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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당

작품명
성황당
저자
정비석(鄭飛石)
구분
1930년대
개요
1937년 조선일보 신춘현상문예에 당선된 정비석의 단편소설. 1945년 금룡도서(金龍圖書)에서 간행된 단편집 <성황당>에 수록되어 있다. 후미진 평안도의 천마령 산골에서 숯을 구워 먹고 사는 순이 부부와 그녀 주위의 사내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시림 속에서의 건강하면서도 관능적인 삶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당대의 주류이던 심리소설과 사회주의적 소설세계와 많이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이 작품은 건강한 원시주의에 대한 예찬을 그리고 있으며, 비합리적 사고, 자연친화, 원색과 성욕 등이 ‘순이’라는 작중인물을 통하여 소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작품이 우수한 단편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작가 정비석이 건강하고 신선한 원시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것을 제시함에 있어 의도적으로 효과적인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데 있다. 중요한 장면마다 자연물이나 자연현상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황당>의 신선한 생동감과 관능적인 흡인력, 자연친화력 등은 도회 문명이나 이데올로기에 시달린 당대의 많은 독자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내용
깊은 산중에서 숯을 구워 생계를 꾸려가는 ‘현보’는 4년 전 서른 가까운 나이에 열네 살의 ‘순이’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다. 순이는 인위적인 규범과 무관하게 살아온 순진무구한 인물로 모든 일을 성황님으로 숭앙되는 자연의 은덕으로 여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현보의 숯막에 점심을 날라주고 개울에서 목욕하고 있던 순이를, 산림 간수 긴상이 나타나 희롱하며,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현보를 잡아넣겠다고 협박한다. 순이가 단호히 거부하자, 앙심을 품은 긴상은 현보를 산림법 위반으로 잡혀가게 한다. 그날밤 긴상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면 현보를 풀어주겠다고 순이를 유혹한다. 이때 전부터 순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현보의 친구 칠성이 찾아와 긴상과 싸움을 벌이고 긴상을 쫓아낸다. 칠성은 현보가 3년은 감옥에서 지내야 할 것이라며 자기와 함께 가자고 순이를 꾀인다. 칠성이가 가져온 분홍 항라적삼과 목메린스 치마를 입고 칠성을 따라나섰던 순이는, 불현듯 현보가 그리워져 뒤를 본다며 숲속으로 들어가 치마 저고리를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성황님! 성황님!”을 외치며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방 안에서는 돌아온 현보의 기침소리가 들려온다.
저자
정비석(鄭飛石)
생애(1911~1991)
본명은 서죽(瑞竹). 평북 의주 출생. 일본 니혼대학 문과를 중퇴하고 귀국하여 창작에 정진하였다. 193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여인의 상>, <저 언덕길> 등을 발표했으나 1936년 소설로 전향, 단편 <졸곡제(卒哭祭)>, <성황당>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어 등단했다. 한때 매일신보 기자(1940), 중앙신문 문화부장(1946), <대조> 편집주간(1947) 등의 일을 하며 창작활동을 했으나 1950년대 초 이후 전업작가로 일관했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졸곡제>(1936), <성황당>(1937) 이후 <해춘부>·<운무>·<거문고>(1937), <애증도>·<저기압>·<눈오는 날 밤>(1938) 등을 발표했다. 언삼 부자가 지게꾼일과 밀수, 도둑질까지 해서 아내의 제사를 지내는 <졸곡제>, 숯을 구워 먹고 사는 현보와 그의 젊은 아내를 둘러싼 사내들의 관계를 그린 <성황당>을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1940년대에는 설악산을 배경으로 종교와 사랑의 문제를 다룬 <제신제>(1940), 전통적 가치관의 청파선생을 통해 세태의 변화를 그린 <고고>(1940), 섣달 그믐의 세모 풍경을 특이한 구성으로 묘파한 <한월>(1942) 등을 발표했다. 광복 이후 창작활동이 더욱 본격화되어 <만월>(1945), <모색>(1946), <수난자>(1948) 등의 단편과 <장미의 계절>(1946), <고원>(1947), <도회의 정열>(1949) 같은 연재소설, 1950년대 <청춘산맥>(1950), <여성전선>(1951), <자유부인>(1954), <슬픈 목가>(1957)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대중적 인기작가로 군림하였다. 특히 <자유부인>(1954)은 일부계층을 풍미한 퇴폐적 서구풍조를 묘사함으로써 선풍적인 화제를 일으켰는데, 이 작품의 발표전후로 일련의 애정세계를 다룬 통속적 경향의 신문 연재소설을 많이 발표했다. 말년에는 역사에서 소재를 취해 <명기열전>(1976~1979), <민비>(1980), <손자병법>(1983) 등을 발표했다. 부담없는 문장으로 관능미를 곁들인 남녀간의 갈등, 소박하고 낭만적인 인도주의의 세계를 그려나간 그의 소설적 특성은 그의 꾸준한 창작활동과 더불어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게 하였다.
