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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눈사람

개요
1955년 KBS 동요로 발표되고 국정음악교과서 1학년용에 수록되었다. 현재 유치원 교재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해설
2/4박자의 단순한 노랫가락이지만 우리 고유의 5음계에 의한 노랫가락이다. 동요가 너무 서양가락을 닮아가는 것이 안타까워 우리의 정서에 맞는 우리 고유의 5음계 가락을 사용해야 된다고 주창한 작곡자의 25세 때의 작품이다. 한겨울에 밀짚모자 꼬마 눈사람 눈썹이 우습구나, 코도 비뚤고 거울을 보여줄까, 꼬마 눈사람 하루종일 우두커니 꼬마 눈사람 무엇을 생각하고 혼자 섰느냐. 집으로 들어갈까, 꼬마 눈사람
작사가
작사가 강소천(姜小泉, 1915~1963) 동요·동시·동화 작가. 본명은 강용률(姜龍律)로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났다. 함흥 영생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부터 백석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1930년 동요 <민들레와 울아기>가 조선일보 현상문예에 당선되고 다음 해에는 ‘아이생활’, ‘신소년’ 등에 동요 <버드나무 열매>가 발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소년> 창간호에 <닭>(1936)을 비롯한 여러 편의 동요 동시를 발표했다. 1939년을 전후하여 동화와 아동소설도 쓰기 시작했다. 월남 후 <새벗>, <어린이 다이제스트>, <주간>(1952)을 거쳐 한국문협 아동문학분과 위원장(1953∼1955)을 지냈다. 아동문학 연구회 회장(1960) 문교부 우량 아동도서 선정 위원(1961) 한국문협 이사(1962)등을 역임했다. 아동소설 <어머니의 초상화>로 제2회 5월문예상 및 문학본상(1963)을 수상했다. 간경화증으로 작고 후 배영사에서 강소천 아동문학상을 제정(1965)했다. 동요 동시집으로 <호박꽃 초롱>(1941)이 있고, 동화·소설집으로 조그만 사진첩(1952) 꽃신(1953) 꿈을 찍는 사진관(1954) 등이 있다.
작곡가
작곡가 한용희 작곡가 한용희는 1931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신문학과에서 방송학을 전공하였다. 평소 동요를 좋아하여 고교 때부터 동요 합창단을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는데 이런 동요사랑에 남다른 그에 대한 소문이 퍼져 1954년 KBS 어린이방송에 프로듀서로 특채로 입사하여 어린이, 음악, 편성, 연예, 기획 운영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프로듀서로, 동요음악 지도로 꾸준한 동요 운동을 펼친 그는 1950년대 말부터 동요 창작에 몰두하여 주옥 같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이 시기에 만든 작품이 <파란마음 하얀마음>, <고향땅>, <푸른 잔디> 등이며, 1957년에 첫 작곡집 <봄아가씨>를, 1959년에 두 번째 작곡집을 엮어 출판하였다. 이후 1991년에는 동요합창운동을 제창하였고, 서울 YMCA 어린이위원에 위촉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99년에는 한국동요음악연구회에 회장으로 피선되어 동요 창작, 가창, 연주, 연구분야의 관계자를 모두 규합하여 조직을 강화하는 등 동요운동의 실질적인 제반문제에 주력하였다. 1977년 한국아동음악상 수상 이후 1982년에는 국민개창운동 유공분야 대통령표창, 1990년 KBS동요대상(작곡부문), 1995년 반달동요대상 등을 수상하였다.
