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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황규진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속담은 어떤 지각이론을 담고 있다. 그것은 시각이 청각보다 우월하다는 이론이다. 조금 더 비튼다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백 가지 말, 백 가지 설명이 하나의 이미지만 못하다. 백 가지 이야기도 어떤 시각적 이미지로 수렴되지 못하면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없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근대성을 물의 이미지에 담아 설명했다. 이것은 우리가 통상 근대성에 대해 가져왔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계몽, 이성의 빛 등과 같이 근대성을 표현하는 말들은 오히려 밝은 불의 이미지를 중심에 두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바우만은 말한다. 계몽의 계획은 잠정적인 성공 뒤에 스스로 예측할 수 없는 공포 속에 빠져들었다. 근대적 이성은 온갖 재해와 위험의 공포에서 벗어난 유토피아를 꿈꾸었지만, 오히려 돌아온 것은 더욱 대처하기 곤란한 불확실성이다. 계몽의 계획에 의해 추방된 위험은 계산과 관리의 대상이 되자마자 계산 불가능한 위험의 모태가 되었다. 근대적 이성은 자로 재고 방정식을 세우면서 위험을 배설하는 수로(水路)를 건설하지만, 계몽의 도시 도처에서 어떤 습기나 액체처럼 공포가 엄습하게 되었다. 벽이든 마당이든 아무 곳이나 침투해 들어오는 유동적 액체성, 그 액체적 악마성 앞에서 현대인은 어떤 식으로 조롱당하고 있는가. 세계화와 더불어 더욱 광역화되고 있는 예측불허의 유동성 앞에서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기대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이 책은 이런 주제를 크고 작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서 펼치고 있는데, 현재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미국 발 금융위기는 이런 이야기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 추천자 : 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박재광
우리는 흔히 임진왜란 초반의 패전을 일본의 조총 때문이라고 설명해 왔지만 임란 3년 전인 선조 22년(1589) 7월 대마도주 소오 요시토시(宗義智)가 진상했던 조총을 군기시에 사장시킨 사실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 다네가시마(種子島)의 도주 아들 도키타가는 1543년 조총 1정을 영락전(永樂錢) 200필(疋)에 달하는 거금을 주고 사들였는데, 현재로 환산하면 1억 엔에 상당할 정도의 거금이란다. 이런 노력들이 임란 때 조선 육군을 무력화시켰던 일본 조총 부대의 탄생을 뒷받침했던 것이다. 이때 조총에 주목하지 않은 것은 실수지만 조선이 무기제조의 후진국이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은 세종 때 이미 길이 14cm로 권총의 원조격인 세총통을 만들었던 화기제조 선진국이었다. 육군은 조총을 앞세운 일본군에게 패했지만 수군이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것도 이순신의 탁월한 전략전술과 함께 조선 수군의 우수한 대형 화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화염조선』에는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화기들이 여럿 등장한다. 비차(飛車)라고도 불렸던 비거(飛車)도 그중 하나인데 나는 차, 즉 비행기를 뜻한다. 일본측 기록인 『왜사기(倭史記)』에는 전라도 김제의 정평구(鄭平九)란 인물이 진주성 전투 때 비거를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종 4년(1867)에는 한강 노량진에서는 강 한가운데서 수뢰포(水雷砲)의 폭발시험을 했는데 수뢰포란 바로 시한폭탄형 기뢰(機雷)였다. 얼마 전 영화로 개봉되었던 신기전에 대한 서술도 자세하다. 고려 말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여러 화기에 대해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이처럼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는 사례들로 풍부하다. 비단 무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뿐만 아니라 조선사의 이면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 추천자 :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정우식 글, 이승열 그림
정우식 글, 이승열 그림 / 고려원북스 2008.12.29 / 252쪽 / 15,800원 음악을 좋아하는 이든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는 일반 생활인이든 간에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하나 나왔다. 엄밀히 말하면 음반 한 장을 권하고 싶다는 말이 더 맞을 듯싶다. 우리나라에서 재즈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유일하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는 CBS FM의 <올 댓 재즈>라는 프로가 있고 이 프로그램 뒤에는 프로를 제작하고 있는 정우식 PD가 있다. 프로를 진행하고 있는 재즈 색소포니스트 이정식은 정우식을 영원한 ‘jazz kid'라 일컫는다. 이 책은 100여 년 이어져 내려온 재즈의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33인을 추려, 아주 쉽고 간명하게, 그 인물들의 역사성, 음악적 특징, 대표작, 대표적 음반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오랫동안 직접 청취자들과 소통한 경험을 살려 지식 공급자의 입장보다는 수용자의 입장에서 알고 싶어 할 필수적인 정보를 알차게 정리해 책에 수록했다. 읽고 나니 재즈의 큰 줄기가 쉽게 들어온다. 그런데 이 책의 진가는 책에 첩부된 CD를 듣는 순간 더욱 빛난다. 