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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무

개요
태평무가 언제부터 전승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조원경이 1967년에 발간한 <舞踊藝術>의 기록이나 많은 국악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약 100년 전부터 추어온 것으로 판단된다. 태평무라는 이름의 춤은 경기도 도당굿의 재인이고 무속음악의 대가였던 이용우(李龍雨)가 붉은 철륙을 입고 태사(太史)신에 관모차림으로 춘 적이 있고, 발탈 예능보유자인 이동안이 남색 관복차림으로 추기도 했던 것과 우리나라 명고수이자 명무자였던 한성준이 경기지역 무속무용을 재구성하여 추었다는 춤 두 가지가 있다. 태평무에 대해서 이용우는 ‘옛날 원님들이 임금님 앞에서 추던 춤’이라고 증언하였으며, 이동안은 ‘화성 재인청’에서 전해진 춤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태평무는 이용우나 이동안이 추었던 춤이 아니라 한성준이 추던 것으로 그의 태평무는 임금과 왕비가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는 춤이다. 경기도 도당굿의 진쇠가락을 비롯하여 낙궁, 터벌림, 도살풀이 등의 가락에 맞춰 춤을 추며, 춤사위에 경기도 무속무용의 동작이 나오고 음악 역시 경기도 지역 굿의 가락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한성준이 경기도 도당굿에서 연행되던 무속음악과 무속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 한 춤으로 보여진다. 태평무는 장단이 매우 복잡하여 가락을 알지 못하며, 춤을 만들 수도 없고 출 수도 없다고 한다. 동작이 섬세하고 우아하고 한동작 한동작에 절도가 있다. 발디듬이 다양하고 발을 구르는 동작은 이 춤만이 지닌 멋이라고 한다. 한성준에서 직접 사사받은 유일한 춤꾼인 강선영이 태평무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내용
태평무는 궁중의상을 입고 추기 때문에 궁중무용으로 생각될지 모르나 무악(巫樂)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과 발을 구르는 동작이 정재무와는 다르며, 궁중무용이 아닌 민속무용에 속한다. 기능보유자인 강선영은 태평무를 추기 위해서는 장단을 익히는데만 3개월이 걸릴 정도로 배우기 어려운 춤이라고 말하는데, 태평무의 춤사위는 승마의 장삼 뿌림과 경기 무속무용, 학춤에서 나오는 춤사위 등이 보이지만 그것보다는 다양한 발디딤의 기교가 우선이라고 한다. 바로 이 점이 태평무가 다른 춤들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살풀이춤이나 승무는 발을 사뿐히 들어서 뒤꿈치를 딛으며 일직선으로 발을 놓지만 태평무는 처음 시작하는 발로 원을 그리지 않으면 장단을 맞출 수가 없다. 잔발을 딛고 발을 돌리며 굴리고 잦은 깨끔발을 띠고 잔가락을 넣어야만 발짓이 맞아 떨어진다. 한편 승무나 살풀이춤에서 한바퀴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 태평무는 반쯤 돌다가 휙돌리는 반돌림이라는 것을 또 다른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손 동작 역시 다른 춤들과 차이를 보이는데 태평무는 귀 위로 손이 올라가며 아래도 처져서는 안된다. 또 손을 엎을 때도 춤이 딱딱하게 느껴질 정도로 옆으로 확 펼치고 한삼을 뿌릴 때 겹쳐지도록 한다. 태평무의 구성요소는 크게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낙궁과장 태평무의 도입부로 오른발 뒷꿈치부터 앞으로 내딛으며 앞으로 나간다. 오금을 죽이며 추는 춤사위가 섬세하고 우아하며 절도있다. 2) 터벌림과장 앞부분에서 느리게 추다가 뒤로 가면서 춤사위가 차츰 빨라지게 되는 발전적 단계를 지닌다. 3) 올림채과장 올림채과장은 감고 푸는 사위와 겹걸음사위가 주를 이룬다.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배합하여 감고 풀고 어르고 당기는데 능란함이 있어야 하고 이에 의해 춤의 묘미가 살아난다. 4) 도살풀이과장 역시 어르고 감고 재치고 엎는 사위가 한데 어우러진 맛과 기교의 과장이다. 5) 터벌림과장 마무리를 위한 터벌림과장이다. 극히 짧은 느낌을 주긴 하나 짧음 속에서도 환희의 극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태평무는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는 춤이며 따라서 맺히는 춤이 아니라 푸는 춤이다.
