성들의 풍속도를 그려냈다. 정이현의 여성 주인공들은 기존의 문학 텍스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로 잰 듯하고 얄미울 만큼의 타산적인 내면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먼저 눈에 띄었다. 그러나 소설은 현실을 절대적으로 딛고 서 있는 산물이기에 그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현대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해서 공감과 주목 또한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너는 모른다』는 정이현의 두 번째 장편소설인데 그녀의 전작들과는 다른 선상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경쾌하고 아포리언적인 느낌이 줄어든 대신 삶에 대한 성찰이 깊이 있게 담겨져 있다. 추리소설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계속 뒤가 궁금해서 읽히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 가족소설이지만 누구 한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다.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오월의 어느 일요일 한강변에 남자 시체 한 구가 떠오르고 과연 그가 누구냐! 하는 질문을 가지고 출발한 소설은 통속적인 기대를 저버리고 곧장 가족 이야기로 진입한다. 외부에서 보기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며 오히려 잘 살고 있는 듯이 여겨지는 중산층 가정 내의 가족 구성원들이 제각각 자신의 삶을 한 장씩 내보이며 소설은 진행된다. 서로 모르고 있던 삶들이 묵직한 성찰 속에서 베일을 벗으며 드러난다. 재미있는 것은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그 가족들이 맺고 있는 황폐한 관계 속의 상실감과 아물 길 없어 보이는 상처들을 독자들은 점차 알게 되지만 그 가족들은 서로를 더더욱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타인이라면 그렇다면 좋겠다’라는 실토처럼 이 소설 속의 가족 구성원들은 기존의 가족 소설들이 어떻게 해서라도 이어 나가고자 하는 유대감 너머의 고독하고 위로받을 수 없는 개별자로서의 얼룩진 삶과 마주친다. 결국 『너는 모른다』라는 미스터리 형식의 이 소설이 찾아가는 것은 한강변에 떠오른 시체의 주인공이 누구냐? 가 아니라 타인에게 오히려 관대한 이 현대의 삶 속에서 가족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