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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거리는 오후

작품소개
1977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 이 작품은 중산층의 물질적 욕망과 허영심으로 인해 훼손되고 파괴되는 인간 삶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보여주었다. 가족 구성원의 윤리가 무너지고 소중한 인간적 가치가 모두 물질적인 것에 의해 내몰리고 있는 부박한 현실의 물질주의적 경향을 비판하고 그 속에 묻혀 있는 인간을 조소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중산층의 한 가족의 삶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전직 학교 교감으로 이제 조그만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남편과 그의 아내, 그리고 세 딸의 결혼과정이 얽혀 있기 때문에, 세태묘사의 면에서 통속적인 흥미까지 자아낸다. 이 작품의 소설적 관심은 전체적인 이야기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는 중산층 소시민의 물질주의적 욕구와 그 허위성이다. 이 소설 내용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가족들은 모두 이러한 시대풍조에 물들어 있는 병든 인간들이다. 순박한 소시민으로서 자기만족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은 그 성격의 우유부단함으로 말미암아 현실의 비리를 뚫고 나가지 못하고 자멸한다. 아내의 이기주의, 물질적 욕구, 그리고 맹목적인 자기과시를 끝내 억누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자로 살아온 그가 자신의 몫으로 지키고자 했던 소박성이라든지 청빈함이라든지 하는 덕목과 가치관은 극성스런 아내의 충동에 의해 여지없이 짓밟힌다. 그리고 세 딸마저 그러한 어머니로 인하여 모두 자신들의 삶에 실패한다.
저자
박완서(朴婉緖, 1931~) 경기도 개풍 출생. 서울대 국문과를 중퇴했다. 1970년 장편소설 <나목>이 <여성동아> 현상모집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초기 작품에서부터 중산층의 생활양식에 대한 비판과 풍자에 주력하고 있으며, <도시의 흉년>(1977), <휘청거리는 오후>(1977), <목마른 계절>(1978) 등의 장편소설에서 중산층 가정을 무대로 하여 폭넓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박완서의 소설은 일상적인 삶에 대한 중년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도 현실적인 감각으로 다듬어져 있으며, 한국전쟁에 의해 초래된 비극적 체험으로부터 비롯된 심화된 내면의식에 의해 밀도 있게 이야기가 형상화되고 있다. 장편소설인 <나목>(1970),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 등과 <지렁이 울음소리>(1973), <부처님 근처>(1973), <엄마의 말뚝>(1980) 등의 중·단편소설에서 박완서는 끔찍할 정도로 생생하게 전쟁의 참상과 그것으로부터 연유되고 있는 비극적 현실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비극으로부터 벗어나 오늘의 현실의 삶으로 돌아왔을 때, 거기에는 정치한 심리묘사와 능청스러운 익살, 지나가 버린 삶에 대한 애착과 핏줄에 대한 절절한 애정, 일상의 삶에 대한 안정된 감각이 살아있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어떤 나들이>(1971), <세모>(1972),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4), <카메라와 워커>(1975), <도둑 맞은 가난>(1975), <조그만 체험기>(1976), <꿈을 찍는 사진사>(1977), <공항에서 만난 사람>(1978), <우리들의 부자>(1979), <그 가을 사흘 동안>(1980),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1984),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1989) 등의 중·단편들이 있으며, 장편 소설 <오만과 몽상>(1982), <미망>(1990),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등이 있다. <엄마의 말뚝>으로 1981년 제 5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미망>으로 1990년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리뷰
