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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드넓은 영토를 개척한 광개토대왕

한민족의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확장 시켰던 광개토대왕에 대해 알아본다. ------------------------------------------------------------------------------------------- Na 이곳은 충북 충주에 위치한 충주고구려비전시관, 전시관에는 고구려가 만주부터 남한강 유역까지 세력을 확장했던 한국 고대사의 비밀을 푸는 중요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유일한 고구려 비석, 충주 고구려비이다. int 박경애 / 충주 문화관광 해설사 한반도의 유일한 (고구려) 석비라는 사실 만으로도 굉장히 큰 역사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비 비문에 나오는 내용을 통해서 그때 당시에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넘어서 이곳 충주지역까지 진출했었던 확실한 증거자료입니다. Na 한민족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고구려의 장수왕 시대의 기록이 남아 있는 충주 고구려비, Na 고구려가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기까지 그 기초를 닦아 놓은 왕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장수왕의 아버지 광개토대왕이다. Na 어느 나라나 어느 민족이나 자랑할 만한 왕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여러 가지 업적 가운데 나라를 키우고 영토를 확장하는 왕만큼 존경받는 왕이 없을 것이다. Na 그래서인지, 광개토대왕을 가리키는 완전한 이름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인데, 이 이름은 땅을 넓게 차지하고 나라를 잘 다스린 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int 고운기 /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살펴보면) 삼국사기에는 주로 중국 쪽 나라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광개토대왕비에는 그뿐만 아니라 신라 백제와의 관계 그리고 또 바다 건너 일본과의 관계 이런 것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해보면은 광개토대왕은 북쪽으로는 중국에 여러 나라들과 활발한 외교전을 벌였는가 하면 또 남쪽으로는 백제와 신라를 견제하면서 남진정책의 시발점도 바로 광개토대왕 때 부터 이루어졌고, 광개토대왕은 동서남북을 통틀어서 고구려의 영토를 최대한 확장시켜 나갔던 그런 왕이었고, 이런 기록들이 삼국사기와 광개토대왕비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전해집니다. Na 중국 지린 성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 경기도 구리시에서는 후손들에게 고구려의 진취적인 기상과 민족의 정체성을 일깨우고자 실제 크기의 광개토대왕비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그 비문의 내용을 일부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Na ‘ 왕의 은택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엄은 온 세상에 떨쳤다. 나쁜 무리를 쓸어 없애자 백성이 모두 생업에 힘쓰고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풍족해졌으며, 온갖 곡식이 가득 익었다. 그런데 하늘이 이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나 보다.’ Na 왕위에 올라 20여년의 기간 동안 나라를 부국하게 만들기 위해 쉴 틈없이 달렸던 광개토대왕은 39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게 된다. int 고운기 / 한양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고구려의) 국경이 확대가 되고, 또 그 확대된 국경 속에서 나라가 온전히 이어나갈 수 있게끔 그 틀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 언제 드러나냐면 그의 아들인 장수왕 때 드러나요. 장수왕은 왕위에 무려 70년을 넘게 있었어요. 그리고 이름도 장수왕이에요. 장수왕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고구려가 있었지만 아버지로부터 정말로 잘 물려받았던 것이 뭐냐면, 이렇게 큰 나라를 지키고 유지해 나가는 데에는 전쟁만 가지고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무력에 의한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서 70년을 고구려를 끌고 갔거든요. 그것이야말로 사실 우리가 고구려의 역사 속에서 특히 5세기에 광개토대왕에게 배워야 하는 가장 훌륭한 역사적 교훈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죠. Na 우리민족을 일컫는 말 중에 배달의 민족이라는 말이 있다. 배달의 뜻은 고구려의 기상과 뜻을 널리 펼쳤던 우리 민족을 높게 나타내는 말이다. 단순히 군사력으로 영토를 확장한 것이 아니라 주변국가와 백성을 아우르는 통솔력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확장시켰던 광개토대왕, 그는 서양의 정복 왕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비견되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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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 그리운 그 곳, 금강산

