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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이 탈감/ 이종인
원제는 ‘The Ignorant Maestro’이다. 무지(ignorant)는 저자인 이타이 탈감이 제시한 핵심어이다. 어찌보면, 빈틈없고 스마트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성공적인 영 리더의 전형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저자는 번스타인의 제자로서 지휘자이자, 지휘자를 리더로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많은 리더 내지는 리더를 꿈꾸는 이들에게 영감을 제시하고 있다. 책은 뛰어난 지휘자로부터 찾아낸 리더십에 관한 직관적 시선을 담고 있다. 음악이라는 맥락에서, 경영 등에서나 관심을 가질 법한 리더십을 다룬다는 점이 책의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목적만 차이가 있을 뿐 경영, 음악, 체육, 행정 등 집단과 조직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영역에서 리더십은 중요하다. 경영이 집단과 조직의 목표달성과 성과향상을 목적으로 리더십을 다룬다면, 음악은 훌륭한 음악적 성취와 감동제공의 목적으로 리더십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점은 결국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책이 흥미로운 점은 오케스트라의 구성(다양성)과 과업수행(협력, 조화, 균형)이 오늘날 많은 집단과 조직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과 최근 많은 집단과 조직의 현실에서 과거처럼 연속적이고, 안정적인 것이 아닌 창조적인 결과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음악과 경영의 유사한 현실이 책의 의미를 남다르게 이끈다. 리더의 완벽함에 따라, 완벽히 짜인 계획이나 운영보다,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데 있어 책이 제시하는 리더십의 핵심 속성 등은 매우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책은 우리가 접하는 집단과 조직의 일상적 소리가 음악이며, 이를 잘 리드하고 조직화해가는 과정을 리더십이라 한다. 1장(책에서는 악장)‘자신만의 리더십 모음곡 만들기’는 이러한 상상력 어린 도입부이다. 2장 ‘경영의 마에스트로가 되기 위한 핵심 3요소’는 리더십의 핵심 속성으로 무지, 간격, 으뜸음 듣기를 제시한다. 3장 ‘위대한 마에스트로는 어떻게 사람을 경영하는가’는 무티, 토스카니니, 슈트라우스, 카라얀, 클라이버, 번스타인 같은 훌륭한 지휘자 각각의 색깔을 통해 리더십 스타일이 굳이 정형화될 필요는 없음을 설명한다. 피날레까지 기존 리더십 책과 다른 정형화되지 않은 리더십 교향곡을 보여준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성석제
성석제가 귀환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석제의 ‘웃음’이 귀환했다. 1980년대의 무거움에서 탈주한 1990년대의 작가로 주목받으면서 ‘제가 써놓고 제가 웃는다’라며 능청을 부렸던 작가의 재미나는 이야기가 최신작 『위풍당당』에서 다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창작한 최근작들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입담계의 아트이자 재담계의 클래식”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소설의 진경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진 마을에 사는 주민들과 우연히 부딪히게 된 조폭들과의 싸움에서 자신들의 삶과 터전을 지키려는 소동극을 그린 이 소설이 이토록 우스운 이유는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싸움, 싸움다운 싸움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혈연이 아닌 상처로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인공가족이 된 사람들은 수직적 위계가 아닌 수평적 연합 속에서 분뇨나 벌침, 군불 등으로 조폭들을 제압한다. 허점과 실수투성이인 조폭들 또한 전국구 수준의 조폭들이 아니기에 이들의 원시적인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가해자나 피해자의 구분도 모호하고, 모두가 모자라는 인물들이기에 이들의 싸움을 볼라치면 어처구니없음만이 있을 뿐이다. 이로써 작가는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과 이성 중심의 진지함에 선방을 날린다.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아닌 흥진비래(興盡悲來), 즉 아홉 스푼의 웃음에 한 스푼 정도의 슬픔을 통해 작가는 궁극적으로 생명을 중시하면서 자연인으로 살아가기 힘든 포스트모던 비극을 조망한다. 조폭들보다 더 ‘위풍당당’한 불도저, 포클레인, 덤프트럭들이 ‘강이다. 강’이라는 결말의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웃을 수 있고, 작가 성석제만이 최고의 경지에서 웃으면서 화를 낼 수도 있다. 이 소설이 그 증거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현백, 김정안
