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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 낙랑둥

출연/스태프
출연 (1996년 7월 12일~24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공연) 호동/정동환,이기봉 왕비,공주/김성녀,서이숙 난쟁이/윤문식,서상원 달래/이용이,방숙 왕/김종엽 부장/정태화 사자/이명수 장교/전일범 군병,얼굴/조정근,주성환 궁녀/황연희 시종/김학수 얼굴/김동영,장항석,이영오,임채용,김회운 무희/안해경,박경단,한혜수,조혜순,김현숙 코러스/박영숙,한명희,정진,장숙경,박윤숙,이영균,서상희,김현숙,정정희,오승언,김난희,김미선 스태프 (1996년 7월 12일~24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공연) 미술/윤정섭 조명/공준택,천세기 음악/이병욱 의상/최보경 안무/국수호 효과/김벌래 음향/변영태,서창석 분장/김성태,김은희 사진/조대형 조명팀/김준웅,오승천,박현정 미술팀/남기혁,이국희 무대감독/구본학 무대진행/최영길 무대기계/최현규,유재길 조연출/신용수,심우인
내용
<둥둥 낙랑둥>은 1978년 희곡으로 발표된 후 1980년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프롤로그와 마지막의 에필로그 사이에 9개의 장면 전환으로 줄거리가 짜여져 있다. 프롤로그는 호동이 낙랑과 싸움에서 이기긴 했으나 사랑하던 공주를 잃고 우울하게 입성하기 전날 밤, 꿈에 죽은 공주의 환영을 보고 괴로워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1장에서 호동의 승전을 축하하는 나라굿이 거행되며, 어미무당이기도 한 의붓어미인 왕비의 모습이 낙랑공주와 흡사하다는 사실은 새삼 호동을 당황하게 한다. 2장에서는 괴로워하는 호동을 부장이 위로하고 왕자로서 의연할 것을 충고한다. 3장에서 호동의 번민이 낙랑공주와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 왕비는 그녀가 낙랑공주의 역을 하여 낙랑에서의 일을 재현하는 사랑놀이를 통하여 그를 위로하고자 한다. 4장은 낙랑공주의 시녀였던 달래의 출현으로 사태가 역전되는 부분이다. 즉, 그녀에 의하여 왕비는 낙랑공주가 호동을 위하여 자명고를 찢고 부왕으로부터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동생과 낙랑의 불행이 사랑을 이용한 호동의 술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 왕비는 낙랑의 공주로서 호동에게 분노한다. 5장에서, 괴로움으로 왕과 별궁에 머물던 왕비는 호동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 국내성으로 환궁한다. 6장에서는 다시 한번 전환이 온다. 즉 사랑놀이를 통하여 호동을 낙랑에서의 기억 속에 묶어 놓음으로써 과거 사실도 알아내고 낙랑성으로의 출정도 방해하려 하였으나, 잠재적으로 호동을 사랑하고 있던 왕비와 사랑놀이를 통하여 오히려 번민이 가중된 호동은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어 놀이가 아니라 실재로 사랑에 빠져 불륜의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7장에서 호동의 방에서 발견된 낙랑의 부처는 호동을 궁지로 몰고, 그를 심판하는 굿을 벌이기로 한다. 8장에서 부장의 모반 사실까지 드러나게 되자 왕비는 호동에게 살 길을 택하라고 부탁한다. 9장 심판날. 호동은 낙랑의 북에 진 빚을 갚기 위하여 죽음을 택하고 왕비도 뒤따라 자결한다. - 참고: 1996년 최인훈연극제 공연 프로그램
최인훈 (1936~ )
1936년 함북 회령 출생. 서울대 법학대학을 중퇴했으며 대학교 재학 당시 고향 회령을 배경으로 한 <두만강>을 썼다. 1959년 자유문학에 단편소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을 투고하여 등단하였다. 1960년 새벽에 <광장>을 발표했으며, 5·16군사정변 이후 절망을 그린 <회색인>, 박태원 소설 제목을 그대로 인용해 1960년대 후반기 양심적인 예술가상을 제시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냉전이데올로기의 근원지를 찾아다니며 존재의 실존적 의미를 탐구하는 자전적 장편소설인 <화두> 등을 집필하였다. 서울예술대학에서 1977년부터 2001년 5월 정년퇴임까지 교수로 역임했으며 서울예술대학에서 소설론 특강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1979년 <최인훈 전집>을 출간했으며, 1970년 평론집 <문학을 찾아서>와 1989년 산문집 <길에 관한 명상>이 있다. 동인문학상과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 중앙문화대상 예술부문 장려상, 서울극평가그룹상 등을 수상하였다. 대표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봄이 오면 산에 들에> <광장>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둥둥 낙랑둥>
