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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고향

  • 작가소개

    칼 쉔헤어(Karl Sch&ouml;nherr)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와 스위스 세 나라의 국경선이 한테 모인 어름에 티로올 지방이 있고 이 지방의 수읍(首邑) 인스부르크에서 멀지 않은 인강(江)가엔 아크삼스라는 촌(村)이 있다. <신앙과 고향>의 작자 카알 쇠왼헤르는 1869년 2월 24일 이 촌(村) 소학교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잃고 편모 밑에 오남매의 하나로 자라난 그의 생애는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뷔인에서 외과의로 개업하였으나 의사 노릇은 그에게 있어서 정신의 안주지(安住地)도 아니거니와 호구(糊口)의 길도 되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문필에 손을 대게 되었다. 토민(土民)의 비극 <신앙과 고향>이 뷔인의 민중극장에서 초연되어 크게 인기를 얻자 그는 희곡작가로서 입신하여 연달아 좋은 작품을 다산(多産)하였다. <신앙과 고향>은 독일어가 통용되는 어느 도시의 대극장에서든지 상연 안 한 곳이 없다하리 만큼 독일어권의 여러 나라의 극장을 풍미한 명작으로서 작자는 이 작품으로 하여 생활의 안정을 얻었다. 비극 <신앙과 고향>은 1620년경 종교개혁 반동운동기의 티로올 지방에 있은 사실에서 취재한 것이지만 말하자면 단순한 종교극은 아니다. 극의 줄거리로 보아 신교도는 추방되면서도 승리의 길을 떠나고 구교자는 박해의 칼을 꺾는 것으로 되어 있어, 이것을 종교극으로 본다면 종파적 입장을 달리하는 관객들은 호오(好惡)의 감정을 달리할 것이지만 작자는 종교적 입장에서 이 희곡을 쓴 것이 아니라 신앙을 견지하려면 신앙을 버려야 하는 양자택일의 곤경에 빠진 때의 인간고를 그리려 하는 데에 작자의 의도는 있은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극에 있어서는 신교와 구교의 입장을 바꿔놓아도 극은 아무 어색한 점이 없이 성립될 수 있고 따라서 작자의 근본의도에도 아무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작자는 단지 신앙심과 향토애가 양립 못할 때의 인간비극을 그려내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1620년경의 티로올 지방에서만 비극이 될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라도 신조를 달리함으로써 고향을 떠나야 하는 일이 생긴 곳과 시대에는 다 현전의 비극으로 감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조라는 것은 하필 종교적 신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상반되는 이데올로기의 공존이 용인되지 않는 곳에 폭력이 날뛸 때에는 언제나 일어나는 비극이다.(……) ‘작가·작품 및 선정이유’, 서항석, <신앙과 고향> 공연팸플릿

  • 내용

    서기 1620년경 종교개혁반동운동기. 티롤지방. 삼백년래(三百年來)의 토착민인 크리스토프·로트라는 농부의 가족은 그의 아버지인 노(老) 로트를 위시하여 동생 괴에태르·로트, 그리고 그의 안해와 아들 슈파쯔의 5인(五人)이였다. 이 집안은 벌써부터 구교(舊敎)에게 이탈(離脫)하여 신교(新敎)를 신봉하고 있는 터였으나 이를 고백하지 못하고 지낸다. 이유인즉 신교를 신앙하는 자는 국외로 추방을 당하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동생 폐에테르는 과감하게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고 고향에서 추방을 당했으나 다른 가족들은 끊기 어려운 정든 고향에의 애착 때문에 자기들의 신앙을 감추어가며 초조와 불안 속에서 그날 그날을 보내고 있었다. 노(老) 로트는 지병인 부종(浮腫)을 앓으면서 임종직전에는 신앙을 고백하고 떳떳한 신교도로서 고향에 묻치리라 생각하고 있으나 이웃 사람인 산트베르게르 처(妻)의 참혹한 최후를(신교도로서) 목격하게 되자 드디어 신앙을 고백하게 되며, 로트 역시 동생 폐에네르의 굳은 신앙에 감동되여 기어이 신앙을 고백하고야 만다. 이들에겐 즉시 추방명령이 내렸다. 허나 어린이들만은 데리고 가지 못한다는 지령이 내리자 아들 슈파쯔는 이에 저항하다가 익사를 하게 된다. 아들의 사체를 싣고 슬퍼할 사이도 없이 일가족은 신앙의 자유가 있는 새로운 고향을 향하여 정든 땅을 등지고 먼 길을 떠난다. <신앙과 고향> 공연팸플릿

