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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곡(思母曲)

작품소개
어머니의 사랑이 아버지보다 더 크고 지극함을 낫과 호미에 비유하여 읊은 노래이다. 육구체(六句體) 단련(單聯)으로 되어 있고, 고려의 장가(長歌) 가운데 가장 짧다. <악장가사(樂章歌詞)>,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등에 실려 전해지며, 이 노래를 백제시대의 <목주가(木州歌)>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현대어풀이
호미도 날이지마는 낫같이 들을 리도 없습니다. 아버지도 어버이시지마는,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이가 없습니다. 말씀 마시오 임이시여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이 없습니다. - 참고: <고려시대의 가요문학>, 정병욱 해설;김열규·신동욱 공편, 새문사, 1982 <고전시가강독>, 최철·박상태 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출판부, 1986
관련 설화
<고려사(高麗史)>에 실려 있는 ‘목주가’의 창작 경위 목주가(木州歌)는 효녀가 지은 것이다. 딸이 아비와 후모를 섬기었는데 효성스럽다고 알려졌다. 아비는 후모의 거짓말에 빠져 그녀를 쫒아냈다. 딸은 할 수 없이 하직하고 떠나가 산중에 들어갔다. 석굴에 노파가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자신의 사정을 노파에게 말하고 함께 살게 해달라고 했다. 노파는 그녀의 궁벽한 사정을 슬퍼하며 그렇게 하라고 허락했다. 딸은 부모를 섬기는 정성을 다했다. 노파도 그녀를 사랑하여 자기 아들과 성혼을 시키었다. 부부는 협심하여 근면하고 검약하게 살아 부자가 되었다. 부모가 그래도 기뻐하지 않으므로 효녀는 이 노래를 지어 스스로 원망했다. - 참고: <새로 고친 고려가요의 어석 연구>, 박병채, 국학자료원, 1994
해설
이 작품은 일찍이 <고려사>에 전하는 ‘목주(木州) 이야기’ 및 ‘악지(樂志)’에 전하는 <목주가(木州歌)>와 관련하여 논의돼 왔다. 즉, 신라시기에 불렸다는 <목주가>를 <사모곡>과 같은 것으로 본 것이었다. 그러나 <사모곡>이 대부분의 고려가요가 지니고 있는 3음보 율격의 반복 어구와 대구(對句)의 사용, 여음(餘音)의 사용, 단련체(單聯體)의 시상을 연장체(聯章體)의 형식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록 원형상으로는 <목주가>와 관련이 있음을 고려해 본다 하더라도 악보로 정착된 <사모곡>은 <목주가>와는 달리 완전히 고려가요로 전환한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다. 고려가요의 형태는 ‘청산별곡류’와 ‘한림별곡류’의 양대 가요군으로 구분돼 왔다. 그런데 <사모곡>은 가요로서 한 연으로 돼 있다는 점에서는 별곡적 형태와는 다른, 이른바 전(前)별곡적 형태이며 전후절로 양분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향가와 맥락이 닿는 작품이다(<한국 고전시가론>, 정병욱). 그리고 <사모곡>은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민요이다(‘고려가요의 전반적 성격’, 김명호, <고전시가론>, 김학성·권두환 편). 농민들의 일상생활에 소재를 둔 이 작품은 <상저가>와 같이 농부들의 소박한 생활 감정이 잘 나타난 작품인 것이다. 대부분의 다른 작품들이 특정 지명을 가져다가 제목을 삼았는데 이들 노래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전승 범위가 특정 지역에서 벗어나 널리 퍼졌고 지속적으로 전승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일명 ‘엇노리’(엇노래)라고도 한다.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금합자보(琴合字譜)>에 사설 및 악보가, <악장가사>에는 그 가사만 전한다. 이와 같은 악보의 기록으로 미루어 <사모곡>은 조선 초기까지 전승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악보 상에 나타난 <사모곡>의 음악적 내용은 <시용향악보>에 의하면 계면조의 선법에 16정간보 8행의 길이로 되어 있고, <금합자보>에 의하면 거문고의 대현(大絃) 5괘가 궁(宮)인 임종평조(林鐘平調)로 되어 있다. 또 <사모곡>은 1970년대에 들어 기존의 고악보를 근거로 재현하거나 새로운 창작 동기를 가지고 편곡한 곡명을 일컫기도 하는데, 1976년에 김기수(金琪洙)에 의하여 중창 형식으로 재현된 바 있으며, 1977년에는 작곡가 이성천(李成千)이 관현악 반주와 합창곡으로 재현한 바 있다.
연계정보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
-악장가사(樂章歌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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