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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다 북스바움 외/ 금기숙 외
20세기 패션 아이콘 제르다 북스바움 외/ 금기숙 외 / 미술문화 2009.06.10 / 380쪽 / 22,000원 2000년을 10년 앞에 놓고 전 세계의 출판사들이 앞 다투어 20세기를 정리하는 담론들을 쏟아냈던 때가 있다. 여러 각도에서 20세기를 정리한 책들이 재미있기도 하여 한동안 책을 사 모으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2000년하고도 10년이 코앞인 시점에 20세기를 정리한 책이 하나 더 나왔다. 바로 패션의 시각에서 20세기를 정리한 책이다. 옷은 뭐 목욕할 때 빼고는, 남에게 부담을 안주는 선에서, 적당히 몸을 가리는 덮개 정도로 생각하고 큰 신경 안 쓰고 사는 생활인들이 주변에는 많은 편이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소박한 의생활이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측면도 있다. 때에 따라 특별한 경사가 있을 때나 어딘가 앞에 나서서 이야기해야 하는 때, 혹은 명절 때 등등 좀 색깔이나 모양에 신경을 써서 입는 정도를 빼고 우리는 내 몸에 맞는 기성복을 편안하게 그냥 사 입고 잊어버린다. 그런데 『20세기 패션 아이콘』이라는 책을 보니 우리가 생각 없이 입고 있는 옷들이 그냥 기분 나는 대로 대충 만든 것이 아니라 모두 시대와 공간 그리고 철학을 담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 의복의 생활사를 다루는 그 동안의 저작들이 대부분 19세기까지의 역사를 다룬 것들이기 때문에 20세기에 우리가 입는 옷들은 그저 당대의 생활복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옷을 통해 20세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여다보고 있다. 20세기 초 식민지에 의존한 유럽 경제가 그 마지막 화려함을 극대화된 오리엔탈리즘의 의상들로 표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나서 사람들은 허름하고 싼 원단이지만 옛날의 편안함을 향수하고자 속에 부풀린 망사 페티코트를 입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다른 예술계의 경향과 같이 의상도 아방가르드한 기하학적 형태를 추구했고, 여성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에는 남성의 의복을 변형시킨 남성적 여성복이 유행하기도 했다. 미니스커트의 출현은 물론 PVC 재료의 옷, 하이테크를 이용한 미래지향적 의복, 그리고 오늘날 하나가 된 지구촌 문화를 드러내는 옷 등등 많은 화보들이 포함된 이 책과 더불어 20세기를 한번 조망해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박범신
이 소설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우리 민족에게 우리 땅의 지형을 처음으로 선사한 고산자 김정호의 삶을 추적해간 소설이다. 고산자의 삶은 그동안 아우트라인으로만 남아 있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며 고산자 김정호는 ‘역사가 유기한 인물’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고산자 김정호라고 하면 대동여지도만 떠오를 뿐 그가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떤 성장과정을 거쳐 어떤 이유로 지도 그리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해 일반인들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드물었던 것 같다. 『고산자』는 시대 고증은 물론이고 고산자의 내면이 섬세하게 들여다 보인다. 어느 때는 고산자 당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 밀착감으로 인해 고산자의 일생은 역사소설 안에 갇히지 않고 현재 우리 곁에 살아있는 사람처럼 복원되었다. 역사가 유기한 인물인 만큼 부족한 고산자의 연대기에 불어넣은 작가의 상상력이 이루어낸 진경이며 더불어 당시 민초들의 삶도 감칠맛 나게 펼쳐진다. 『고산자』는 우리 산하가 품고 있는 사연이 손끝으로 하나하나 점을 찍어가며 이루어낸 지도처럼 장엄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한 소설이다. 대동여지도를 그릴 때 왜 독도를 빠뜨렸는가에 대해서 김삿갓과 벌이는 토론이나 당시의 보부상들이 고산자로 하여금 지도를 완성시키게 하기 위해서 벌이는 수고로움 앞에서 숙연해지기도 하는데 그들의 치열한 삶이 개인을 넘어서 역사와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는 지점에서 희망을 엿보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김문태 글, 윤정주 그림
새롭고 개성적인 사유 방법이야말로 정보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똑같은 정보를 갖고도 그 정보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했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열렸던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유난히 사람들이 북적대던 부스가 있었다. 그림책의 역사를 만든 부르노 무나리, 옐라 마리의 작품들을 전시한 코레아니 출판사의 부스였다. 오브제에 가까운 그림책들은 한 권 한 권이 어찌나 개성적인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 책들이 놀라웠던 점은 새로운 시각적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을 그림책이란 장르에 적용했다는 점이었다. 코레아니 출판사는 갤러리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대중적인 출판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책들이 수두룩했다. 