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흥부전

작품소개
조선 후기에 나온 작자·연대 미상의 국문소설. 소설로서뿐만 아니라 판소리로도 불려지고 있어서 판소리계 소설이라고도 한다. <흥보전>·<박흥보전(朴興甫傳)>·<놀부전>·<연(燕)의 각(脚)>·<박흥보가>·<흥보가>·<놀부가>·<박타령> 등으로도 불린다.
내용
충청·전라·경상 3도의 어름에 사는 형제가 있었다. 형은 놀부라 하고 아우는 흥부라 하였다. 형 놀부는 천하에 둘도 없는 악한으로서 심술이 사납기가 이루 말할 수 없으나, 아우 흥부는 형과 정반대로 천하에 둘도 없는 선인이며, 효행이 지극하고 동기간에 우애가 독실하였다. 이와 같이 형제의 성격은 상반되었다. 어느 날 동생과 같이 살아오던 형 놀부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전답과 재산을 흥부에게는 밭 한 마지기, 돈 한 푼도 주지 않고 나가서 빌어먹으라 하며 아우 흥부를 내쫓았다. 하는 수 없이 아내와 수많은 아들을 데리고 들어갈 집 한 칸 없이 언덕에다 움집을 초라하게 지어놓고 들어앉았으나 흥부는 앞으로 살아갈 길이 아득하였다. 거기에다가 아들은 해마다 낳아서 10여 명이나 되었다. 하루는 흥부가 견디다 못하여 형의 집으로 쌀되나 얻으려고 갔다. 그러나 그는 악독한 형 내외에게 죽을 정도로 매만 얻어맞고 온갖 욕설과 구박을 당하고 돌아왔다. 흥부 내외는 아무리 품팔이를 하여도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었다. 또 하루는 읍내에 나갔다가 이방한테서 김부자가 죄를 지어서 형벌로 볼기 30대를 맞게 되었는데, 대신 볼기를 맞는 사람에게 30냥을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김부자 대신에 볼기를 맞고 30냥을 받으려고 수백 리를 걸어서 관청으로 가보니, 김부자의 죄가 없던 일로 되었다 하는 바람에 헛수고를 하고 말았다. 어느덧 겨울이 가고 봄이 돌아왔다. 강남에서 제비들이 돌아와 집을 짓는다. 흥부의 집 처마에도 제비가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하루는 뱀이 제비집에 들어가서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하므로, 흥부가 불쌍히 여겨 뱀을 칼로 치려 할 때 제비새끼 하나가 땅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흥부가 불쌍히 여겨 부러진 다리를 당사실로 동여주었고, 제비새끼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 그 제비가 강남으로 갔다가 제비왕에게 사실을 고하고, 흥부의 은혜를 갚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제비왕은 그 제비에게 박씨 하나를 주며 흥부에게 갖다 주라고 하였다. 이듬해 봄에 그 제비가 흥부의 집에 와서 박씨 하나를 뜰에 떨어뜨려 주었다. 흥부는 그 박씨를 심었고, 가을이 되어 커다란 박이 많이 열렸다. 흥부 내외가 박을 하나씩 타보니 선약을 비롯하여 수많은 보물과 선녀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흥부는 일시에 부자가 되고 많은 애첩과 시종들을 데리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놀부는 아우 흥부가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가, 흥부가 화려하게 사는 것을 보고 시기와 질투가 나서 이리 저리 빈정대다가 흥부에게 부자가 된 이유를 물었다. 놀부는 아우의 내력을 듣고 이듬해 봄에 제비새끼를 일부러 잡아서 다리를 부러뜨려 가지고 실로 동여매 주었다. 제비는 그 이듬해 박씨를 하나 갖다 주었다. 놀부는 그 박씨를 심고 가을이 되기를 고대하였다. 가을이 되자 많은 박이 열렸다. 놀부 내외는 하인을 시켜 박을 타게 하였다. 첫째 박에서는 여러 동자가 나와서 놀부를 골리며, 돈 3000냥을 빼앗아갔다. 둘째 박에서는 노승이 여러 상좌를 데리고 나와서 또 5000냥을 빼앗아갔다. 놀부는 그래도 혹시나 보물이 나올까 하여 세 번째 박을 타게 하였더니, 상여꾼이 나와서 또 다시 3000냥을 빼앗아갔다. 넷째 박에 보물이 들었다는 말을 듣고 타게 했더니, 이번에는 무당들이 나와서 5000냥을 빼앗아갔다. 마지막 박을 타보니 누런 똥이 쏟아져 놀부의 집을 똥바다로 만들었다. 이때 아우 흥부는 형이 패가망신했다는 소문을 듣고 형 내외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와서 지성으로 섬기며, 자기 집과 똑같은 형의 집을 지어주어 살게 했다. 이에 악독한 놀부도 회개하고 선인이 되어 형제가 화목하게 살게 되었다고 한다.