손진책 (1947~ )
1947년 경북 영주 출생의 연출가. 1967년 서라벌예술대학 연극과에 입학했으며 같은 해 극단 산하에 입단하였다. 1972년 서라벌예술대학 부설 민족연극연구소 조교로 근무하다 허규 연극연구소 강사로 일하였으며, 1973년 구자흥, 정현, 김흥기, 공호석, 오승명 씨 등과 함께 허규 선생을 모시고 극단 민예를 창단하였다. 1974년 장소현 작의 <서울 말뚝이>로 첫 연출데뷔를 했으며, 1976년 명동국립극장의 마지막 공연인 <한네의 승천>을 연출하였다. 1981년 <허생전>을 시작으로 마당놀이의 개념을 수립, 해마다 작품을 올리고 있다. 1982년 문예진흥원 해외연수자로 선발되어 영국 로얄셰익스피어컴퍼니에서 연수를 받았다. 1986년 윤문식, 김종엽, 김성녀, 정태화 등과 함께 극단 미추를 창단하였고, 창단공연으로 <지킴이>를 연출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 한강축제 총감독을 맡았으며, 1989년 서울연극연출가그룹 회장, 1994년 ITI(국제극예술협회) 부회장,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연극제 예술감독, 2002년 FIFA 한일월드컵 개막식 총연출을 역임하였다. 1976년 제12회 한국연극영화예술대상 신인상을 필두로 한국연극예술상, 서울연극제, 백상예술대상, 이해랑연극상을 다수 수상하였다. 대표작품 <서울 말뚝이> <한네의 승천> <지킴이> <오장군의 발톱> <신이국기> <남사당의 하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둥둥 낙랑둥>
평론
(……) 이러한 작품의 표면적인 줄거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호동 설화의 내용과 전혀 다르게 전개된다. 하지만 고구려의 왕비를 죽은 낙랑공주와 외모가 똑같은 쌍둥이 언니로 설정한 극적 장치를 통하여 사랑과 의무의 갈등에서 사랑을 선택하는 설화 첫 에피소드의 의미를 작품 내부에 강하게 끌어들이는 것이다. 즉 작품 속에서 호동은 낙랑공주의 언니인 왕비(낙랑의 공주)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설화 속의 낙랑공주가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했듯이 호동과 왕비도 사랑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두 주인공이 불륜의 사랑을 맺게 되는 계기인 '낙랑을 사는 사랑놀이'는 사실상 죽은 낙랑공주와의 사랑, 즉 설화내용을 반복하는 것이 된다. 작품에서는 설화의 의미가 호동과 왕비, 그들의 관계를 통하여 더욱 증폭되고 심화되는 것이다. 작품의 두 주인공, 호동과 왕비가 고구려의 현실적 질서와는 상반된 내면(낙랑)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번민한다. 작품 속의 호동은 영웅적 지략에 대하여 회의하는 인물로 형상화되어 있다. 작가는 부장이 낙랑공주에게 북을 찢도록 부탁하는 것으로 변용시켜 호동이 고대적 영웅에서 탈피하여 현대적 의미의 정당한 인격을 부여 받도록 하는 것이다. 호동은 그 사실을 공주가 죽은 다음에 알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사랑을 이용한 영웅이 된 자신의 행동 때문에 번민하는 것이다. 호동은 고구려의 왕자로서 되도록이면 빨리 공주의 죽음을 잊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내면의 진실은 낙랑공주에 대한 사랑과 죄책감으로 가득 차있어 주몽 이후 고구려 영웅들의 행동과 다른 자신의 내면 때문에 괴로워한다. 호동의 번민은 개인의 사랑을 추구하며 나라를 배반한 낙랑공주의 행동과 동일한, 집단(사회)이 요구하는 가치에 동의할 수 없는 개인의 갈등인 것이다. 왕비도 현실적으로는 고구려의 질서에 속한 인물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낙랑의 큰딸로 친정 식구를 잃은 슬픔과 호동을 향한 잠재적 사랑으로 번민하게 된다. 왕비의 번민 역시 집단(사회)이 요구하는 가치에 위배되는 개인의 내면에 기인한 것이다. 둘의 번민은 낙랑을 사는 ‘사랑놀이’에 의해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놀이’는 현실로 전환되고 그 결과 불륜의 사랑으로 그들의 번민은 더욱 가중되어 결국 죽음을 선택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사랑놀이’가 현실화되는 것은 그것이 인물들의 내면적 진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호동은 왕비와 외모가 똑같은 낙랑공주를 사랑하고 있고, 왕비도 호동을 잠재적으로 사랑하고 있어 공주와 사랑을 나누는 상황은 이들의 내면적 진실과 일치하는 바, 놀이를 통하여 내면적 진실이 드러나게 되고 ‘사랑놀이’는 현실화하게 되는 것이다. 