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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원류(歌曲源流)

문헌명
가곡원류(歌曲源流)
저자
박효관(朴孝寬)·안민영(安玟英)
개요
1876년(고종 13)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이 편찬한 필사본 1권 1책의 가집(歌集). 김천택(金天澤)의 <청구영언(靑丘永言)>, 김수장(金壽長)의 <해동가요(海東歌謠)>와 함께 3대 가집을 이룬다. <청구영언>과 <해동가요>가 그때까지의 한국 시조문학을 모아 정리한 것이라면, <가곡원류>는 그 총결산이라 할 수 있다. 이본에 따라 책이름이 약간씩 달라 ‘해동악장(海東樂章)’, ‘청구악장(靑丘樂章)’, ‘화원악보(花源樂譜)’ 등으로도 불리며, 10여 종에 이르는 이본의 내용도 약간씩 다르지만 대체로 대동소이하다.
저자
박효관(朴孝寬, 생몰년 미상) 조선 고종 때의 가객(歌客). 자는 경화(景華), 호는 운애(雲崖). 가곡(歌曲)의 명인 장우벽(張友璧)의 법통을 오동래(吳東萊)를 통하여 계승받은 명인이다. 1876년(고종 13) 제자 안민영(安玟英)과 함께 3대 가집의 하나인 <가곡원류(歌曲源流)>를 편찬하여 그때까지의 가곡을 총정리하고, 가곡 창(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시하였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남다른 총애를 받아 대원군에게서 운애라는 호를 하사받았으며 풍류 남녀들과 더불어 승평계(昇平契)를 만들었다. 그의 작품 13수가 <가곡원류>에 전하며, 그의 가곡창은 하준권(河俊權)·하규일(河圭一)을 거쳐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안민영(安玟英, 1816~?) 조선 고종 때의 가객. 자는 성무(聖武)·형보(荊寶), 호는 주옹(周翁). 서얼 출신으로 1876년(고종 13)에 스승인 박효관(朴孝寬)과 함께 <가곡원류>를 편찬하고, 자신의 시조 <영매가(&#21647;梅歌)> 외 26수도 함께 실었다. 이 밖의 저서로 <금옥총부(金玉叢部)>·<주옹만필(周翁漫筆)> 등이 있다.
내용과 특징
<가곡원류(歌曲源流)>는 비교적 최근에 편찬되었기 때문에 이본(異本)이 많다. 규장각본(奎藏閣本)을 비롯해서 장서각본(藏書閣本)·이왕가아악부본(李王家雅樂部本, 국립국악원 소장본, 이후 국립국악원 소장본으로 표기)·국립도서관본(國立圖書館本)·육당본·일본 도요분코본(日本東洋文庫本)·프랑스 파리 동양어학교본(東洋語學校本) 등이 있는데, 이것들은 내용이 다른 이본들이다. 10여 종의 이본 가운데 원본에 가깝다고 추정되는 국립국악원 소장본은 표제가 ‘가사집’이다. 이본에 따라 청구영언·청구악장·해동악장·화원악보(花源樂譜) 등의 이칭(異稱)이 있다. 보통 ‘가곡원류’라고 하나, 이는 이 책의 첫머리에 송나라 오증(吳曾)의 <능개재만록(能改齋漫錄)>에서 ‘가곡원류’라는 부분을 참고로 인용한 것이 있어서 이것을 내제명(內題名)으로 잘못 알고 표제명으로도 ‘가곡원류’라고 쓴 것으로 추측된다. 국립국악원본을 중심으로 내용과 체재를 살펴보면, 책머리에 <능개재만록>에서 인용한 <가곡원류>에 이어 <논곡지음(論曲之音)>·<각조체격(各調體格)>·<가지풍도형용십오조목(歌之風度形容十五條目)>·<매화점장단(梅花點長短)>·<장고장단점수배포(長鼓長短點數配布)> 등을 수록하였다. 본편은 남창부(男唱部) 665수, 여창부(女唱部) 191수로 총 856수의 시조작품을 싣고 있다. 작품 배열은 오로지 곡조에 따라 우조초중대엽(羽調初中大葉)으로부터 엇편(濫編)에 이르기까지 30항목으로 분류하였다. 곡조를 밝힘에 있어서 대부분의 경우는 초중대엽·장대엽 등 한자(漢字)만으로 기록했으나 우조의 두거(頭擧)와 계면조의 중거(中擧) 등 6종은 ‘존쟈즌한닙’·‘듕허리드는쟈즌한닙’ 등 우리말로 풀어 아울러 기록해 놓았다. 작가의 신분차이나 연대순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이름이 알려진 작가와 무명씨의 작품도 곡조에 따라 뒤섞여 있다. 작가가 밝혀진 작품은 그 끝에 작가의 성명과 함께 간단한 약력을 소개하였다. 수록작가의 연대적인 범위는 고구려의 을파소(乙巴素)에서부터 조선 고종 때의 안민영에 이른다. 작가의 신분계층도 위로는 열성(列聖)에서 명공석사(名公碩士)·기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루었다. 