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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오귀굿

작품명
진오귀굿
구분
1970년대
작품소개
‘진오귀(鎭惡鬼)굿’이란 본래 죽은 이의 한을 씻기고 좋은 곳으로 보내기 위해 망자의 가족이 무당을 불러 벌이는 굿으로 씻김굿과 같은 말이다. 김지하 작·연출의 1973년 작 <진오귀굿>은 ‘최초의 마당극’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극작 노트 (……) 우선 내가 해야 할 일은 농어민과 노동자·영세민의 계몽을 위한 선전 드라마를 쓰고 만드는 일이었다. 드라마 <진오귀(鎭惡鬼)>의 집필이 끝나고 연습이 시작되었다. ‘진오귀’는 ‘오구’ 또는 ‘오구굿’이라고도 부르는 전통 농민굿인데 악귀(惡鬼)를 쫓아내는 내용이다. 그 양식을 확대하여 농촌 민주화와 협동화를 가로막는 안팎의 장애물과의 투쟁을 극장이 아닌 마당에서 탈춤 형태로 극화(劇化)하는 것이었다. 문화운동패의 아우들, 임진택(林鎭澤), 채희완, 홍세화 등을 서울에서 불러내리고 원주의 연극인 장상순(張相淳) 선배 등과 힘을 합쳐 원주 단구동 교육원 마당에서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다.극장이 아닌 마당이었다. ‘투르기’(Turgie)가 아니라 ‘판’이었다. 장 루이 바로가 시도한 권투 링과 같은 사각형(四角形)도 아니고 브레히트 식의 반원형(半圓形)이나 키노드라마도 아닌, 문자 그대로 살아 생동하는 원(圓), ‘마당’ 그리고 ‘판’에서의 ‘굿’ 또는 ‘극’이 시작된 것이다. 근대 리얼리즘극인 극장 연극은 관객의 일방적 시선을 고정시키는 ‘프로시니엄 아치’로서 그 원형인 가톨릭의 미사 구조와 마찬가지로, 강단이나 무대 일방으로부터 관객 일반에게로 쏟아지는 카리스마의 감성적 독재와 이념이나 명제(命題)의 강제 세뇌(洗腦)에 꼭 알맞은 것이었다. 이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탈출하려는 유럽 연극의 몸부림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브레히트나 장 루이 바로의 연극들이다. 우리는 옛 탈춤들과, <원귀(寃鬼) 마당쇠>나 <호질(虎叱)>, <이놈 놀부야> 등을 계승하여 아예 마당에서 판을 벌이고 굿과 극을 놀고자 했다. 따라서 ‘마당’이라는 공간의 의미 구성과 ‘판’이라는 상황의 극적인 이해를 깊이 알고 가져야만 되었다. 그것은 임진택 아우처럼 일단 ‘아메바’로 볼 수는 있으나 ‘아메바’라 하더라도 그것은 생명체인지라 무엇인가 심각한 숨은 원리가 있을 것이다. 상황에 대한 철학적 인식이 전제되었을 것이었다. 내가 맨 먼저 착안한 것이 기왕에 탈춤에 형식화되어 있는 오방(五方), 오행(五行) 외에 음양 태극모양의 유동(流動)이었는데 (……) 우선 탈춤이나 굿의 열두 거리, 열두 마당의 틀 자체가 기승전결이나 헬라적 극예술론과는 촌수가 멀다. 구태여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구성에 조금 가깝다. 토막토막 끊어지면서도 그 토막들 나름의 전체적인 어떤 근본 촉매가 숨어 움직이는 것, 중심 아닌 중심이라 할까? 유동적 중심이라 할까? 그것은 차라리 들뢰즈와 가타리가 ‘카오스모스’ 또는 ‘카오스모시스’라고 명명한 ‘혼돈의 양식’이다. 이것이 뒷날 임진택, 채희완 등에 의해 구체화된 민족극운동, 즉 ‘마당극 또는 마당굿’ 운동의 효시(嚆矢)였다. 그러나 이 <진오귀> 연습은 안팎의 사정에 의해곧 중지되었고 그 겨울 박형규(朴炯圭) 목사님의 제일교회에서 임진택 아우에 의해 <청산별곡>이란 제목으로 공연되었다. 그리고 나의 구속 이후 재일교포 청년학생들에 의해 수백 회의 공연으로 일본열도 전체를 순회하는 새로운 연극으로 나타나 그 맥이 이어졌다. -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 187 - 원주의 나날들’, 김지하, <프레시안>, 2002.12.14 연출 노트(1973년 12월 <청산별곡> 서울 공연) (……) 연극과 탈춤이 전연 별개의 것이라는 이러한 생각이 최초로 수정되기 시작한 것은 1973년 김지하 씨의 농촌계몽극 <진오귀>에 연극반과 탈춤반이 함께 참여하게 되면서부터이다. 