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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번에 두 주인을(Arlecchino)

작가소개
카를로 골도니(Carlo Goldoni, 1707~1793)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1723년 베네치아의 파도바와 모데나에서 법률을 배웠다. 1731년에 파도바대학에서 법률학을 마치고, 잠시 베네치아에서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초기의 작품을 썼다. 1734년 베로나에서 산 사무엘레극단과 만나 전속작가가 되었다. 처음에는 전통적인 코메디아 델 아르테 풍의 소극(笑劇) <두 주인을 섬기는 하인> 등을 썼다. 그러나 차츰 계몽주의나 몰리에르로 대표되는 프랑스 고전희극의 영향을 받아 즉흥적이며 터무니없는 줄거리의 즉흥희극을 배척하고, 그 당시 풍속의 사실적 묘사와 등장인물의 자연적인 심리 전개를 주체로 하며 가벼운 풍자와 교훈을 담은 시민희극의 확립을 목표로 연극 개량운동을 제창했다. <여관집 여주인>(1753), <카페>(1750), <캄피엘로(Campiello)>(1756) 등의 걸작이 있다. 다작(多作)으로서, 작품이 200편에 가까우며, 1750년~51년에는 16편의 신작을 상연했다. 1762년에 파리 이탈리아 극장의 작가가 되어 프랑스로 이주, 프랑스 왕실의 이탈리아어 교사가 되었으나, 대혁명을 만나 가난에 시달리다가 죽었다. <한꺼번에 두 주인을>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이탈리아 전통 가면극인 ‘코메디아 델 아르떼’의 전형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47년 밀라노에서 창설된 이탈리아 최초의 상설극장이자 유럽 명문극장인 삐콜로 떼아뜨로에서 <아를레끼노>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어 이탈리아에서만 1689회 공연한 것을 비롯해 전세계 36개국에서 순회공연을 한 기록을 갖고 있다. 모든 공연은 극장 설립 당시부터 1997년 사망할 때까지 극장의 예술감독을 맡았던 이탈리아의 대표적 연출가 조르지오 스트렐러(1921~1997)가 줄곧 연출을 해왔다. 짜여진 대본 없이 대략의 줄거리를 토대로 배우들이 즉흥연기를 하는 코메디아 델 아르떼는 극 내용이 바뀌어도 항상 전형적인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아를레끼노>에서는 전형적인 인물유형 가운데 판탈로네와 박사, 하인 외에 요리사가 전형 인물로 등장한다. 이 전형적 인물들은 모두가 검은 가면을 쓰고 그 외의 사람들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1967년 극단 자유에서 김정옥 연출로 공연된 적이 있다.
내용
<한꺼번에 두 주인을>은 제목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두 주인을 섬기게 된 어느 하인의 이야기이다. 연인의 오빠와 결투를 하다 그를 죽이고 고향에서 도망친 남자 플로린도와 그를 찾기 위해 죽은 오빠 페데리고를 가장하여 남장을 하고 베니스에 온 베아트리체가 그의 두 주인이다. 돈을 두 배로 받을 욕심으로 우연히 동시에 이 두 사람의 하인이 된 아를레끼노는 두 주인 사이를 오가느라 정신이 없다. 주인에게 돈을 갖다 주라는 심부름을 받으면 엉뚱한 주인에게 전하기도 하고, 짐을 운반하라는 명을 받으면 두 주인의 소지품을 뒤죽박죽 섞어 놓는다. 하지만 결국 이 두 주인을 다시 만나게 하는 건 엉뚱한 그의 행동 덕분이다. <아를레끼노>는 17세기 유럽에서 널리 퍼졌던 가면극 코메디아 델 아르떼를 당시 극작가 카를로 골도니가 대본으로 옮긴 것을 조르지오 스트렐러가 다시 현대화한 작품으로, 스트렐러는 <아를레끼노>를 세 막으로 나누고 막이 오를 때마다 불씨를 안고 나타나는 할아버지를 등장시켰다. 그는 무대 앞쪽에 늘어선 촛불에 하나씩 불을 붙여 연극의 시작을 알린다. 이 촛불은 전기 조명이 들어오지 않던 전통극에서 조명으로 쓰이는 동시에 연극무대의 경계를 알리는 장치이기도 하다. 촛불이 켜지면서 연극이 시작되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200년전 베니스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3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 가운데 1막은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며, 2막에서는 공연 중간중간에 배우들이 서로 말참견을 하기도 하고 거들기도 하는 코메디아 델 아르떼의 전형을 볼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며, 3막은 아를레끼노가 등장하는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국내공연연보
1967년 10월 11일~16일 극단 자유 / 국립극장 / 김정옥 연출
예술가
김정옥(金正鈺, 1932~ ) 서울대학교 불어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프랑스 현대문학과 영화·연극을 공부했다. 귀국 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강사로 있으면서 1963년 이근삼, 양광남, 최명수와 함께 극단 민중극장을 세워 이오네스코의 <대머리 여가수> 등을 번역, 공연했다. 1966년 이병복과 함께 극단 자유를 창단하면서 <따라지의 향연>(스칼페타 작, 명동국립극장)을 스스로 연출한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극단 자유를 벗어나 연출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극단 자유를 창단할 당시 김정옥은 <한꺼번에 두 주인을>, <아가씨 길들이기>, <마리우스>, <피크닉 작전> 등 주로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의 외국 고전 희극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다. 한국 사람한테 부족한 것이 바로 희극정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희극의 빠른 템포를 우리나라 연극에 도입하기 위해 많은 힘을 쏟았다. 