국립국악원본 이외의 이본으로는 ① 규장각도서의 <가곡원류>, ②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 가와이문고(河合文庫)의 <청구영언>, ③ 최남선(崔南善) 소장의 <청구악장>, ④ 프랑스 동양어학교 소장의 <가곡원류>가 있다. 또 ⑤ 박상수(朴相洙) 소장의 <가사집>과 ⑥ 장서각도서의 <가곡원류>, ⑦ <해동악장>, ⑧ 가람문고의 <가곡원류>, ⑨ 이희승(李熙昇) 소장의 <청구영언>, ⑩ 일본 도요문고(東洋文庫)의 <가곡원류>, ⑪ 이능우(李能雨) 소장의 <화원악보> 등이 있다. 이들 이본이 어느 정도 공통점을 보여주는 것은 책머리의 <가곡원류>·<각조체격>·<매화점장단> 등 해설문을 통하여 시조의 곡조 및 창법에 크게 유념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곡조에 따라 29∼30항목으로 시조작품들을 분류하고 있는 바, <청구영언>의 10항목, <해동가요>의 14항목에 견주어 볼 때, 곡조 분류방법이 현저하게 세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가곡원류> 편찬시기에 있어서의 곡조의 특징은, 첫째로 삭대엽(數大葉: 잦은치)이 발달하여 빠른 속도의 시조창이 유행하였다는 것이다. 둘째로 엇롱·엇악·엇편 등 ‘엇’의 형태를 지닌 곡조가 확립되었으며, 셋째로 가곡의 음악형태와 시조의 음악형태가 어느 정도 일치되었다는 점이다. 원래 가곡은 그 원형이 만대엽(慢大葉: 늦은치)·중대엽(中大葉: 중간치)·삭대엽의 세 갈래였던 것이 영조 이전에 만대엽이 없어졌다. <가곡원류> 편찬 당시에 이르러서는 중대엽까지 어느 정도 쇠퇴하여 삭대엽이 한층 발달하였는데, <가곡원류>는 이러한 시기의 변화를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농·악·편의 곡조에 ‘엇’의 형태가 확립되었다는 것은 정격의 음악에 대하여 변격의 음악이 발달하였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 역시 <가곡원류> 편찬 당시 현저하게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시조의 음악형태는 경제(京制)에서 평시조·중허리시조·지름시조·사설지름시조·수잡가(首雜歌)·휘모리잡가로 나뉘는데, 이러한 체계는 가곡의 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가곡원류>의 각 이본에 보이는 곡조의 명칭과 이를 대비하면, 평거는 평시조, 중거는 중허리시조, 두거는 지름시조, 엇악·엇롱은 사설지름시조, 엇편은 수잡가, 편삭대엽은 휘모리잡가와 대응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이 시기에 가곡과 시조의 음악체계가 어느 정도 일치되어 창곡의 발달이 왕성하였음을 의미한다. <가곡원류>의 편찬자인 박효관과 안민영은 스승과 제자 사이로 박효관은 당시의 가객들이 모인 노인계(老人契)나 승평계(昇平契)의 중심인물이었다. <가곡원류>는 이러한 모임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시조집이다. <청구영언>과 <해동가요>가 김천택(金天澤)과 김수장(金壽長)을 중심으로 한 가단(歌壇)의 이해와 협조에 의하여 편찬될 수 있었던 사실에 비추어, 박효관과 안민영을 중심으로 한 노인계·승평계 등도 이러한 가단활동의 계승이라고 볼 수 있다. <청구영언>이나 <해동가요>가 시조문학의 중간보고서라면, 이 <가곡원류>는 그 총결산보고서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이 편찬된 직후, 우리의 전통문학을 잇는 이른바 신문학의 새 물결이 밀어닥쳐왔기 때문이다. 특히, <가곡원류>는 이본이 10여 종이나 될 정도로 그 유포가 광범위하고, 음부를 구비한 시조집의 전범이 될 수 있다. 또한 <청구영언>·<해동가요>와 더불어 시조문학의 발달, 특히 음악형태의 체계와 그 변화과정을 살피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국립국악원본은 1957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회에서 <국어국문학자료총서> 제2집(등사판)으로 간행된 바 있다.
연계정보
-가곡
-청구영언(靑丘永言)
-해동가요(海東歌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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