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출연 / 스태프
스태프 연출/임진택 조연출/이현옥 안무/오세란 풍물연출/김재철 풍물패/김재철,김수보,이현옥,김정섭,원을미 기획/양정순,이종건,김정섭,임지욱
내용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한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밥을 짓고 나누어 먹던 우리 고유의 풍습을 재현하여 평등과 사랑, 더불어 함께 사는 의미를 되새긴다 1. 더불어 함께 나누어 먹는 <밥> 작가 김지하가 말하는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밥'을 상징적으로 의미화 시켜 새롭게 해석한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밥을 짓고 나누어 먹던 우리 고유의 풍습을 재현하여 평등과 사랑, 더불어 함께 사는 의미를 되새긴다. 2. 환경과 <밥> 자연 법칙과 순리에 따라 조화롭게 돌아가지 않는 어긋난 세상을 예리 하게 풍자하고 통쾌한 해학으로 풀어나간다. 문화 예술 공연을 통하여 환경문제, 생태문제에 다가감으로 보다 친근 하고 다각적이며 입체적으로 생명가치를 부각시키고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3. 대중문화의 새로운 해석 <밥> 마당극 <밥>은 극의 예술성과 완결성을 국내외에서 공식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 특히 우리의 전통극 양식인 마당극 형식을 이용하여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순회 공연을 기획하고 초청 받음으로써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문화현상을 극복하고 모든 사람들이 수준높은 예술 체험을 할 수 있도록한다. 대중을 직접 찾아가 대중 스스로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대중문화라 할 것이다. (1) 첫째마당 : 똥이 밥이다 (생태계의 유기적 순환 특히 자연농법의 중요성을 잡색놀이의 틀에 담아 해학적으로 표현한다.) 한 농부가 자기 논의 벼가 자꾸 시들고 땅도 병들어가자 비료 농약 안 치 고 자연농법으로 한번 농사를 지어보려 하나 관리는 이를 못마땅히 여겨 딱따거린다. 할 수 없이 그는 자기가 지은 쌀을 직접 도시의 소비자에게 판매도 하고 또 거름으로 쓸 똥도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간다. 이집저집 찾아다니던 농부는 갑자기 뒤가 급해져(똥이 마려워져) 공중변소에 들어갔다가 서울의 똥이 모두 씻겨져 내려가버리는 것을 목격한다. 순환되어야 할 것이 제대로 순환되지 않음으로써 모든 문제가 생겨났음을 깨달은 농부는 고향에 돌아와 자기 똥을 싸질러 땅과 벼를 살려낸다. (2) 둘째마당 : 밥이 한울님 (식사가 제사) (한울님은 사람 몸 안에 들어와 있으며 따라서 식사가 곧 제사임을 방송 프로그램 형식을 통해 풍자적으로 드러낸다.) 어느 마을에서 선사시대 유물이 발굴되어 텔리비젼으로 중계방송된다. 그런데 그 유물은 한울을 모시는데 쓰이는 것이며, 한울을 모시는 사람이 그 물건의 주인이라 하였다. 이에 각계 지도자들이 모여들어 각기 그 유물이 자기네 종교의 소유임을 주장한다. 그리고 경찰국장의 주도로 그 유물의 뚜껑을 열어보려고 하지만 뚜껑은 열리지 않는다. 결국 시끄럽게 떠들던 명사들은 다 돌아가고 마을 사람들이 뚜껑을 열어보니 그것은 밥짓는 가마솥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함께 일을 하고 그 밥솥으로 밥을 지어 맛있게 나누어 먹는다. (3) 셋째마당 : 나는 밥이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아닌 공생공존의 세계관을 감옥 안에서의 재판 놀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무전취식하다 붙들린 어떤 기이한 노인에 대한 재판이 감방안에서 벌어진다. 그의 혐의사실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너는 내 밥이다"라고 하며 밥을 뺏어먹었다는 내용이다. 죄수들끼리 검사와 변호사로 나뉘어 열띤 공방전을 벌인 결과, 그 노인은 실제로는 "나는 밥이다"라고 하며 밥을 나누어 먹으라고 했음이 밝혀진다. 하지만 감방장은 노인에게 사형을 때리고, 노인은 그제서야 병든 몸으로 최후진술을 한다. 밥은 나누어 먹는 것이라고, 너나 나나 똑같은 밥이라고, 감화를 받은 감방안의 죄수들은 모두가 서로를 섬기고 밥을 함께 나누어먹는 새 세상을 꿈꾼다.
