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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아굿

작품명
진동아굿
구분
1970년대
작품소개
‘진동아’는 ‘진짜 동아일보’란 뜻으로 1974년 동아일보 광고탄압 및 언론인 강제해직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 사건은 동아일보 기자들의 언론 자유 수호 움직임에 정권이 광고주들을 협박, 신문광고가 취소되는 사태로부터 시작되었다. 광고면이 백지로 발행되고 언론탄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소액광고를 싣는 등 저항이 이어졌으나 결국 150여 명의 언론인이 해직되기에 이른다. 이 작품은 특히 관객들을 적극적으로 극으로 끌어들여 직접 해직된 기자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1975년 서울대학교에서 처음 공연되었고 이후 이화여대 등을 돌며 공연되다가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이 왔을 때 다시 공연되었다. 2006년 들어 동아일보 사태 31주년을 맞아 당시의 주역들이 모여 동아일보 사옥 앞에서 재공연을 갖기도 했다. 연출 노트(2006년 재공연) (……) 박인배 민족예술인총연합 기획실장이 이번 공연의 연출을 맡았다. 1975년의 첫 공연에서 당시 대학생이던 그는 기자 역으로 출연했다. “<진동아굿>은 우연한 계기로 기획한 것이다. 연극반의 선배와 친하게 지내던 동아일보 기자를 통해 동아 사태의 전모에 대해 듣고 마당극으로 꾸며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진동아굿>은 마당극의 역사에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공연이다. 참가자 중 일부에게만 대본을 주고 나머지 배역은 관객이 즉석에서 대본 없이 연기를 하게 했다.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로 인해 학생들의 관심이 뜨거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실험이었다. 실험적인 형식을 도입한 것인데 반응이 뜨거웠다.” 박실장의 말이다. (……) ‘동아일보 앞에서 펼쳐진 진동아굿’, 성현석 기자, <프레시안>, 2006.3.17
작품내용
풍물소리 요란하게 울리며 사람들을 모은다. 점심시간 식당가 등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공연이 이루어질 좀더 넓은 공간으로 노래를 부르며 이동한다. 사회자가 등장하여 동아일보 사태와 전국민적 관심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 작품이 사태의 진상을 알리기 위함임을 밝힌다. 신문지로 만든 펜촉 모양의 탈이 준비된다. [첫째 마당]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 사건의 발단은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 사회자는 관중들 중에서 기자 역할을 할 사람들을 부른다. 관중/기자는 극이 진행될수록 늘어난다. 기자들이 외부간섭 배제, 기관원의 편집국 출입 금지, 언론인 불법연행 금지 등을 요지로 한 선언문을 발표하려 하자 김사장이 이를 신문에 싣지 못하게 한다. 기자들은 농성을 시작하고 결국 선언문을 신문에 싣는다. [둘째 마당] 광고해약 사태와 국민의 격려광고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발표되자 당국의 압력을 받은 광고주들이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며 광고를 줄줄이 취소한다. 결국 광고가 없는 부분을 백지로 둔 채 신문이 발행되고 각 사회단체에서는 언론탄압을 중지하라는 성명을 발표한다. 그러자 전 국민적 차원에서 동아일보를 살리기 위한 소액광고 운동이 시작된다. 그 와중에 육군중위의 격려광고를 빌미로 광고국장이 연행된다. [셋째 마당] 무더기 해임과 제작거부 농성 광고국장의 연행에 기자들이 거세게 항의하고 공화당은 김사장을 회유한다. 사회자는 1975년 2월 동아일보 주주총회에서 벌어진 새로운 관변이사들의 취임과 이주필의 재등장을 알려준다. 3년 전 관권의 강요로 쫓겨났던 이주필은 관선주필이 되어 제작지침, 인사규정 등 독소조항을 발표하고 직원들을 해임하기 시작한다. 기자들이 단식농성을 벌이고 제작을 거부하자 회사는 이들을 극소수 초과격파로 선전한다. 관객들과 배우들은 노래를 부르며 기자들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기도 한다. 편집국장이 사표를 낸다. [넷째 마당] 폭력에 짓밟힌 새벽 단식 농성이 나흘째 되던 날, 기자들은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깡패들이 농성장으로 들어와 기자들을 끌어낸다. [다섯째 마당] 길거리에서 결국 150여 명의 기자들이 길거리로 쫓겨난다. 사회자는 극을 끝내고 이주필 역의 배우도 역에서 벗어나 바른 소리 한마디로 퇴장한다. 극에 참여했거나 구경했던 사람들이 모두 해직된 기자들을 지원할 방책을 찾는다.
출연/스태프
출연 박인배 외 서울대학교 총연극회원들 및 학생들 스태프 작/공동창작 연출/공동연출
예술단체
서울대학교 총연극회 서울대학교 총연극회는 1947년 체홉의 <악로>(김기영 연출)를 공연하며 창단되었다. 허규, 오사량, 김지하, 정일성, 문호근, 오종우, 박인배, 김명곤 등 한국연극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1970년대 초반 활동이 뜸하다가 1975년 유인렬이 주도하여 서울대 내 16개 단과대학 연극회의 협의체로 재구성되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마당극을 비롯한 저항적 연극운동을 주도하던 서울대 문리대 연극반이 정치적 시위와 관련된 회원 대부분의 연행으로 그 활동이 와해된 직후의 일이다. 서울대학교 총연극회는 ‘마당극’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허생전>을 탄생시켰으며 이후 <진동아굿>, <녹두꽃> 등 마당극사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공연했다.