작품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현실과 갈등의 교차, 공존의 경험 속에서 인물들은 생의 본질적인 불가해성에 빠져들게 된다. 결국 왕비와 호동은 현실과 환상의 갈등과 교차를 통하여 생의 불가해성 속에서 자기존재의 의미마저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호동은 환상 속의 죽은 낙랑공주와의 사랑과 왕비와의 현실적 사랑 사이에 번민하다가 낙랑의 검은 북을 침으로써 낙랑공주와 죽음을 같이 하게 되어 결국 환상 속의 낙랑공주를 선택한다. 왕비는 현실과 환상이 존재하는 이원론적 삶일지라도 호동과의 사랑으로 견디기를 원한다. 그러나 호동이 자결을 택하자 그녀도 현실의 고구려 왕비와 환상의 낙랑공주의 이중 역할에서 해방되어 호동의 애인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으로도 현실과 환상이 완전히 화합을 이룬 것은 아니다. 극의 마지막, 하늘에서 거지차림의 하늘 사자가 내려와 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호동과 왕비의 잘린 목을 “식은 밥덩이 주워넣듯 그렇게 함부로 주워넣고” 하늘로 올라간다. 주인공의 죽음 이후의 이러한 장면은 비희곡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하늘 사자가 주검을 거두어 간 다음 궁중의 어릿광대 난장이는 ‘주몽의 탈을 쓰고 왕자의 관을 쓰고 왕비의 치마’를 입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러한 난장이의 모습은 삶이나 죽음으로도 도달할 수 없었던 고구려와 낙랑, 현실과 환상의 화합을 암시하는 것으로, 현실과 환상의 화합은 인간적인 삶 속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현실과 환상은 작품 전반에 화합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세계, 부조리한 삶에 대한 상징으로 연결되어 있다. 왕비와 호동은 자신들의 부조리한 삶의 조건을 밤과 낮밖에 없는 누리로 표현한다. 극의 첫부분, 호동이 환상의 땅인 낙랑에서 현실의 땅인 고구려로 들어오기 전날 밤, 호동에게 나타난 낙랑공주의 환상은 “삶과 죽음이 낮과 밤 같은데 무슨 도리가 있겠소”하며 사라진다. 이와 같이 현실과 환상의 갈등이 낮과 밤, 삶과 죽음, 고구려의 흰 북과 낙랑의 검은 북의 상호 배타적인 의미체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작품의 의미와 연결해 볼 때, 작품 속의 고구려와 낙랑의 대립은 역사적 의미가 아니라, 화합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세계에 대한 알레고리로 해석할 수 있다. <둥둥 낙랑둥>은 사랑과 의무의 갈등이라는 호동 설화의 핵심을 낙랑과 고구려로 이분된 현실의 경직된 이원론, 화합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세계로 증폭시킴으로써 작품의 구심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현실과 환상의 갈등, 불가해한 생의 의미에 부딪힌 인물들의 존재론적 비극을 형상화시킨 작품인 것이다. - 참고: 1996년 최인훈연극제 공연 프로그램 (……) <둥둥 낙랑둥> 공연의 초점은 자연히 호동과 왕비의 내면심리 전달과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어떻게 허무느냐에 있다고 하겠다. 공연은 호동(정동환 분)과 왕비(김성녀 분)의 연기력에 힘입어 무리 없이 이러한 과제를 이루었다. 이들의 탁월한 연기력은 자칫 멜로물적 과장으로 빠질 수 있었던 이야기를,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현대 심리극으로 이끌어 갔다. (……) - <세계화 시대 해체화 연극>, 이미원, 연극과인간, 2001 (……) <둥둥 낙랑둥>은 우리식의 공연문법으로 풀어낸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작품이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설화를 모티브로한 이 연극은 낙랑공주를 쌍둥이 자매로 설정하고 셰익스피어를 떠올리게 하는 빛나는 대사들이 많아 소설가 뿐만 아니라 극작가로서 최인훈 씨의 무게를 말해주기에 충분했다. <햄릿>의 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서는 배우들이 마흔살은 넘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실감있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인생의 깊이를 아는 배우들이 필요했다. 