리뷰
“40주기 맞은 아동문학가 강소천의 삶과 문학”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같이 /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무들 같이 너도 나도 씩씩하게 어서 자라서 / 새 나라의 기둥되자, 우리 어린이" ('어린이 노래' 1절) 강소천(姜小泉)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어린 시절 이 <어린이 노래>를 한 번쯤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소천 시에 나운영이 곡을 붙인 <어린이 노래>는 그야말로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이다. 올해는 아동문학가 강소천이 타계한 지 40년이 되는 해. 다음달 6일 소천아동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어효선) 주최로 40주기 추모행사가 열린다. 사람들은 강소천을 흔히 아동문학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들 말한다. 그는 평생 동시와 동요, 동화를 쓰며 살았다. 그가 남긴 동요 노랫말과 동시는 240여 편이나 된다.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린 노래 가운데 곱고 아름다운 가사가 있다면 거의 그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동화집 <꽃신>, <진달래와 철쭉>, <꿈을 찍는 사진관>, <인형의 꿈>, <대답없는 메아리>등은 감동적인 내용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고 박목월 시인은 "나는 소천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어린이들에게 '안심하고 읽힐 수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된다"고 평했다. 1915년 함경남도 고원군 수동면 미둔리의 한 기독교 가정에서 출생한 강소천(본명 강용률.姜龍律)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함흥 영생고보에 들어가면서부터 아동문학가로서의 자질을 보이기 시작한다. 고보 1학년 때 아동잡지 <아동생활>에 <버드나무 열매>라는 동시를 발표, 문단에 이름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일본인 교사의 조선학생 차별대우에 항의해 동맹휴학을 주동했다가 퇴학 당한 친구 오리 전택부를 통해 항일사상을 길렀다. 고보 4학년 겨울방학이 끝나자 그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1년간 북간도를 방랑했다. 이때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동시 <닭>이 발표됐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 구름 한 번 쳐다보고 아버지의 권유로 학업을 마친 강소천은 영생고보를 졸업한 뒤 열심히 동시와 동요가사를 써서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다. 1939년 <돌멩이>라는 동화를 발표하면서 동화도 쓰기 시작했다. 해방 후 교직생활을 하다 1·4후퇴 때 월남해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한 강소천은 문교부 편수국에서 교과서 만드는 일도 했다. 그는 1952년 월간 <어린이 다이제스트>의 주간이 되어 어린이 잡지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1955년에는 <새벗>의 주간이 되어 생활이 다소 안정되자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벌였다. 1957년 폐허를 복구하며 먹고 사는 데 급급해 아무도 어린이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할 때 그는 한 자 한 자 정성을 들이고 다듬어 '어린이 헌장'을 만들었다. "어린이는 인간으로 존중하여야 하며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키워져야 한다"로 시작하는 이 헌장은 그해 5월 5일 어린이날에 '아동문학가협회' 이름으로 발표됐다. 1959년 소천은 이화여대와 연세대에 출강하면서 아동문학 강좌를 처음으로 대학 강의과목에 넣게 했다. 또한 1960년 아동문학연구회 회장이 돼 <아동문학독본>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는 1961년 위암 수술을 받은 뒤 회복됐으나 1963년 동화집 <어머니의 초상화>, <그리운 메아리>를 펴내는 등 무리한 활동으로 다시 입원했다. 이번에는 간암이었다. 그는 끝내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48세를 일기로 작고했다. 1965년 김동리, 박목월, 윤석중 등이 그의 업적을 기려 소천아동문학상을 제정했다. 이 상은 면면히 후배 아동문학가들에게 수여되고 있다. - <연합뉴스>, 2003년 4월 30일
관련음반
<꿈꾸는 동요>, 가람미디어, 2005 <열려라 동요천국>, 가람미디어, 2004 <신나는 동요나라 135곡>, 블루마인드, 2005
관련도서
<꿈을 찍는 사진관>, 강소천, 소년세계, 1954 <호박꽃 초롱>, 강소천, 박문서관, 1941 <창작동요 80년>, 한용희, 한국음악교육연구회, 2004 <동요의 샘물에서 찾은 행복한 인생>, 한용희, 한국음악교육연구회, 2001 <한용희 애창동요 100곡 선집>, 한용희, 한국음악교육연구회, 1998 <우리동요 365곡집>, 한용희, 삼호출판사, 1987 <작은 새의 열망>, 한용희, 세광음악출판사, 1978 <한국의 동요>, 한용희, 세광음악출판사, 1994
연계정보
-고향 땅
-금강산
-파란 마음 하얀 마음
관련사이트
강소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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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요음악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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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교육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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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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