리뷰
(……) 그의 작품들은 대체로 한국근대문학사의 주류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모습을 보여왔다. 사회주의 문학운동 단체인 카프(KAPF)의 여광(餘光)이 여전히 지배적이었던 시기에 토속적·자연친화적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며 등단한 것이나, 한국전쟁의 충격이 미처 가시지 않았던 시기에 <자유부인>을 통해 통속적인 풍속묘사를 감행한 뒤 본격적인 통속·대중작가의 길을 밟아온 사실들에서 위의 지적이 확인된다. 지식인이자 계몽가로서의 작가적 태도가 줄곧 지속되어온 우리 문단의 주도적 흐름으로부터 확연히 비껴나와 있는 것이다. (……) 초기작이면서도 문학성 측면에서 볼 때 정비석의 최고 대표작이라 할 <성황당>(1937)은, 천마령 깊은 산속에서 숯을 구워 살아가는 현보와 그의 아내 순이를 통해서 현대사회의 인위적, 제도적 공간을 벗어나 자연 속에 녹아들어 있는 토속적이고도 건강한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황당>의 세계는 성황신(城隍神)이 모든 것을 주재하는 공간 속에,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분리가 미치지 못하는 지체된 시간 위에 설정되어 있다. 코를 질질 흘리는 열네 살에 시집와 이제 열여덟 아내 꼴이 박힌 순이는, 남편에게 재앙이 없도록 성황님께 축수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 모든 사건은 성황님께 대한 자신의 공양과 불경에 따르는 결과로 인식된다. 애니미즘적인 자연친화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 순이 자신이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 순이는, 산새나 종달새, 미라부리와 차별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점에서는 현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열여드렛달이 천마재 위에 비죽이 솟아 있는 산속에서 둘이 부부의 정을 나누는 것을 두고 통속이나 에로티시즘의 발로로 단정지을 수는 없게 된다. (……) 미역을 감는 행위는 물론 숯을 굽는 행위까지도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일 뿐이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없는 곳. 인간문명의 발전이라는 것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임을 생각한다면, <성황당>의 세계는 문명 이전의 세계, 최소한 근대화의 물결 저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식민지 현실 너머의 어떤 곳이다. 이러한 ‘자연친화’의 모습, 그것의 소설 내 형상화의 문학사적 의미가 우리의 관심사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도덕주의 및 이념적 엄숙주의’에 대한 반발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이인직의 정치소설에서 춘원의 계몽주의소설을 거쳐 10여 년간을 풍미한 카프에 이르기까지 우리 소설사의 주된 흐름은 계몽주의자와 지사(志士)로서의 문인들에 의해 이끌어져왔다. 그들의 작품은 민족의 나아갈 길을 밝히는 등불이자 민중들을 깨우치는 방편이었으며, 사회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통로였다. 민족과 사회의 운명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마주하고 있었기에 거기에는 개별적인 인간적 요소라든가 하는 것이 개재될 수 없었다. 이러한 소설사적 전통에 대한 반기. 이것이 <성황당>의 세계가 위치지어지는 자리이다. 이 자리에서야 비로소 생생히 살아 있는 인간적 리얼리티가 진솔하게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왔을 때 <성황당>이 통속적 흥미 차원의 애정·성적 풍속도와는 거리가 먼 생생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게 된다. (……) 물론 이렇게 자연 그 자체만을 그린다면 소설일 수 없다. (……) <성황당>이 소설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산림간수 김주사와 산 너머 광산에서 일하는 칠성이의 등장에 힘입는다. 이 둘을 추동시키는 것은 기본적으로 순이에 대한 성적 욕망이지만, 김주사의 경우 그가 산림간수라는 사실이, 즉 사회적 구조에 편입되어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결정적인 무게를 지닌다. 