금강산은 우리강산 중 가장 빼어나고 수려한 상징물이다. 특히 남북화해 및 교류의 물꼬를 튼 상징이기도 하다. 동해에 임박한 태백산맥 북부의 아름다운 명승지, 금강산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 이름이 알려져 있다. 민족의식의 샘터 금강산에 대하여 알아보자. 금강산 대본 자막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다. - 송나라 시인 소동파 천길 흰 비단을 드리웠는가 만섬 진주알을 홑뿌렸는가신라 문인 최치원 금강산 관광 당시 인터뷰 김두진/관광객 금강산을 왔다 가는데감개가 무량합니다. 정선영/관광객 (금강산 방문에) 오늘 너무너무 기쁩니다. 자유롭게 만나고 서로 오며 가며 불편 없이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자막 산 전체가 수정으로 만들어진 듯 빛나는 보석 그 자체이다. 그리운 그 곳, 금강산 금강산의 동서 너비는 약 40KM, 남북길이는 약 60KM, 그 면적은 약 530㎢ 8개 연못, 선녀들이 찾았다던 전설이 내려오는 이곳은 아름다운 은빛 줄기를 가진 상팔담이다. 금강산관광 당시 인터뷰 김영덕/서양화가 대단합니다. 금강산 이쪽이 원래 물 맑고. 공기 맑고 단풍이 물들었는데, 완전히 순수한 붉은 색입니다. 붉은색으로 가기 전, 노란색, 주황색 (단풍의 경치가) 대단합니다. 자막 금강산에 담긴 수천가지의 색들이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금강산의 가을은 기암절벽과 단풍이 어우러져 한곡의 멋진 풍악을 울린다 하여 풍악산이라 불려 운다 자막 세존봉에서 본 장전항 내금강에서 외금강 해금강으로 이어지는 금강산의 웅대한 면모. 이정수/사진작가 금강산을 보지 않고는 천하의 절경를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금강산을 조명할 때 가장 감사하다고 할까,자연이 주는 보배라고 느껴질 때 또 현재도 금강산은 훼손이 안됐다는 것을 보면.. 가장 큰 매력으로 뽑을 수 있습니다. 자막 봄에는 금강, 여름에는 봉래, 가을엔 풍악, 겨울엔 개골산 여러 이름을 갖은 금강산의 천 가지의 얼굴, 만 가지의 표정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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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6

[한국문화100] 전통잠수문화 상징, 해녀

해녀는 몸에 아무런 장치 없이 맨몸으로 잠수해서 전복ㆍ소라ㆍ미역ㆍ우뭇가사리 등 해산물을 직업적으로 채취하는 여자를 말한다. 해녀의 본고장인 제주에서는 이들을 ‘잠녀(潛女)’ 혹은 ‘잠수(潛嫂)’라 부르는데, 이들 잠녀는 전통적 잠수문화의 상징이자 제주여인의 강인한 삶과 독특한 문화를 상징하는 결정체이다나레이션-----------------------------------------------------------------------------------------------평화로운 잔잔한 물결과, 때로는 거센 파도가 치는 낭만의 바다, 이 곳은 그녀들의 삶과 직결된 곳이다.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때에는 제주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들을 볼 수 있다. 기계장치 없이, 맨 몸과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의한 호흡 조절로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을 해녀라 부른다. 인터뷰해녀의 유래?(해녀의 시초의 역사적 자료는 없지만) 추정해본다면 제주도의 토질이 척박하고 땅에서보다는 바다에서 생산되는 것 들이 많기 때문에 (물질이 시작되었고) 옛 당시에는 남녀가 모두 바닷물에 들어가(해산물을)채취하는 일을 했지만, 남성들도 있었지만 남성들은 조선시대에 규모가 줄어들며 여성들이 그 빈틈을 채우며 지금까지도 여성들이 물질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해녀들은 수중장비 없이 물옷을 입고 물질준비를 한다.물안경, 태왁망사리, 빗창 등 물질도구를 챙기면 모든 준비는 끝이 난다. 특별한 재능과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다, 생계를 지키다보니 해녀가 돼 있었다고 한다.빈손으로 물속에 들어가 망사리 가득 해삼물을 따왔고 어머니들은 그것으로 자식들을 키웠다. 인터뷰고천혜자/ 제주도 해녀누구한테 배우긴~, 스스로 하다 보니 배워진 거지~다른 사람들 하는 거 보고 나도 하게 됐지, 장광자/제주도 해녀나는 건넛마을 바다에 있는 해녀인데, 우리 할머니도 어머니도 해녀였고,우리는 학교 갈 생각은 안 하고 어머니 따라가 놀다 보면 배우게 됐고,어머니 따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녀가 됐지 예전에는 관광손님도 없다 보니깐, 바다 물건을 잡아서 팔대도 없었던 거 같아. 그래서 바다 해초 따서 밭에 거름을 주고, 돈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미역, 우리가 어른이 돼서 보니깐 우리 어머니들이 미역을 팔아서 자식들 시집도 보내고 우리 어머님들이 이렇게 우리를 키워주셨지~ 나레이션옛 부터 지금까지 바다는 늘 아낌없이 내어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또한 해녀들에게 불턱은 돌담의 바람을 막고 불을 지펴 추위를 녹여주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 자막불턱해녀들이 바닷가 양지뜸에서 불을 쬐는곳수련,교육, 위계질서 등 해녀 공동체의 상징 인터뷰이승훈/ 제주해녀박물관 관장과거에 해녀 분들이 바닷가에서 물질을 하면 체온이 낮아지면 체온을 올리기 위해서 불을 피워놓고 몸을 녹이는 장소인데요, 그 장소에서 여러 해녀들이 몸을 녹이고 어린 해녀에게는 해양의 지식을 가르치고 경력이 많은 해녀 분에게는 노하우를 배우며마을의 행사가 있을 때는 민주적으로 결정을 해서 모든 마을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나레이션 물속에 들어가면 해녀들은 아픈 몸도, 나이도 잊는다고 한다또한 해녀들은 채취기간과 금채기간 등을 규약으로 정해놓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자생적인 공동체가 이루어진다. 해녀들은 바다밭을 단순 채취의 대상이 아닌 끈임없이 가꾸며 자연과의 공존의 모습을 보여준다. 인터뷰 장광자/제주도 해녀그렇게 힘든 점은 없는데 소라를 채취하던가, 그러면 수심 깊은데 가면 전복도 따고 소라도 잡고 오다 저 쪽에 있는(소라를) 보고는 아까워서 그것까지 가지고 오려면 숨이 깔딱 넘어갈 때가 있지, 그 (숨비)소리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고, 자연으로 쉬익~소리가 나와. 호이~ 허이~ 숨 돌아오는 숨비소리지! 또 물건 많이 잡는 날이면 그날 기분도 좋고 피로도 풀리고, 못 잡은 날은 힘도 많이 들고 죽을 거 같고 (그래) 이들 해녀는 전통적 잠수문화의 상징이자 여인의 강인한 삶과 독특한 문화를 상징하는 결정체이다. 바다 속 깊은 곳에는 그녀들의 신비한 삶이 담겨있다. 진취성과 더불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공동체 문화. 바다의 어멍, 해녀는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이다------------------------------------BGM - 해녀, 이름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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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질서이자 삶의 지혜, 풍수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조화롭게 계승시켜온 조상들의 삶의 지혜 풍수에 대해 알아본다. ---------------------------------------------------------------------------------------------------------- 자막 : 풍수(風水) 내레이션 : 풍수,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람’과 ‘물’이라는 뜻입니다. 