박완서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나는 차돌같이 야무진 개성 상인을 연상하게 된다. 고려의 옛 수도로서 화려한 귀족문화를 꽃피웠던 개성은 조선에 들어서 철저한 지역차별정책 속에서 정치적 상승이 차단당함으로써 오히려 자유로운 시민사회적 풍기를 발양하여 일찍이 근대를 준비했던바, 개성상인은 그 대표적 존재이다. 신용과 실력을 바탕으로 전국을 누비고 나아가 중국과 일본을, 급기야는 그 발길이 미주지역에까지 미쳤던 송상(松商)의 투혼은 아름답다. 박완서는 개성 근교 개풍 출신이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여덟 살 때 오빠만 데리고 먼저 상경한 어머니를 따라, 작가 때문에 유명해진 현저동으로 이사,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에 입학, 일견 양양해 보였던 그녀의 삶은 운명처럼 덮친 6·25로 집안의 기둥이던 오빠가 좌우익의 갈등 속에서 참혹하게 죽음으로써 이 땅의 평균적 여성의 간난(艱難)한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1970년 마흔 살의 늦깎이로 등단, 오늘날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뛰어난 작가의 하나로 우뚝하다. 그 비결은 아무래도 겪을 것을 다 겪고 등단한 여성의 산문정신에 있을 것이다. 여류문학이 흔히 빠지곤 하는 낭만적 일탈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 그녀의 산문정신은 아마도 송상의 문학적 등가물(等價物)로 부족함이 없을 터이다. 이 점에서 그녀의 늦은 등단은 하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그녀가 일찍 등단했더라면 그녀의 문학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장녀는 어머니의 문학에 대한 인상기를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장면으로 시작한다. (……) 박완서를 뛰어난 산문가로 키운 가장 결정적 요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6·25가 아닐까? 6·25는 그녀의 개인사에 혹독한 시련으로 다가왔지만 그 시련은 문학소녀의 낭만주의 또는 유미주의의 커튼을 일거에 열어 젖혀 일찍이 그녀로 하여금 이 괴물 같은 현실에 직면하도록 끊임없이 독전(督戰)하였던 것이다. 이번에 해설을 쓰기 위해 그의 단편들을 통독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6·25는 하나의 원체험으로서 크고 작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말하자면 그녀의 문학은 6·25의 악령에 지펴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이 때문에 그녀의 문학세계는 지극히 사적(私的)으로 보이는 듯, 기실 6·25라는 악령에 휘둘려 상처받은 우리 민중, 우리 민족의 운명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공적(公的) 성격으로 스스로 확장해 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1972)는 초기작이지만 그녀의 문학적 원형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작품의 시점은 1인칭인데, 작중화자는 38세의 주부로 설정되어 있다. 이와 같은 시점은 그녀가 가장 애용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 때문에 작중화자를 작가 자신이라고 보아도 거의 무방하다. 그녀의 문학은 무슨 기발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보다 자신이 주부로서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일상적 체험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 일상적 공간의 배후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6·25의 망령은 <부처님 근처>(1973)에서 작품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여기에는 그 망령과 힘겨운 화해를 시도하는 모녀가 등장하는데, 역시 시점은 1인칭, 그 딸이 작중화자이다. 이 작품 속의 오빠는 전작보다 사실에 더 가까워서, 좌익으로 활동하다가 주춤하자 오빠의 ‘동무’에서 사살당한다. 