오랜만에 전설적인 베니 굿맨 재즈오케스트라의 “sing sing sing”을 듣고 나니 ‘와우’ 소리가 절로 난다. 내친 김에 CD에 수록된 주옥같은 17곡을 앉은 자리에서 다 들어버렸다. 쳇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에 이르면 모르는 사이 절로 음악에 ‘푸욱’ 빠지게 된다. 음악에 푸욱 빠짐과 동시에 젊은 날에 대한 향수도 길어 올리게 되고, 생활에 매몰되어 바싹 말라버린 영혼의 주름들이 물을 먹은 듯 부풀어 올라 편편해지는 것이다. 이 책은 아무리 생각해도 책도 읽고 음악도 들을 수 있게 만든 것에 비해 값이 싸다는 생각이 든다. 재즈 듣기를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아주 좋은 입문서이고, 이미 재즈를 사랑하는 분들께는 세기의 재즈 베스트를 다시 들을 기회가 되니 좋다. 재즈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음악이다. 언젠가 음악대학에서 트럼펫을 전공하면서 사실 미래에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되고 싶다고 했던 옛 친구가 생각난다. - 추천자 : 김춘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창훈
소설가 한창훈은 바다와, 바다를 생존의 터로 여기고 사는 사람들의 대변인처럼 소설을 쓴다. 오랫동안 그래왔다. 무슨 얘기를 써도 한창훈의 글에서는 바다 냄새가 펄펄 난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의 제목 ‘나는 여기가 좋다’ 란 곧 ‘나는 바다가 좋다’ 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소설가 한창훈, 하면 저절로 그 이름 뒤로 바다가 따라다닌다. 우리나라 바닷가 사람들이 어떤 모양새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려면 사실적인 어떤 기록을 뒤져보는 것보다 한창훈의 소설을 읽는 일이 더 실감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어느 장을 펼쳐도 바닷가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환하게 드러나 보이는 이 소설집엔 8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그들은 바다에 친구를 잃고 그 상실과 지키지 못했다는 죄의식을 가지고 평생을 뱃일만 하고 살고 있거나, 병이 들어 죽어버린 양식어들을 온 종일 퍼내고 있거나, 생존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배를 팔려고 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농부가 자식에겐 농사일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식들을 교육시켜 도시로 내보내듯이 여기 어부들도 고달픈 뱃일을 대물림하기 싫어 후손들을 육지로 떠나보낸 존재들이다. 어느덧 그들 곁에 남아 있는 건 바다뿐이다. 결국 그들마저 바다를 떠나야할 상황에 처하지만 떠날 수 없거나 어디로도 갈 곳이 없어 다시 섬으로 돌아온 사람들 얘기가 이 소설 속엔 진실을 담고 펼쳐지고 있다. 그들의 삶은 한밤중에 방파제에서 내다보는 등대 불빛처럼 거친 파도 속에서도 반짝인다. 어찌 되었든 살아가는 힘을 바다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펼쳐놓는 생생하고 걸쭉한 입담을 듣다보면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새벽빛처럼 몰려드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작가의 바다를 향한 일관되고 고집스러운 의지가 없었으면 이즈음 한국소설에서 바닷가 사람들의 삶이 어떤 형태인지 독자인 우리가 짐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작품들이 든든한 이유이기도 하다. -추천자 : 신경숙(작가)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고진숙 글, 김창희 그림
홍대용은 영조 때인 1731년 노론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는 성리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성리학을 공부하는 유생들이 과학 기술을 하찮게 여기는 데 실망하여 직접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용 학문을 공부하기로 마음먹는다. 홍대용의 신분과 당시의 사회 분위기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과학이나 기술은 중인 이하의 사람만이 관심을 두는 천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홍대용은 사회적 통념을 벗어나 우리나라 최초로 개인 천문대를 만들어 직접 만든 관측기구로 하늘을 관측했다. 또 기하학을 바탕으로 우주를 천문학적으로 이해하려 한 조선 최초의 과학자였다. 홍대용은 하늘과 별을 관찰하여 ‘하늘은 무한하고, 지구는 둥글며, 스스로 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조선 천문학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홍대용은 무한하고 평등한 하늘의 법칙을 백성들의 생활에 이롭게 쓰고자 노력했고, 역학과 수학 등을 활용하여 백성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고자 했다. 홍대용은 베이징 여행에서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접한 뒤 아무리 오랑캐의 학문이라고 해도 백성에게 이롭다면 배워야 한다며, 청나라의 학문을 들여와 배울 것을 주장했다. 드디어 홍대용에게 학문을 배운 정조가 왕이 되었고, 정조는 개혁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서얼이라는 신분에 막혀 기량을 발휘할 기회가 없던 젊은이들에게 백성을 위해 일할 기회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정조가 의문의 죽음을 맞으면서 조선의 변화는 막을 내리게 된다. 홍대용 또한 변변한 제자 없이 세상을 떠나 그 학문을 잇지 못하고 조선의 천문학은 답보 상태에 처한다. 그러나 역사는 홍대용을 잊지 않았다. 2005년, 국제천문연맹 산하 소행성 센터에서 화성과 목성 사이를 돌고 있는 소행성을 발견하자 그 이름을 ‘홍대용’이라고 붙였다. 조선의 천문 과학을 당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홍대용의 업적을 현대 천문 과학자들은 주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의 별들이 무한하고 평등한 것처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고 평등하기를 바랬던 홍대용. 홍대용의 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푸른 꿈’이라고 하겠다. 홍대용과 북학파에 관해 더 알고 싶은 이는 『책만 보는 바보』(보림)를 함께 읽어도 좋겠다. - 추천자 : 엄혜숙(아동도서연구가), 이상교(아동문학가)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모로하시 데쓰지/ 최수빈