그 뒤 서구의 부조리극을 선보이다가 1978년 대한민국연극제 참가작품이었던 <무엇이 될고하니>를 기점으로 이른바 집단창작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김정옥은 이 작품을 통해 집단창조와 총체적 연극의 이상을 내세우고 생과 죽음의 주제를 극적으로 부조하면서 서구 연극과 우리의 연극적 유산의 만남 속에서, 단순한 접목이 아니라 오히려 충돌 속에서 이루어지는 오늘의 새로운 연극, 우리의 연극으로서의 제3의 연극을 표방하고 나설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차피 연극의 중심은 배우인데, 그 배우들에게 서양의 틀을 씌우는 것의 한계를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구의 연극과 우리의 전통연극이 만나고 부딪치고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새로운 형태의 한국연극이 빚어질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판소리, 탈춤을 과감하게 연극에 끌어들인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 <무엇이 될고하니>, <달맞이꽃>, <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 <이름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 <수탉이 안울면 암탉이라도>, <피의 결혼> 등이다. 초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희극에서 1970년 한국의 전통설화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과 그 후 총체연극이란 이름 아래 제작된 그의 연출기법은 연극에 관한 다양한 관심과 연출가로서 겪어야 했던 혼돈의 역사를 보여준다. 이러한 희곡 선택과 연출경향은 그가 국제극예술협회 제3세계 연극분과위원장을 맡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제3세계 연극운동’ 혹은 ‘뉴시어터 운동’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는 서구연극과 다른 독자성을 추구하기 위해 제3세계의 개성을 찾아내고, 문화의 주체성을 찾자는 자생적인 움직임을 강조한다. 이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이 충돌함으로써 새로운 연극을 찾아내어야 한다는 그의 연극관으로 발전한다. 극단 자유는 1980년에 정력적으로 해외 순회공연을 추진하기도 한다. 일본,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튀니지 등에 여섯 차례에 걸쳐 순회공연을 가졌으며, 프랑스의 렌느연극제, 낭시 세계연극제, 칼카존연극제, 소피아 앙티포리스연극제, 스페인 시저스연극제, 바르셀로나 연극제, 마라가 연극제, 튀니지 하마메트연극제, 일본의 오키나와 동양연극제 등에 참가했다. 그러나 극단 자유가 치른 외국 공연보다 그의 이름은 더 국제적이다. 국제극예술협회(ITI) 한국본부 회장직을 10년 넘게 맡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본부 회장을 지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1997년에는 국제극예술협회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여 외국의 우수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리뷰
(……) 서울연극제의 말미를 장식해준 삐꼴로 떼아뜨르의 공연은 최고 연기진의 완변한 연기술 및 조화와 공연진행 상 무르익은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문예회관 대극장의 프로시니엄 전면에 10여 개의 촛불을 밝힌 외에 비어 있는 무대는 그들 연극의 중심에서 빛나는 배우들의 연기 공간으로 충분하였다. 몇 가지 상징적 소도구들만이 장면별로 재치있게 활용되어 공간의 이동과 변화된 연기공간의 창출을 도왔다. 꼬메디아 델 아르떼의 민간적 공연전통을 일깨워 주는 연극적 장치로서 프롬프터가 극의 초입 암전 속에서 객석과 무대의 사이를 가로질러 중얼대고 외치며 등장한다. 무대 중앙 계단을 통해 무대로 올라 전면의 촛불을 밝히면서 각 막의 시작을 알리는 그는 공연 진행 시 무대 한 옆에 대본을 들고 앉아 대사의 정확성을 확인하고 참견도 하는 한편 무대를 가로질러 이동하며 장의 전환을 알린다. 노 프롬프터의 친근하고 구수한 인도로써 과거의 전통과 오늘의 현재, 서양의 배우들과 한국의 관객들 간의 만남이 중재된다. 사랑을 에워싼 젊은이들의 오해와 갈등, 그것을 부추기는 부모들의 이해관계, 그 틈에서 기지와 재치로써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하지만 결국 조화로운 결말을 위하여 맹활약하는 하인들. 꼬메디아 델 아르떼 특유의 플롯에는 근본적으로 계급과 학식과 성을 초월하여 가장 인간적인 것에 대한 가치평가가 내재되어 있다. 어찌 보면 천편일률적인 플롯에도 불구하고 꼬메디아 델 아르떼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는 호소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그것이 무엇보다 인간 중심적 무대라는 데에 있을 것이다. 외형적으로 축적되고 과시되는 가치들이 무력하게 희화화되는 지점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자신의 신체밖에 없는 하인들이 온몸으로 표현해내는 재기와 익살이 관중들에게 세상 사는 맛을 다시금 일깨워주지 않는가. 아를레끼노 역의 76세 노익장 명배우 페루치오 솔레리 및 그의 동료들은, 근대와 탈현대를 거쳐 알 수 없는 미래로 내닫는 오늘의 관객들에게 인간과 그의 몸이란 인류 문화의 출발점이자 어느 시대에서도 지나쳐버릴 수 없는 정거장임을, 인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들의 몸으로써 웅변해준 것이다. 그들의 적나라한 인간적·인체적 ‘진실’ 앞에 우리 관객들은 기립하여 환호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인간적·인체적 진실의 무대’, 이화원, <한국연극>, 1999년 10월
연계정보
-극단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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