책 한 권에서 새로운 사유, 새로운 컨셉,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코레아니의 책들은 보여주고 있었다. 『장난꾸러기, 생각여행을 떠나다』는 책의 컨셉이 독특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주인공이 직접 체험함으로써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 판타지 형식의 인물 이야기책이기 때문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장난꾸러기 주인공이 우연히 다락방에서 증조할아버지의 회중시계를 발견한다. 그런데 이 시계의 시침이 4시 44분 44초가 되는 순간, 주인공은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이 시간 여행을 통해 주인공은 동물학자 제인 구달, 화가 피카소,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사회사업가 헬렌 켈러, 소설가 에밀 졸라,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을 만나서 이들이 업적을 이루었던 바탕에는 저마다 독특한 사유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인 구달의 ‘관점 바꾸어 보기’, 피카소의 ‘군더더기 빼고 핵심 찾기’, 코페르니쿠스의 ‘상식 의심하기’, 헬렌 켈러의 ‘공통점 찾기’, 에밀 졸라의 ‘자세히 새롭게 보기’, 아이슈타인의 ‘머릿속 그림 그리기’는 제각기 방법은 다르지만 저마다 자신에게 알맞은 사유 방법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결국 주인공은 도서관에 있는 수많은 책이 저마다 독특한 사유 방법을 보여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책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책에서 정보만이 아니라 저자의 사유 방법, 즉 ‘생각법’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고급의 독서라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버트런드 러셀/ 이순희
버트란드 러셀은 20세기 초 영국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지성이다. 필자의 전공도 철학이지만 솔직히 철학자들의 사회 비평서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 않은 편이다. 무엇보다 현실과 동떨어진 몽상이 많기 때문이다. 러셀은 ‘서양철학사’로 널리 알려진 철학자이긴 하지만 원래 그의 전공은 분석철학, 그 중에서도 가장 무미건조하다는 논리철학이다. 그런 철학자가 중국을 봤으면 얼마나 봤을까? 솔직히 이 책을 처음 잡았을 때의 편견이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편견이었다. 1920년 북경대 철학과 초빙교수로 초청돼 수많은 중국인들과 만나며 그 결실을 책으로 낸 것이 이 책이다. 그는 여기서 중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치밀하게 탐색한다. 공자까지 거슬러 올라가 중국 문화의 특징을 읽어 내고 서구 문명이 당시 낙후된 중국 사회에 갖는 의미를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게 읽어낸다. “중국이 반드시 피해가야 할 두 가지 위험한 길이 있다. 첫 번째 위험은 중국이 고유의 특징을 깡그리 잃어버리고 완전히 서구화되는 길이다. 두 번째 위험은 외세의 공세에 저항하면서 군사 부문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강력한 반외세 보수주의를 취하는 길이다.” 물론 20년대 중국에 대한 진단이다. 그러나 9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의미를 갖는 진단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중국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 러셀은 일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하나의 동양, 일본’, ‘일본, 동양 속의 서양을 꿈꾸다’ 등의 장이 포함된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물론 지금 중국은 세계 2대 강국을 향한 전진을 계속하는 거대한 나라로 성장 중이다. 따라서 책의 뒷부분에 실린 중국의 미래를 향한 조언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다만 20년대 중국을 보면서 러셀이 고민했던 문제, 즉 서구 문명이 한계를 맞고 있으며 그 대안을 중국에서 찾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오히려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 문제는 동시에 우리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피부에 와 닿는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차윤정, 전승훈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아이가 ‘으앙’하며 태어나 배밀이를 하고 아장아장 걷고, “이게 뭐야?”하며 궁금한 것들을 쏟아내고, 감기로 열 때문에 밤새 끙끙거리기도 하다가, 어느덧 가방 매고 학교에 혼자 걸어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더불어 나무의 일생도 참으로 인간과 다르지 않은데 한 번도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않은 까닭이 새삼스러웠다. 산에 오르면 이 나무가 소나무니, 전나무니, 배롱나무니 아는 척만 했지 나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신갈나무의 치열한 삶을 닮은 이 책에서 작은 종자가 얼어붙은 땅에서 싹을 틔우고, 입, 줄기, 뿌리, 꽃, 열매를 만드는 삶의 과정이 거저 되는 것이 하나 없으며 매 순간 투쟁이라는 저자들의 생각에 동의하게 됐다. 