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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나비

저자
김기림(金起林)
생애(1908~?)
본명은 인손(仁孫), 호는 편석촌(片石村). 1908년 5월 함북 성진 출생. 1915년 임명보통학교에 입학했고, 1921년 상경하여 보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 중퇴한 후 1930년 니혼대학(日本大學) 문학예술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기자로 근무했으며, 이듬해 고향에 내려가 ‘무곡원(武谷園)’이라는 과수원을 경영했다. 1933년 이태준, 정지용, 이무영, 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를 조직했다. 1936년 일본 센다이(仙臺)에 있는 도호쿠제대(東北帝大)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1939년 졸업과 함께 귀국해 조선일보 기자생활을 계속했다. 1942년에는 경성중학교 영어 교사를 지냈고, 광복 후 상경해서 서울대, 중앙대, 연세대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1946년 임화·김남천·이태준 등이 중심이 된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여 시부위원회(詩部委員會) 위원장을 맡았다. 6·25 전쟁 때 납북되어 1988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1931년 조선일보 기자로 있으면서 시 <고대(苦待)>·<날개만 도치면>(1931)을 발표한 후 시 <어머니 어서 일어나요>·<오, 어머니여>·<봄은 전보도 안치고>(1932) 등을 발표했다. 1933년 구인회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이상(李箱)과 함께 당시 모더니즘의 대표 주자로 활약했다. 이양하, 최재서 등과 함께 주지주의 문학을 소개하는 데 앞장섰으며, 특히 리차즈(I. A. Richards)의 이론을 도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문학이론을 정립했다. <현대시의 기술>·<현대시의 육체>(1935) 등 주지적 시론과 <바다의 향수>·<기상도>(1935) 등의 중요한 시들을 계속 발표했다. 시집으로 <기상도>(1936), <태양의 풍속>(1939), <바다와 나비>(1946), <새노래>(1948), 수필집<바다와 육체>(1948), 평론집 <문학개론>(1946), <시론>(1947), <시의 이해>(1949) 등이 있다. 김기림의 문학적 활동은 창작과 평론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초기 작품은 감상주의에 대한 비판과 새로움의 추구로 요약된다. 김기림은 근대화와 그에 따른 물질문명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으며, 이를 통해 시에서 역시 밝고 건강한 시각적 이미지들이 주를 이룬다. 중기의 작품들은 세계적인 불안사조의 유행과 근대화의 허실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지식인으로서의 자각을 보여준다. 김기림은 시각적 이미지 또는 회화성만을 추구하는 시는 또하나의 순수주의에 지나지 않으며, 시는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은 장시 <기상도>(1935)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후기의 작품은 광복을 전후한 시기로서, 문학의 사회참여를 가장 중요한 역할로 꼽고 있다. 시대정신 전달을 시의 목표로 설정했던 입장과 맥을 같이하여 광복기는 시인이 공동체 속에서 이를 대변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인식이 반영된 시집 <새노래>(1948)는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한 강하고 희망찬 의지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1939년 4월 <여성>지에 발표된 김기림의 시 작품. 1946년에 발간된 같은 제목의 시집 <바다와 나비>에도 수록되어 있다. 바다라는 큰 사물과 가냘픈 생명체인 나비의 대비, 푸른 빛과 흰 빛의 대비에서 작위적인 기교를 구사하지 않고, 혹은 저절로 기교가 구사되어 선명한 색채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청무우밭’, ‘새파란 초생달’의 참신한 이미지의 창조는 한국시의 높은 달성이라 할 수 있다. - <한국현대문학명작사전>, 김윤식, 일지사, 1979(······) 1934년 4월호 <여성>지에 발표된 <바다와 나비>는 그의 세 번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시집 <바다와 나비>에서 가장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작자도 생각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초기시와는 전혀 다른 정감적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바다’를 ‘나비’에다 관련시킨 시적 발상법도 미묘하지만, 표현기교에서도 극치에 이르고 있다. 이미 1910년대 최소월(承九)의 시에서도 이러한 발상법으로 된 <조(潮)에 접(蝶)>이 있기도 하다. 바다의 ‘흰 물결’을 ‘꽃’으로 착각하고 뛰어들었다가 돌아오지 못한 ‘나비’의 운명을 그린 것이 <조에 접>이라면, 푸른 바다를 ‘청(靑)무우밭’으로 알고 뛰어들었다가 그 물결에 젖어서 공주처럼 돌아온 ‘나비’를 노래한 것이 <바다와 나비>이다. “바다가 무섭지 않다”는 ‘흰 나비’, 이것은 무지의 순수한 상태로서 투명한 지성을 표방한 초기시와는 다른 정감의 세계이다. 푸른 물결을 청무우밭으로 착각하고 날아드는 ‘흰 나비’를 통해서 순정의 세계를 체험하고 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이른 봄, 그래서 ‘흰 나비’는 바다로 날아든 것이다. ‘흰 나비’가 ‘공주’로 연계되면서 ‘가냘픈 맛’을 더하고, 그리고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라는 결미행절에 이르러 서정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나비’를 보는 작자의 시각조차도 정감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 초기의 지적 차원과는 달리, ‘나비’를 순수하고 가냘픈 속성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새파란 초생달’조차도 그 초기시에서 배제되었던 것으로 ‘흰 나비’와 ‘공주’와 ‘초생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비’를 사물화한 것이 아니라, ‘나비’를 의인화하여 바다로 뛰어드는 심경, 이것은 분명히 서정적인 정감의 속성이 아닐 수 없다. (······) - ‘태양·태풍·바다의 심상과 공동체 의식’, 김학동, <김기림 평전>, 새문사, 2001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위에서 조악돌처럼 집었다가 조악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 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조광(朝光)>, 1936년 3월) - ‘길’, 김기림, <김기림>, 문학세계사, 1996
관련도서
<김기림 전집>, 심설당, 1988 <김기림 문학비평>, 윤여탁 편, 푸른사상사, 2002 <김기림>, 정순진 편, 바로북닷컴, 2001 <김기림 평전>, 김학동, 새문사, 2001 <김기림>, 김용직, 건국대출판부, 1997 <김기림>, 김유중 편, 문학세계사, 1996 <정지용·김기림의 세계>, 이활, 명문당, 1991 <김기림 연구>, 김학동, 시문학사, 1991 <김기림 문학연구>, 정순진, 국학자료원, 1991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한국현대문학명작사전>, 김윤식, 일지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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