<흥부전>의 근원과 전승
이 작품의 근원설화로는 ‘동물보은담(動物報恩譚)·선악형제담(善惡兄弟譚)·무한재보담(無限財寶譚)·모방담(模倣譚)’ 등을 꼽는데, 이 설화들은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도 널리 유포되어 있으며, 이런 설화들이 서로 유동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주로 구전설화로 전해지다가 판소리로 불려지면서 내용에 첨삭이 가해지고 세련된 형식을 띠게 되었다. 판소리에서는 <흥보가>·<박타령>이라고도 하며, 개화기에 이르러 이 작품이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되면서 <연(燕)의 각(脚)>이라는 이름의 신소설 형식으로 개작되기도 했다. 이본은 필사본으로는 <흥보전>·<박흥보전>·<연의 각>·<흥부전> 등의 이름으로 전하는 30종의 이본이 있고, 판본으로는 20장본과 25장본, 2종의 경판본이 있는데, 25장본을 모본으로 하여 20장본이 나왔다. 활자본으로는 신문관본·박문서관본·신구서관본·경성서적조합본·영창서관본·세창서관본·회동서관본·동양서원본·중앙인서관본 등 10종이 전하는데, 이 중 영창서관본과 세창서관본 중에 <연의 각>으로 되어 있는 이본이 있고, 활자본 중 경성서적조합본은 한문본이다. 한편, <흥부전>은 판소리로 불렸기 때문에 많은 창본도 다수 전하는데 <박타령>이란 제목으로 신재효(申在孝)의 <박타령>, 이선유(李善有)의 <박타령>을 비롯하여 4종이, <흥보가>란 제명으로 19종의 창본이 있다. 이들 이본들은 경판본을 제외하고 대부분 판소리적인 서두로 시작되고 있어 <흥부전>은 판소리 사설의 정착 과정에서 생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본간의 관계를 보면, 경판본과 사본인 일사본(一侶本) <흥부전>이 비슷한 내용을 지니고 있으나 경판본이 훨씬 축약되어 있고, 신재효 <박타령>의 독창성이 가장 강하며 다른 이본들은 서로 비슷하다. 신재효본에는 흥부의 착한 행실을 말한 부분, 흥부가 놀부에게서 쫓겨 나와 오랫동안 빌어먹는 장면 등이 추가되어 있는 반면, 흥부가 매를 대신 맞으러 가는 장면 등은 빠져 있다. 신재효가 전래의 <흥부가>를 <박타령>으로 개작한 것은 대략 1870년대로 추측되는데, 개작 당시에 신재효의 독창성이 많이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신재효의 <박타령> 개작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놀부를 당당한 양반으로 격상시키고 흥부를 타락한 인물로 전락시킨 점이나 작품에서 서민적 삶의 발랄성을 거세하고 주제를 다분히 윤리·도덕적으로 바꾸어 놓은 점 등은 반드시 긍정적으로만은 평가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작품의 지역적 배경에 대해서 일사본·신재효본·<연의 각> 등에서는 모두 충청·전라·경상 삼도의 어름이라고 하였는데, 경판본에서는 경상·전라 양도의 어름이라고 하였다. 또 경판본에서는 성이 없이 놀부·흥부로만 하였는데, 세창서관본에서는 두 형제가 연생원의 아들이라고 하였고, 신재효본에는 박가(朴哥)로 나온다.
<흥부전>의 주제
<흥부전>의 주제는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는 도덕적 측면에서 이해한 경우와 빈부간의 편차를 문제삼은 사회적·경제적 측면에서 이해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표면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우애를 내세우고 있지만, 작품의 중심 소재는 도덕률과 재물의 갈등에 있다. 가난하면서도 착하게 살려고 하는 인물과 부유하면서도 탐욕스럽게 사는 인물의 대비를 통해 생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심각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작품의 분위기가 결코 무겁지 않은 것은 판소리적 특성에서 연유한다. 놀부의 심술과 흥부의 가난에 대해 과장된 수사법을 사용하여 해학성을 높임으로써 독자들을 흥미롭게 한다. 이로 인해 소재의 심각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춘향전>·<심청전> 같은 소설과는 달리 남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서민의 실생활과 직접적 연관을 갖는 경제문제를 주제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기존의 고대소설과는 다른 일면을 보인다.
연계정보
-놀부전
관련멀티미디어(전체0건)
이미지 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