동아시아만의 땅과 공간을 해석하고 활용하는 고유한 사상인 풍수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국가의 자연관을 잘 나타내고 있고, 실제로 조경과 건축 등에 영향을 미쳤던 사상인데요. 자막 :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국가의 자연관을 잘 나타내고 실제로 조경과 건축 등에 영향을 미쳤던 사상, 풍수 내레이션 : 풍수 사상은 중국 전국 시대 말기 이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 시대 이전에 전래되었는데, 일반적으로는 주로 묘지나 주택, 명당과 같은 터를 잡을 때 풍수가 쓰였습니다. 자막 : 풍수사상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 이전부터 시작,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이전에 전래됨. 내레이션 : 우리나라에 풍수이론이 수용된 시기를 추정하면, 역사적 문헌에 8세기임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도선이라는 사람이 풍수지리설의 시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막 : 풍수의 이론은 중국에서 비롯되었으나 8세기경 우리나라에 도입된 뒤 우리 나람의 생각과 가치가 더해짐. 자막 : 도선(道詵, 827~898) 도선은 신라 말기의 승려이자 우리나라 풍수설의 대가. 통일신라시대 김천 지역의 청암사를 창건한 승려로 도선 국사로 널리 알려짐. 내레이션 : 풍수는 땅의 질서와 이치를 이해하는 전통적 지혜이자 지리과학으로서, 현재까지 한국의 취락입지 및 조경, 공간배치와 구성, 건축 등에 널리 활용되고 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 이공원 / 서경대학교 경영대학원 풍수지리 교수 풍수지리는 장풍득수의 준말로서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 원리가 풍수지리인데, 대부분 사람은 풍수를 미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풍수지리라는 것은 태양과 지구가 어떤 관계인지를 설명하는 이론이 되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특히 우리나라 한민족이 오천 년간 살아오면서 누리고 있는 문화의 많은 부분이 풍수에 깃들여져 있기 때문에 풍수지리는 우리 생활에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내레이션 : 풍수지리의 이론은 매우 상식적이고 본능적이며 자연발생적인 것이 많은데요. 대표적인 예로 잠자리는 우리가 무의식, 무방비 상태에 있기에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데, 잠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안정감이 있으면서 편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막 : 풍수지리의 이론은 매우 상식적이고 본능적이며, 자연발생적인 것이 많음. 내레이션 : 잠자리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선 물론 방위에 따라 기운이 달라지지만, 우선적으로 머리를 방문에서 먼 곳에 두고 그 다음 창문에서 먼 곳에 두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요. 자막 : 잠자리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풍수 인테리어 - 머리를 방문에서 먼 곳에 두면 좋음 - 그 다음에는 창문에서 먼 곳에 두면 좋음 내레이션 : 풍수적 관점에서 생각하면 대각선 시야가 가장 커야 외부 침입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덜 수 있고, 또한, 화장실도 침대에서 멀어야 좋다고 합니다. 자막 : 잠자리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풍수 인테리어 - 대각선 시야가 가장 커야 외부 침입에 대한 불안감 감소 - 화장실도 침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좋음 자막 : 조상들이 오랜 시간 땅과 자연을 세심한 관찰을 바탕으로 만든 삶의 지혜, 풍수(風水) 내레이션 :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조화롭게 계승시켜온 풍수,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쌓아온 땅에 대한 깨달음과 자연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만든 삶의 지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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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9

[한국문화100]민족기원의 상징 단군

[한국문화100] 민족 기원의 상징 단군 한민족의 시조이자 고조선을 개국한 단군과 홍익인간 정신에 대해 알아본다. 단군대본 내레이션우리민족이 세운 최초의 국가 고조선. 청동기 문화가 형성되던 시기, 부족들을 통합하여 고조선을 건국한 인물이 바로 한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단군이다. 자막고조선(기원전2333년) 요동과 한반도 서북구 지역에 존재한 최초의 국가단군 우리민족의 시조 내레이션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첫 기록은 고려 충렬왕 때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찾을 수 있으며 자막단군신화가 기록된 최초의 사서 삼국유사단군왕검이 아사달을 도읍으로 조선을 개국했다 내레이션특히, 고조선의 건국에는 우리 민족 시조 신화인 단군 신화가 포함되어 있다. 아주 오랜 옛날, 하늘의 신인 환인에게는 환웅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환웅은 아버지 환인에게 ‘하늘에서 살기보다 인간세계로 내려가서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고 말했고 이에 환인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라는 홍익인간 정신을 당부하며 자막홍익인간 홍 크다(규모가 거대한 모습) 성장 생산성 경쟁력 자유익 돕는다 더한다 이롭게 한가 빼앗음 착취 억압 방관사람 사이 관계 인간세상 공동체 내레이션인간세상 다스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태백산 자락으로 내려와 사람들과 함께 살던 환웅에게 어느 날, 곰과 호랑이가 나타나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빌게 된다. 곰과 호랑이의 정성을 갸륵하게 여긴 환웅은 쑥과 마늘을 주며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고 당부한다. 