어미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싹을 틔워야 하는 열매의 두려움, 무사히 싹을 지상으로 내보냈을 때의 성취감, 하늘을 향해 오르려는 본능적인 몸부림, 어린나무를 깨우는 아침 햇살, 이파리를 통해 몸속으로 흘러드는 신선한 공기와의 속삭임, 자신도 모르게 기운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졸린 가을, 깊은 잠에 빠져든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이렇게 신갈나무는 뿌리를 내린 그 자리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자신을 가꾸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끝없이 반복되는 숲의 시간 속에서 자연은 나무를 키워낸다. 신갈나무는 우리가 흔히 참나무로 부르는 것으로 우리나라 산림의 아주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산에 오르면 참나무, 아니 신갈나무가 눈에 쏙쏙 들어와 반가울 것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김원장 글, 최성민 그림
도시락 먹을 때의 즐거운 마음으로 경제학을 공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불행히도 경제학은 그리 만만한 학문이 아니다. 수식으로 가득 찬 경제학자들의 논문만 골치 아픈 것이 아니라, 경제학에 입문하려는 사람을 위해 썼다는 개론서 역시 골치 아프기 그지 없다. 경제학을 배워 보겠다고 뜻을 세운 수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소설 읽듯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경제학 해설서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읽는 사람을 고문이라도 하려는 듯 어렵게 쓸 필요는 없다.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경제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을 써야 마땅한 일이다. 문제는 그 동안 나온 대부분의 경제학 해설서들이 독자의 눈높이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 좌절감만 더 크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친근한 현실의 사례를 통해 독자에게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자 특유의 센스가 발휘되어 독자에게 가까이 가려는 노력은 한결 더 큰 탄력을 받는다. 요즈음 한창 뜨고 있는 유재석과 박명수의 예를 통해 대체재와 보완재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골치 아픈 경제학 개념에 유머를 실어 놓는 효과를 낸다. 저자는 매일매일 꺼내 읽는 쉽고 맛있는 경제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는 포부를 내비치고 있다. 그런 뜻으로 ‘도시락 경제학’이라는 책 이름을 붙였다는 말이다. 설명을 쉽게 했을 뿐 아니라 주제도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한 것들을 선택한 센스도 돋보인다. 삽화까지 곁들여 독자의 마음을 끌려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와 같은 노력이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결국 독자가 판단할 몫이지만 말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루이지 조야/ 이은정
아버지 혹은 부성(父性)이 오랜 진화의 산물이자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여 부성이 탄생, 진화, 몰락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는 책이다. 이는 부성이 모성과는 달리 자연적 본능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배우고 터득해가야 하는 어떤 것임을 말한다. 저자는 정신분석 특히 융 학파의 전문가이지만 동물학, 신화, 정치경제학 등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정자 제공자와 아버지 사이의 불연속성이 갖는 복합적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아버지의 탄생을 정신의 탄생이나 문화의 탄생 자체와 함께 맞물려 있음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인간이 동물의 왕국에서 벗어나 어떤 정신적 동물의 왕국으로 진입한 것은 아버지의 출현과 더불어 이루어졌고, 따라서 그 출현은 신대륙의 발견보다 더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아버지의 위상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고개 숙인 아버지가 늘어나고 결손 가정 또한 흔한 일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계의 특정 지역에 국한된 일도 아니고 최근에 시작된 우연한 현상도 아니다. 게다가 가볍게 넘길 일은 결코 아니다. 저자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후퇴해 온 오랜 과정을 서양의 역사를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아버지 상(像)이 모호성에 빠질 때 초래된 위험을 20세기 정치 현상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그리고 청소년에 대하여 어머니로서는 메울 수 없는 아버지 자리의 공백을 부연하며 맺는다. 아버지 되기의 어려움, 아버지 된 자의 어려움을 호소하기 위함이다. 이 책은 “아버지를 부탁해”라고 외치고 있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조너선 스펜스/ 김우영