전승자정보
태평무는 조선조 말 대원군과 고종 앞에서 춤을 추어 ‘참봉’이라는 작위를 받았던 한성준으로 그는 우리나라 음악은 물론 춤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태평무는 한성준에 의해 재구성된 뒤 손녀인 한영숙과 강선영에게 전해졌으며, 현재 강선영이 태평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어 전승하고 있다.
한성준(1875~1941)
충남 홍성 출생으로 6세부터 외조부인 백운채에게 춤과 장단을 시작하였으며, 14세에 서학조(徐學祖)에게서 줄타기와 민속예능을 배우고 홍성을 비롯한 서산, 태안 일대의 각종 연회, 굿판에 참가하였다. 28세부터 전국을 유랑하면서 전국 각지의 민속예술과 접하였으며, 31세에 서울에 정착하여 원각사에 출연하였다. 고종으로부터 참봉이라는 벼슬을 직계받았으며, 판소리 명창들과 궁중 어전의 연회에 참가하는 등 명고수로 명성을 얻었다. 1938년에 근대 전통춤 교육을 위한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한영숙, 강선영, 김천흥 등의 전통무용가를 배출하였고, 남은 생의 대부분 춤을 재구성하거나 집대성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한성준이 궁중에서 전승되던 정재와 민간에서 추던 민속무용을 토대로 새롭게 창작한 전통춤은 승무, 태평무, 살풀이춤 등을 비롯하여 왕의춤, 영의정춤, 좌의정춤, 급재춤, 도승지춤 등 40여 가지에 이르며 그 가운데 승무와 태평무, 살풀이춤 등은 우리 전통춤의 가장 탁월한 춤형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선영(1925~)
경기도 안성 출생으로 1937년에 한성준 고전음악연구소에 정식으로 입소하여 무용을 시작하였다. 그 후 7년간 연구소에서 숙식하면서 한성준이 보유했던 40여 가지의 춤을 익혔다. 혼인 후 잠시 춤을 그만 두었다가 1951년에 강선영무용연구소를 열면서 활동을 재개한 뒤 많은 공연을 선보였다. 1986년부터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1988년에 한성준에게서 사사받은 태평무로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한성준류 태평무는 그의 뒤를 이어 이현자, 이명자, 양성옥, 이춘자, 고선아 등에 의해 전승되고 있으며, 반주 가락은 김덕수, 강민석, 김동원 등에 의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연계정보
재구성태평무,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권 5>, 국립문화재연구소, 1997.무형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 제 181호 태평무, 정병호,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20집 : 179-188, 문화재관리국 편저.한국예술사전 4권(연극/무용/영화 편), 대한민국예술원, 1985.http://www.taepyungmu.net/main.htm 태평무보존회
관련도서
태평무,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권 5>, 국립문화재연구소, 1997. 무형문화재지정조사보고서 제 181호 태평무, 정병호,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20집 : 179-188, 문화재관리국 편저. 舞踊藝術, 趙元慶, 海文社, 1967 한국예술사전 4권(연극/무용/영화 편), 대한민국예술원, 1985.
도당굿
경기지역에서 전승되는 마을굿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한 행사이다. 경기 북부에서는 큰 산을 의지하고 있는 마을들이 공동으로 굿을 하는데 강습무들이 주관하는데 비하여 남부에서는 세습무가 주관하는 것이 다르다. 보통 정월이나 10월 또는 봄에 정기적으로 굿을 한다. 경기도 도당굿은 당주굿으로 시작되어 부정, 시루말, 돌돌이, 제석, 도당신 모시기, 손굿, 군웅굿, 뒷전 등으로 진행되는데, 이 중 돌돌이는 마을 사방에 장승을 세워놓고 액을 물리는 것이다. 도당신은 대개 대를 내려 모시고 손굿과 군웅굿은 주로 화랭이라고 하는 남자 세습무가 창과 재담을 섞어서 한다. 세습무권에서는 보통 여자만 굿을 하지만 경기도 도당굿에서는 유일하게 남자가 중요한 굿을 담당한다.
살풀이춤
남도 무속무용(巫舞) 계통의 춤으로 살, 즉 액(厄)을 푼다(제거한다)는 뜻을 가진 민속무용을 말한다. 수건춤 ·즉흥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흰 치마 ·저고리에 가볍고 부드러운 흰 수건을 들고 추는데, 살풀이에서 수건은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반주음악으로는 피리 2개, 대금과 해금, 장구, 북이 각각 1개 씩으로 다른 무용의 반주 때와 다름없으나 간혹 징을 곁들일 때도 있다. 장단은 항상 단장고(單杖鼓)이며 입타령으로 가락을 흥얼거려 효과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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