쥐띠, 소띠, 호랑이띠... 주로 연초에 무슨무슨년(年)이라고 하면서 잠시 떠들썩했다가 다시 연말쯤이면 무슨무슨년이 가고 하면서 들어보는 게 아마도 전부일 것이다. 십이지(十二支). 사실 일상생활을 하는데 그 정도면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농경사회도 아니고 21세기 첨단 대한민국에서 띠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십이지는 무궁무진한 동양의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하나의 실마리에 불과하다. 특히 일본의 저명한 한학자 모로하시 선생이 대담형식을 통해 풀어낸 십이지의 흥미진진한 세계를 접하고 보면 더욱 그렇다. 거기에는 고대 중국과 일본의 사상과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당연히 그 중에는 우리 한국의 사상과 역사도 들어 있을 텐데 모로하시가 일본인인지라 그 부분은 빠져 있다. 단, 이런 이야기. 일본에서는 달에서 옥토끼가 떡을 만들기 위해 방아를 찧는다고 믿었는데 중국에서는 약을 만들기 위해 그랬다고 믿었다. 우리는 일본에 가까웠던 셈이다.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가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때문인지 모른다. 참으로 박식한 모로하시 선생은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와 음양오행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풀어내고 이어 각 띠별로 동양의 각종 고전에 담긴 전설과 우화까지 동원해 그 장단점을 구수하게 풀어낸다. 쥐라고 해서 다 나쁜 것도 아니고 소라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다. 실은 그것이 동양의 지혜다. 서양식으로 보면 모호하겠지만 동양식으로 보면 결코 모호하지 않다. 잘되고 못되고는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바로 이런 이야기를 우리의 필자가 썼더라면 내용이 훨씬 더 풍부해졌을 텐데 하는 것이었다. - 추천자 : 이한우(조선일보 기자)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고경남
그리운 걸 그리운 만큼 그립다고 적고 싶은 저자의 마음을 담은 책이다. 그리운 대상은 바로 남극. 남극이란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 내려앉을 만큼 그립다고 한 저자는 서울에서 17,240km나 떨어진 남극세종기지에서 1년을 보낸 의사다. 지겨운 일상의 탈출구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남극은 이름만으로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누구나 갈 수 없는 곳이 남극이다. 독자들은 남극세종기지 월동대를 “남극마을 개구쟁이 스머프”로 표현한 저자의 눈을 통해 세종기지의 일상을 엿볼 수 있고 사람들의 손발을 꽁꽁 묶어버리는 강력한 눈폭풍인 블리자드가 남극에선 얼마나 큰 공포임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좋으나 싫으나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며 투덜대듯 이야기하는 남극 생명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는 남극을 향한 깊은 애정이 담겨있다. 사나운 성격의 남극도둑갈매기, 지구를 가로질러 4만km 이상을 비행해 남극으로 오는 북극제비갈매기, 남극잔디로 불리는 남극좀새풀, 빙하의 침식작용에서 살아남은 외로운 돌산 누나탁, 눈망울이 매력적인 웨델해표, 자식을 향한 무한 사랑을 베푸는 펭귄을 사진과 함께 보는 일은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이 책이 전하는 최고의 선물은 수천 년의 시간을 담은 얼음의 거대한 흐름인 빙하, 햇빛을 받으면 푸르게 빛나는 빙벽, 펭귄의 놀이터인 유빙을 바로 눈앞에 펼쳐진 듯 안내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저자는 누구나 탈출을 꿈꾸지만 어느 곳에 있든 깨어있지 않으면 일상에 떠밀려 흘러갈 뿐이라며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라고. 책장을 덮으며 푸른 빙벽의 거대함과 마주치는 자신의 가슴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들어보길 기대해본다. - 추천자 : 장경애(과학동아 편집장)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조준현
‘경제학’이란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렵기만 하고 별 쓸모도 없는 학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경제학자인 나도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고 반론을 펴기는 힘들다. 경제학에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최소한 경제학자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중과의 소통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네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언어를 즐겨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볼 때 『19금 경제학』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경제학이 일상의 행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이라는 말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경제학 따위는 던져 버리고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감이 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론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의 사례를 풍부하게 인용해 세상과 경제를 보는 눈을 깨우쳐 주려는 저자의 시도가 매우 신선해 보인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있게 술술 읽힌다는 점이다. 