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시조창(전북)

작품/자료명
시조창(전북)
전승지역
전라북도
지정여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4호
구분
정악
개요
<시조창(時調唱)>은 ‘시조시(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를 가사로 노래 부르는 것을 말하며, ‘시절가’, ‘시절단가’, ‘단가’라고도 한다. 3장 형식으로 관현악 반주가 따르지 않는다. 고려 후기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가장 오래된 기록을 보면 영조(재위 1724∼1776) 때 학자 신광수의 <석북집> 관서악부에 이세춘이 시조에 장단을 붙였다는 시가 나온다. 순조(재위 1800∼1834) 때 간행된 <유예지>에는 경제(京制) 평시조 악보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내용
<시조창>의 형식은 3장 형식이고, 음계는 3음4음의 ‘계면조’(슬프고 처절한 느낌을 주는 음조)와 5음의 ‘우조’(맑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음조)로 되어 있다. <시조창>은 즉흥성을 가진 전달음악이기 때문에 종장 끝음절인 ‘하노라’, ‘하느니’, ‘하오리라’ 등은 생략한다. 또한 시조는 3음 또는 4음의 적은 음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창법에 따라서 ‘요성(搖聲)’, ‘전성(轉聲)’, ‘퇴성(退聲)’ 등의 여러 가지 기법으로 시조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옛 선비들이 즐겨 부르던 대중음악이라 할 수 있고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귀중한 문화재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시조창>의 창작 연대는 고려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재 부르고 있는 창법은 조선 말 영정조 무렵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시조창>은 ‘가곡’의 영향을 받아 ‘시조곡조’가 발생, 보급되었는데 서울, 경기 지역의 <경제(京制)>, 전라도의 <완제(完制)>, 경상도의 <영제(嶺制)>, 충청도의 <내포제(內浦制)>로 지역적 특징을 지니고 나뉘게 되었다. <경제>는 ‘평시조’에서 <중허리시조>, <지름시조>, <사설지름시조>, <수잡가>, <휘모리잡가> 등 변화곡이 나오게 되었다. 장단이 잘 정립되었으며, 피리와 대금 등 여러 반주 형태를 갖고 있고, 속청을 올려가며 아름답게 부른다. <완제>, <영제>, <내포제>는 ‘평시조’와 ‘사설시조(또는 엮음시조, 편시조)’가 중심이 된다. 장단은 각종 악기의 반주를 갖추지 못하고 기껏해야 장구 장단이나 무릎 장단으로 미봉하는 관계로 초장과 중장 끝장단에서 다섯 박자가 줄어든다. <완제>는 ‘엇부침’, ‘시김새’, ‘꾸밈’ 등의 연결성이 발달하여 소리가 윤택하고, 전라도 토속의 언어와 발음에 영향을 받아 독특한 창법과 가락을 형성하였다. <영제>는 연결성이 약하게 뚝뚝 끊어 소박하게 부르며, <내포제>는 <경제>와 <영제>의 중간 성격을 지닌다. 이 가운데 호남지역 시조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완제시조>는 허창 – 전계문 – 정경태로 내려왔는데, 석암 정경태의 시조는 김월하의 시조와 함께 현대 <시조창>의 쌍벽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며 <완제시조>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석암제시조>는 현대에 와서 정경태에 의해 새로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창법을 지니고 있다.
전승자 정보
임산본(1932.1.27~ )은 <완제시조>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전주 근교의 완주군 구이면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완제시조>의 토착적인 성음과 곡조를 익혔으며 <완제시조창>의 명인 석암 정경태에게 <완제시조창>의 본령을 배워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10대 후반부터 마을 시조인들로부터 <시조창>의 습득을 시작으로 하여, 20세 무렵에는 ‘전주 시우회’에 가입하였고, 이후부터 <완제시조>의 명인인 석암 정경태(石庵 鄭坰兌) 문하에서 <완제시조창> 및 <12가사>를 사사하였다. 1982년에는 대한시우회 전주지회 교도, 1985년에는 시조연구소 개설운영, 1986년~1987년에는 전북도립국악원 전북지부 시조분과위원장, 1994년부터는 한국국악협회 전북지부감사 및 전북도립국악원 시조부 교수로 활동하였다. 수상 경력은 1966년 부산시조경창대회 1등, 1979년 대한시우회 명창부 1등, 전주대사습 시조부 장원, 1985년에는 제31회 백제문화제 시조경창대회 특상, 1988년에는 ‘완주군민의 장’ 등을 수상하였다. 그의 시조창은 경건함 속에 깊은 멋이 어우러져 있으며 음악적인 측면에서 <경제>와 다른 독특한 <완제시조>만의 격조와 멋을 지니고 있다. 김종수(1919.11.22~ )는 정읍 출신으로 <석암제시조>를 특색있게 불러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석암 정경태 문하에서 사사하였으며, 1975년부터 1980년까지는 석암의 제자인 유종구에게 사사했다. 따라서 김종수의 시조창은 석암과 유종구의 특색을 모두 간직하여 임산본이 간직한 <완제시조>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1980년 제2회 충무대상 전국시조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해 제30회 개천예술제 전국시조대회에서도 1등을 하였다. 1981년에는 전주노송시우회 주최 전국시조대회에서 1등, 1982년 제32회 개천예술제 전국시조대회 명창부에서 1등, 1983년 전라북도 시조명인대회 국창부 1등을 연이어 수상하면서 최고 대회의 시조 부분을 휩쓸었다. 또한 국악발전에도 힘을 쏟아 1984년부터 1994년까지 전국시우단체총연합회 중앙본부 부회장을 역임했고 한국국악협회 정읍지부장, 사단법인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 한국전통예술진흥회 중앙감사, 한국전통예술진흥회 정읍지부 부지부장 등을 지냈다. <지름시조>에 있어서 독보적인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김종수는 ‘사설시조’와 ‘평시조’ 등 시조의 전 장르에서 뛰어난 기능을 소유하였으며, <석암제시조>를 특색있게 부르며 <정읍시조창>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채규남(1926.8.2~ )은 1955년부터 시조에 입문하여 김석현 (<평조사설>사사 1955~1958.12), 최장현(사설 사사 1959.1~1959.12), 강신경(남창. 여창 <사설림>, <중어리>, <우조길름>, <각시조>, <역음지름>사사 1960~1963), 유종구(창법수강 1968), 정경태(1970년까지 시조곡법 수강) 등으로 부터 시조를 배웠다고 하는데 그 소리는 고루 힘이 있고 시조로서 갖추어야 할 기품이 살아 있다. 그는 각종 시조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하였으며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하여 시조의 보급과 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이 밖에 <완제시조창>의 보유자로는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인수(1922.9.18~)가 있다.
이미지
음원
연계정보
· 관련도서 <전북국악사>, 황미연 · 관련사이트· 관련가치정보
연계정보
-시조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관련멀티미디어(전체3건)
이미지 3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