성질이 급한 호랑이는 약속한 기일을 참지 못하고 굴 밖으로 뛰쳐나와 사람이 되지 못했지만 환웅의 말을 믿고 잘 참은 곰은 결국 아름다운 여인이 된다. 사람들은 곰에서 변한 여자를 웅녀라고 불렀고 웅녀는 환웅과 결혼하여 건강한 아들을 낳게 된다. 이 아이가 고조선의 첫 번째 임금인 단군이다. 인터뷰윤명철 / 고조선단군학회장 동국대학교 교수일부에서는 곰과 호랑이의 존재 특히 곰이 웅녀로 변신한 다음에 환웅과 결혼했기 때문에 이것을 곰 토테미즘(자연물을 집단의 상징으로 삼는 형태)이라든지 아니면 신화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신화와 토테미즘에 대한 잘못된 견해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당시 곰과 연관되어 있던 특정한 집단일수도 있고요. 아니면 곰은 단순히 생물학적 의미의 곰이 아니라 원래 우리 말, 특히 알타이어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가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 중앙아시아 전체에 퍼져있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바로 가미라고 불리는데요. 이 가미라는 것은 알타이어에서 무당을 뜻합니다. 감, 검, 금, 고마, 개마 이렇게 나타납니다. 이때 곰이라는 것은 생물학적의미의 곰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무당을 뜻하면서도 주로 밝음과 상대되는 어둠과 연관된 하늘에 대비되는 땅과 연관된 단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민족의 여러 개 지명, 산명, 인명 등에서 확인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이라는 것은 생물학적 의미의 곰 일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우리 알타이어 문화권에서 가지고 있는 감계언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한 개 집단과 땅 지역과 농경문화를 관리하는 지모신의 고마, 개마, 검 집단의 결혼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지요. 자막참성단(사적 136호)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 내레이션사적 제136호 참성단. 강화도 화도면 마니산에 있는 참성단은 단군께서 제천의 대례를 행하고 뜻을 드높였던 곳이다. 그러한 뜻이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어, 단군이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를 건국한 것을 기리는 매년 10월3일 개천절에는 여전히 중요한 제천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자막 단기 4347년 개천대제 2014년 10월 3일 마니산 참성단 인터뷰이상복 / 강화군수1년 동안에 많은 고생을 해서 곡식도 잘 재배를 했고 또 여러 가지 보람 있는 일도 있었는데 그런 것에 대한 감사의 뜻도 하늘에 올리는 뿐만 아니라 내레이션각지의 단군성전에서도 개천절에는 어김없이 민족의 시조 단군을 기리는 행사를 거행하며 그 뜻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홍익인간,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는 단군 신화 속의 이념은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최고 이념으로 윤리의식과 사상적 전통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인토뷰김창환 / 국학원 사무총장우리나라 국조 단군이 나라를 건국할 때 이상적인 인간으로 생각한 것이 홍익인간입니다. 홍익인간은 말 그대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너와 내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이고 또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사상입니다. 우리가 지금 물질문명이나 경쟁 속에 사는 우리 사회에서는 너와 내가 분리 되어 있고 너와 내가 경쟁을 해서 이겨야지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행복을 줄 수 없습니다. 홍익인간 사상은 나뿐만 아니고 상대방, 인간뿐만 아니고 자연 모두가 행복하고 이로운 세상을 꿈꾸는 그런 사상입니다. 내레이션단군신화에는 다른 나라의 신화에서와 달리 신들 혹은 인간과의 대립, 갈등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처럼 홍익인간의 이념에는 조화와 평화를 중시하는 세계관이 담겨있다. 단군. 단군과 그의 정신은 단순히 부정확한 역사와 과장된 신화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 마다 민족의 단합을 요구하는 구심체적 역할을 해왔다. 단군의 의미와 정신은 끊임없이 기억해야 할 우리 민족의 출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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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마을 공동의 문화공간 정자나무

[한국문화100]마을 공동의 문화공간 정자나무 예로부터 마을의 휴식과 신앙 또는 회합이 이루어졌던 정자나무의 가치를 재조명해본다. 정자나무편 대본 내레이션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의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의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정작, 사람들은 서로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혹시,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고 계신가요?혹시, 마을주민들과 서로 인사하며 지내시나요?혹시, 마을주민들과 모여서 어울린 적이 있으신가요? 사람은 넘쳐나도 삭막하기만한 현대의 도시. 서로가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만한 공간과 여유가 없는 것이 현실이기는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마을사람들이 정을 나누던 공간이 있었습니다. 마을 초입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모여 마을 일을 의논하거나 쉬기도 했던 오래된 고목. 우리 조상들은 편안한 그늘을 제공해주던 큰 나무를 정자나무라 부르며 사랑방처럼 함께 머물렀습니다. 정자나무는 한결같은 포근함으로 어른들에게는 휴식을 아이들에게는 놀이공간을 제공하였습니다. 정자나무의 넉넉한 규모와 수령처럼 정자나무와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인터뷰김판조그전에는 집이 초가삼간이잖아요. 늘어진 초가집인데 더워서 못살아. 그러니까 점심을 먹으면 다 나온거예요. 