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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자 (1936.1.15~)

예술가명
이현자 (1936.1.15~)
구분
중요무형문화재
문화재관련정보
1988.11.30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 선정 1990.10.1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조교 선정 1993.8.2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후보 선정
학력(계보)
1951.2.10 강선영고전무용학원 입소 1953.5.1 강선영선생에게 태평무 사사 1955.3.2 풍문여자고등학교 졸업 1989.11.30 일반전수자로 중앙발표공연 시 이수평가 받음 1992.2. 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고급정책과정 수료
생애(약력)
1956.7. 경기여자중고등학교 무용강사 1958.3. 이현자무용학원 설립 1959. 무용발표회 1960.7. 제2회 창작무용발표회 1962.6. 제3회 창작무용발표회 1965.2.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과 무용과 강사 1968.3. 대만문화원 초청 해외친선공연 1973.11. 해외초청공연(일본 시라하마관광협회) 1975.~1976. 이현자무용단 운영 1982.2.10~2003. (사)한국무용협회 이사 1989. 일본 후쿠오카박람회 공연 1991. 한국무용협회 주최 지방순회공연(울산) 1994.12. 예술문화공로상 수상 2001.7. 공개행사 발표공연(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002.10.9~24 청주오송국제바이오엑스포 참가 공연 2003.8.14~17 일본 아와오도리 공연
리뷰
춤 가득히 왕비의 고귀함이…. 태평무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1988년 12월이다. 이 춤은 궁중복식에서 가져온 화려한 의상과 수식, 태평이라는 큼직한 이름이 붙어있어서 언뜻 궁중 정재중의 하나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쉽지만 사실은 궁중정재와는 무관한 춤이다. 우리 전통예술의 공연양식이 극장무대화하던 시기인 1920년대를 전후에서부터 명고수 명무로 전설적인 행적을 남긴 고 한성준옹이 경기무속 중에 진쇠장단과 그 춤을 끌어내서 만든 춤이다. 전통적으로 전해진 춤과 음악을 바탕으로 해서 현대무대에 맞춘 새 이름 새 구성으로 만든 것이다. 이 춤은 한성준옹의 손녀인 고 한영숙씨와 제자인 강선영씨에게 전수돼 우리무대의 고전적인 춤목록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같은 스승으로부터 배워서 추는 춤이면서도 한영숙·강선영 두 무용가의 춤은 그들의 춤의 개성이 다르듯이 다른 맛으로 전개돼왔다. 한영숙씨의 태평무는 현란한 발사위와 함께 단정하고 깨끗한 품격이 앞서고 강선영씨의 태평무는 화려하고 방만한 거드름이 앞장을 선다. 태평무의 문화재 지정과 함께 강선영씨는 그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 후계로는 그의 가장 오랜 제자인 이현자씨(李賢子)가 먼저 나서고 있다. 이현자씨는 풍문여고 1학년때 16세 때부터 강선영무용연구소에서 춤을 배웠다. 어려서 유치원처럼 다녀본 무용연구소가 있었지만 이때는 누가 데려간 것이 아닌 제 발로 찾아 나선 것이다. “우리 반에 반장이 앞장을 서고 여럿이 우르르 몰려갔었죠.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강선생님은 모시 치마저고리를 입고 창가에 앉아계시다가 일어나 춤을 추시는 거예요. 그 춤 한판에 반했죠. 다른 애들은 모두 중도에서 그만두고 반장애와 나만 남았다가 그도 그만 두고 나는 계속 공부를 했습니다.” 승무, 살풀이를 기본으로 배우고 강선영 안무의 많은 춤에 참여를 했지만 태평무의 수업은 오히려 늦은 편이었다. 장단과 사위가 어렵고 까다롭고 힘들어서 선뜻 가르치고 배우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평무는 그에게 있어서 선생님 춤 중에서 제일 좋은 춤이었고 언제든 배우고 싶은 춤, 배워야 할 춤이었다. 그는 이 춤을 ‘고귀하고 성스러운 우리 춤의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태평무를 배울 때 어려운 장단과 발디딤, 너무 열중한 연습으로 발목찜질을 했을 정도다. 한성준옹은 태평무를 왕과 왕비의 춤으로 만들어 무대에서 직접 추셨다. 이 춤을 이어받은 사람이 한영숙·강선영씨 등 여자제자 뿐이어서 그동안 남성의 태평무는 재현되지 못했었다. “강선생님은 그걸 안타깝게 여기셔서 복식을 재현하고 남자제자도 키우실 예정이예요.” 여성의 태평무는 왕비의 일상복인 당의를 기본으로 하고 남성의 복식은 왕의 복식인 곤룡포·바지저고리·익선관에 옥계를 느리고 한삼을 낀다. 일생 사사해온 존경하는 스승의 춤을 이어받은 그는 이 춤을 출 때마다 엄숙한 마음이 된다. <일간스포츠>, 구히서, 1991년 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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