『강희제』 등의 저서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저자 조너선 스펜스가 중국에 인생을 바친 서양인 16명의 족적과 의미를 추적한 책이다. 명나라 말기 가장 먼저 목적의식을 가지고 중국에 들어와 정주(定住)한 인물들은 예수회 선교사들이었다. 소현 세자와의 교류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담 샬과 마테오 리치 등이 대표적이다. 청나라 때는 피터 파커라는 개신교 선교사가 중국 광주(廣州)에 도착했다. 이들은 이교도들인 중국인들을 천주교와 개신교로 개종시킨다는 거대한 목적을 갖고 있었지만 중국인들이 이들의 정착을 허용한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아담 샬과 마테오 리치가 갖고 있는 천문학과 피터 파커가 갖고 있는 의학이라는 전문지식 때문이었다. 아담 샬은 천문학을 다루는 흠천감정이란 벼슬을 받아서 정착은 했지만 선교에는 그리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중국이 혼란 상태에 빠지면서 대거 밀려든 서양인들의 목적은 선교보다는 부와 명예가 먼저였다. 프레더릭 타운센드 워드와 찰스 고든 같은 군인들, 호레이쇼 넬슨 레이와 로버트 하트 같은 해관의 총세무사들이 그런 인물들이었다. 반면 중국인들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친 인물들도 있었다. 병원을 설립했던 데이비드 흄과 국내에도 『닥터 노먼 베쑨』이란 책으로 잘 알려진 캐나다 출신의 의사 노먼 베쑨이 그런 인물들이다. 이 책에는 정치 고문들도 등장하는 데 이들은 서로 상반된 배경을 지녔다.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宋美齡)을 ‘나의 여왕’이라고 불렀던 클레어 리 셔놀트나 엘버트 웨더마이어처럼 미국에서 파견한 군사 고문이 있었던 반면 미하일 보로딘처럼 코민테른에서 파견한 정치 고문도 있었다. 이 서양인들은 누구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스펜스는 서양인 고문들의 실패 이유를 중국인들에게 비중국적 가치를 주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서양인들에게 중국은 교화의 대상이었지만 중국인들에게 서양인들은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대상일 뿐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정해광
케냐의 키부티, 카툰과 음부티아, 탄자니아의 릴랑가, 이디오피아의 타데세와 아세파, 수단의 아마르, 세네갈의 두츠와 케베, 우간다의 아느와르, 콩고의 물람바. 이 열한 명의 유명한 아프리카 현대 미술가들 중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오는 이름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아프리카 예술은 멀다. 그런데 마침 이 열한 명의 작가와 그들의 그림을 소개하는 재미있는 책이 나와 반가웠다. 키부티는 아프리카 신화에 나오는 물의 신이 하늘과 땅의 하모니를 위해 동물과 초자연을 연결하며 지나가는 듯한 흐름을 보여준다. 릴랑가는 삶에 대한 리드미컬한 움직임이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듯, 그의 선과 색들은 자유롭게 춤춘다. 케베의 얼굴들은 보는 이를 한없이 순수하고 순하게 하는 힘이 있다. 타데세는 마치 고대 이디오피아의 색조들이 현대에 현현하듯 은은한 추상을 보여준다. 아마르는 아프리카적 수묵화를 대변하고, 아세파는 해외 유학파로 클림트가 아프리카에 살았다면 그렸을 성싶은 붉은 여인들을 인상적으로 그린다. 저자 정해광은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마드리드 대학에서는 정치철학 박사를 받았다. 그런데 아프리카 미술에 빠진 지 20년이 넘어가고 있다. 아프리카 미술관을 열고 갤러리 통큰 대표를 하고 있으며, 미술대학에도 또 다니고 있다. 아마도 아프리카가 불러 아프리카를 전도해야만 하는 팔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 같다. 덕분에 독자가 행복하니 그의 앞으로의 작업과 저술이 더욱 기대된다. 아프리카를 그렇게 다니면서 아직도 마음이 왜 그 곳으로 향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그를 따라 우리의 마음도 그 곳을 향하니 하늘과 땅과 자연이 하나인 천지에 놓인 행복을 맛본다. 정해관이 들려주는 아프리카의 리듬과 자연에 기꺼이 빠져보자.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전성태
전성태는 이야기를 무궁무진하게 품고 있는 인상을 주는 작가다. 대체로 이야기에 치중하는 작가들이 디테일에 소홀한 듯싶으나 전성태는 거기서도 비켜나 있다. 특히 이 『늑대』에 수록된 작품들을 이끌어나가는 문장들은 정직하고, 구성은 치밀하며, 시선은 경계에 서 있고, 비판은 성찰과 함께 적확하며 자유롭고, 옹호는 인간의 불가해성과 함께 모범적이며 아름답다. 이 작품집 속에 수록된 작품들의 주요 무대는 한국이 아니라 몽골이다. 작가의 몽골에서의 6개월간의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몽골이라 하면 맨 처음 초원이 떠오르고 그 곳 유목민들의 삶을 연상하기 쉽다. 이 작품들 속에도 유목민으로서의 몽골 인들의 삶이 기본 재료로 쓰인다. 나아가 자본이 침투한 몽골의 현재를 우리 현실과 긴장감 있게 접목시켜 놓았다. 초원과 자본이 뒤섞여 경계를 이룬다. “장작을 패는” 노동이나 “늑대를 쫒는 동행”이 돈벌이가 된 몽골에서 본능적으로 겪게 되는 한국인의 불안 의식은 우리 각자의 맨 얼굴들과 조우하게 만든다. 우리가 자본 속에서 어떤 풍요를 이루며 살든 간에 우리가 분단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살고 있는 한은 몽골의 고층 아파트에서 로프를 타고 있는 풍경이 우리 한국인의 모습이란 게 상징화되는 순간이다. “몽골은 세상의 바깥이기도 했지만 우물처럼 깊은 내면이기도 했다”는 작가의 말은 그런 맥락에서 나왔으리라 짐작해 본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