연륜과 실력을 겸비한 정동환 씨와 김성녀 씨의 낙점은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명했음이 판명났다. 적국인 고구려에 왕비로 시집와 나라굿을 주관하는 어미무당까지 맡은 낙랑공주의 쌍둥이 언니(김성녀)가 의붓자식인 호동왕자를 위해 낙랑공주의 혼을 불러내는 사랑놀음은 산자와 죽은 자의 잔치인 ‘굿’에 익숙한 우리민족의 정서를 잘 나타내주었다. - 세계일보, 1996년 7월 17일, 이미옥 (……) 흘러가는 강물 속을 뒤집어보듯 덮여진 역사를 무대 밑에서 끄집어내는 것으로 시작된 이 작품은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서글픈 사랑을 새롭게 구성해 흥미를 끈다. 사랑을 위해 북을 찢은 낙랑공주의 죽음과 호동왕자의 갈등, 여기에 덧붙여 작가 최인훈은 또 하나의 낙랑공주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더군다나 쌍둥이로 설정된 낙랑공주는 호동의 어머니였던 것. 설화에서 보여준 비련의 사랑을 이상한 삼각관계로 되살려내 사랑의 진실을 갈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눈길 끌기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무대에 가득찬 배우들의 설명적인 대사가 오히려 객석을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어 시작과 마무리의 깔끔한 완결성을 빛 바래게 만들고 있다. 작품의 설화성은 무대미술에 잘 살아났다. 제작을 맡은 윤정섭은 토월극장의 깊이를 최대한 활용해 이색적인 무대를 꾸몄고, 매듭을 이용한 상징성, 상하를 무제한적으로 사용한 다양성이 돋보였다. 또 우리 춤사위와 어우러진 무속의 모습도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어 객석으로 파고 들었다. 1인 2역으로 낙랑공주와 왕비 역을 소화하는 김성녀와 서미숙(더블캐스트)은 의상과 목소리의 변화로 서로 다른 두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고, 호동 역의 정동환과 이기봉(더블캐스트)의 연기도 볼 만하다. - 조선일보, 1996년 7월 20일, 윤정호 (……)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의 고삐”를 지닌 인물들은 삶에 대한 사랑으로 전혀 다른 죽음을 갈망한다. 그리하여 만족하게 죽는다. ‘내’가 ‘너’를 만난 순간 이미 우리들과 이 세계와의 관계는 끊어졌다. 인물들은 이 때부터 이미 죽어있었던 것. 죽음이란 모든 것이 무로 변하며, 동시에 재생산되는 시간이다. <둥둥 낙랑둥>은 죽음을 담보로 해서 삶과 제도의 비극적 모순을 드러낸다. 죽음 앞에서 죽음을 부당하게 보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역시 죽는다. 죽음 앞에서 스스로의 주인일 수 있어야만 연극은 가능하다. 등장인물들이 침착성을 잃게 되는 것은 죽음 앞에서이다. 억제할 수 없는 것도 죽음이다. 그 이유는 죽음은 극단이기 때문이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그 언니는 죽음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자기자신을 극단적으로,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이들이다. 배우들의 말들이 사라진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맡은 배우들은 줄곧 관객을 보고 말한다. 배우가 관객에게 말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변화시켜 사물을 부재케 하고, 사라진 것을 나타나게 하는 작업이다. 자기 밖에 존재하는 내밀성 속으로, 죽음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말한다는 것은 이 정점에 서는 일이다. “내 몸 아닌 내 몸뚱어리, 불쌍한 내 몸뚱어리”라고 불리는 몸이 있다. 그것은 “꿈이 정말입니다. 정말이 꿈입니다. 꿈 속에 정말이 있고, 정말 속에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만큼 사랑에 취해 죽은 이들의 몸의 절정이다. 등장인물들은 낙랑에서 추방당하고 고구려로부터도 배척당해 그 경계에서 짓밟힌다. 희곡은 죽음을 말하고 있다. 공연은 죽음의 체험이자, 또한 접근이 불가능한 죽음의 공간과 같다. - 한겨레, 1996년 7월 18일, 안치운
관련도서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최인훈, 문학과지성사, 1979 <최인훈 희곡 연구>, 홍진석, 태학사, 1996
연계정보
-왕자호동
-왕자호동
-자명고
-극단 미추
-호동왕자(好童王子)
관련사이트
극단 미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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