아직도 미흡하다고 여길 사람도 많겠지만, 현대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성장은 놀랍다.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어느 분야에서나 ‘여인천하’이다. 그러나 실제 그러한 여성의 성장은 예전과 비교하여 표현된 것이지, 실상에서는 여전히 많은 편견과 차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0여 년 사이 역사학계에서 여성사 연구는 질적 양적으로 괄목한 만한 성과를 보여주었으나, 역사 연구에서 차지하는 여성사의 위상은 아직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사 분야의 많은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사 입문서가 나오지 못한 실정이었고, 그동안 몇 권의 번역서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제목처럼 한국인에 의해 처음 시도된 여성사 책이어서 무척 반갑다.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서양 여성사의 흐름을 개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이 여성의 삶에 일어난 변화들을 상세하게 나열하는 기존 번역서와 다른 점은 여성의 삶에 일어난 변화를 보다 구조적인 관점에서 추적하면서 그 이행의 과정을 주목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구조사적 접근 방식은 일종의 거대 서사적 방식으로 오늘날 과연 유용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에 대해 ‘거대 서사의 정교한 재구성’이라는 해답을 제시하였다. 물론 이 책에서 이러한 목표가 만족스럽게 반영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여성의 삶의 구조와 변화과정을 분석하고자 했지만, 그 대상을 비교사적이면서 글로벌하게 다루는 종합사적 연구로서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저자들도 이러한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에서 현대까지 서양 여성사의 흐름을 대중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견지하면서 사회구조의 맥락 속에서 일관되게 서술하고자 한 점은 한국인에 의해 쓰인 최초의 여성사 입문서라는 의의를 높여줄 것이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강판권
신윤복의 그림 <月下情人>에서 연인이 한밤중인 삼경에 만나는 게 아니라고 지적한 사람이 있었다. 미술 전문가가 아니라 달 전문가였다고 한다. 그림 속에 있는 눈썹같이 생긴 초승달은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해가 지는 서쪽 하늘에서 잠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잘 알고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을 보아도 그것이 먼저 눈에 띈다.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도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이다. 미술 전문가가 감상하는 법을 안내해 주는 글이 아니라, 나무에 폭 빠져 나무가 그림보다 먼저 보이는 사람이 들려주는 그림 속 나무 이야기인 셈이다. 나무는 땅과 하늘 사이에 수직으로 서 있다. 땅과 하늘 사이에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나무는 사람을 잘 이해해 주고, 사람은 나무에게서 세상의 이치를 찾고자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선 나무를 부모처럼, 아내처럼, 친구처럼 대할 줄 알게 되는데, 이렇듯 나무를 보는 감수성의 눈이 깊고 넓어지면 그림을 보는 시각도 더불어 확장되는 것 같다. 이정이 그린 <풍죽도>를 보여 주며 저자는 대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에 곧을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생명체든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철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면서 바로 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란다. 윤두서의 <유하백마도>에서는 버드나무의 부드러운 속성과 백마의 우아한 기품을 연결시켜 이야기한다. 버드나무 아래 말을 매어놓고 말 주인은 어디서 마냥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나무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나무가 사람과 닮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림 이야기에 줄곧 마음이 가는 것은 그림이 우리의 삶을 슬며시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무와 그림, 나무그림은 그래서 좋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박상진
수년 전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 안개에 젖은 카를 다리의 새벽을 즐긴 적이 있다. 인적 없이 호젓한 다리 위를 거닐면서 책을 펼쳐 들었다. 프라하 도시를 개괄하면서 카를 다리에 서너 페이지를 할애한 책이었다. 그 때 짝을 이룬 여성 둘이 옆에 나타났다. 일본인이었다. 나는 놀랐다. 그들은 도시 프라하가 아니라 카를 다리만 따로 정리한 책을 손에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후, 카를 다리의 아쉬움을 달랠 만한 책을 만났다. 『궁궐의 우리 나무』(박상진, 눌와)였다. 나무를 다룬 수많은 책 가운데 궁궐에서 자라는 나무만 다룬 책은 처음이었다. 도시 프라하 중 카를 다리만 콕 찍은 일본 책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후 나는 이 책의 저자 박상진 교수에게 신뢰를 가지게 됐고, 광화문 현판 균열 사고가 났을 때 그의 발언을 가장 경청했다. 책을 보면 저자의 생각과 순수성을 알 수 있기에 그랬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텍스트를 짓는 학자의 역할이다. 근래에 생태학 붐이 일면서 나무와 꽃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왔다. 어린이 책은 그렇다 쳐도, 성인용 책마저 독창성 없는 아류들이 많다. 나무 사진을 찍어 놓고 감상을 담은 사연 몇 줄을 걸치는 형식이다. 개인적으로는 경이로운 경험이겠으나 지적(知的) 성취는 미약하다. 그리고 수없는 복제와 표절, 변형이 이어진다. 이 책에는 목재조직학자, 수목학자로서 40년을 보낸 저자의 학문적 열정이 담겼다. 1000여 종이 넘는 우리나라 나무 가운데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는 242종의 나무에 대한 식물학적 정보에다 문화적 의미를 보탰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하나의 든든한 텍스트를 곁에 두면서 알뜰살뜰 나무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로버트 M. 피어시그/ 장경렬