반면 아버지는 허구화가 심하다. 오빠가 죽은 후 오히려 좌익을 따라다니다가 수복 후 체포, 1·4후퇴 때 그 후유증으로 죽어 갔다. 집안의 남자들이 역사 속으로 산화한 뒤 남은 모녀는 이들을 행방불명으로 처리함으로써 그 죽음을 ‘은밀히, 음험하게’ 삼켜 버렸던 것이다. (……) <이별의 김포공항>(1974)는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에서 곁이야기로 등장하는 이민의 주제를 새롭게 다룬 작품이다. 이 단편은 이 작가로서는 매우 드문 3인칭 시점을 취하고 있는데, 거기다 그녀가 즐겨 설정하는, 적당히 나이 먹은 주부가 아니라 노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앞의 작품들보다 풍자적 톤이 두드러진 것도 눈에 띈다. 구파발의 가난한 농사꾼의 딸로 태어나 현저동 막벌이꾼한테 시집와 난리 겪고 과부가 되어 5남매를 키워 낸 노파는 ‘세상 구경은 고사하고, 서울 구경 한번 제대로 날 잡아 해본 일이라곤 없는’ 도시빈민이다. 미군부대 주변에서 구두닦이, 하우스보이, 웨이터, 잡역부로 잔뼈가 굵은 자식들은 미군이 감축되면서 일자리를 잃자 미국 못 가서 상성하다가 꿩 대신 닭으로 둘째는 서독, 셋째는 브라질, 넷째는 괌으로 떠나고 막내딸은 보조간호원으로 미국에 가서 산다. 그러니 한국에 남은 노파는 구박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작품은 노파가 딸의 초청으로 미국 이민을 앞두고 서울 관광길에 나서 국립박물관을 구경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 동안 당한 설움을 복수하듯 마치 미국 시민이라도 된 것처럼 자세하는 노파의 희떠운 모습을 작가는 주의 깊게 묘사한다. 그런데 노파를 안내하는 손녀 딸의 시각을 간간이 삽입함으로써 작품은 속물성에 대한 단순 풍자를 넘어선다. 특히 막상 비행기를 타자 지금까지의 과장된 자세를 벗어버리고 ‘난 틀렸어, 난 죽은 목숨이야’하고 통곡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속물성에 대한 작가의 지독한 경멸은 문득 따듯한 포옹의 해학으로 변모한다. 도시의 빈국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저열화, 그 영혼의 왜곡을 작가는 온전히 접수하면서 그 근저에 가로놓인 한국사회의 조건에 항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6·25의 악령에 사로잡혀 이념적 갈등 속에서 또는 생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 처절했지만 오히려 순진했던 사람들이 전후의 부흥 분위기, 특히 1970년대의 자본주의적 발전에 동반하여 생활형편이 나아지면서 전반적인 속물화가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세태에 대한 풍자는 이 시기 박완서 문학의 주요한 특징으로 되었다. <지렁이 울음 소리>(1973),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4), <카메라와 워커>(1975), <도둑맞은 가난>(1975) 등에서 작가는 새로이 도래한 단테적 연옥에 빠져 도덕적 왜곡 속에 타락하는 인물들을 자기 풍자의 정신으로 고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타락의 대척점에 6·25가 놓여 있는 것이 흥미롭다. (……)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에서 얼핏 배경으로 나타났던 이 나라의 교육현실을 본격적으로 문제삼은 중편 <꿈을 찍는 사진가>(1977)는 작가가 애용하는 1인칭이지만 특이하게도 K중 사회교사로 재직하는 총각선생 김영길이 작중화자로 설정되어 있다. 가난 속에서 성장한 그는 ‘지방에선 행세깨나 하는 집안의 막내딸’ 옥순이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 동생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집안의 압력이 심리적 부담감으로 한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하더라도 현재에 지극히 만족한 상태다. ‘새처럼 즐거운’ 옥순이란 아가씨의 순진한 명랑함은 꽃 피는 봄의 환상적인 분위기와 어울려 이 작품을 아연 경쾌하게 물들이는데, 이와 같은 희극적 활기는, 대체로 우울한 그녀의 작품세계 속에서 매우 드물어서, 짐짓 상복(喪服)을 벗는 심정으로 이 아가씨의 형상을 빚어 낸 작가의 마음의 끝을 보는 듯도 하다. (……) 유신체제가 새로이 재편되는 1980년대의 어두운 배경 속에서 태어난 중편 <그 가을의 사흘 동안>(1980)은 그 배경만큼이나 우울한 지옥의 묵시록이다. 작가는 여기서 이제 은퇴를 사흘 앞둔 산부인과 여의사라는 한 빼어난 문학적 초상을 그려 낸다. 