다 나와서 오후 세시정도 되어 조금 서늘해지면 그때 일터로 나갔는데 꽉차버려요, 여기가. 이렇게 올라가서 저렇게 늘어진 가지에다가 훈주(줄타기)도 타고 여기 나뭇가지에다가 그네도 매어놓고 그네도 타고 그랬어요. 어르신들이 나뭇가지 찢어진다고 못하게 했지. 내레이션현대의 도시들이 들어나고 사람들이 각자 바빠지면서 정자나무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갔습니다. 하지만 다시금, 늘 정이 넘쳤던 정자나무의 모습을 기억하고 따뜻하며 푸근했던 그 순기능을 살리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름지기재단과 서울디자인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하는 마을정자나무프로젝트입니다. 자막마을정자나무 가꾸기 프로젝트, 아름지기재단, 서울디자인재단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350세 느티나무 인터뷰장영석 / 아름지기재단 사무국장그동안 먹고 사는 문제, 급속히 산업화되고 경제적인 부분들을 쫓다가 결국은 다시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를 전통에서 힌트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자나무만 하더라도 그냥 단순히 오래된 나무일뿐이지만 사람들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 아래 같이 모여서 사람 살만한 동네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되거든요. 요즘 만들어지는 그 어떤 최신식의 건물이나 현대적인 공간보다도 사람들에게 더 큰 위안을 줄 수 있는 곳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정자나무 하나하나를 고쳐가는 것이 단지 자연보호 운동이 아니고 더 아름다운 삶을 만드는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김순희이런 공간이 생기니까 동네도 아름답고 공기도 좋은데 환경이 깨끗해지니까 살기 좋고 보기 좋지요. 박지훈주변에 자주 왔는데요. 정비된 후에 풍경도 더 괜찮아 진 것 같고 포근한 기분이 들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내레이션정자나무는 단순히 마을의 큰 나무가 아니라 사람, 자연, 문화가 어우러지던 마을의 상징적인 소통 공간이었습니다. 사람사이의 단절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 정자나무가 가지는 정의 가치는 우리가 다시 연결되어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인터뷰방영자안락하고 시원하고 굉장히 정서적으로 좋네요. 이혜숙(혼잡한)도심 속에 있는 느낌이 안 들고 편안하고 어느 시골에 와있는 그런 느낌이 드네요. 내레이션마을 공동의 문화 공간 정자나무, 앞으로도 소중히 지켜야할 우리의 문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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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 대한민국의 영토 독도

한국문화100 독도편 대본 내레이션한반도 동쪽의 작은 섬. 천연기념물 336호. 바다를 거치는 새들의 안식처.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여 다양한 어종이 모여드는 황금어장. 천연가스층이 발견된 해저자원의 보물창고. 신라시대 사람 이사부부터 조선의 안용복 그리고 1950년 해방 이후 독도의용수비대원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지키고자 했던 곳.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저는 대한민국의 영토 독도입니다. 평화로운 섬인 저 독도는 아픈 과거로 지금까지 상처 받고 있습니다. 저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의 첫 희생물이었습니다. 제국주의 야욕에 불타던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1905년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기 위해 독도를 주인 없는 섬이라며 불법 편입합니다. 그런데 저 독도가 과연 일본의 주장대로 주인 없는 섬이었을까요? 1145년에 발간된 삼국사기를 포함하여 한국의 수많은 옛 문헌과 지도들은 독도를 오랜 옛날부터 한국의 영토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1454년 제작된 세종실록지리지는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1900년 대한제국은 칙명 제 41호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합니다. 일본의 기록은 어떨까요? 일본은 1905년 이전에는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수많은 일본 문헌은 독도가 일본영토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17세기 말 일본은 공식문서를 통해 독도가 공식영토가 아니라고 스스로 인정합니다. 1877년 일본정부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은 일본 전역의 지적을 편찬하는 과정에서 정밀한 조사 끝에 독도가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110년간 숨겨져 있다가 1987년에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태정관 문서는 독도가 일본영토가 아님을 일본정부가 공식 확인한 명백한 증거입니다.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카이로, 포츠담 선언 등 전후 처리 과정에서 패전국 일본은 폭력과 탐욕으로 탈취한 모든 지역으로부터 쫓겨납니다. 저 독도도 한국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 677호는 독도를 분명한 한국의 행정관할 구역으로 선포합니다. 인터뷰성일종 / (사)독도사랑운동본부 부총재분명히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일본과 우리가 이러한 가치의 문제 때문에 많이 싸우게 될 겁니다. (독도가 일본의 것이라고)잘못 교육받은 일본의 메인스트림(주류사회)과 우리의 젊은이들이 대응을 하게 될 텐데요. 