리뷰
이 작품은 김지하의 이야기 모음집 <밥>을 발상의 근원으로 하여, 임진택이 쓰고 연출한 마당극으로, 1985년에 연희광대패에 의해 초연된 후 해를 넘기며 100회 이상 공연되었고, 1990년대에는 길라잡이의 레퍼토리로 여러 차례 재공연되었다. 우선, 이 작품은 임진택 마당극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임진택은 마당극 운동의 첫 세대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으로, 마당극운동의 기본 정신과 원리, 마당극의 연극양식적 특성과 연출법 등에 대한 중요한 글을 남겼다. 이 작품은 <돼지꿈>(1977), <마스게임>(1978), <노비문서>(1979), <녹두꽃>(1980), <장사의 꿈>(1981), <공해풀이 마당극 - 나의 살던 고향은>(1984)년에 뒤이은 작품이다. 임진택의 마당극은 대사와 역할 바꾸기 놀이의 연기가 돋보이며 상대적으로 춤(혹은 춤적인 움직임)이 약한 것이 특징인데, 특히 대사는 지적인 언어유희와 풍자적 재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관객은 대사와 연기 하나하나에 폭소를 터뜨리면 열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점은 <밥> 역시 예외가 아닌데, 특히 <밥>에서는 이전의 작품에서 써왔던 수많은 연극적 기법과 재담적 대사의 묘미가 다 모아져 화려하고 짜임새 있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작품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지닌 세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마당 ‘똥이 밥이다’는 화학비료와 농약, 비민주적 농정(農政)에 시달린 농민이 서울에 올라와 똥과 밥의 순환이 꽉 막혀버린 비인간적인 도시를 체험하고 귀향하는 이야기이다. 제2마당 ‘식사가 제사’는 귀중한 유물이 발견되어 이것의 정체와 소유권을 밝히는 생방송 프로그램의 중계방송을 하게 되나, 각계의 인사들 모두 그것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고 소유권도 갖지 못한 채 흩어지는데, 그 마을의 이름 없는 농민들이 그 유물이 다름 아닌 밥솥임을 알아보고 밥을 지어 먹는다는 이야기이다. 마지막의 밥을 지어 식사를 하는 대목은 식사가 경건한 의식임을 느끼게 한다. 제3마당 ‘나는 밥이다’는, ‘나는 밥이다’란 설법을 하다 감옥에 잡혀온 호구거사에 대해 같은 방 죄수들이 벌이는 재판놀이로, 밥의 독점이 낳은 사회모순과 이를 극복한 후천개벽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김지하의 산문집 <밥>에 근거하고 있는 이야기의 큰 틀은 다분히 생태주의적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나, 그 세계 인식이 작은 장면 하나하나와 재담적 대사 하나하나에까지 관철되어 있지는 않다. 이 작품이 초연된 1985년에는 제5공화국 시대의 비민주적인 상황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드높았던 시기라, 생태주의적인 세계관보다는 오히려 비민주적인 농정, 경찰서장, 목사, 교수 등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의 꼴불견 행태, 말도 안되는 불공정한 재판과 민중의 고통을 가속화하는 지배세력 등에 대한 풍자가 훨씬 강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환경문제가 극심해져 근대산업문명 자체에 대한 회의가 높아진 1990년대에 공연할 때에는,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문명비판적 요소와 생태주의적 내용성이 더 돋보였다. 관중은 사면에 둥글게 포진해 앉힌 무대에서 단 5명의 배우가 퇴장하지 않은 채 수시로 역할을 바꾸며 연극을 이끌어가며, 악기 반주까지 이들이 모두 감당한다. 간단한 소품만으로 바뀐 상황을 제시한다거나 관중과 적극적인 재담적 대거리를 하는 등 당시 마당극의 중요한 기법들이 총동원되었고 잘 계산되어 짜여져 있다. 이 작품은 마당극사상 최초로 대학가의 장기 순회공연에 성공한 작품이다. 서울에서의 약 한 달 간의 초연을 마친 후 지방공연이 금지되는 등 수난을 겪었으나, 대학 초청공연으로 이어지면서 100회를 넘는 공연기록을 남겼다. 대학생들에게 적합한 지적인 재담과 빠른 속도, 짜임새 있는 구성, 소수의 출연자와 간단한 소품 등은, 이러한 대학 순회공연을 성공으로 이끈 주요한 원인이었다. 연극계 내의 상설 극장 공연이 그다지 편치 않은 마당극에, 장기 순회공연이라는 활동 방식의 첫 길을 연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이 작품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이영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 연구원)
