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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호접

출연/스태프
* 출연 조택원, 이시이 에이코 * 스태프 음악/김준영
내용
전래의 ‘승무’를 해석한 춤. 속세를 동경한 승려가 심산유곡을 버리고 새벽녘에 사바세계로 내려가 파계한 후 불교를 동경하면서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죽음을 생각하는 등 고뇌한다는 내용이다. 참고 : <한국 근대춤 인물사> 현대미학사, 1999, 송수남
예술가
조택원 (1907~1976) 1907년 함경남도 함흥 출생. 휘문고등보통학교와 보성전문학교 시절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다. 1927년 가을 일본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서울 공연을 보고 일본으로 가서 그의 문하생이 되었다. 1932년 귀국 중앙보육학교 무용 담당 교수로 취임하고 조택원무용연구소를 개설하였으며, 1934년부터 무용발표회를 개최하였다. 1937년부터 1년간 유럽 방문한 후 1941년부터 일본과 한국에서 공연을 하였다. 1942년부터 만주, 중국 등지에서 일본군 위문 공연을 했으며 1945년 귀국 후 조선무용예술협회 위원장에 취임하였다. 1947년부터 미국에서 순회 공연을 가졌으며, 1953년부터 2년간 유럽 각지에서 4백회 공연을 하였다. 1957년 일본에서 은퇴 공연을 가졌다. 1960년 귀국하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으로 역임하였고, 서울시문화상(1966)을 수상하였다. 예술원 회원(1972-1976)과 금관문화훈장 서훈을 받았다.
재공연
- 1952년 10월 4일 일본 동경 - 1976년 10월 4일~10월 6일 국립극장 - 1977년 11월 12일 국립극장, 조택원 추모공연 - 1982년 5월 29일~6월 26일 국립극장, 실험무대
기사
‘승무의 인상’에 기생이 추는 재래 승무는 얼굴이 없었다. 호흡이 미약하여 어쩐지 끊어져 들어가는 듯하였다. 관중을 고려하지 않고 혼자 추기에 정신이 없었던 것이 조택원의 승무로 호흡이 확대되었다. 무대와 극장의 약속이 이행된 대남자(大男子)의 대승무! ‘승무의 인상’으로부터 다시 새로운 의도에 고심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시이 바쿠 대가의 영향을 부인하기 어려운 묵극. 주체하기 곤란한 장삼이 날리는 데서 살았다. (<동아일보> 1938년 12월 3일, 정지용)
관련자료
<우리무용 100년> 김경애 외, 현암사, 2001. <가사호접> 조택원, 서문당 <무용저널 제10호> 한국무용평론가회, 1995년 12월호 “이 한 장의 사진” <춤지> 1991년 11월호 “무용인 조택원론” <월간 춤> 정지용, 1988년 4월호 "이 한장의 프로그램” <춤지> 1986년 2월호 “이 한장의 프로그램” <춤지> 198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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