피난 중 이리에서 강간과 임신과 유산의 ‘생지옥 같은 고통’의 기억을 간직한 채, 휴전 직전 만 27세의 처녀 몸으로 단신 상경하여 서울의 동쪽 끝 변두리 마을에서 산부인과를 개업하고 소파수술 전문으로 일생을 독신으로 버텨 온 ‘나’는 귀기마저 내뿜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성격으로 생생하다. 6·25로 가족 구성원 거의가 산망(散亡)한 집 주인 황씨 같은 주요인물로부터 미군부대 주변에 기생하는 창녀와 포주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생활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어 작가의 무르익은 필치를 확인할 수 있다. 거기다 도시와 시골의 경계에 선 어정쩡한 모습에서 개발독재의 물결 속에서 급속히 도시화되는 이 변두리 마을은 그 인물들에 걸맞게 얼마나 뛰어난 문학적 공간으로 떠오르는가! (……) 작자는 인물이 자신의 운명을 끝까지 밀고 나가게 함으로써 오히려 운명의 사슬로부터 해방되는 역설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녀는 최후의 실패 속에서도 비극적으로 아름답다. 그녀가 ‘6·25, 그것은 우리 모두의 공동의 획이었다. 그 획을 통과하면서 각자의 운명은 얼마나 심한 굴절을 겪어야 했던가?’라고 독백하고 있듯이, 그녀의 피 묻은 일생은 이 시대의 생활조직에 반대하는 가장 격렬한 저항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엄마의 말뚝 2>(1981)에서 가장 비통한 기억, 오빠의 죽음이라는 원체험에 용감하게 다가선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부처님 근처> 등 초기 단편에서 허구화 속에 가려진 오빠의 죽음의 진상이 이 작품에서 비로소 공개되는 것이다. 해방 후 좌익으로 활동하다가 전향한 그는 6·25때 이웃의 고발로 체포, 의용군에 지원했지만 전세가 역전되면서 거지꼴로 귀환, 다시 1·4후퇴를 맞아 현저동에 숨어 있다가 다시 퇴각하는 인민군 군관의 총에 맞아 그 상처로 어이없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 해방에서 휴전까지 역전의 역전을 거듭했던 정치정세 속에서 남한의 한 좌익 청년이 맞이했던 이 철저한 자기 파멸은 사실 흔히 상상하듯 영웅적이기보다 어찌 보면 지극히 산문적이기조차 하다. 그러나 그 죽음의 산문성이 비극적 성격을 더욱 증폭시킨다는 점이야말로 유의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의 핵심은 그 진상 공개가 아니라 그 죽음 이후 살아 남은 가족, 특히 이 연작에서는 자식을 앞세운 어머니의 삶의 궤적이다. ‘누구보다도 화평하게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거의 황홀하리만큼 아름답게 늙으신 어머니’의 입원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작품은 아들의 악몽 속에 ‘원한 맺힌 맹수’로 변모한 마취상태의 어머니의 모습을 그야말로 사실에 전율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최후의 이 처절한 싸움을 통해서 영혼의 왜곡을 넘어서 아름다운 승리에 도달한다. 며느리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들을 화장하여 개풍군이 바라보이는 강화 바다에 뿌렸듯이 어머니는 ‘나’에게 자신의 주검을 화장할 것을 부탁하는 것이다. (……) 1980년대 전반에 이루어진 이 일련의 작품들의 생산으로 박완서는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의 반열에서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이후에도 그녀는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서 어떤 소재를 다루더라도 태작을 내지 않는 범상치 않은 솜씨를 자랑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작품들은, 역전을 거듭하는 우리나라 정치정세의 근본적 불안정으로 말미암아 진실이 스스로 은폐되는 세태를 사실적으로 묘파한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1989) 같은 가작이 없는 것은 아니로되, 대체로 자기 풍자를 겸한 속물 풍자에 경도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개척보다는 앞 시기 문학의 변주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또 한차례의 비약이 요구된다. 일찍 등단한 작가들이 창작력의 쇠퇴를 보이는 40대에 등장하여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퇴조를 막았을 뿐만 아니라 그 발전적 계승에 독특한 역할을 감당해 왔던 작가가 60대에도 여전히 창작력의 청춘을 구가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의 기대는 결코 배반당하지 않을 것을 나는 믿는다. ‘아름다운 영혼의 옹호’, 최원식,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동아출판사, 1995