그에 대한 일환으로 순수한 국민운동으로, 막연히 독도는 정부가 지켜줄 것이라고 지금도 국민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서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전체가 소중한 영토에 대한 교육을 통해서 일본에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민부 / 한국교원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독도는 우리의 땅임에 틀림이 없고 또한 국제법적으로도 현재 우리가 이 땅을 소유하고 있고 방공식별구역이라든지 항공식별구역 등등 국제조약을 통한 국제 협약에서도 현재 이 부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이 문제는 얼마든지 우리가 논쟁을 해도 이길 수가 있습니다만 일본은 자기들이 시네마현에 편입을 했다고 하는 1905년 사실 하나만 가지고 줄기차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독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국력을 튼튼히 해서 조금도 허술한 면이 없도록 독도를 잘 지킬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레이션저 독도는 대한민국 주권회복에 상징입니다. 저를 둘러싼 일본의 역사왜곡문제는 건전한 한일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치명적인 현안입니다. 동반자적 관계로 미래를 열기 위해 일본의 끊임없는 도발적 행동으로부터 평화의 섬, 저 독도를 기억하고 지켜주세요. 저는 영원히 한반도의 동쪽 끝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로 자랑스럽게 서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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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농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다, 풍물 굿

농악이라 불리는 풍물 굿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대본---내레이션이때 농사꾼들의 능률을 올려주기 위해서 한데 모여 흥을 돋우는 의식을 벌였는데 이를 풍물 굿 이라고 한다.주로 농사를 할 때 행해져 농악으로도 알려져 있는 풍물 굿은 농경사회를 이뤄온 우리 선조들의 생활상을 알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농촌문화다.풍물 굿이 주로 타악기를 이용한 흥겨운 리듬의 굿판을 벌이는 게 기본 형식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때때로 춤과 노래등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재미를 더해주곤 한다.뿐만 아니라 서로 음식도 나누어 먹고 대화도 하는 등 다목적 기능의 종합예능 형태를 띠는데 지금으로 말하자면 버라이어티 행사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풍물 굿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으나 한민족이 한반도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공동노동을 하면서 노동의 애환을 달래주는 음악과 춤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그러나 풍물 굿은 두레라는 강력한 조직에 힘입어 상당히 체계적으로 발달하였다. 인터뷰풍물 굿이란 농악이라고도 하는데요, 소위 풍물 꾕과리, 징, 장구, 북, 소고 등의 타악기들을 동원을 하고 여기에 음악적인 요소, 무용적인 요소, 연극적인 요소 등이 종합적으로 결합되어져 만들어지는 우리나라의 전통 공연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풍물 굿은 이른바 집단적인 신명이라고 하는 (한국인들이 신난다고 하는 것) 것을 가장 깊고 포괄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그런 역동성을 가지고 있는 공연 예술이라는 점에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있겠습니다.내레이션풍물 굿의 형태와 특징은 지역마다 각기 다른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데,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참가 한 팀들을 통해 풍물 굿을 만나보자.자막이서들소리보존회 (경상북도)경북 청도군 이서면에서 전승되는 농업노동 풍물굿으로 주민들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내레이션우리선조들의 마을 공동 문화상을 알아 볼 수 있는 대표 전통 문화, 풍물 굿. 농경문화가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풍물 굿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전통문화를 지키는 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한 이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는 계속되리라 믿는다.앞으로도 풍물 굿은 한국 최고의 농민예술로 우리들에게 많은 울림을 줄 것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한민족의 한과 정서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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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한국문화100]가정교육의 지혜를 배워보자, 한석봉과 어머니

가정교육의 지혜를 알아볼 수 있는 한석봉과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보자.---대본---나레이션가정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한석봉과 어머니의 일화를 통해 참 된 교육의 가치를 발견해보는 건 어떨까요?떡 장사를 하며 아들 뒷바라지를 하던 한석봉의 어머니는 글 공부를 위해 아들을 전라남도 영암의 중림정사로 떠나보냅니다.어머니는 10년 동안 학업에만 매진하라며 보고 싶어도 찾아오지 말라고 당부를 하는데요, 한석봉은 어머니의 큰 가르침을 받아 굳은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서죠.3년이 지나고 어머니가 그리웠던 한석봉은 한밤에 집으로 돌아옵니다.한석봉은 반가운 마음에 어머니께 달려 들어가지만 어머니는 갑자기 찾아온 아들의 모습에 많이 놀랍니다. 어머니는 집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를 물었고 한석봉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글 솜씨를 자만하며 글방을 나와도 된다고 어머니께 말합니다.그의 말에 어머니는 참 된 가르침을 주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됩니다.불을 끈 상태로 한석봉은 종이에 글을 쓰고, 어머니는 내일 장에 내다 팔 떡을 썰어내자는 것이었습니다.불을 끈 상태에서 누가 더 예쁘게 쓰고, 써느냐에 대한 대결이었던 것이죠.어머니는 한석봉이 이기면 공부를 그만하고 지금 집으로 돌아와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한석봉이 진다면 지금 바로 다시 공부를 위해 죽림정사로 떠나야 된다고도 하셨죠.칠흑같이 깜깜한 방안에서 어머니는 떡을 썰고 한석봉은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한참 후 어머니가 다시 불을 켰습니다.