그가 자신의 흑심을 채우고자 현보를 영창에 넣게 되면서 소설 장르 필수의 현실적 힘이 개입하게 되는 까닭이다. (……) 이후 작품의 서사 진행이 급박해지는데 김주사와 칠성이 한바탕 격돌을 한 후에 순이가 칠성이를 따라 야반도주를 하는 것이다. (……) 윗부분(야반도주를 하던 순이가 마음을 바꾸는 부분)은 이 작품의 핵심을 응축하고 있다. 산으로 표상되는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것과 성황님께 빌었으므로 현보가 틀림없이 돌아왔으리라는 믿음, 이 두 가지가 <성황당>을 뒷받침하고 있는 중심축이다. 순이의 믿음대로 현보는 돌아와 있다. ‘성황님!’을 부르짖으며 올라오는 순이의 귀에 들리는 현보의 기침 소리는 따라서 신파극적인 우연성이나 통속적인 결말 처리와는 거리가 멀다. 현실 너머로서의 자연친화적인 공간 바로 거기에 이 작품이 놓여 있는 까닭이다. (……) 성으로 표상되는 인간적 리얼리티를 부각시킴으로써 기존의 도덕주의적·엄숙주의적 경향에 새로운 차원을 보탰다는 점, 근대적인 사회현실에 폐색되어 있던 문단에 자연친화적인 삶의 모습을 추가함으로써 시대성을 넘어서는 한 예를 보여주었다는 점으로 요약되는 <성황당>의 문학사적 의의는 일제 치하에 발표된 다른 작품들의 주요 특징과도 대체로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 - ‘바라보기 혹은 보여주기의 성패: 정비석의 문학세계’, 박상준, <한국소설문학대계 23 : 성황당 외>, 동아출판사, 1995
작가의 말
(······) 나는 14세에 소설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먹고 나서부터 오늘날까지 오로지 문학 외곬으로만 살아왔다. 중도에 신문사에 5년 가량 근무하였고, 대학강사와 여고 작문교사로 1년 가량 근무한 일이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의에 의한 부업이었을 뿐, 주변머리가 없을 정도로 문학에만 집착해왔었다. 1937년 문단에 데뷔하여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외길로만 걸어온 셈이다. 그러나 나는 문학을 일부인사들이 생각하듯이 반드시 고답적인 것이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난해한 철학적 명제를 내걸고 인생의 진리를 도맡아 탐구하는 듯한 작품을 쓰기보다는 누구나가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재미있고 알기 쉽게 써나감으로써 일반 독자들로 하여금 문학에 쉽게 접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을 쓰려는 것이 나의 문학관이었다. 오직 글만 써먹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신문 연재소설을 안 쓸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나 스스로 신문 연재소설에 전력을 추구해온 근본 이유는 나의 문학관이 바로 그러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신문 소설 독자란 냉혹하기 짝이 없어서 재미가 없으면 그날로 외면을 해버린다. 독자가 외면을 해버리면 신문사도 그 작가에게 외면을 해버리는 것이 통례다. 그런 점을 감안해볼 때 70평생을 잘 썼거나 못 썼거나 신문 연재를 쉬지 않고 계속해왔다는 것은 나 자신으로서는 매우 장한 일이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어떤 부류의 독자가 읽어 주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리라. 그러나 나는 독자의 질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독자층의 저변을 확대해나가는 것도 문학이 가진 하나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대중적인 나의 문학관’, 정비석, <나비야 청산가자>, 신원문화사, 1988
관련도서
‘정비석의 <성황당>에 나타난 생태적 인식 연구’, 차봉준, <숭실대 인문학연구>, 2002년 12월호 ‘<성황당>에 나타난 작가의식’, 김재남, <세종어문연구>, 1987년 12월호 ‘정비석의 문학’, 김병욱, <월간문학>, 1971년 8월호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작은사전>, 가람기획편집부 편, 가람기획, 2000 <국어국문학자료사전>, 국어국문학편찬위원회 편, 한국사전연구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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