원주 가톨릭 재해대책본부가 농촌협업을 추진하면서 그 일환으로 문화선전대를 계획했던 것이 우여곡절 끝에 파기된 후, 필자가 그 대본을 가지고 서울 제일교회 대학생부와 다시 만나 연출을 맡게 되었을 때 탈춤반의 창립자인 채희완 씨에게 안무를 부탁하게 되었다. 작품 속에 농민을 괴롭히는 못된 도깨비들이 나와 한바탕 개판을 치는 장면이 있는데 이를 표현하자면 옛 탈춤에 바탕한 새로운 탈과 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연극반과 탈춤반의 부분적 합작이 최초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진오귀>가 민중극에서 마당극으로 가는 첫 작품이었다면 그 중 ‘도깨비 장면’은 이를 테면 처음 시도된 ‘창작 탈춤’이었다. <진오귀>는 최초의 마당극 작품이다. 이 작품은 희곡이 씌어질 때부터 마당에서 공연할 것을 염두에 두고 씌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농촌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공연할 수 있게끔 장치·조명·분장 그리고 막과 장의 구분 등 일체의 무대적 요소를 배제하고 전적으로 마당판으로 구성되었다. 판소리로 된 해설, 탈춤으로 된 도깨비 장면 그리고 장단에 맞춘 묵극(默劇) 등 전래의 민속형식이 충분히 활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운문체로 된 대화를 집어넣어 장단에 맞춰 흥겹게 놀이될 수 있게 고려하였다. 더욱이 외곡귀·수해귀·소농귀 그리고 대농·중농·소농 등으로 등장인물을 성격적 또는 계층적으로 전형화해 놓은 것은 이 작품의 참신한 특성이었다. 말하자면 <진오귀>는 그 이전의 민중극이 해결하지 못한 ‘민중적 양식’의 문제를 민족 형식으로 풀어내려 한 최초의 시도였다. 이 작품이 70년대 중반 이후 수년 동안 농촌순회용 연극으로서 유일한 위치에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탈과 춤으로 형상화된 도깨비 장면은 독자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농촌 순회공연에 따로 자주 활용되었고 80년대에까지 창작탈춤의 전범으로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 - ‘80년대 연희예술운동의 전개-마당극·마당굿·민족극을 중심으로’, 임진택, <창작과 비평> 69호, 창작과비평사, 1990.가을
작품내용
찌그러진 주전자, 구멍 뚫린 양은냄비 등 고물 두드려대는 소리가 들리면 망건 없는 헌 갓에 다 떨어진 두루마기를 입은 해설자가 등장하여 장내를 정리한다. 해설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을 늘어놓다가 이 모든 것이 다 도깨비 짓이라고 설명한다. 해설자가 퇴장하면 도깨비 세 마리가 등장하여 농사꾼의 피를 빠는 도깨비 세상 타령을 한다. 첫째 도깨비는 소농귀로 소농경영, 소작제, 독농가 투기, 봉건유지제 귀신이다. 둘째 도깨비는 외곡귀로 외국 곡식 도입, 저곡가, 부등가 교환, 화폐경제 귀신이다. 셋째 도깨비는 수해귀로 수해, 한해, 병충해, 연체이자, 장리쌀 귀신이다. 도깨비 세 마리는 기기묘묘하고 해괴망측하며 흉악무쌍하고 잔인무도한 기술을 농사꾼에게 시험해 보기로 한다. 소농, 중농, 부농 모두 도깨비들에게 당하고 도깨비들은 춤을 추며 즐거워한다. 소농인 말뚝이와 때때, 개도치가 협동농업을 하려고 한다. 부농인 망막대골은 못마땅해 하지만 그의 딸이자 개도치의 애인 분이는 협업을 지지한다. 말뚝이와 때때가 끝없이 말다툼을 하지만 세 사람은 열심히 협업에 임한다. 망막대골은 이들을 방해하려 한다. 수해귀가 들이닥쳐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다. 절망한 개도치가 마을을 떠나려 하자 말뚝이와 때때, 분이가 설득한다. 망막대골도 결국 협업에 참여하기로 한다. 모든 사람들이 협동하자 도깨비들은 겁을 내고 도망친다. 출연자와 관중들이 모두 춤을 춘다.