저 옛날 브왈로(Boileau)가 “마침내 말레르브가 왔도다!”라고 감격했듯이, “마침내 이 책이 왔도다!”라고 외치는 순간이 가끔은 있는 법이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도 그런 책 중의 하나이다. 1973년 출간 즉시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이 소설은, 한국의 식자들에게도 곧바로 알려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날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한국인의 독서 취향에 생각이 미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매우 길다. 오랫동안 단편에 길들여져 온 한국 독자들은 이런 분량의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몇 가지 예외가 있긴 한데, 그것은 온통 사건으로 가득 차 있는 소설들, 가령, 『삼국지』, 『대망』 같은 것들이다. 또 한국인의 민족적 자존심을 채워주는 일련의 대하소설들이 있다. 이 두 부류는 한국의 독자에게 느낌만을 꽉 채워줄 뿐 성찰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머리에 쥐를 내지 않는다. 다음 이 소설에는 아주 구체적인 일상에 대한 묘사와 철학적인 질문이 겹쳐져 있다. 이런 소설을 두고 한국의 비평가들은 간혹 ‘관념적’이라는 잘못된 용어를 붙여서 제쳐 놓곤 하는데, 이는 한국인이 생각이 많은 글을 싫어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이 많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조지 오웰은 유럽의 독자들이 단편을 싫어하는 까닭에 대해 조소적인 답변을 내놓은 적이 있는데, 주제가 자꾸 바뀌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비추어 본다면, 한국인의 단편 취향은 주제가 자주 바뀌는 것을 좋아하되, 한 주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즉 한국인은 재빨리 결론 나는 생각들을 좋아하고 굴곡이 복잡한 생각을 잘 읽어내지 못하며, 더 나아가 그 재빨리 결론 나는 생각들을 액세서리 갈아 치우듯 자주 바꾸는 걸 좋아한다는 뜻이 된다. 우리가 가진 고질로 흔히 거론되는 냄비성향과도 얼마간 상통하는 얘기다. 그런데 이 소설은 사실 매우 특이한 소설이다. 왜냐하면, 아주 단순한 이분법에서 출발해서 점점 복잡하게 생각의 덩굴을 만들어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모터사이클과 선, 공학과 명상, 전원과 문명이라는 간단한 도식만이 보인다. 그러나 슬그머니 공학의 명상성과 명상의 공학성을 분화시키고 다시 빛 반사 놀이를 하듯 그것들에 거듭 반대 가치를 끼워 넣음으로써 독자를 서서히 삶의 질들의 거대한 미궁 속으로 안내한다. 그런데 그런 생각 방법을 찾아내게 된 데에는, 작가가 군복무를 한 한국에서 이방의 친구들과 성벽을 만난 경험도 얼마간 관련되어 있다니, 참 산다는 것의 미묘함을 느낄 만하지 않은가? 여하튼 이 학수고대하던 책을 무려 37년 만에 장경렬 교수의 번역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노고에 거듭 경하의 마음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대니얼 골든/ 이기대
이 책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저자가 미국의 명문대 입학이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와 특전을 대물림하는 제도로 종종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파헤친 걸작이다. 저자는 전문적인 탐사보도의 형식으로 듀크대, 브라운대, 하버드대 등 미국의 명문대학들이 편법적인 특혜입학을 통해 주로 소수의 백인 특권계층의 자녀들을 입학시키고 있는 관행을 폭로하고 있다. 그러한 관행으로 거액기부자, 유명인사, 동문 및 교수 자녀들의 특혜입학 또는 기부입학제나 체육 특기생 제도를 통한 특혜입학을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관행의 결과 제2의 유대인이라 할 수 있는 우수한 아시아계에게 가장 엄격한 입학 기준이 적용되는 역차별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처럼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입학사정관제를 개선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입시를 위한 사교육에 대한 거대한 지출을 통해 학벌이 세습되고 있는데 반해, 미국에서는 입시제도를 활용해서 학벌이 세습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시 최근에는 수시입학제도에서 외고 등 특목고 출신 학생들에 대한 우대가 관행화되어 입시제도 자체 역시 학벌의 대물림을 위한 통로로 활용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최근 정부는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를 이상화하여 그 도입을 졸속으로 추진한 바 있는데, 이 책은 입학사정관제의 무분별한 도입에 대해 경종을 올리고 있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조지프 E. 스티글리츠/ 장경덕