재공연
1997년 4월 25일 ~ 26일, 길라잡이, 우수마당극 퍼레이드 참가 1997년 5월 14일,30일, 길라잡이, 제10회 전국민족극 한마당 개막 및 폐막공연 1997년 6월 8일, 길라잡이, 서울시 단오축제 초청공연 1997년 8월 14일 ~ 8월 20일, 길라잡이, 콜럼비아 국제 거리극 축제공연 1997년 9월 18일 ~ 21일, 과천, 길라잡이, 세계마당극큰잔치 '97 참가 1997년 10월 28일 ~ 11월 8일, 문예회관 소극장, 길라잡이 1997년 12월 10일 ~ 1998년 3월 10일, 강강술래 소극장, 길라잡이 1997년, 그외 - 전국 대학 초청순회공연(홍익대 조치원, 중앙대 안성, 연세대, 원광대, 한양대 안산 등) 1998년 9월 ~ 10월 - 전국대학초청공연( 방송통신대, 서울교대, 성균관대, 충북대, 숭실대, 호서대, 서울시립대 ,중앙대(서울, 안성), 신구전문대) 1998년 11월 ~ 12월 - 지역순회공연(중구청, 동대문구청, 이천시청, 파주시청, 남양주 화도 새마을금고, 가평군, 고창문화원, 파주축협) 1998년 9월, 목포, 길라잡이, 제11회 민족극 한마당 초청공연 1998년 12월, 일본 가와사키, 길라잡이, 세계인권선언50주년 기념행사 초청공연
평론
<밥> 공연은 주제의식의 명확한 규정이나 작품의 내적 견고성 등만을 찾고자 해서는 총체적 평가에 도달하기가 어렵다. 생동감 있는 대사 처리나 짜임새 있는 장면 구성, 그리고 종횡무진으로 마당판을 누비는 신랄한 현실풍자의 넉넉한 해학 등을 통해서 마당극 특유의 감각과 역동성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별 장면의 풍자나 재미는 전체적인 주제의 흐름과 긴밀한 연관을 가져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힘주어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 반면에 <밥>에 대해서 주제의 일관성을 논의한다는 사실 자체가 무리라고 말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일관된 줄거리가 없이 각 장면이 오늘날의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함으로써 공연상황과의 긴장을 유지한다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번뜩이는 재치의 예리함과 실제 공연에서의 풍성한 연기는 결국 관객으로 하여금 잘 짜여진 코미디의 짜릿한 재미를 맘껏 안겨준다. (하략) (이영미, '작품해설', 민족극연구회 편, <민족극대본선1>, 풀빛, 1988) <밥>은 세 마당으로 구성되었다. 첫째마당 농촌의 실태 고발에서는, 자연과의 순화를 위한 유기농법의 필요를 강조하고 실적만을 앞세우며 이를 오히려 훼방 놓는 농촌의 관료 체제를 풍자하고 있다. 80년대 공연이 농촌의 경제적빈곤 실태를 강조했던 반면, 이번 공연은 생명사상에 근거하여 농촌의 공해문제를 보다 부각시켰다. 둘째 마당에서는 기성종교와 도덕이 갖는 권위주의와 허상성을 비판하면서, 밥이 생명의 근원임을 강조하고 있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 될 정도로 관심을 보았던 한 선사시대의 유물을, 각 종파 지도자들은 각기 자신들의 소유임을 주장한다. 결국 텔레비전 중개가 끝나가도록 결론이 나지 않자, 명사들을 돌아간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이 가마솥이었음을 알고 밥을 지어 맛있게 나누어 먹는다. 이번 공연에서는 일회적인 센세이션만을 찾는 메스컴의 무책임한 보도자세가 아울러 강하게 풍자되었다는 것이 새로운 해석으로 느껴졌다. 셋째 마당은 감옥 안에서 벌이는 재판놀이를 통해서, 인간사회를 자연의 먹이 사슬에 비유하여 풍자하고 있다. 유언비어 유포죄의 한 소박한 노인을 통해 통제사회를 강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우리가 서로의 생존을 위한 ‘밥’임을 일깨우며 공존의 사회를 제시하였다. 