출연/스태프
출연 임진택 채희완 홍세화 장상순 외 스태프 작·연출/김지하
예술가
김지하(1941~) 시인, 극작가. 본명 김영일(金英一), 호는 노겸(勞謙). 전남 목포 출생. 1966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작가로 8년여의 투옥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69년 <황톳길> 등 시 5편을 <시인> 지에 발표하며 공식 등단했고 1970년 5월 담시 <오적(五賊)> 필화 사건으로 투옥되었으며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7월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1975년 2월 출옥 후 옥중기 <고행-1974>를 발표하고 재차 투옥되었다. 그가 서울대 연극반 후배들과 함께 만든 <진오귀굿>은 명실공히 ‘최초의 마당극’으로 꼽히고 있으며 이 밖에도 <밥>, <나폴레옹 꼬냑>, <구리 이순신>, <소리굿 아구> 등의 작품을 썼다. 로터스(Lotus) 특별상(1975), 위대한 시인상(1981),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1981) 등을 수상했으며 노벨문학상 후보에 추대되기도 했다. 1999년 율려학회를 창립하였다. - 저서 희곡집 <똥딱기 똥딱>(1991), 시집 <황토(黃土)>(1970),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1982), 담시집 <오적>(1993), 산문집 <밥>(1984) <남녘땅 뱃노래>(1985), 장시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1991), 대담집 <생명과 자치>(1994), 강연 모음집 <율려란 무엇인가>(1999), <김지하 전집>(전3권, 2002), 회고록 <흰 그늘의 길>(2003) 등
비평
<진오귀굿>은 농촌계몽을 위한 선전극으로서 마당굿 형식을 시도한 최초의 본격적인 작품이다. 농민을 못살게 구는 온갖 자연재해와 사회적 억압 요인이 수해귀, 외곡귀, 소농귀 등 세 마리 도깨비로 전형화되는데, 이들 몹쓸 귀신(惡鬼)은 극의 이름이 말해주듯 단합된 농민의 힘에 의해 진압되어 쫓겨간다. 가톨릭 원주교구의 협동운동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 마당극은 이해관계가 얽힌 농민층이 갖은 시련과 갈등 속에 협업과 분업의 중요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보임으로써 농민을 의식화하고, 마지막 도깨비의 격퇴 후 뒤풀이를 통해 승리감을 나눔으로써 현실문제의 실제 해결에 대한 투쟁의욕과 확신감을 불러일으킨다. 방대한 분량의 이 마당극은 장의 구분 없이 해설자에 의해 이끌어지는데 크게 해설자 장면, 도깨비 장면, 협업 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 그 각각은 전체 속에서 독자성을 잃지 않고 저마다 판소리, 탈춤, 사실주의극의 표현양식으로서 특색을 보인다. 실제로 농촌순회공연이나 농민교육 프로그램에서는 판소리로서의 해설자 장면이나 탈춤으로서의 도깨비 장면만을 따로 떼어내 압축적인 교술(敎述) 효과를 얻어내기도 하였다. 농촌문제를 정면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판소리, 풍물, 탈, 춤 등이 동시에 참여하고 있는 이 마당극은 지식인과 농민, 대학 연극반 출신과 탈춤반 출신이 서로 공동작업을 통해 만나는 계기를 이루었다. (……) <한국의 민중극>, 채희완·임진택 편, 창작과비평사, 1985 (……) 김창남 : (……) 마당극이라는 개념 자체는 언제 나온 것입니까? 채희완 : ‘마당극’이라는 이름을 표방하고 공연한 것은 76년 서울대 총연극회에서 공연한 <허생전>이 처음입니다. 또 거슬러 올라가면 ‘마당극’이라 부르지는 않았지만 73년 12월 크리스마스 날 서울 제일교회에서 한 <진오귀>라는 공연을 들 수 있습니다. 전통연희의 단순재현이라든지 서구 리얼리즘의 번안이 아니라 서구의 리얼리즘 정신과 전통연희의 제의적 구조를 당대의 문제의식 속에서 농촌계몽선전극으로 꾸민 것입니다. 이 <진오귀>가 연대기적으로 잡는다면 마당극의 초창기의 것이 되겠군요. (……) - ‘민중예술운동, 이제부터의 과제: 대담’, 채희완 외, <창작과 비평> 63호, 창작과비평사, 1989.봄
관련도서
<흰 그늘의 길>, 김지하, 학고재, 2003 <똥딱기 똥딱>, 김지하, 동광출판사, 1991 <창작과 비평> 69호, 창작과비평사, 1990.가을 <창작과 비평> 63호, 창작과비평사, 1989.봄 <한국의 민중극>, 채희완·임진택 편, 창작과비평사, 1985
연계정보
-구리 이순신
-소리굿 아구
-밥
-원귀 마당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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