비평
<진동아굿>은 74년 10월 자유언론실천선언과 함께 언론자유를 외치다가 경영주에 의해 거리로 내몰린 동아일보 기자들의 사건일지를 증언하고 있다. 그해 12월 전대미문의 동아일보 광고해약사태에 국민들의 격려광고가 의외로 늘어가자 관계당국의 압력이 가중되고 이에 못 이긴 경영주 측이 자유언론실천의 중심인물을 해고시키고 이에 대항하여 제작거부, 농성에 돌입한 150여 기자들을 폭도들로 하여금 강제축출케 하였다. ‘진(眞)동아’라는 제목은 농성 중이던 기자들의 회람지 <진동아>에서 따온 것으로, 이 당시 다른 신문사들을 전전하며 발행된 동아일보에서는 “제작거부는 일부 극소수 과격분자의 소행”이라고 역선전하였는데 이것이 ‘가짜 동아일보’라 하겠다. 진정한 민족지로서 동아일보일 것을 촉구하면서 자유언론을 실천하려는 기자들에 동조하여 사태의 전말을 낱낱이 밝히고자 의도한 것이 이 <진동아굿>이다. 이틀 밤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대강의 틀거리만 맞춘 즉흥적인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격려광고에 익숙해 있던 관중의 열띤 반응과 즉각적인 참여는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구찌다데(口立て)식, 논시나리오(non-scenario)로 사건의 진상보고서를 들고 보면서 함으로써 오히려 사태규명의 진실성에 확신을 주었고 신문지로 만든 펜촉 모양의 기자 탈은 마치 사제의 모습을 방불하였다. 출연자의 지시에 따라서 관중이 불러대는 흘러간 노래는 당시 동아방송의 방송 내용을 그대로 재현하였는데 격려광고 접수장면에서는 상당한 액수의 성금이 즉석에서 모아지기도 하였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즉발적인 항의시위가 뒤따라 1,500여 관중의 결의가 뒤풀이화되었다. 그것은 오늘의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와 맥을 잇는다. 여기 실은 연희본은 75년 3월 28일 서울대 도서관 앞 광장에서 총연극회가 공연한 것과 며칠 뒤의 이화여대에서의 공연내용, 80년 4월의 서울대 재공연 내용 등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동아투위’에서 발간한 팜플렛 <동아사태의 진상>을 참고하여 박인배가 재정리한 것이다. <한국의 민중극>, 채희완·임진택 편, 창작과비평사, 1985(……) 마당극 정신의 한 축을 이루는 공유의 정신은 마당극의 존재 방식과 관련이 있다. 관객을 공연 작품의 소비자로 한정하지 않고, 그들을 공연 주체의 한 부분으로 이끌어 올리려는 공연담당자들의 노력이 바로 공유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공유의 정신을 작품의 기본 바탕으로 삼고 있는 초창기 마당극의 대표적 작품이 바로 <진동아굿>이다. <진동아굿>은 이른바 ‘동아일보 사태’를 다룬 작품이다. 자유 언론 수호를 주창하던 기자들이 축출되면서 동아일보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해버린 바로 그 시점에, 진짜 동아일보의 회생을 바라는 의지를 시위로 표출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공연 장소를 대학생 관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야외 공연장으로 선택하였다. 공연담당자와 관객이 연극을 공유하기에 가장 유리한 장소로서 야외 무대가 마련되었다고 해야겠다. <진동아굿>에는 관객을 공연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다양한 공연 기법들이 활용되고 있다. 우선 현재 진행형 사건을 가감 없이 기록물처럼 소개함으로써 관객들의 심정적 공유를 얻어내는 극 구성을 찾아 볼 수 있다. 대학생 관객들의 심정적 동조를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관객배우의 활용이다. 권력과 비양심적 경영진의 탄압을 받고 있는 기자 역할에 다수의 관객배우를 활용함으로써 관객이 단순 관람자가 아니라 극을 만들어가는 중심에 서 있음을 알게 한다. 이러한 공연기법들은 관객이 극의 주체임을 알게 하는 유용한 방식이며, 공유의 정신이 구체적으로 발현된 결과라 하겠다. 공유의 정신이 구체적으로 발현된 작품이 어떠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진동아굿>은 1970년대 마당극의 대표적 성과로 인정받을 수가 있겠다. (……) - ‘<진동아굿>과 마당극의 ‘공유정신’’, 김재석, <민족문학사연구> 제26호, 민족문학사학회 민족문학사연구소, 2004 (……) 마당극은 이렇게 행사적·축제적 성격을 띤 연극이다. 따라서 행사나 집회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마당극은 공연이 행사나 집회의 전체적 흐름을 해치지 않도록 내용과 형식, 시간과 공간 등을 고려해서 창작되고 공연된다. 또한 공연 전후에 길놀이나 뒤풀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연의 서두와 말미 부분은 행사나 집회와 연결되는 장치들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집회적 성격이 강했던 <진동아굿>은 풍물패의 길놀이가 끝난 후 극이 시작하면서 사회자가 나와서 동아일보 사태의 진상을 알려 드리겠다는 설명과 인사를 하면서 극이 시작되고, 마지막에는 해직 기자들이 쓴 “폭력에 밀려 동아일보를 떠나며”라는 성명서를 낭독하고 진상 보고대회를 마치겠다는 설명을 한 후 본격적인 집회로 이어지게 된다. (……) <마당극양식의 원리와 특성>, 이영미, 시공사, 2001
관련도서
<민족문학사연구> 제26호, 민족문학사학회 민족문학사연구소, 2004 <마당극양식의 원리와 특성>, 이영미, 시공사, 2001 <한국의 민중극>, 채희완·임진택 편, 창작과비평사, 1985
연계정보
-녹두꽃
관련사이트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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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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