2008년에 세계 경제는 75년 전 시작된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고 그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비록 초기의 주식시장 붕괴와 신용위기에서 벗어나 세계경제가 다시 플러스 성장하고 있지만 수많은 실업자를 구제하기에는 매우 미흡하다. 황당하고 놀라운 위기를 맞아 그 원인에 대해 수많은 저작이 있었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월 스트리트에 대한 글로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그린스펀을 비롯한 정책담당자들의 오판과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다루는 글까지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다분히 주관적이고 편향되어 있으며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룰 만한 충분한 식견을 갖추지 못한 저자들에 의해서 쓰여 졌기 때문에 부족한 측면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가 주류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깊고 넓은 통찰력으로 위기의 원인과 영향 및 향후 과제를 다룬 책이 출간되었다. 원제는 『자유낙하 : 미국, 자유시장 및 세계경제의 추락』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끝나지 않은 추락』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는 이번 위기는 교과서적인 사례이고 그를 포함한 몇몇 관찰자들에 의해 예측된 위기였다고 강조한다. 다만 그린스펀을 비롯한 부시 행정부 정책 담당자들의 잘못된 대응이 미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갔다고 공격한다. 잘못된 정책의 핵심은 시장경제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 금융 규제 완화이다. 그는 이 책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을 신랄하게 공격하며 시장과 정부에 대해 균형된 시각을 가지는 케인스 경제학을 지지한다. 아울러 이번 위기로 정책과 사상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촉구한다. 정통 경제학자의 비판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그레고리 코크란 외/ 김명주
1만 5천 년 전에 늑대에서 가축화된 개는 치와와와 그레이트 데인처럼 형태와 크기가 다양하다. 이러한 개는 사람의 목소리와 몸짓을 잘 읽어낸다. 물론 늑대는 그렇지 못하다. 저자는 개들이 지난 200년 동안 상당한 변화를 겪었으며 이러한 개의 진화가 문명의 테두리에서 일어난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지난 1만 년만 놓고 보면 인류의 진화가 지난 600만 년 평균보다 약 100배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화를 발달시킨 덕분에 진화의 원동력인 자연선택의 압력에서 벗어났으며 그 때문에 인류에게 더 이상 의미 있는 진화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진화생물학자들의 생각과는 사뭇 다른 논의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유전 역사학’이란 방법론을 사용한다. 인류의 자연선택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요인들, 그 중에서도 유리한 대립 유전자의 생성과 확산에 관련된 요인을 등장시킨다. 자연선택이 어떻게 농경 발생을 가능케 했는지, 농경 생활이 인간의 유전자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이야기 한다. 1만 년 전에 시작한 농경생활이 문화적 폭발과 함께 진화의 폭발을 일으켰으며 이러한 지리적 팽창과 문화적 혁신이 새로운 자연 선택의 압력으로 작용해 과거는 물론 지금도 진화는 현재진행형임을 주장한다. 생물학과 문화의 공진화로 표현되는 이것은 가속되는 현대 과학기술문명도 인간 유전자에 자연 선택의 압력으로 역할 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책장을 덮으며 인류의 문명이 인류를 어떻게 진화시킬지 상상해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최현주
한 장의 사진은 만남의 자리이다. 그 만남의 자리에서는 여러 의미들이 제각각 어우러진다. 사진은 순간적일지라도 우리 삶에서 그것의 의미는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순간의 사실과 정보는 저절로 의미를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사진은 닻을 내리지 못한 채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상태일 때가 많다. 의미란 순간을 다른 것과 연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주어진 사진에 하나의 낱말만 단서로 던져주어도 우리는 그것에 과거와 현재를 덧붙이고, 기억과 경험을 동원하여 마침내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친절하게도 하나의 낱말이 아닌, 한 쌍의 두 낱말들을 던져준다. 그가 선별한 낱말들은 언뜻 평이한듯하면서도 속속들이 재치가 있다. ‘성과 속’, ‘정글과 동물원’, ‘들여다보기와 내다보기’ 등이 목차구성의 예이다. 낱말끼리 직접 연결해보면 의심할 바 없이 전후 낱말이 서로 대립을 이루는 쌍이지만, 사진을 사이에 두고 연상해보면 결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기묘한 방식으로 깨닫게 된다. 낱말들의 극과 극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사진이다. 즉 사진적인 생각이 중간에 끼어들기 때문에 낱말은 새로운 방식으로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카피라이터답게 저자는 낱말과 사진을 머릿속에서 자유자재로 연결하여 상상을 전개시키고 줄거리로 펼쳐낼 줄 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사진과 낱말이 어우러지는 풍성한 만남의 자리에 초대될 것이다.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