작가의 말
<휘청거리는 오후>는 나의 세 번째 장편소설이지만 신문 연재로는 처음이었다.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꺼린 것은 재미의 문제로, 신문사 측에서 작가를 간섭하지나 않나 하는 거였다. (……) 그렇다고 전혀 재미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소설을 썼다는 소리는 아니다. 나는 신문소설이 아니라도 소설을 쓸 때 재미의 문제를 의식 안하고 써본 적이 없다.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강요하지 않고 듣게 하기 위해선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이 요구하는 오락으로서의 재미와 작가가 생각하는 소설적 재미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런 간섭에 부닥치지 않고 소설을 끝마칠 수가 있었다. 그 대신 후반으로 접어들자 독자로부터의 상당한 간섭이 있었다. 여자들을 왜 불행하게 하느냐, 허성(許成)씨를 너무 가엾게 하지 말라…… 주로 이런 간섭이었다. 그런 간섭은 독자가 내 작품을 그만큼 애독해준 결과로 유쾌하게 여겼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나는 내 작중 인물에게 내가 그들을 창조하면서 지워준 운명대로 살게 할 수밖에 없었다. 실상 내가 독자가 관심있게 봐주기를 바란 것은 누가 행복하게 되고 불행하게 됐나 보다는 어떠어떠한 것들이 허성씨가(許成氏家)의 조용한 몰락에 작용했나 하는 것이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아닌 보통으로 사는 사람의 생활과 양심의 몰락을 통해 우리가 사는 시대의 정직한 단면을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다. 또 하나, 나에게 집요한 간섭이 되어 작용한 것은 신문소설이란 형식이었다. 다음 회(回)를 기다리게 끝을 맺는다는 잔꾀 같은 건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어떻든 여덟 장 미만에서 딱딱 호흡을 끊어야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당한 괴로움이었다. 이런 고통은 나의 체질과 역량과 다분히 관계가 있는 개인적 고통일 뿐이지 신문소설 작가의 보편적인 고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일이 어느 만큼 진행됨에 따라 용기를 내서 호흡을 끊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그대로 써내려갔다. 소설을 죽이면서까지 신문소설을 써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씌어진 거니만큼 단행본으로 옹글게 독자 앞에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이 나에겐 각별한 뜻이 있고, 각별히 즐겁다. (……) ‘후기’, 박완서, <휘청거리는 오후>, 창작과비평사, 1977 (······) 몇 년 전 어떤 문예지로부터 나의 문학론 비슷한 걸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매우 난처해하며 여러 날 끙끙댄 끝에 쓴 짧은 글을 (······) 여기에 반복 인용하는 걸로 이 글을 끝맺을까 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 중에서도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아무도 용훼(容喙) 할 수 없는 완벽한 정의를 하나 가지고 싶어서 조바심한 적이 있다. 그 시기는 내가 소설을 쓰고 나서 훨씬 후였으니까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소설이 뭔지도 모르고 소설부터 썼다는 얘기가 된다. 소설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소설가 소리 먼저 듣게 돼 버린 허술함 때문인지 나는 그런 정의를 무슨 신분증처럼 지님으로써 마음을 놓고 싶었던 것 같다. 