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어머니가 썬 떡은 하나같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반면 한석봉이 쓴 글씨는 삐뚤빼뚤 제멋대로 흐트러져 있었습니다.어머니는 한석봉의 글씨를 보고 다시 돌아가라고 냉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그 후 한석봉은 어머니의 뜻을 헤아리고 더욱 공부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합니다.결국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킨 한석봉은 훗날 서도의 명인이자 한문의 본고장인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명필가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자막도산서원 전교당석봉 한호 (1543~1605)나레이션조선의 명필가인 한석봉의 서체는 당시 많은 이들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퇴계선생이 세운 도산서원 전교당의 현판 역시 한석봉의 작품이지요.우리가 주로 한석봉이라고 알고 있는 그의 정식 이름은 ‘한호’입니다.‘석봉’은 그의 호입니다.추사 김정희 선생과 쌍벽을 이룬 그의 서예실력은 조선중기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는데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국의 주요 문화재들에서 그의 글씨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한석봉의)글씨는 중국의 왕희지체(중국 최고의 서예가인 왕희지의 글씨체)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왕희지체의 서법을 계속 학습하고 이 것을 자기화 시켜서 조선시대의 많은 서예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한석봉의 글씨체는)방정하고 단정한 서체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나레이션가정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한석봉과 어머니의 일화를 통해 참 된 교육의 가치를 발견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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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 한민족의 성산, 백두산

우리나라 최고 높은 산, 정상에 위치한 천지는 한민족의 성지이다. 산세가 장엄하고 자원이 풍부한 한민족의 발상지인 백두산에 대해 알아보자. 백두산나레이션 높이 약 2,750m 총 면적 8천평방 킬로미터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백두산이다. 백색의 부석이 얹혀 있는 모습이 마치 흰머리와 같다 하여 백두산이라 부른다. 이민부/한국교원대 지리학과 교수Q. 백두산이란?백두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2744m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북아시아 대륙에서도 가장 높은 산지이고 특이하게도 화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깨끗하게 잘 만들어진 층층이 쌓인 성층화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화산채의 크기가 용암이 흘러내린 면적까지 하면 2만2천평 정도에 달하며 한반도의 10분의 1에 이르는 거대한 화산재입니다. 자막백두산 봄백두산의 봄은 6월 즈음에 돼서야 찾아온다. 장대한 백두 폭포로부터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해발 2000미터, 백두산의 고산화원에 냉랭한 찬바람을 이겨내고 백두산의 영기를 받은 꽃들이 피어오른다. 자막백두산 여름백두산의 연평균 기온은 영하7.3도고 최저 기온은 영하44도에 달한다. 7월 중 잠시나마 짧은 여름이 찾아온다. 수면 10미터 깊이 있는 돌이 마치 잡힐 듯 천지의 물은 맑다. 자막백두산 가을한반도에서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9월 초, 백두산에는 일찌감치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을이 시작되는 것이다. 곱게 물든 가을풍경은 백두산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이점수/ 사진작가Q. 백두산 등산 당시 모습?처음 백두산을 올랐을 때 웅장함과 장엄함의 기상적인 백두산의 느낌은 숨이 멈출 정도로 감개무량했습니다. 그리고 또 (백두산의 매력으로는) 가을에 백두산을 촬영 하다보면 온도가 내려가고 날씨가 추워지면 눈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10월이나 9월 하순에 백두산 등반 시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막백두산 겨울눈으로 뒤덮인 백두산의 설경이 장관인 이때. 바로 백두산의 겨울이 찾아온 것이다. 계곡 위로 두껍게 쌓인 눈은 이듬해 7월까지도 녹지 않는다. 하지만 한겨울에도 50도가 높은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는 백두산 온천의 신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백두산은 산세가 장엄하고 자원이 풍부하여 일찍이 한민족의 발상지였으며,숭배되어 왔던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수난을 같이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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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한국문화100]대한민국을 이끄는 원동력 IT