경제학에 대해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과도한 기대를 거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이 책 한 권을 읽고 경제학의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다만 생각할 거리를 얻게 된다는 점에 만족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요즈음 서점에 가보면 무수하게 많은 경제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온 것을 보게 된다. 그 중에는 보석같이 좋은 책도 있지만, “왜 이런 책이 나왔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 많다. 하여튼 이런 책들의 홍수 속에서 읽을 만한 책을 골라 읽기는 더욱 어려워진 현실이다. 평범하게 보이는 이 책이 과연 독자들 눈에 띌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 추천자 : 이준구(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자크-알랭 밀레 편/ 맹정현 외
무의식의 발견은 현대 인문학에 대하여 신대륙의 발견과 같다. 정신분석은 인문학의 아메리카 합중국이 되었다. 무의식의 대륙은 인문학의 다양한 혈통, 전통, 언어, 상품과 재화가 뒤섞이는 거대 시장으로 발전했다. 인문학의 근대와 탈근대는 무의식의 이론이 창조적 융합의 용광로로 거듭나는 시점에서 가장 명확하게 식별된다. 그것은 정신분석이 철학에 버금가는 분석의 능력과 종합의 역할을 획득하는 시점과 일치한다. 정신분석에 이런 위상변화를 가져온 거인이 자크 라캉이다. 그는 정신분석을 인문학 전체의 미래를 향도할 만한 전위 학문으로 재탄생시켰다. 라캉의 언어 속에서 재탄생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그 극적인 재탄생 과정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는 책이 이번에 번역된 『자크 라캉 세미나 11권: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개념』이다. 국제정신분석학회(IPA)에서 파문을 당한 1963년 라캉은 이론적 홀로서기의 길로 나아갔고 구조주의자로 평가되던 자신의 과거와도 과감하게 결별했다. 이 책의 부제가 암시하는 것처럼 이런 새 출발은 정신분석의 원천과 토대에 대한 재검토 작업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드디어 이런 위대한 변신과 도약의 드라마를 잘 다듬어진 우리말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라캉 정신분석의 보물 상자를 누구라도 쉽게 열 수 있는 가슴 벅찬 순간이 왔다. 난해한 라캉의 문장을 자연스럽고 명료한 우리말로 옮겨놓은 번역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라캉은 이 세미나를 전쟁터의 기지를 구축하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다. 이번의 책과 번역자들의 후속작업은 국내 정신분석 연구와 대중화에 수없는 승리와 진전을 가져올 항구적 기지의 초석이 될 것이다. - 추천자 : 김상환(서울대 철학과 교수)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W.버나드 칼슨 외/ 남경태
대개 통사는 두 가지 방향으로 씌어진다. 시대별 기술이거나 주제별 기술이다. 그간 가장 많이 씌어진 통사는 정치적 사건을 시대순으로 나열하는 것이었다. 근래 들어 주제별로 바라본 통사들이 나오고 있는데, 시대와 주제를 결합하면 색깔 있는 통사가 나올 수 있지만 쓰기가 그리 쉽지 않다. 시대별로 전체를 조망하면서도 해당 주제에 해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한 드문 세계사인데 원제는 “TECHNOLOGY IN WORLD HISTORY”로서 “과학기술로 보는 세계사”라는 뜻이다.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란 제목으로 둔갑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한번 잡으면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빠져든다는 암시일 것이다. 인류역사를 지배한 것이 정치 같지만 인류역사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온 것은 과학기술이다. 어찌 보면 정치는 기술의 발전을 권력으로 시스템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나온 이 책은 “기술은 경제적·물질적 필요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마음속에 품은 사회적·정신적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개발된다”는 생각을 토대로 서술되었다. 기술의 경제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요소까지 고려해 서술되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이 책은 “사람들이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어떤 식으로 사회를 만들어 나갔는지 그 과정을 탐구한다.” 또한 이런 기술들을 서로 유통시킨 ‘길’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한 지역의 역사가 그 지역에 국한되는 분절적 서술이 아니라 기술의 유통 과정을 읽다보면 자연히 세계사적 시야를 갖게 되는 특징도 있다. 그래서 인류를 발전시킨 과학기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덧 세계사에 대한 지식까지 풍부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손색이 없다. - 추천자 :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