행여 누가 내가 소설가인지 아닌지 시험하여 들거나,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하려는 눈치만 보이면 여봐란듯이 꺼내 보이기 위한 거였기 때문에 그 정의는 권위 있고 엄숙한 것일수록 좋았다. 소설이 뭔지도 모르고 소설부터 쓰고 본 주제에 내가 소설가라는 게 그렇게 소중하고 대견스러웠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소설가 중에서도 뛰어난 소설가야 물론 우러러 보이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지만 소설가 외의 딴 직업이나 신분은 아무리 높아도 부러워해본 적이 없다. 아직도 비록 신분증은 못 얻어 가졌지만 “나는 소설가다.”라는 자각 하나로 제아무리 강한 세도가나 내로라 하는 잘난 사람 앞에서도 힘 안들이고 기죽을 거 없이 당당할 수 있고, 제 아무리 보잘것없는 밑바닥 못난이들하고 어울려도 내가 한 치도 더 잘난 거 없으니 이 아니 유쾌한가. 소설에 대한 엄숙한 정의를 하나 얻어 가지고 싶어 조바심할 무렵 비로소 남들은 소설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가에 솔깃하니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난해한 문학론 같은 것도 열심히 읽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저것도 다 옳은 소리 같았다. 하다못해 소설은 마땅히 이런 거여야 한다, 아니다 마땅히 저런 거여야 한다고 싸우는 소리에도 흥미진진하게 귀를 기울였다. 지조 없게도 양쪽이 다 옳은 소리 같았다. 그리고 곧 그런 일에 싫증이 나고 말았다. 소설에 엄숙한 정의를 내리지 못해 조바심하던 시기는 그렇게 지나갔다. 내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는 참으로 뛰어난 이야기꾼이셨다. 무작정 상경한 세 식구가 차린 최초의 서울 살림은 필시 곤궁하고 을씨년스러운 것이었을 텐데도 지극히 행복하고 충만한 시절로 회상된다. 어머니는 밤늦도록 바느질품을 파시고 나는 그 옆 반닫이 위에 오도카니 올라앉아 이야기를 졸랐었다. 어머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을 뿐더러 이야기의 효능까지고 무궁무진한 걸로 믿으셨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심심해할 때뿐 아니라, 주전부리를 하고 싶어할 때도, 남과 같이 고운 옷을 입고 싶어할 때도, 약아 빠진 서울 아이들한테 놀림 받아 자존심이 다쳤을 때도, 고향 친구가 그리워 외로움을 탈 때도, 시험 점수를 못 받아 기가 죽었을 때도, 어머니는 잠깐만 어쩔 줄을 모르고 우두망찰하셨을 뿐, 곧 달덩이처럼 환하고도 슬픈 얼굴이 되시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나의 아픔을 달래려 드셨다. 어머니가 당신 이야기의 효능에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기보다는 이야기밖에 가진 게 없었기 때문에 딸의 모든 상처에 그것을 만병통치약처럼 들이댈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도 어머니는 때때로 낮은 한숨을 쉬시면서 이렇게 조바심하셨다. “이야기를 너무 밝히면 가난하게 산다는데.” 그건 이야기를 즐겨 만드는 사람, 즐겨 듣는 사람, 쌍방에 다 적용될 수 있는 얼마나 그럴싸한 예언인가. 내가 아직도 소설을 위한 권위 있고 엄숙한 정의를 못 얻어 가진 것도 “소설은 이야기다.”라는 단순하고 소박한 생각이 뿌리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뛰어난 이야기꾼이고 싶다. 남이야 소설에도 효능이 있다는 걸 의심하건 비웃건 나는 나의 이야기에 옛날 우리 어머니가 당신의 이야기에 거셨던 것 같은 다양한 효능의 꿈을 걸겠다.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박완서, <박완서 문학앨범>, 웅진출판, 1992
관련도서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20세기 현대 문학의 탐험>, 장석주, 시공사, 2000 <박완서 문학 길 찾기>, 이경호 편, 세계사, 2000 <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도시와 모성>, 강인숙, 둥지, 1997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박완서, 동아출판사, 1995 <박완서>, 이태동, 서강대출판부, 1998 <박완서 문학앨범>, 웅진출판,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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