[한국문화100]대한민국을 이끄는 원동력 IT IT, 정보통신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의 하나이다. 한국의 IT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월등한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속도와 응집력으로 성장하여 이제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된 한국의 IT를 알아본다. IT대본 내레이션 대한민국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제 우리는 K씨의 생활 안에서 전통과 현대를 넘어 대한민국이 품고 있는 미래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K씨는 스마트폰을 통해 버스의 예정 도착 시간을 확인합니다. 필요한 문서들 역시 어디서나 쉽게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거리 어느 곳에서든 원하는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커피 주문도 네트워크 안에서 자유롭게 진행됩니다. 스마트폰, 인터넷, 네트워크 등 우리 사회를 바꾸는 기술. 우리는 이것을 IT,? Information Technology, 정보통신기술이라고 부릅니다. 자막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통신기술 내레이션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물론 개발, 저장, 처리, 관리하는데 필요한 모든 기술이 정보통신기술, IT입니다. IT산업은 대한민국 미래 가능성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정보의 변화와 융합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있는 IT산업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원석 /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 교수 IT활용강국의 입지는 계속 살려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특히 지금처럼 단편적 요소, 데이터나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문화차원으로 승화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활용강국으로 계속 남게 되면 전 세계에서 새로 나오는 기술들은 다 우리나라에 먼저 오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먼저 적용이 되고 제일 먼저 접하게 되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내레이션 반도체, 소프트웨어, 이동통신기술, 복합전자기기 등 대한민국의 IT산업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느 곳보다 빠르고 높은 기술력과 보급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실제 일상생활에서 IT는 보다 쉽고 밀접하게 우리의 생활 속으로 녹아들고 있습니다. 스마트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IT산업은 사람들의 삶을 보다 혁신적으로 바꿔놓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반도체 시장 점유율 등 많은 IT관련 지표에서 독주 체제를 굳히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IT기술력은 이미 세계 정상 수준이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기업의 IT제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IT기술이 가진 가능성은 무한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는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만 등장하던 가상현실이 이제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습니다. 놀라운 속도와 응집력으로 세계의 트렌드 중심에 있는 대한민국의 IT산업. 더욱 성장시키고 발전을 이뤄야 하는 우리의 중요한 미래 가능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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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9

[한국문화100]신성한 경계 금줄

한국인의 일생과 함께 했던 금줄. 부정을 막거나 신성한 대상의 경계를 나타내는 금줄의 가치를 재조명해본다. 제목 : 신성한 경계 금줄 내레이션 부정한 것을 금기한다는 뜻으로 걸쳐 놓은 새끼줄. 대문이나 길어귀, 신성한 대상물에 우리민족은 새끼줄을 매달아 경계를 표시하고 금줄이라 불렀다. 지역에 따라 그 형태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왼 방향 새끼를 꼬아 용도에 따라 상징적인 물건을 꽂았다. 인터뷰 김창호 /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금줄이라는 것은, 우리가 보통 금줄을 친다고 이야기 하지요. 금줄을 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냐면 우리가 사는 보편적인 공간에 아주 특별한 공간이 생겼을 때 그 공간을 보편적인 공간으로부터 분리해내는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내레이션 악운이나 음습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는 목적을 가진 금줄은 마을의 기원을 비는 서낭당이나 신성한 대상물에 주로 설치한다. 신성한 경계라는 주술적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금줄을 친 당산나무를 범접하면 몸이 상한다거나 금줄을 함부로 제거하면 악귀를 만난다는 등의 금기가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금줄은 그 자체로 신성한 대상물이기 때문에 소원을 기원하거나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한 용도로도 활용된다. 특히,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대문에 매달던 새끼줄의 형태가 금줄의 대표적인 사용 모습이다. 인터뷰 강호식 / 짚풀생활사박물관 아기를 낳으면 금줄이라고 해서 대문위에다 사람 머리 안 걸릴 정도로 매달아요. 아들을 낳게 되면 고추가 들어가고 종이 백지, 숯, 솔가지를 넣고. 딸을 낳게 되면 고추를 안 넣고 솔가지하고 숯하고 이렇게 세 가지(종이)만 꼈다고 해요. 인터뷰 인병선 / 짚풀생활사박물관장 아이한테 만일 부정한 것이 들어오면 아이에게 해로우니까 그것을 막는다는 개념도 있었지만 또 하나는 우리 집에 아이가 태어났다 손자, 손녀가 태어났다는 것을 마을에 알리고 그럼으로써 마을사람들이 축하도 해주지만 근신하는 것이지요. 함부로 들락거리지 않게 하는 경계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내레이션 금줄은 사회적 규약이며 약속이다. 우리민족 스스로가 창출해 냈던 자율적 공공질서였다. 지켜야 할 것, 침범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사회 구성원 스스로의 약속.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금줄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계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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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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