이렇듯이 이번 공연도 여전히 소외된 계층의 편에 서서, 걸죽한 시사적 대사로 오늘을 통쾌하게 풍자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마당극의 여러 장점들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우선 관객에게 추임새 등을 훈련시켜서 참여를 유도하며, 배우들이 직접 관객에게 대사를 건넨다. 극중장소도 배우의 간단한 연기로 자유자제로 바뀌며, 여기에 관객의 의사가 반영된다. 또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기지에 찬 풍자적 재담이 막힘 없이 쏟아지고, 여기에 수준급인 풍물이나 소리의 멋도 더해진다. 한편 배우의 재빠르고도 다양한 역할 바꾸기도, 연기를 통한 연극적 재미를 더한다. 더구나 이번 공연은 기존 마당극에서 흔히 느끼기 쉬웠던 설익은 연기의 아마츄어리즘을 극복하고 있었다. (이미원, '마당극 특유의 생동감을 재현했던 공연'. <월간 에세이>, 1998년 1월호) 도처에 산재한 사회적 모순에 가슴 아파하고 때로는 분노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교정의 노천강당에서 마당극 한판을 벌일 때, 우리는 금지된 꿈을 함께 꾸며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었다. 세련된 말이나 몸짓이 아니어도 관념의 일체감으로 출렁였던 대학의 한마당을 가슴에 간직한 채 여러 경로를 통해 우리는 이 사회에서 살아 남았다. 가족을 이루고 어찌어찌하여 신도시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하고 성큼 자라버린 아이를 앞세워 고즈넉한 주말의 저녁 무렵 휴식의 공간 호수공원에 모여든 것이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을 낯선 얼굴에 둘러싸여 마당극 <밥>을 본다. 거리를 두고 이야기한다면, 대학이나 공장 및 농촌 등 단일했던 공동체에서 공연되었던 마당극이 이제 다양한 구성원이 사는 일상의 공간으로 이동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 공동체의 이념과 연대감을 확인하는 기능을 했다면, 후자는 각기 흩어져 일상에 파묻혀 살아가는 구성원을 추스려 모아 문화적 일체감을 경험하게 한다. 이번 일산 호수공원에서의 <밥> 공연은 바로 후자의 좋은 예이다. (이상란, '일상에서 만난 <밥>') 십년이 넘는 오늘에 와서 다시 공연되어지는 <밥>은 농경 정착 문화의 구조적 파괴에 대한 80년대 비판적 지식인의 투쟁적인 담론이 아니라 김지하의 새로운 생명 문화에 대한 담론이 미래 사회의 공동체 문화의 또 다른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연출자의 믿음에서 출발했으며, 마당극의 완성된 연극적 양식을 세계의 열린 연극과의 교류를 통해 널리 알리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풍자와 해학을 통해 사회적 문제에 대한 참여와 연대의 목소리를 높여온 마당극은 형식과 내용, 그리고 연희자의 기능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표현된다. …… 넘치는 객석으로 반으로 줄어든 무대 공간을 절묘하게 휘저으며, 소리, 가락, 춤, 대사 전달, 변신의 오중주를 여유있게 울려 대는 이들의 흥과 재치는 실내로 들어온 마당극이 얼마나 멋들어지고 흥겨운 우리의 민중 예술인가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었다. 우리 말의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했고, 농촌 문제와 전통적인 우리의 유물론적 가치관에 대한 주장, 오늘날의 경제 논리에서 분배와 생산의 문제에 대한 우화적 접근이 가능했던 <밥>은 70년대 발표된 김지하의 <오적(五賊)>의 포효와 같은 질책이 90년대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구조의 한국적 상황을 향해 속삭이는 유머와 관용의 목소리로 느껴지게 했다. 세월은 분명 변했고, 시인의 음성도 달라졌다. 그러나 <밥>의 내용과 형식은 변함없이 민중의 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김창화, '변함없이 민중의 소리를 전하고 있는 공연', <오늘의 연극비평>, 1997년 12월 15호)
관련도서
김지하, <김지하 전집1>, 2002, 실천문학사
관련사이트
극단 길라잡이
관련멀티미디어(전체10건)
이미지 10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