  • 국내공연연보

    1936년 극예술연구회 / 서항석 연출 1956년 국립극단 / 시공관 / 서항석 연출(국립극장 환도기념공연) 1957년 7월 12일~20일 국립극단 / 명동국립극장 / 홍해성 연출

  • 예술가

    홍해성(洪海星, 1893~1957) 본명은 재원(在遠). 1920년 김우진, 조명희와 함께 극예술협회를 조직했고, 1921년 동우회순회연극단으로 <김영일의 사(死)>를 연출하여 데뷔했다.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법과를 자퇴하고 본격적인 연극수업을 위해 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과를 수료했다. 일본 신극의 선구자 오사나이 가오루[小山內薰]의 제자가 되었고 그의 소개로 일본 스키지[築地] 소극장 전속배우로 신극을 배웠다. 1929년 윤백남, 박승희 등과 경성소극장을 조직했으나 곧 해산되었다. 1930년 10월 신흥극장 조직에 참여하여 <모란등기(牡丹燈記)>를 연출했다가 실패했으나 같은 해 12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벚꽃동산>을 연출하여 성공했다. 1931년 극예술연구회의 창립에 선배격으로 참가해 극단 공연평을 담당했고, 극예술연구회 직속 실험무대의 제1회 공연작품인 <검찰관>을 비롯해 제2·6·9회 공연의 연출을 맡았다. 1936년부터는 동양극장에 연출담당으로 들어가 활동했으며, 1956년 국립극단의 <신앙과 고향>을 연출했다. 그 밖의 연출작품은 극예술연구회의 <바보>(1933), 연극사(演劇舍)의 <개화전야(開化前夜)>, <신라의 달>, <항구의 비가>(1933), 동양극장의 <승방비곡(僧房悲曲)>(1937), <어머니의 힘>(1939) 등이다.

  • 카알 쇠엔헤르 작 <신앙과 고향>의 작품주제는 17세기(1620년경)의 반종교개혁운동 당시 고향에서 추방당한 이태리 산촌 티로올 지방의 신교도들의 운명을 역사적 사실에 취재하여 구교와 참혹한 탄압에도 신앙으로 항거하는 순교자의 인간고를 그린 것으로 작자 카알 쇠왼헤르는 이 작품을 통해서 신앙은 죽엄보다도 귀한 것이며 인간의 의지는 오직 신의 소관으로 결정한다는 종교정신을 표면적 현상으로 선정하고 내면적 저파(底派)를 실천하고 현상으로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인간들의 숭고한 자유이념을 표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구교도의 권력 앞에 결국 토지와 집과 고향을 버려야 하는 토민들의 토지에의 애착심에 조응시켜 인간의 구원(久遠)한 이상인 신앙에의 초연정신을 관통시키고 있다. 연출의도는 어디까지나 탄압에 억압당하는 인간들의 고민정신을 확대하는 한편 스타일은 작자도 말한 바와 같이 자연주의 연극의 극적 형태로 구축해볼까 한다. 즉 1620년대의 반종교개혁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제재(題材)하고 있기 때문에 연대는 17세기라고 할지라도 인간고의 추구는 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에 레알하게 기준을 두겠다. 그러므로 이 작품을 통해서 강조하려는 것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신앙의 자유를 억압당한 토민들의 숭고한 인간고의 토민의 집과 전통을 고수하려는 인간의 집착관념을 교차시켜 여하한 강압에도 굴치 않는 인간의 본능적인 초연정신을 크로-스 엎 시키겠다.(……) ‘연출의도’, 홍해성, <신앙과 고향> 공연팸플릿

  • (……) 대구 피난에서 환도한 뒤 올린 첫 번역극(1956)은 쉔헤르 작, 서항석 번역, 홍해성 연출의 <신앙과 고향>(1910)이었다. 농민의 정치적·종교적 문제를 단순하고 힘차게 그린 사실주의와 상징주의 작품으로 쉔헤르의 대표작이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반 종교개혁에 저항하는 농민들의 투쟁을 다루고 있는데, 엄격한 카톨릭 교리와 인간적 삶의 터전인 고향에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민중들의 비극적 현실을 주제로 하고 있다. 지식인의 사회와 국가에 대한 책임 윤리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민족의 비운을 방불케 하는 심각한 종교 드라마인데 홍해성의 최후 연출작이었다. ‘초창기 번역극 무대’, 한상철, <국립극단 50년사>, 연극과인간, 2000

  • 관련도서

    <국립극단50년사>, 국립극장, 연극과인간, 2000

  • 연계정보

    -서항석 인물
    -극예술연구회
    -국립극단
    -서항석(徐恒錫)
  • 관련사이트

    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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